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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열 컬럼, 수필

<한시산책>봄바람 속(春風裏)에--송한필의 시에 차운(次韻)하다

작성자박영우|작성시간12.04.02|조회수612 목록 댓글 0

 

우연히 읊다(偶吟) / 송한필(宋翰弼)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화락금조풍) 오늘 아침 바람에 지누나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가련하다 짧은 봄날이여

往來風雨(왕래풍우중) 비바람 속에 왔다 가누나

 

위의 시는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우리 한시로 언젠가는 한번 붓글씨로 폼나게 써보고 싶은 글이다. 형님인 송익필과 함께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고지식한 유학자가 지은 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감상적이고 애틋한 내용이다(그는 율곡 이이의 학파라는 이유로 율곡에 원한을 품고 있었던 東人들의 미움을 사서 형과 함께 집안이 풍지박산이 난다.). 

 

한시의 묘미는 첫구와 둘째 구의 대구(對句)가 잘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 표본이라 할 만 하다. 꽃이 피다(花開)에 꽃이 떨어지다(花落)로 어재 밤 비(昨夜雨)에는 오늘 아침 바람(今朝風)으로 깔끔하게 대비시켰다. 앞 2구절이 자연의 풍광이나 현상을 묘사한다면 뒷 2구절은 이에 대한 작가의 소회를 읊는 방식이 예술성 깊은 당시풍(唐詩風)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그 전범을 보는 듯하다. 꽃이 흐드러지는 찬란한 봄이 짧듯이 우리의 청춘도 왜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그런데 이 시는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薛濤)의 春望詞를 떠 올리기도 한다.

 

花開不同賞(화개부동상)   꽃이 펴도 함께 즐길 이 없고

花落不同悲(화락부동비)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그리운 그대는 어디 계시온지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꽃은 이렇게 피고 지고 있는데

 

 

송한필 시를 차운하여(次韻宋翰弼偶吟) / ?

 

紅顔春風裏(홍안춘풍리) 봄바람 속에서 홍안이더니

白髮秋霜(백발추상풍) 가을 서리 바람에 백발이 되었구나

可惜一場夢(가석일장몽) 아깝다 한 마당의 꿈이여

幼老刹那(유노찰나중) 아이와 늙음이 찰라인 것을

 

송한필(宋翰弼)의 차운(次韻)

 

괜찮은 차운이지요. 아시는 님들은 알겠지만 차운(次韻)이란 다른 사람 시의 운자(韻字)를 그대로 따라 짓는 것으로, 옛날에는 선비나 시인묵객들이 모여 시회를 열고 한 사람이 시를 지으면 그의 운에 맞추어 같은 분위기의 시를 짓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잘 알려진 시에 운을 맞추어 시를 짓거나, 情人에게 사랑의 시를 쓰면 이에 운을 맞추어 화답을 한다. 위 시의 운(韻)은 둘째구 마지막 자 과 넷째구 마지막 자 임은 잘 아실 것이다.

 

1,2구의 댓구는 홍안(紅顔)에 백발(白髮)로, 봄 바람 속(春風裏)에 대해서는 가을 서리 바람(秋霜風)으로 하였다 . 셋째 구는 송한필(宋翰弼)의 시구 可憐一春事와 아주 유사하게 可惜一場夢으로 하여 차운한 것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마지막 구는 송한필의 시처럼 1,2구에서 나온 내용을 되새기며 홍안에 대해서는 아이()를 백발에 대해선 늙음()을 매치시킨다. 이제 고백하는데 이 시는 송한필의 한시를 흥얼거리다가 무례를 무릅쓰고 필자가 한번 차운해 본 것이다. 450 여년 전(조선 선조대)에 지은 시에 이제와서 차운함이 쌩뚱맞기도 하지만 느낌만은 고금이 다르겠는가.

 

차운할 시를 생각하던 중 떠오른 단어가 '春風裏(봄바람 속)'인데, 문득 필자가 아직도 부를 줄 아는 덩리진(鄧麗君)의 '티엔미미(甛蜜蜜)' 란 노래 가운데에 나오는 이 말이 머리를 스친다....

 

甛蜜蜜 你笑得甛蜜蜜 달콤했었지, 당신의 웃음 참 달콤했었어
tian mi mi, ni xiao de tian mi mi

好像花兒 開在春風裡 開在春風裡 봄바람 속피는 예쁜 꽃처럼 봄바람 속에 피는 꽃처럼
haoxiang hua er kai zai chunfeng li kai zai chunfeng li

在那裡 在那裡見過你 어디서 어디에서 당신을 보았었지

zai na li, zai na li jian guo ni
你的笑容 這樣熟悉 당신의 웃는 얼굴 이리도 낯익은데

ni de xiaorong zhe yang shouxi
我一時想不起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네

wo yi shi xiang bu qi
阿...在夢裡 夢裡夢裡見過你  아... 꿈속이었어, 꿈속 꿈속에서 당신을 보았어

a, zai meng li. meng li, meng li jian guo ni
甛蜜笑得多甛蜜 달콤한 미소 아주 달콤한 미소를
tian mi, xiao de duo tian mi

是你是你 夢見的就是你 당신 당신이군, 꿈에서 본 게 바로 당신이었어

shi ni, shi ni meng jian de jiu shi ni

 

그리고 필자가 전에 <한시산책>에 올렸던 28살에 요절한 천재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 선조, 명종 대)의 한시도...

 

春雨暗西池(춘우암서지) 봄비가 서쪽 연못에 자욱하니
輕寒襲羅幕(경한습라막) 가벼운 한기 휘장 안으로 스민다
愁倚小屛風(수의소병풍) 시름겨워 작은 병풍에 기대어 서니
墻頭杏花落(장두행화락) 담장 머리에서는 살구꽃이 지누나


또한 조선 중기의 名妓 부용(芙蓉)이 지은 시(春風)도,

.

垂楊深處依開窓(수양심처의개창)  수양버들 늘어진 창을 열고 기대서니

小院無人長綠苔(소원무인장녹태)  임없는 작은 뜰엔 푸른 이끼만 자라고

簾外時聞風自起(렴외시문풍자기)  주렴 밖에 가끔 봄바람 절로 일면

幾回錯認故人來(기회착인고인래)  님 오시나 속은 것이 몇번인고


 

한편, 백발(白髮)과 가을 서리(秋霜)가 같이 나오는 건 이백(李白)이 말년에 지은 秋浦歌(가을 포구의 노래)란 제목의 시인데, 말년이라고 해 봤자 필자의 나이 보다도 헐 아래였겠지만....(詩仙 이백은 61세로 귀천하신다.)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백발이 삼천길이나 자란 것은,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 근심이 많아 그리 된 연유라오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거울속 내 모습 알아보
지 못하겠네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어디서 가을 서리가 내려 앉았는지

 

 

 

 

차운(次韻)하여 지은 멋드러진 시

 

다른이가 지은 시의 운(韻)을 딴 작품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필자가 아는 것으로 몇 수 여기에 붙인다. 차운시 중에는 원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차운한 시의 작품성이 뛰어나서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는 시도 적지 않다. 우선 고려 중기의 서정시인 정지상(鄭知常)의 '夏雲多奇峰('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가 많다)'라는 제목의 시인데, 이는 당나라보다도 이전인 동진(東晉) 시대의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四時' 중 두번째 구에 나오는 구절을 그대로 詩題로 삼았다. 그리고 四時의 운도 그대로 따라 하였기에 대표적으로 차운한 시라 할 수 있다. 우선 도연명의 시를 보면,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 봄 물 사방의 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하운다기봉) 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가 많다

秋月揚明輝(추월양명휘) 가을 달 밝은 빛을 날리고

冬嶺秀孤(동령수고송) 겨울 산마루 외로운 소나무 빼어나누나

 

이에 대해 정지상의 차운 시는,

 

白日當天中(백일당천중) 눈부신 해 하늘 복판에 오니

夏雲自作(하운자작봉) 여름 구름 스스로 봉우리를 만드네

僧看疑有刹(승간의유찰) 중이 보고선 절이 있지 않나 의아해 하고

鶴見恨無(학견한무송) 학이 보고선 소나무 없음을 한탄하겠다.

정지상이 차운한 시가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흰구름 떠도는 뜨거운 여름 한낮, 지나가는 중은 잠시 땀을 식히며 쉬어 갈 절을 찾고 있고, 날아가는 학도 날개릏 접고 앉았다 갈 소나무를 찾고 있는 모습이 선연하다. 이 차운시만 봐도 과연 정지상은 우리나라 최고의 서정시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정지상의 그 유명한 시 '大同江'을 차운한 시가 있기에 여기 소개한다. 우선 정지상의 시,

 

雨歇長堤草色(우갈장제초색다) 비 개인 긴 강둑에 풀색 짙어 가는데
送君南浦動悲(송군남포동비가) 임 보내는 남포엔 구슬픈 노래 소리
大同江水何時(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고
別淚年年添綠(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파도에 보태니

 

조선 초 세종대왕 시대의 문신 이극감(李克堪)의 '南浦(남포)'란 제목의 시,

 

江上雪消江水(강상설소강수다) 강 위에 눈이 녹아 강물이 불어나니

夜來聞唱竹枝(야래문창죽지가) 밤새도록 이별의 노래 들려오누나

與君一別思何(여군일별사하진) 이제 그대와 한번 헤어지면 그리움은 언제나 끝날지

千里春心送碧(천리춘심송벽파) 푸른 물결에 이 마음 실어 천리 임 계신 곳에 보내리

 

놀랍게도 각구의 맨끝자 多, 歌, 盡, 波를 모두를 정지상의 시와 똑같게 맞추어 지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얼마나 정지상의 大同江이란 시를 좋아했는지 짐작이 간다. 이렇게 철저하게 차운한 것을 따로 화운(和韻)이라고도 한다는데.....원시와는 또 다른 묘미가 느껴지지 않는가.

 

조선 중기의 불우한 방랑시인 이달(李達, 허난설헌과 허균의 詩 스승)이 윤서중의 시를 차운한 시(次尹恕中韻)는 그의 작품 중에도 백미로 꼽힌다고 하는데, 원시인 윤서중의 작품은 찾을 길이 없고...

 

京洛旅遊客(경락여유객) 서울 부근을 떠도는 나그네여

雲山何處(운산하처가) 구름과 산 어디메가 그대 집이오

疎煙生竹徑(소연생죽경) 엷은 안개 대나무 숲길에 피어 나오고

細雨落藤(세우낙등화) 보슬비 등나무 꽃 위로 떨어지는 곳이라오

 

조선 중기 최고의 시인 중의 한 사람인 그는 서얼이라는 신분의 굴레를 벋지 못하고 팔도의 명승사찰을 떠돌며 시를 지었으나, 그 역시 벼슬과 세속의 영화에 대한 집착을 벋어던지지 못하고 한양 근처를 배회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京洛이란 표현을 쓴 건 복잡한 시인의 심정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서울은 공식 명칭이 한성(漢城)이고 서민들은 한양(漢陽)이라 불렀는데 이 모두 쓰지 않았고, 그렇다고 서울 부근이라는 말도 아닌 옛 중국의 수도인 낙양(洛陽)을 지칭한 洛자를 썼다는 것은 시적인 상상력을 주기 위한 표현 이상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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