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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열 컬럼, 수필

<한시산책>사내들의 우정

작성자박영우|작성시간12.05.10|조회수840 목록 댓글 1

여인들 사이에 어찌 우정이 없으리오마는 역시 사내들의 사귐이 더 깊고 울림이 큰듯 하다. 우리나라엔 조선 중기 오성과 한음의 끈끈한 우정이 있었고, 중국 춘추시대엔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이 지금까지도 인구(人口)에 회자되고 있다(管鮑之交). '지음(知音)'의 고사로 유명한 진(晉) 나라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는 그의 연주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알아주는 벗 종자기(鐘子期)가 죽자 더 이상 의미가 없다하여 거문고 줄을 잘라 버리지 않았는가(伯牙絶絃).

 

 

사내들 사귐엔 역시 술이

 

주선(酒仙)이라 불리는 이백(李白, 701~762 唐)에겐 더불어 대작할 벗들이 무척 많았던듯 하다. '벗과 만나 함께 묵으며(友人會宿)'란 제하의 시,

 

滌蕩千古愁(척탕천고수) 천고의 시름을 씻어버리려고
留連百壺飮(류련백호음) 연이어 백병의 술을 함께 마셨네
良宵宜淸談(량소의청담) 이 좋은 밤 명리를 떠난 얘기 나누자니
皓月未能寢(호월미능침) 밝은 달도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구나
醉來臥空山(취래와공산) 취하여 빈 산에 누우니
天地即衾枕(천지즉금침) 천지가 바로 이불이요 베개로구나

 

시엔 대체로 4줄 짜리 절구(絶句)와 8줄 짜리 율시(律詩)가 주된 형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시는 특이하게도 6줄 짜리이다. 이것이 오히려 자유분방한 이백에게 더 어울리는 듯도 하다. 그래도 짝수 구 마지막 자의 운(韻)은 맞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음 시 역시 그의 작품으로 '산속에서 그윽한 벗과 한잔(山中與幽人對酌)'을 감상해 보자.

 

兩人對酌山花開(양인대작산화개) 두 사람이 대작하니 산에 꽃이 피네
一杯一杯復一杯(일배일배부일배) 한잔 한잔 그리고 또 한잔
我醉欲眠君且去(아취욕면군차거) 나는 취해 잠이 오려 하니 자네는 그만 가시게
明朝有意抱琴來(명조유의포금래) 내일 아침 생각이 있으면 거문고를 안고 오시게나

 

아침부터 거문고를 뜯으시면서 해장술을 하시겠다는 말씀인데, 이런 술벗을 두고 시성 두보(杜甫, 712~770 唐)는 '술고래 여덟 신선(飮中八仙歌)'이란 제하의 시에서,

 

知章騎馬似乘船(지장기마사승선) 하지장은 말을 타면 배를 탄 듯 흔들리고

眼花落井水底眠(안화낙정수저면) 몽롱해저 우물에 빠진다 해도 거기서 그냥 자리라

汝陽三斗始朝天(여양삼두시조천) 여양*은 서말 술은 마셔야 비로소 조정에 나아가고

道逢麯車口流涎(도봉국거구류연) 길에서 누룩 실은 수레만 만나도 군침을 흘리며

恨不移封向酒泉(한불이봉향주천) 주천* 지방으로 봉해지지 못함을 한스러워 했네

(중략)

李白一斗詩百篇(이백일두시백편) 이백은 술 한말에 백편의 시를 쓰고
長安市上酒家眠(장안시상주가면) 장안 저잣거리 술집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네
天子呼來不上船(천자호래불상선)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自稱臣是酒中仙(자칭신시주중선) 자칭 “신은 술 마시는 신선입니다” 라고 하였다지

(후략)

*八仙=李白, 賀知章. 蘇晉. 李璡. 李適之. 崔宗之. 張旭. 焦遂. *여양(汝陽) : 여양왕 李璡

*주천(酒泉) : 한나라 무제 때 곽거병이란 장군은 병사들의 떨어진 사기를 독특한 방법을 다시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3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서역을 정벌하러 나갔던 장군은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을 때, 황제가 전장으로 본내온 술 한 병을 들고 오아시스에 모이게 하여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술을 부으며, "이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라 황제가 우리에게 내려준 술이다. 우리 이 술을 함께 마시고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자." 그러자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전의를 불태웠고, 결국 서역정벌에서 성공하여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 그 오아시스 이름을 주천(酒泉)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지금은 서역 실크로드로 들어가는 인구 20만 정도의 도시가 되었다.

 

벗을 찾아 먼길이라도

 

당대의 대학자이며 탁월한 시인인 한유(韓愈, 768~824 唐), 그 풍류가 돋보이는 시 '배꽃이 피었다는 소문을 듣고(聞梨花發贈劉師令)'

 

桃溪惆愴不能過(도계추창불능과) 복사꽃 (떨어져 쌓인) 개천 애처로워 건널 수가 없었네
紅艶紛紛落地多(홍염분분낙지다) 붉은 꽃잎들 어지러이 땅에 떨어져 수북히 쌓였었지
聞道郭西千樹雪(문도곽서천수설) 듣자니 성 서편에 천 그루 배나무마다 눈꽃이 피었다지
欲將君去醉如何(욕장군거취여하) 그대와 가서 함께 취하고 싶은데 그대 생각은 어떠신가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떨어진 개울을 애처로워 건널 수 없다는 시인의 감수성이 부럽다. 이제 배꽃이 다시 피니 면역(?)이라도 좀 생기신 건가, 아니면 더 이상 벗을 만나 한잔 할 일을 미룰수 없다는 말씀인가.

다음은 윗 시를 지은 한유의 詩 제자이며 '퇴고(推敲*)'의 고사로 얽힌 가도(賈島, 779-843 唐)의 그 유명한 시 '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尋隱者不遇)'로 벗을 찾아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서도 만나지 못한 걸 아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采藥去(언사채약거) 스승님은 약초 캐러 떠나서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이 산 속에는 계시지만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 깊어 있는 곳을 모른다 하네

 

*퇴고(推敲)의 고사 : 당나라 때 시인인 가도(賈島)라는 중이 어느 날 나귀를 타고 가는데 다음과 같은 詩想이 떠올랐다.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 한가롭게 사노라니 사귀는 이웃 적고
草徑入荒遠(초경입황원) 풀밭 지름길 멀리 황원으로 들어가는데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연못가 나무숲에 깃들고
月下門(승고월하문) 중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그런데 마지막 구절의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민다 라고 하는 퇴(推)"가 좋을지, "두드린다고 하는 고(鼓)"가 좋을지 고민에 빠졌는데... 마침 당대(唐代)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를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자 '퇴(推)' 보다 '고(鼓)'로 바꾸는 것이 낫겠다고 말해 줬다는 일화가 있다. 그 후, 쓴 글의 문장을 가다듬는 말로 사용하게 된다.

 

윗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시로 고려조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눈온 날 벗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雪中訪友人不遇)'를 들 수 있는데, 얼마나 벗을 만나 술 한잔 하면서 정담을 나누고 싶었으면 눈 오는 날 멀리 사는 친구 집(말을 타고 갔으니 가까운 곳은 분명 아닐터)을 갑자기 찾아 갔을까.

 

雪色白於紙(설색백어지) 눈빛이 종이보다 더욱 희길래

擧鞭書姓字(거편서성자) 채찍 들어 내 이름을 그 위에 썼지
莫敎風掃地(막교풍소지) 바람아 불어서 땅을 쓸지 마라

好待主人至(호대주인지)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렴.

 

元末 明初의 시인 고계(高啓)의 '호은군을 찾아서(尋胡隱君)'는 마치 불원천리 연인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渡水復渡水(도수부도수) 물(水)을 건너고(渡) 다시(復) 물을 건너
看花還看花(간화환간화) 꽃(花)을 보고(看) 또(還) 꽃을 보며
春風江上路(춘풍강상로) 봄바람(春風) 강언덕(江上) 길(路)
不覺到君家(불각도군가) 그대(君) 집(家)에 닿은(到) 줄 알지 못했네(不覺)


 

절친과 이별하고

 

시벗(詩友)인 맹호연(孟浩然, 689~740 唐)을 황학루에서 이별하며 지은 이백의 시 '황학루에서 맹호연을 광릉으로 보내며(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 누대에서 두분이 한잔하고 헤어진 다음, 배를 타고 멀리 사라져 가는 벗의 아득한 돛단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백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루) 오랜 친구 황학루 서쪽에서 이별하고,
烟花三月下揚州(인화삼월하양주) 아지랭이 꽃피는 삼월 양주로 내려갔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외로운 돛 먼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唯見長空天際流(유견장공천제류) 보이는 건 오직 하늘에 맞닿아 흐르는 물 뿐이어라

 

이백보다 열살 이상 아래였으나 둘도 없는 시벗이었던 두보(杜甫)와 이별하며 지은 시 '동쪽 성문에서 두보를 보내며(魯郡東石門送杜甫)'도 애잔하기는 마찬가지다. 두보를 보내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주위를 서성이고 있는 시인의 심정을 어찌 알까.

 

醉別復幾日(취별부기일) 취해 헤어지니 언제 다시 만날까

登臨遍池臺(등임편지대) 연못과 누대에서 올라 두루 돌아다녔네

何時石門路(하시석문로) 어느 때 이 석문길에서 만나

重有金樽開(중유금준개) 다시 금술병을 열어 한잔 할 수 있을까

 

두보 늘 이백의 뛰어난 재주를 존경하였데, 그가 귀양간 후에는 꿈에 나타나서 '꿈속에서 이백을 보다(夢李白)'이란 시를 짓기도 하였다. 다음의 夢李白 두번째 편중 일부를 옮겨 본다.

 

浮雲終日行(부운종일행) 뜬 구름 종일토록 하늘을 떠다녀도
遊子久不至(유자구불지) 떠난 친구는 오래도록 오지 않네
三夜頻夢君(삼야빈몽군) 한밤에 자주 그대 꿈속에 나타나니

情親見君意(정친견군의) 친한 정으로 그대의 마음을 보노라
(중략)

孰云網恢恢(숙운망회회) 누가 말했나 하늘의 그물이 한없이 넓다고
將老身反累(장로신반루) 몸이 늙어 도리어 법망에 걸려들었네
千秋萬歲名(천추만세명) 천추 만년에 이름을 남긴다고 해도
寂寞身後事(적막신후사) 죽은 뒤의 일은 적막하기만 하다

 

나이를 초월한 술벗이며 시 친구인 하지장(賀知章, 659~744)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은 이백(李白, 701~762)의 시 '술을 대하니 하지장 생각이 나서(對酒憶賀監)'


四明有狂客(사명유광객) 사명산에 사는 광객 있었으니
風流賀季真(풍류하계진) 풍류객 계진 하지장이라
長安一相見(장안일상견) 장안에서 처음 만난 후
呼我謫仙人(호아적선인) 나를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라 불러주었지
昔好杯中物(석호배중물) 지난날 술을 그리 좋아하시더니
翻為松下塵(번위송하진) 지금은 소나무 아래 티끌이 되었구려
金龜換酒處(금구환주처) 금거북을 바꾸어 술을 사놓고 보니
卻憶淚沾巾(각억루첨건) 지난날 추억에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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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종선 | 작성시간 12.05.12 술, 술 ,술.........
    아!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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