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끝내기에는,
옛날 서당식 교육을 받지 않은 우리들에겐 한문이란 무척 낯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감도 잡히지 않는, 심지어 필자 조차도 확실히 아는지 의심스런(?) 썰(舌)을 십수회에 걸쳐 늘어놓고는, 다 끝났다고 하니 미안한 감이 없지 않네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손에 잡힐 만한 야그로 蛇足을 붙이니, 그동안 못마땅히 여겼던 벗님들이라도 너그러히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玩月堂(달을 완상하는 집) / 김가진 글씨
사람 이름(人名)과 땅 이름(地名)
옛적엔 통성명할 때, '어디 사는 아무개' 라 했다죠. 그만큼 지명과 이름이 중요했다는 야그겠지요. 그런데 예전엔 요즘과는 달리 사람 이름이나 지명을 들으면 뭔가 감이 잡히는 게 있었지요. 즉, 人名과 地名 속에 상당한 정보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이에 대해 좀 이야기 해 보기로 합시다.
1. 人名(태어난 순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는 대개 이름에 갑(甲)자가 붙으면 첫째, 을(乙)은 둘째가 되며(예 : 정치인 권노甲, 소설가 정乙병), 일본에선 단지 一, 二, 三, 四 에 사내 郞만 붙이면 훌륭한 이름이 되지요^^(예 : 이치로(一郞), 지로(二郞), 사부로(三郞), 시로(四郞)). 그러나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출생 순서에 따라 伯(또는 孟), 仲, 叔, 季 를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春秋時代 초기무렵 노나라의 희공(魯僖公)은 형제 중 막내로 그것도 서자로 태어나 왕이됩니다. 그런데 치열한 왕위쟁탈전에서 서숙(庶叔) 둘이 죽게됨에 이를 안타갑게 여겨 그들의 자식들에게 봉토와 姓을 하사하지요. 이때 큰 서숙의 자식에게 맹손(孟孫), 다음 서숙의 자식에게 숙손(叔孫) 그리고 막내인 친 숙부에겐 계손(季孫)이란 성이 주어집니다. 이 성씨만 봐도 孟孫씨가 비록 서자였지만 맏이고, 叔孫씨는 3째 그리고 季孫씨는 4째(또는 막내) 임을 알 수 있지요(이들 세집안은 이후 노나라의 최대 문벌이 되는데, 공자님 시대에도 노나라를 좌지우지했던 악명높은 三桓 집안임).
아래에는 역사를 장식한 유명인들의 이름 몇 예를 붙여 봅니다
백(伯) :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로 유명한 거문고의 달인 백아(伯牙)는 족보를 뒤져볼 필요도 없이
맏임
맹(孟) : 위의 孟孫씨 외에도 전국시대의 孟子도 첫째임에 틀림없음.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가의 맏아들 이름이 맹희(孟熙)씨임은 잘 아시지요.)
*서예 낙관에 맹춘(孟春)이나 맹하(孟夏)가 초봄이나 첫여름을 이름은 붓돌님들은 다 아시지요^^
중(仲) : 공자님의 다른 이름이 중니(仲尼)인데, 공자에겐 배다른 형님이 계셨기 때문에 버금 仲자가 붙은
게지요(신의 장난인지 아니면 신이 공평한 건지 몰라도, 공자같은 중국 아니 세계적인 성인의
형님이 역사에는 거의 한줄도 나오지 않는 팔푼이였다는 게 아이러니하지요).
또한, 삼국지에서 죽어서 까지도 제갈공명에게 당하는 사마의의 다른 이름이 중달(仲達)임은
잘 알 겁니다(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쫒았다나 뭐래나..)
고려조 김부식의 아들로 실세였던 김돈중이 노장 정중부(鄭仲夫)의 수염을 잡아댕기고 촛불로
그슬러 이에 분개 무신의 난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도 둘째 아들이네요^^
숙(叔) :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管仲, 둘째네~)이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키워준
사람은 포숙(鮑叔)이다' 했다던 그는 이름만을 봐도 셋째 아들.
2. 地名(江과 山을 중심으로)
예로부터 큰 산과 깊은 강은 경외의 대상이었고 위치를 말하거나 이름을 붙이는 기준이었다네요. 한가지 기본 법칙은, 지명에 陽자 붙으면 산의 남쪽에 위치해 있거나 강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란 의미이고, 陰자가 붙으면 당연히 그 반대에 해당됩니다. 위치상으로 산의 남쪽이나 강의 북쪽에 위치해야 좋기에 옛 도성의 이름에는 陽자가 많이 붙습니다.
陽자가 붙은 지명
낙양(洛陽) : 洛水의 북쪽에 위치, 주나라의 왕도를 시작으로 중국 역대 10여국의 도읍지
함양(咸陽) : 강을 기준으로 해도 陽(북쪽), 산을 기준으로 해도 陽(남쪽)으로 모두 다(咸) 양이라하여
최고의 길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秦)의 수도로 위수(渭水)의 북쪽 그리고 아마도
종남산의 남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듯.
우리나라에도 같은 한자의 함양이 있는데 지리산을 북쪽에 두고 남강 지류인 경호강이
앞(남)으로 흐르고 있기에 붙여진게지요.
한양(漢陽) : 한수(한강) 이북에 위치한 서울의 옛이름
陰자가 붙은 지명
산음(山陰) : 절강성 소흥(紹興, 소흥주로 유명) 부근으로 書聖 왕희지의 고향.
우리나라도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청(山靑)의 옛이름이 山陰(음기가 너무 세다하여 개명
했음)
중국 넘들은 스케일이 커서인지 아니면 복잡한 걸 싫어 해선지 몰라도, 江이라 하면 장강(長江, 양자강)을 河라 하면 황하(黃河) 만을 지칭했습니다, 다만 江은 좀 길다고 長자 하나를 더 붙이고, 河에는 누런 물만 주야장창 흐른다고 누른 黃를 덧댄듯 합니다. 나머지 쬐만한(?) 강들에는 물 水자를 썼는데, 귀찮아서 그랬는지 그 앞에 딸랑 한 글자만을 주로 붙여 써왔습니다(예 : 洛水, 漢水, 薩水(살수), 등). 물론 이런 귀찮음증은 뒤에 가서는 차츰 사라져, 黑水를 黑龍江으로 바꾸어 부르고 홍콩 옆을 흐르는 강은 珠江(Pearl River)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옛 고구려와 중국 변경인 요동땅에는 요하(遼河)도 있지요.
(중국에서는 漢江이라 하면 우리의 한강을 말하지 않고 漢水와 長江을 일컬음)
河자가 붙은 지명
하북(河北) :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北京)과 항구도시 天津을 포괄하는 지역으로 황하의 북쪽에 위치
했다 하여 붙여진 지역 이름
하남(河南) : 중국에서는 황하강 남쪽인 허난성(河南省)을 지칭. 중국의 내륙 산시성(山西省)의
남쪽으로 성도는 중국에서는 쬐만한(?) 정저우(鄭州)
서울의 동쪽 한강 변에도 이런 지명이 있지요.
江자가 붙은 지명
강소(江蘇) : 동양의 베니스라는 쓰저우(蘇洲)가 위치한 장강 하류 지역인 장쑤성((江蘇省). 상하이
(上海)와 난징(南京)도 이 지역 내에 있지요.
절강(浙江) : 장강의 지류인 절강(浙江)에서 유래한 지명. 물이 구불구불 꺽인다(折)하여 붙여짐
풍광이 뛰어나고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며 서시(西施)도 이 나와바리인 杭州 출신이지요.
강남(江南) : 장강의 남쪽에 위치한 지방이나 도시를 말하는데, 故都 항조우(杭州)나 난징(南京) 등을
지칭.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의 '江南春'은 당시 번성했던 도시 난징(南京)을 두고
읊은 것이고, 두보의 '江南에서 李龜年을 만나다' 란 시는 그보다 훨씬 아래인 湖南성
長沙를 일컬음.
서울의 江南은 한강의 남쪽이라 붙인 지명인데, 옛날에는 노량진과 영등포 일대였다니..^^
외로운 구름(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은 '강남스타일'을 경원했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시 강남아가씨(江南女),
江南湯風俗(강남탕풍속) : 강남은 그 풍속이 음탕하여
養女嬌且憐(양녀교차련) : 딸자식을 교태스럽고 오냐오냐 키우네
性冶恥針線(성야치침선) : 바느질 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고
粧成調管絃(장성조관현) : 단장하고 악기 연주에만 열중하지
所學非雅音(소학비아음) : 배우는 건 건전한 음악도 아니고
多被春心牽(다피춘심견) : 대부분 春心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自謂芳華色(자위방화색) : 스스로 자신의 꽃다운 자색이
長占艶陽年(장점염양년) : 농염하게 오랫동안 갈 것처럼 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