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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돌

한시小考(1) - 우선 운(韻)을 떼고..

작성자박영우|작성시간14.10.01|조회수227 목록 댓글 0

운(韻)을 떼면서..

 

이미 벗님들에게 토설한대로 漢詩를 배우기 시작 한 건 순전히 붓글씨(書藝) 때문입니다. 밥벌이에 바빴던 시절엔 엄두도 못냈기에, 은퇴한 뒤에는 글씨나 쓰면서 소일하리라 맘먹었지요. 환갑 즈음 은퇴하게 됨에 서예에 입문하게 되는데, 漢文班에 들어가게 된 건 시건방지게도 한문글씨가 더 멋있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뜻도 잘 모르면서 그냥 그릴(?) 수만은 없다는 자존심이 한시를 배우게 된 계기지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자부합니다만..   

 

                        端硏竹爐詩屋(단계의 좋은 벼루, 대나무 화로, 시를 지을 수 있는 집) / 추사가 만년에 쓴 글씨

 

운(韻) 없는 한시는 없어

 

'韻'을 떼지 않고 짓는 漢詩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혼자 시를 쓰더라도 다른 사람, 특히 옛적 이름난 이의 시에서 차운(次韻, 남의 시에 화답하면서 韻字를 그 차례대로 두며 짓는 것)이라도 합니다. 고려 최고의 시인이라는 정지상(鄭知常, ?~1135 )은 한시의 鼻祖랄 수 있는 도연명(陶淵明, 365∼427, 東晉)의 그 유명한 '四時' 에서 차운하고, 그 중 한 구절 '夏雲多奇峰'을 쏙뽑아 詩題로 삼습니다.

 

四時 / 陶淵明

 

水滿四澤(춘수만사택)  봄에는 물이 사방 못에 가득하고

雲多奇(하운다기봉)  여름엔 구름이 기묘한 봉우리를 많이 만들지

月揚明輝(추월양명휘)  가을에는 달이 밝은 빛을 드날리고

嶺秀孤(동령수고송)  겨울엔 산마루에 孤松이 빼어나누나

  *2번째 구의 끝자(), 4번째 끝자()에 운을 넣었음(押韻)

 

夏雲多奇峰 / 鄭知常

 

白日當天中(백일당천중)  햐얀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이르니

夏雲自作(하운자작봉)  여름 구름 절로 봉우리를 만드네

僧看疑有刹(승간의유찰)  중은 절이 있겠지 하고 둘러보고

鶴見恨無(학견한무송)  학은 (쉴) 소나무가 없음을 원망하누나.
  *위 시를 차운하여 2번째 구의 끝자(), 4번째 끝자()를 일치시겼음. 

 

정지상이 차운한 시는 한폭의 멋드러진 산수화를 연상케 합니다. 흰구름 떠도는 무더운 여름 한낮. 지나가는 객중은 땀을 식히며 쉬어 갈 절을 찾고, 날아가는 두루미(鶴)는 잠시 날개릏 접고 앉았다 갈 소나무를 찾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요. 이 차운시만 봐도 과연 정지상이 고려, 아니 우리나라 최고의 漢詩 작가라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네요.

*蛇足 - 사실 두루미(鶴)는 소나무는 물론 다른 나무에도 앉지 못한답니다. 그래도 멋이 있어 보이니 松鶴圖 같은 걸 그리지만.. 나무에 앉을 수 있는 건 비슷한 모양이지만 크기가 좀 작은 황새(정수리에 붉은 점 없음)라네요. 에그 詩맛 떨어지네 ^^ 

 

 

짝수 구의 마지막 자엔 운을 넣어(押韻) 

 

위에 예를 든 시에서 보듯이 짝수구 마지막 자에 꼭 운을 넣습니다. 그런데 7언시의 경우에는 첫구의 마지막 자에도 압운하는 것이 원칙이지요. 성당시절 이백의 시,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 를 볼까요.

 

日照香爐生紫(일조향로생자연)  향로봉에 햇빛 비치니 보라빛 안개 피어나
遙看瀑布掛長(요간폭포괘장천)  멀리서 보니 폭포는 긴 냇물을 매달아 놓은듯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날라 떨어지는 물줄기 바로 밑으로 삼천 자

疑是銀河落九(의시은하낙구천)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

위에 언급한 고려조 정시상의 명시 '送人'에도,

 

雨歇長堤草色(우헐장제초색다)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짙은데

送君南浦動悲(송군남포동비가)  임 보내는 남포엔 구슬픈 노래소리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언제나 마를고

別淚年年添綠(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 해마다 물결위에 보태니

 

 

별난 운(韻)의 경우도

 

황진이의 시 相思夢에서는 매구 마지막 자 모두에 압운하고 있는데, 이는 혹시 그녀의 시짓는 실력을 뽐내기 위한 건 아닐런지..  

 

相思相見只憑(상사상견지빙몽)  그리워 만나보고 싶어도 꿈속에서 뿐

儂訪歡時歡訪(농방환시환방농)  내가 임을 찾아가면 임도 날 찾아나서
願使遙遙他夜(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거니 아득한 님 다른 밤 꿈에서는
一時同作路中(일시동작로중봉)  같은 때 같이 떠나 길 가운데서 만났으면

*儂(농)은 나(我)라는 뜻 : 일반적으로 잘 쓰는 글자가 아니나 운을 마추기 위해 택한 것으로 사료됨

(이 시는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로 시작되는 노래의 원전임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김삿갓의 시 중에 더 재미나는 게 있습니다. 그가 어느 산골 마을을 지날 때, 서당에서 하룻밤을 유하자고 간청하자 훈장이 운으로 覓(멱) 자를 연이어 부르면서 시를 지으면 재워주겠다 하였다나.. 그러나 천하의 김삿갓이 이쯤이야.

 

覓(멱)~

許多韻字何呼(허다운자하호멱)  허다한 운자 중에 어찌 覓자를 부르시나

覓(멱)~ 

彼覓有難況此(피멱유난황차멱)  아까 覓자도 어려웠는데 이번에도 覓자라..

覓(멱)~
一夜宿寢懸於(일야숙침현어멱)  하룻밤 잠자리가 覓자에 걸려있구나

覓(멱)~ 

山村訓長但知(산촌훈장단지멱)  산촌 훈장은 아시는 게 覓자 뿐인가?

 

그러나 이는 漢詩에 운을 붙이는 기본룰(押韻)을 무시한 거지요(산골 훈장이 이걸 제대로 알리가 없겠지만).

 

첫째, 운은 한자의 韻母(초성인 자음을 빼고 中聲과 終聲)만 같으면 그만이지 글자 자체가 동일한

       자일 필요는 없음.

둘째, 5언시는 짝수 구 마지막 자에, 7언시는 짝수 구와 첫 구의 마지막 자에만 압운하면 그만.

셋째, 압운하는 자는 평성(平聲)이어야 하는데, 覓(멱)은 측성(仄聲 : 우리 음으로 ㄱ,ㄹ,ㅂ,ㅅ 등의

       바침이 있는 경우는 대부분 측성에 해당)으로 운자로 부적합.

넷째, 한시란 먼저 운을 떼고는 자기가 시를 지은 후 상대가 화답하는 게 관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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