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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돌

한시小考(3) - 대구(對句)에 얽힌 野話

작성자박영우|작성시간14.10.13|조회수346 목록 댓글 0

꿈속에서 얻은 대련(對聯)

 

  枕溪樓(개울을 베고 있는 누각) / 조선 명필 이광사 글씨 (해남 대흥사 현판)

 

 

三國史記를 지은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은 詩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오직 정지상(鄭知常, ?~1135)에겐 주늑이 들어 있었다네요. 대동강에서의 이별을 그린 정지상의  '送人'은 고려조는 물론 우리나라 최고의 절창으로 뽑히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김부식에 밀려 '묘청의 난'으로 엮여 죽게 되는데... 

어느 봄날 김부식이 춘흥에 겨워 대련 하나를 떠올리고 만족해 합니다.

 

柳色千絲(유색천사록) 버들은 천가닥 푸르고

桃花萬點(도화만점홍) 복사꽃 만점이 붉어라

 

필자의 소견에는 꽤 괜찮은 대련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죽은 정지상이 나타나 김부식의 빰을 냅다 후려치면서, "네가 버들가지 천가닥, 복사꽃 만점을 세어 보았냐?" 호통을 치면서, 한 句에 한자씩 고쳐 주더라나요. 문뜩 깨어보니 꿈인데도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더랍니다. 

 

柳色(유색천사록) 버들은 가닥마다 푸르고

桃花(도화만점홍) 복사꽃 점이 붉어라

 

그리 보니 정지상이 꿈속에서 고쳐줬다는 대련이 훨씬 났군요. 숙적인 두사람 사이의 일화는 수없이 많으나 생략키로 하고, 암튼 좋은 대련 하나만 얻으면 시를 거의 다 지었다 할 수 있지요(불행이도 이 시에 이어지는 3,4구는 찾을 수 없네요).

 

임금을 곤혹스럽게 만든

 

宋나라 때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 묻혀 사는 관사복(管師復, 일명 臥雲 선생)이란 문재가 뛰어난 선비가 있었는데, 낭중지추(囊中之錐)라 그 명성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갑니다. 인종(仁宗)이 그를 불러 산속에 사는 것이 어떻시냐고 묻습니다. 이에,

 

滿塢白雲耕不盡(만오백운경부진)  둔덕 가득 흰구름 갈아도 끝이 없고,

一潭明月釣無痕(일담명월조무흔)  깊은 못속 밝은달 낚아도 흔적이 없데요

 

그러니 사시는게 어렵지 않냐고 다시 물으니,

 

竹影掃階塵不動(죽영소계진부동)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月光穿沼水無痕(월광천소수무흔)  달빛이 늪을 뚤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데요.

 

???

 

滄海難尋舟去迹(창해난심주거적)  큰 바다 배 지나간 자취 찾을 길 없고,

靑山不見鶴飛痕(청산불견학비흔)  청산에는 학 날라간 자취 볼 수 없데요.

 

그를 출사시켜 써먹으려던 인종의 의도는 학 날라간 꼴이 된 셈인데, 그 뒷담화는 딱히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위의 세 대련 중, 가운데 게 특히 명문으로 그 원작자에에 대한 설이 분분합니다. 宋나라 때의 스님 야보도천(冶父道川) 선사의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도 거의 비슷한 대련이 나오고(앞 句는 같고 뒷 구는 月穿沼水無痕으로 되었음), 역시 송대의 도솔종열(兜率從悅) 스님의 시에도 거의 유사한 내용이 보입니(여기엔 月光穿海浪無痕으로 水가 海로 바뀌었음).

 

통쾌한 김삿갓의 대구(對句)

 

김삿갓이 팔도강산을 두루 유리걸식하며 떠돌다 금강산에 갔을 때, 이빨 세기로 악명(?)높은 중과 시짓는 내기를 했다는 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공허(空虛)란 법명으로 알려진 스님, 김삿삿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터라 그를 만나자 허명이 아닌지 시험해 보기로 하지요. 먼저 공허가 젊잖게 선공하면서 이 별난 힘겨루기가 시작됩니다.

 

(공)朝登立石雲生足(조등입석운생족)  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니 구름이 발 밑에 생기네,

(삿)暮飮黃泉月掛脣(모음황천월괘순)  저녁에 황천담의 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리는군.

 

(공)絶壁雖危花笑立(절벽수위화소립)  절벽 비록 위태로워도 꽃은 웃으며 피어 섰네,

(삿)陽春最好鳥啼歸(양춘최호조제귀)  화창한 봄 더 없이 좋아도 새는 울며 돌아가는데..

 

(공)影浸綠水衣無濕(영침녹수의무습)  그림자가 綠水에 잠겼건만 옷은 젖지 않았소,

(삿)夢踏靑山脚不苦(몽답청산각불고)  꿈에 靑山을 두루 다녔지만 다리는 아프지 않았네.

 

(공)靑山賈得雲空得(청산가득운공득)  청산을 사고 보니 구름 덤으로 얻어다오,

(삿)白水臨來魚自來(백수임래어자래)  맑은 물가에 이르니 물고기 절로 따라 오데요.

 

(공)石轉千年方到地(석전천년방도지)  돌은 천년을 굴러야 마침내 평지에 닿겠소,

(김)峰高一尺敢摩天(봉고일척감마천)  봉우리 한 자만 높으면 감히 하늘을 만지겠오.

   

(공)雲從樵兒頭上起(운종초아두상기)  구름은 나무하는 아이의 머리 위에서 일어나고,

(삿)山入漂娥手裏鳴(산입표아수리명)  산은 빨래하는 여인의 손안에서 소리로 울리네.

 

(공)月白雪白天地白(월백설백천지백)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천지가 다 희네,

(삿)山深夜深客愁深(산심야심객수심)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소.

                                                                                  (공)은 공허의 발제구이고, (삿)은 김삿갓의 대구

 

이 대목에서 공허가 손을 들었다나 뭐라나... 보통 김삿갓은 조롱조나 삐딱한 비아냥 시로 잘 알려져 있으나, 이런 신선의 경지에 이른 시를 썼다는 게 경이롭지요, 그것도 즉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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