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漢文을 접하기 쉽지 않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엔 비록 선비나 식자들에게 한정되었던 건 사실이지만 漢文(한자가 아닌)이란 일상화되어 늘 접하는 문자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한문에서 음과 뜻을 빌어 만든 단어에만 익숙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한자는 병기하지도 않고... 이렇게 만들어진 단어란, 주로 명사나 형용사에 해당되는 字가 많이 차용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따라서 한문 문장의 다른 요소인 어조사(助詞, 전치사, 접속사에 해당), 부사, 동사 등에 해당하는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료됩니다.
동사형을 만드는데 쓰이는 爲과 作
어느 문자나 단어에 다른 말을 덧대어 그 지평을 넓히거나 다른 뜻을 지닌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건 흔한 일이지요. 한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동사형을 만드는 爲나 作 그리고 부사형으로 쓰이는 然(後述할 예정임) 등이 대표적이라 例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爲 자의 경우, '~위하여' 처럼 전치사에 가까운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 동사형을 만드는데 가장 빈번히 차용하는 字라고 합니다. 즉, 爲人 하면 '다른 사람(人)을 위하여' 라 해석할 수도 있지만, 동사형으로 '사람노릇하다' 나 명사적인 쓰임으로 '사람됨됨이' 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作의 경우도 비슷해서, 作心 하면 그 자체가 명사로 볼 수도 있으나 '마음먹다' 처럼 동사형으로 보고 새기는 게 자연스럽다는 거지요.
그러나 詩에서는 이렇게 爲나 作(또는 成) 등을 붙여 동사형을 만들어 쓰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벌써 눈치채신 님들도 있겠지만, 특히 5언절구 같이 기껏 20字를 써서 시를 지을 때,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말에 무려 10%(2字)를 투자(?)한다는 건 비경제적이겠지요 ^^.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5언절구(총 20字)에서는 드믈고, 5언율시(총 40字)나 7言詩 등에서도 많이 보이지는 않습디다(일반 漢文에서는 그리 많이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필자가 어렵게 찾은 몇 안되는 例를 시대순으로 나열하여 붙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백(李白, 701~762)이 나이를 초월한 술친구며 시벗인 하지장(賀知章, 659~744)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시(對酒憶賀監) 중,
昔好杯中物(석호배중물) 지난날 잔속에 든 걸(술) 그리 좋아하시더니
翻為松下塵(번위송하진) 이제는 (바뀌어) 소나무 아래 티끌되었구려
-전란(안록산의 난)에 쫒겨 천지사방을 전전하던 두보(杜甫, 712~770)가 長江 중류(四川) 강변 마을에서 모처럼 평화로운 말년을 보낼 때 지은 시(江村) 중,
老妻畵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놈은 바늘을 두들겨 낚시바늘만드네
-우리나라 최고의 서정시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고려조 정지상(鄭知常, (?~1135), 한시의 비조라 일컫는 동진(東晉) 도연명의 '四時' 중 夏雲多奇峰을 時題로 하여 차운(次韻)한 시 중,
白日當天中(백일당천중) 해가 막 하늘 복판에 이르니,
夏雲自作峰(하운자작봉) 여름 구름 절로 봉우리되네
-고려 후기의 문신, 곽예(郭預, 1232∼1286)의 시
野蝶成團戱(야접성단희) 들에는 나비 떼지어 놀고,
沙鷗作隊行(사구작대행) 모래벌엔 갈매기 줄지어 나네
-고려말의 고승이며 국사인 보우(普愚, 1301~1382) 스님의 '구름 산(雲山)' 중
日與雲山長作伴(일여운산장작반) 날마다 구름과 산 오랫동안 벗하니 安身無處不爲家(안신무처불위가) 몸 편한 데라면 거처삼지 않을 데 없네
-세자 자리를 동생(世宗)에게 물려준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년~1462)이 유랑하며 지은 걸로 추정되는 시(중에게 주는 시) 중,
山霞朝作飯(산하조작반) 산 노을로 아침에 밥짓고,
蘿月夜爲燈(라월야위등) 담장이 위에 뜬 달로 밤에 등불삼네
-조선 중종 시절 우의정과 홍문관대제학을 역임했던 문신 이행(李荇, 1478~1534)의 시 '감회(感懷)' 중,
白髮非白雪(백발비백설) 백발은 白雪이 아니니 豈爲春風滅(기위춘풍멸) 어찌 봄바람분다고 스러지랴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이 진중에서 읊은 시(陣中吟) 중. 讐夷如盡滅(수이여진멸) 오랑캐 원수를 모조리 무찌른다면 雖死不爲辭(수사불위사) 비록 죽음도 사양하지 않으리 -조선 인조대의 고승 진묵(震默, 1562∼1633)의 '크게 취해 읊다(大醉吟)' 중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하고 산을 베개삼아.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달을 등불로 구름은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삼아.
-김삿갓(金
氷消一點還爲水(빙소일점환위수) 얼음(氷)에서 한 점을 떼면 도로 물(水)되고,
兩木相對便成林(양림상대변성림) 나무(林) 둘이 마주하면 문뜩 숲(林)되네
-김부용(金芙蓉; 1813~1848?)은 송도 黃眞伊, 부안의 梅窓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詩妓로 일컫는데, 나이 차이가 많은 情人 김이양 대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시,
誰知燕子樓中淚(수지연자루중루) 누가 알리 燕子*樓에서 눈물이
洒遍庭花作杜鵑(쇄편정화작두견) 두루 뜰에 뿌려져 두견화되는 걸
*燕子는 '제비새끼'란 말로 홀로 남겨진 자신을 지칭한듯..
-조선말 절의있는 선비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탄하자 순절한 황현(黃玹, 1855~ 1910)의 시(晩秋) 중
粉甘葛笋咬爲筆(분감갈순교위필) 가루가 달디단 칙순은 씹어 붓만들고,
核爛榴房剖作杯(핵란류방부작배) 익어터진 석류는 쪼개서 잔만들리
끝으로 조선 중기의 대학자 김인후 선생의 百聯抄解 중에서 몇 例 뽑아 봤습니다
柳爲翠幕鶯爲客(류위취막앵유객) 버들이 푸른장막치니 꾀꼬리가 손님되고,
花作紅房蝶作郞(화작홍방접작랑) 꽃이 신방차리니 나비가 신랑되네
月作利刀裁樹影(월작이도재수영) 달은 예리한 칼되어 나무 그림자를 재단하고,
春爲神筆畵山形(춘위신필화산형) 봄은 신묘한 붓되어 산 모양을 그리네
松作洞門迎客蓋(송작동문영객개) 소나무는 마을 어귀에서 손님맞는 차일되고,
月爲山室讀書燈(월위산실독서등) 달은 산속 집에서 책읽는 등불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