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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돌

한시여행(1)- 서시, 왕소군, 양귀비 / 경국지색을 읊다

작성자박영우|작성시간15.04.12|조회수1,961 목록 댓글 0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면서..


한문이나 한시 그 자체도 머리 쥐나는 테마인데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깊이 파고들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깊이 반성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듯이 제목도 '한시여행'으로 잡고 재출발합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는 '미인'을 주제로 잡아, 옛적 나라의 운명을 쥐고 흔들었던 여인들에 대한 시를 주로 뒤져봤습니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미색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시에 등장하는 여인은 찾기 쉽지 않네요. 반면 중국 사람들의 미인사랑은 도가 지나쳐 시줄이나 쓰는 이들은 모두 달려들어 읊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여기에서는 중국의 4대미인이라 일컫는 여인, 그중에서도 서시, 왕소군 그리고 양귀비에 대한 시를 주로 찾아 붙여 봅니다.

 

1. 경국지색(傾國之色)

 

서시(西施 BC 5세기 춘추시대 말,  월나라 회계(會稽, 현재 紹興)출신

 

 

*오(吳)에 패한 월(越)의 구천(勾踐)은 회계의 치욕을 씻으려고 오왕 부차(夫差)에게 미인계를 쓰는데, 이때 바쳐진 여인.당시 많은 백성들이 서시의 얼굴을 보고자 거리가 인파로 들끓었다고 합니다. 서시를 데리고 간 월나라 대부 범려(范䗍)는 오왕을 알현하고는 '구천이 대왕의 은덕에 감복하여 온 나라를 뒤져 미색과 가무가 뛰어난 여인을 찾아 바치니 하녀처럼 쓰시라' 고 하였다나.. 이에 오나라 충신 오자서(伍子胥)는 '자고로 미색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요물' 이니 받아들이지 말라고 간하였으나 오왕은 못들은 척하지요. 이후 오왕은 그녀의 미색에 빠져 고소대(姑蘇臺)에 춘소궁(春宵宮)을 짓고 호화로운 연못을 파는 등 서시에게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후 스토리는 오왕의 역전패와 자살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서시는 어찌 되었을까요. 2가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하나는 승리한 월나라의 왕비가 서시의 미색이 월왕 구천을 미혹할까 두려워 오나라 사람들에게 패망의 원인이 이 요망한 여인이라고 부추겨 강물에 던져 죽게 한다는 설입니다. 또 하나는 이 복수전의 시나리오를 쓴 대부 범려가 월왕의 엄청난 제안도 마다하고 그녀를 데리고 몰래 太湖로 가서 일엽편주를 타고 안개속으로 살아졌다고..

서시빈목(西施嚬目) : 서시는 처녀 때 부터 흉통이 있어 가끔 눈을 찡그렸는데(嚬), 이렇게 찡그리는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지요. 오나라 부차에게 간 후에도 이런 증상이 계속되었는데, 이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형제를 만나보도록  배려했는지는 몰라도 오왕이 서시를 잠시 친정에 가 있게 하는데, 이때 얼굴 찡그리는 게 대유행이 되지요. 또한 '동시효빈(東施效嚬)'라는 말도 생기는데,  동쪽에 사는 박색들(東施)도 서시가 찡그리는(嚬) 흉내(效)를 내 얼굴을 구기고 다녀 동내 총각들이 죄다 도망갔다는 일화도..

 

-성당(盛唐) 시절 자연파 시인 왕유(王維, 699~761)는 '서시을 읊다(西施詠)'란 제하의 시를 남겼네요.

艶色天下重(염색천하중)  여인의 미모를 온 세상이 귀중히 여기니

西施寧久微(서시녕구미)  서시가 어찌 오랫동안 미천하게 지내랴

朝爲越溪女(조위월계녀)  아침에 월나라 시냇가의 여인이

暮作吳宮妃(모작오궁비)  저녁에는 오나라 궁전의 왕비가 되었네

賤日豈殊衆(천일개수중)  빈천할 땐 뭇 여인과 특별히 달랐으랴만

貴來方悟稀(귀래방오희)  귀하게 되니 비로서 드문 미색임을 알겠구나

邀人傅脂粉(요인부지분)  사람을 시켜 분단장을 하게 하고

不自著羅衣(부자착라의)  비단 옷도 직접 입을 필요없었네

君寵益嬌態(군총익교태)  임금이 총애하니 아양은 더욱 떨고

君憐無是非(군련무시비)  임금이 아끼니 잘잘못도 없네

當時浣紗伴(당시완사반)  지난날 같이 빨래해던 동무들

莫得同車歸(막득동거귀)  누구도 선택받아 수레타고 가지 못했네

持謝隣家子(지사인가자)  이웃 여인들에게 일러주노니

效嚬安可希(효빈안가희)  찡그리는 흉내로 무얼 바라겠는가

 

-동시대 시선(詩仙)이라 불리던 이백(李白, 701~762)의 소주(蘇州) 고소대(姑蘇臺)를 회고한 시(烏棲曲, 까마귀 깃드는 노래),

姑蘇臺上烏棲時(고소대상오서시)  소주(蘇州) 고소대 위에 까마귀 깃드는 때

吳王宮裏醉西施(오왕궁리취서시)  오나라 왕궁에는 서시 취해 있구나

吳歌楚舞歡未畢(오가초무환미필)  오나라 노래 초나라 춤, 환락은 끝나지 않았는데

靑山欲銜半邊日(청산욕함반변일)  청산은 해의 반쪽을 입에 물려고(해지려고) 하는구나

   *이 시를 접하고 하지장(賀知章,596~744)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의 것이라 극찬하며 적선(謫仙, 하늘에서 귀양나온 신선)     

     이라는 별명을 이백에게 지어주고, 당시 황제인 현종에게 곁에 두라고 천거하였다네요.

 

-북송(北宋) 대시인 소동파(蘇東坡, 1036~1021)의 '西湖 상에서 한잔 하는데 날이 갠 뒤에 비오고' 중

水光瀲灎晴方好(수광렴염청방호)   물빛 빛나고 찰랑거리니 갠 날이 좋고

山色空濛雨亦奇(수색공몽우역기)   산색 몽롱하니 비올 때도 또한 기이하네

欲把西湖比西子(욕파서호비서자)  서호를 가지고 서시와 자태를 비교하라면         *西子 = 서시

淡粧濃抹總相宜(담장농말총상의)   엷은 화장이나 짙게 분단장 모두 좋다 하리

 

 

왕소군(王昭君, BC 2세기 전한(前漢) 시대 ; 元帝 때의 궁녀로 후에 흉노왕 선우의 왕비가 됨)

 

한(漢)나라 초기에는 국력이 미약하였는데, 특히 흉노에게는 늘 주늑이 들어있어 금은보화는 물론 여자들까지 바쳐야하는 처지였다네요. 물론 이런 상황은 한무제(漢武帝) 때나 되서야 겨우 흉노를 북방으로 밀어내고, 우리의 고조선 나와바리(?) 까지도 손을 뻗치지만(漢四郡)..  한나라 초기 원제(元帝) 때는 특히 흉노의 세력이 강성했는데,  흉노왕 선우가 평화를 대가로 한나라 공주를 보내라 하니, 꼼수로 궁녀 중 하나를 골라 보내기로 합니다. 

당시에는 황제에게 침수들 궁녀를 택할 때 얼굴 그림을 보고 골랐다네요. 궁녀가 한두명도 아니고 사진기가 없던 시절이라 화공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는데, 예쁘게 그려 달라고 뇌물을 건네는 일이 다반사였답니다. 그런데 왕소군(王昭君)은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었던지, 아니면 자존심이 강했던는지는 몰라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네요. 그러니 원제가 흉노에게 바칠 궁녀로  왕소군이 선택된 건 이 때문이라는 게지요. 흉노측에서 와서 데려갈 때 비로서 실제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초상화와는 달리 천하절색이니 어찌하랴.

아무튼 흉노의 땅에 끌려간 왕소군은 흉노왕 선우의 왕비가 되지만 늘 고국을 그리워하다 죽었다고 합니다(왕소군이 끌려간 후 60년 동안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없었다고 함). 흉노땅에는 풀이 거의 없는데, 왕소군이 죽어 묻묻묻힌 무덤은 늘 푸르러 청총(靑塚)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그녀는 중국 4대 미인 중 별명이 낙안(落雁)으로 그 미모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날으는 것도 잊고 떨어졌다니 때구(大國)넘들의 뻥이란 정말..^^  왕소군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후한시절 서경잡기(西京雜記)를 필두로 시인묵객들의 붓(筆)과 잎(口)에 널리 회자됩니다. 당나라 초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동방규(東方虯)란 시인의 '春來不似春' 이란 천하명구가 대시인 李白에 의해 발굴되기도 하지요

 

-초당(初唐)의 무명시인 동방규(東方虯, ?~?)는 '왕소군의 원망(昭君怨)' 이란 시가 있지요.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음에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왔음에도 봄날 같지 않구려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절로 허리 끈이 느슨해진 것이지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허리와 몸매를 해서 그런게 아니라오

 

-동방규의 시를 발굴한 이백(李白, 701~762)도 '왕소군(王昭君)' 이란 시를 썼네요.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   왕소군 옥으로 단장한 안장을 떨치고

上馬啼紅顔(상마제홍안)   말에 오르는데 발그레한 얼굴 울고 있구나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   오늘은 한나라 궁궐의 여인이나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   내일 아침에는 오랑캐 땅 첩될 몸

 

-이백과 동시대(盛唐)의 두보(杜甫, 712~770)는 왕소군이 낳서 자란 데도 찾아가네요(詠懷古跡)

群山萬壑赴荊門(군산만학부형문)  뭇 산과 많은 골짜기를 넘어 형문에 다다르니

生長明妃尙有村(생장명비상유촌)  왕소군이 낳고 자란 마을이 아직도 있구나     *明妃 = 왕소군

一去紫臺連朔漠(일거자대연삭막)  한번 왕궁을 떠나 삭막한 사막으로 가고는

獨留靑塚向黃昏(독유청총향황혼)  홀로 푸른 무덤(靑塚)에 누어 황혼을 마주하고 있겠지

 

 -북송(北宋)의 개혁 정치가이며 시인인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악곡(樂曲)으로 2수(明妃曲)나 썼네요^^

"明妃曲(一)"

明妃初出漢宮時(명비초출한궁시)  왕소군이 처음 한나라 궁궐을 나설 때

淚濕春風鬢脚垂(누습춘풍빈각수)  눈물은 봄 바람을 적시고 귀밑머리 드리웠네

低廻顧影無顔色(저회고영무안색)  고개 숙여 그림자 돌아보는 얼굴은 창백하였는데

尙得君王不自持(상득군왕부자지)  오히려 왕도 어쩌지 못했다네

歸來却怪丹靑手(귀래각괴단청수)  돌아와서 화공을 수상히 여기는데

入眼平生幾曾有(입안평생기증유)  눈에 드는 그림 평생 얼마나 되었던가

意態由來畵不成(의태유래화불성)  마음 모양은 예로부터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데

當時枉殺毛延壽(당시왕살모연수)  당시 화공 모연수만 잘못 죽였다네

一去心知更不歸(일거심지갱불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걸 알고

可憐著盡漢宮衣(가련착진한궁의)  가련하도다! 한나라 궁의 옷을 있는대로 다 입었네

寄聲欲問塞南事(기성욕문새남사)  소식을 물어 국경 남쪽 한나라 일을 알려해도

只有年年鴻雁飛(지유년년홍안비)  다만 해마다 기러기만 날아 오갈뿐

"明妃曲(二)"

明妃初嫁與胡兒(명비초가여호아)  왕소군이 처음 오랑캐 왕에게 시집가는데

氈車百輛皆胡姬(전거백량개호희)  담요두른 수레 백대 모두 오랑캐 여인들뿐이구나

含情欲語獨無處(함정욕어독무처)  마음속 생각을 말하려 해도 할 데가 없어

傳與琵琶心自知(전여비파심자지)  비파타며 전하는 마음 스스로만 안다네

黃金杆撥春風手(황금간발춘풍수)  황금 비파채를 잡은 봄바람 같은 손으로

彈看飛鴻勸胡酒(탄간비홍권호주)  비파를 타며 날아가는 기러기 보며 오랑캐 술을 권하네

漢宮侍女暗垂淚(한궁시녀암수루)  한나라에서 데려온 시녀들 몰래 눈물 흘리고

沙上行人却回首(사상행인각회수)  모래위를 가는 사람들 문득 고개를 돌리네

漢恩自淺胡恩深(한은자천호은심)  하나라의 은혜는 절로 얕아지고 흉노의 은총은 깊어져

人生樂在相知心(인생락재상지심)  사는 즐거움이란 서로 마음을 아는 것이라

可憐靑塚已蕪沒(가련청총이무몰)  가련하다, 푸른 무덤(靑塚) 벌써 잡초에 뭍혀

尙有哀弦留至今(상유애현류지금)  오히려 슬픈 가락 지금까지도 남아있구나

 

-우리나라에도 비련의 여인 왕소군을 읊은 시가 있네요. 조선 효종(孝宗, 1619~1659)이 왕세자 시절 북경에 볼모로 갔을 때 지은 시(燕京有感) 중 일부,

萬里殊方作此行(만리수방작차행)   만리 타향 이번 길을 하고 보니

時危事難一身輕(시위사난일신경)   시절은 위태롭고 일은 어려운데 이 몸은 할 일이 없네   

漢嬪怨恨琵琶曲(한빈원한비파곡)   한나라 궁녀(왕소군)의 원한 맺힌 비파곡

燕客*悲歌出塞聲(연객비가출새성)  형가*의 슬픈 노래 소리 들리는듯

       *燕客 : 진(秦)나라에 복수하려고 연(燕)나라 왕자 단(丹)과 모의한 자객 형가(荊軻). 진시황의 암살에 실패하고 죽음

 

 

양귀비(楊貴妃719~756, 당나라 현종대, 이름은 옥환. 안록산의 난 때 근위병에게 죽임을 당함)

 

양귀비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양(楊)씨 가문의 양녀가 되는데, 양아버지의 임지인 四川 지방에서 곱게 키워집니다. 미색이 출중하여 소문이 나 현종의 아들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지요. 당현종은 정비가 죽자 궁녀를 물색하는 중, 아들 수왕의 비가 절세의 미인이라는 소문에 온천궁에 행행(行幸)한 기회에 그녀를 보고 홀딱 빠집니다. 이에 치사하게도 아들의 여인을 취하기 위해 수왕에게 다른 여자를 하사하고 궁으로 데려와 6년 후에는 정식으로 귀비(貴妃)로 책봉합니다. 현종은 치세 초에는 어진 임금으로 정평(開元의 治)이 났으나, 차츰 싫증을 느끼는데다 양귀비에 빠져 정사에는 등하시 하게 됩니다. 총애가 지나치다 보니 양귀비의 자매나 많은 친척들에게 봉작을 내리는데, 특히 6촌 오빠인 양소에게는 국충(國忠)이란 이름까지 하사하는 등 국정이 극도로 문란하게 되지요. 이런 와중에 양국충의 지근 안록산이 난을 일으켜 온 나라가 전란 속에 빠져듭니다. 현종과 양귀비는 피난가던 중, 그녀의 목숨을 요구하는 호위군사들의 요구로 왕도 어쩌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正史에도 양귀비를 '절세의 풍만한 미인(資質豊艶)' 으로, 가무(歌舞)에 뛰어나고 왕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고 전합니다. 이백(李白)은 양귀비를 '활짝 핀 모란'으로 비유했고, 中唐 백거이(白居易)는 현종과의 애련한 사랑을 장한가(長恨歌)라는 긴 사설로 노래한 바 있을 정도로 중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사랑의 주인공입니다.

 

-성당(盛唐) 이백(李白, 701~762)이 당현종의 부름을 받고 즉석에서 지었다는 시(淸平調詞) 3수,

"淸平調詞(一)"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양귀비) 의상은 구름이요, 얼굴은 모란꽃이라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로화농)   봄바람 난간을 스치니 이슬맺힌 꽃 농염하구나

若非群玉山*頭見(약비군옥산두견)  만일 군옥산 머리에서 본 서왕모가 아니라면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필시 달아래에 요대에서 만난 선녀임에 틀림없네요

             *군옥산(群玉山) : 신선인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곳

"淸平調詞(二)"

一枝濃艶露凝香(일지농염로응향)   한 가지 농염한 꽃 이슬에 향기 머금으니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왕단장)  무산 선녀의 구름과 비인가 애간장을 태우네

借問漢宮誰得似(차문한궁수득사)   묻노니, 한나라 궁안에 누가 이와 비견되리

可憐飛燕*依新粧(가련비연의신장)  가녀린 미녀 비연(飛燕)이 새로 단장하고 나온다면 몰라도

            *무산의 구름과 비(雲雨巫山) : 초나라 회왕이 꿈마다 한 가인이 나타나 즐겁게 지내다가 헤어질때 자기는 아침에는                 구름으로 저녁에는 비로 변하는 무산의 신녀(神女)라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 남녀간의 사랑이나 정사를 의미함.                *비연(飛燕) : 말 그대로 나는 제비처럼 날씬한 몸매의 미인. 한나라 성황제 때 황후인데,  춤을 추다 바람에 날려 연못에                 떨어지려 하자 황제가 급히 손목을 잡았다는 일화가 있음

"淸平調詞(三)"

名花傾國兩相歡(명화경국양상환)   모란과 경국지색(양귀비) 둘다 서로 즐거워 하는듯

常得君王帶笑看(상득군왕대소간)   늘 임금은 웃음을 띄고 바라보고 있네

解釋春風無限恨(해석춘풍무한한)   온갖 근심 봄바람에 털어버리려

沈香亭北依欄干(침향정북위난간)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 서 있네

  *당 현종이 침향정 못가에서  양귀비와 함께 거닐며 모란꽃을 완상하다가 문득 이백을 부릅니다. 자유분방한 이백을 겨우   

   찾아을 때, 그는 대취하여 몸 조차 가눌 수 없었는데 겨우 일으켜 물을 끼얹고 정신을 차려 데려가서 짓게 했다는 시가

   바로  절창 淸平調詞 3수랍니다

 

-중당(中唐)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장한가(長恨歌)' 중

楊家初長成(양가유녀초성장)  씨 집안에 이 있어 이제 막 장성했는데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깊은 규방에서 키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천생려질난자기)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일조선재군왕측)  하루 아침에 뽑혀 임금 곁에 있게 되었구나
回眸一笑百媚生(회모일소백미생)  돌아보며 방긋 웃으면 백가지 미태 넘쳐나고
六宮粉黛無顔色(육궁분대무안색)  여섯 궁궐 분단장한 궁녀들 무색케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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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긴 노래의 끝은 양귀비의 애절한 죽음을 묘사한 것인데,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선 둘(현존과 양귀비)이 비익조 되길 바라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같이 연리지 되길 원하네

天地長久有時盡(천지장구유시진)   하늘과 땅이 오래되어 다한다 해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맺힌 한 면면히 이어져 끊어지지 않으리                   

                  *비익조(比翼鳥) :  전설상의 새로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이라 짝를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나..

                      *연리지(連理枝) :  한 나무가 다른 나무와 가지로 서로 붙어서 나무결이 하나로 이루어진 것.

 

-만당(晩唐) 두목(杜牧, 803~852)은 '화청궁을 지나며(過華淸宮)' 양귀비를 회상하는데, 그는 양귀비의 미모에 대해서 보다는 그녀가 특히 좋아하여 멀리 남방(廣東)으로 부터 말을 달려 조달했다는 열대과일 여지(荔枝)에 대해 풍자하네요.

 

長安回望繡成堆(자안회망수성퇴)  장안을 돌아보면 수놓은 비단이 쌓인 곳

山頂千門次第開(산정천문차제개)   산꼭대기 일천 대문이 하나하나 열리고

一騎紅塵妃子笑(일기홍진비자소)   먼지 뒤집어쓰고 말 한 마리 양귀비 미소를 머금건만

無人知是荔枝來(무인지시여지래)   그것이 여지가 온 줄은 아는 이는 없었다네

 

-우리나라에서도 양귀비를 읊은 시가 꽤 있는데, 고려 무신정권 시절 문신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여지(荔枝)' 라는 시도 비슷하군요 (아마 당시 그는 우리나라에서 이 귀한 과실을 맛본 소수의 선택된 신분이 아니었으까..)

玉乳氷漿味尙新(옥유빙장미상신)  우유빛에 얼음같은 과즙 맛은 아직도 신선하고

星飛馹騎走風塵(성비일기주풍진)  날듯이 역마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데

却因咫尺三千里(각인지척삼천리)  도리어 삼천리가 지척인듯

添得紅顔一笑春(첨득홍안일소춘)  (양귀비) 발그레한 얼굴에 봄같은 웃음이 더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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