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붓돌

한시여행(7) - 성삼문과 신숙주(조선초) / 시어버린 우정

작성자박영우|작성시간15.05.26|조회수764 목록 댓글 0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북소리는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데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  머리를 돌리니 해는 지려 하네

黃泉無客店(황천무객점)  황천길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오늘 밤은 뉘 집에서 묵어 가나

 

널리 회자되어 온 성삼문의 죽음에 앞서 쓴 시(臨死絶命詩)입니다(여러 버전이 있어, 2번째 구에 西山日欲斜(서산에 해는 지려는데) 또는 西風日欲斜(서풍에 해는 지려는데)로 된 경우, 그리고 3번째 구 말미의 客店 대신 酒店 또는 一店(주막 하나)로 바뀐 경우도 있는데 의미상 큰 차이는 없). 성리학으로 새로 태어난, 개명한 조선에서 거열형(車裂刑)이라는 중국 전국시대나 진한(秦漢)대에 있었던 야만적인 방법으로 사육신의 사지를 찢어 죽입니다. 더욱이 성삼문의 둘도 없는 벗이며 세종의 최측근인 신숙주가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겼다는 혐의(?)를 지을 수 없습니다. 대개 나라에 공이 있던 사람들은 비록 큰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외딴 곳으로 귀양을 보내거나, 적어도 신체를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사약을 내리는 게 보통인데도..

 

      

                  성삼문 초상화                                                신숙주 초상화

   

세종대왕이 총애한 두 젊은이, 요동땅을 오가며

 

신숙주(申叔周, 1417~1475)와 성삼문(成三問,1418~1456 )은 벼슬길에 올라 집현전에 들어가 집현전학사가 됩니다. 두 사람다 학문이 뛰어나고 외국어에 밝아 한글창제에 진력하고 계시던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게 되지요. 특히 요동으로 귀양나온 明의 한림학사 황찬(黃瓚)이 음운(音韻)에 깊은 학식이 있음을 알고 세종대왕은 이 두 사람을 무려 13차례나 요동땅으로 보냅니다. 이는 둘다 젊은데다 한문은 물론이고 외국어에도 능통함에 황찬과 소통하는데 가장 적임이란 걸 아셨기 때문이지요. 요동을 오고 갈때 두 사람 사이에 주고 받은 시 몇수 소개합니다.

 

慙余學未似君精(참여학미사군정)  내 배움 그대만큼 정치하지 못함 부끄러운데

同作遼陽萬里行(동작요양만리행)  요동땅 만리길을 함께 하게 되었구려

句句吟成皆白雪(구구음성개백설)  글귀마다 읊고 나면 모두 흰 눈처럼 흩어지니

秋來能免百愁生(추래능면백수생)  돌아올 가을에는 온갖 시름 면할 수 있를런지

요동땅으로 떠날 때 송별연에서 성삼문이 동행하는 신숙주에게 화답한 시(向遼東用京洛諸公送行韻和泛翁)입니다. 학문이 신숙주에 못 미침을 걱정하고 성과가 있을지 두려워하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네요. *泛翁:신숙주의 字

 

蒲茁來時亦不多(포줄래시역불다)  떠나 올 때는 부들이 싹도 많지 않았는데

歸途滿眼有蒹葭(귀도만안유겸가)  돌아가는 길엔 눈앞에 가득 갈대꽃이구려

節序遷移驚遠客(절서천이경원객)  계절의 변화가 멀리서 온 나그네를 놀래게 하지만

孤吟猶聳兩肩蓑(고음유용양견사)  외로이 읊조리는 시구 오히려 어깨를 들썩이게 합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말위에서 신숙주가 지어 성삼문에게 보여 준 시(松站道中馬上口號示謹甫)입니다. 요동에 귀양나와 있던 明의 음운학자 황찬과의 일이 잘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 중인듯 하지요.  *謹甫:성삼문의 字

 

畢境難窺學深海(필경난규학심해)  끝내 배움의 바다 깊은 곳을 들여다 보기 어려웠지만

稍令愚惑祛胸襟(초령우혹거흉금)  점점 어리석고 미혹한 가슴을 열게 하였지요

從天宣召無多日(종천선소무다일)  천자의 부르심 받을 날 멀지 않으리니

肯使鸞凰滯棘林(긍사란황체극림)  난새 봉황을 가시 덤불에 머물게 하겠나요

귀양나온 음운학자 황찬에게 신숙주가 드리는 시(贈黃主事瓚)입니다.

 

순발력이 뛰어난 시인, 성삼문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일화랍니다. 성삼문이 시문에 뛰어나다는 소문에 백로를 시제로 한 수 지어보라 청함에 이렇게 한 연을 짓습니다. 

雪作衣裳玉作趾(설작의상옥작지)  눈(雪)으로 의상을 짓고 옥으로 발을 만들었네

窺魚蘆渚幾多時(규어노저기다시)  갈대 물가에서 물고기를 엿본 게 얼마나 많았던고

그러나 정작 가지고 나온 그림은 검은 색의 백로도가 아닌가. 일부러 성삼문을 골탕먹이기 위해 연출한 게 분명합니다만 성삼문은 지체없이 대련을 지여 보입니다

偶然飛過山陰縣(우연비과산음현)  우년히 산음현*을 날라 지나가다가   *산음현(山陰縣) : 중국의 명필 왕희지의 고향

誤落羲之洗硯池(오락희지세연지)  잘못하여 왕희지가 벼루 씻던 연못에 떨어졌구나

 

공부 욕심이 많은 신숙주

 

신숙주는 집현전 학사로 있으면서 장서각에 들어가서 평소에 보지 못한 책을 열심히 읽고 동료를 대신하여 숙직하면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공부하기가 일쑤였답니다. 숙직이 아닌 때에도 장서각에 파묻혀서 귀중한 서책들을 읽느라 밤을 샜다고 하지요. 김안로()의 용천담적기()에 그 일화가 실려있습니다.

殿 寐. 之. 寢. 上. 之. (신숙주가 집현전에 들어가 장서각에서 평소에 보지 못한 책들을 가져다 보며 밤을 새웠다. 하루저녁에는 삼경()이 되었을 때 세종이 환관 하나를 보내어 보고 오라고 하였다. 공은 여전히 촛불을 켜고 독서하였는데, 3, 4차례 가서 보아도 여전히 그치지 않고 독서하다가, 닭이 운 뒤에야 잠을 잤다. 주상께서 담비 가죽옷을 벗어 푹 잠든 틈을 타서 덮어 주도록 하였다. 신숙주가 아침에 일어나 비로소 알았다. 사림에서 이 말을 듣고 힘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최초의 한류스타, 신숙주

 

半歲天涯已倦遊(반세천애이권유)  반년이나 하늘 끝(일본)에 와서 노니자니 벌써 지쳤오
歸心日夕故山秋(귀심일석고산추)  밤낮 돌아갈 마음 고국산천에도 가을이겠지요
山中舊友靑燈夜(산중구우청등야)  산속 등불 아래 글 읽던 옛 벗들이여
閒話應憐海外舟(한화응련해외주)  한가로이 얘기하다 바다 밖 이 숙주(叔舟)를 애처로워하겠지

그가 집현전 학사로 있을 때 일본에 보낼 통신사를 선발하게 되는데, 글 잘하는 선비를 서관장(書狀官)으로 삼기로 함에 신숙주가  뽑힙니다. 위 시는 그가 일본 체류중 성삼문, 하위지, 박팽년, 이개 등 동문수학하던 벗들에게 붙이는 시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서장관으로 일본에 사신 갔었을 때, 왜인()이 다투어 그의 시를 요구하자 붓을 쥐고 바로 지으니 모두들 탄복하였다. 떠나서 돌아오기까지 무릇 9개월 걸렸는데, 이전의 통신사행은 이만큼 완전하고 또 빠른 적이 없었다. 매번 사신들이 올 때마다 왜인이 반드시 그의 안부를 물었다(使暄)." 고 전합니다.

 

소신이 다름은 우정을 갈라놓고.

 

齊鳥驚人在一鳴(제조경인재일명) 큰 새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하고,

男兒功業趂時成(남아공업진시성) 남아의 공적은 때를 타야 이루어진다네.

*원래 중국 춘추시대 5패 중 하나인 초 장왕(楚 莊王)의 이야기로, 주색에 빠져있던 임금에게 3년간 울지 않는 큰 새가 있다고 하니, 왕이 아마 그 새가 한번 울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말한 고사. 여기에서는 춘추시대 후기 齊나라 이야기로, 위왕(威王)에게 명재상 순우곤(淳于髡)이 같은 고사를 끄집어내어 임금을 일깨웠다고 함.

 

위 시는 젊은 시절 신숙주가 지어 성삼문(謹甫)에게 보여준 시(偶吟示謹甫)의 일부인데, 그의 정치적 야망과 함께 때와 기회를 잘 타야 큰일을 일룰 수 있다는 평소의 소신을 잘 보여준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當年叩馬敢言非(당년고마감언비) 당시 말고삐 잡고 감히 그르다 말했으니,

大義堂堂日月輝(대의당당일월휘) 大義는 당당하여 日月처럼 빛났건만,

草木亦霑周雨露(초목역점주우로) 草木도 周나라 비와 이슬이 젖었음에,

愧君猶食首陽薇(괴군유식수양미) 부끄럽구려! 되레 수양산 고사리 먹음이..

 

성삼문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백이숙제의 사당을 지나며 지은 시(題夷齊廟)입니다. 주 무왕(周武王)이 강태공을 軍師로 삼아 은(殷)을 정벌하러 갈 때, 말고삐를 잡고 신하로서 천자를 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여 중국인들이 다 칭송하는 그 백이와 숙제를, 주나라 땅에서 자란 고사리를 먹고 연명한 것조차 나무라고 있지요. 이와 비슷한 내용의 시조(수양산 바라보며 夷齊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 진들 採薇도 하는 것가. 아무리 풋새엣 것인들 그 뉘 땅에 낫더니.)도 있는 걸로 보아 그의 꼿꼿한 기상을 짐작케 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