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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스다니후미오(增谷文雄)] ■ 근본불교이해 (전문)

작성자이루|작성시간15.03.12|조회수590 목록 댓글 2

근본불교 이해(아함경전 강의)

 

마스다니 후미오(增谷文雄) 지음 / 홍사성 옮김

 

 

목 차


○ 근본불교는 불교공부의 출발점
■ 제1장 서론
1. 아함경전의 성립과정
2. 경전의 문헌 비판
3. '근본불교'라는 용어

■ 제2장 근본불교의 성립
1. 부처님의 깨달음
1)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
2) 정각은 직관이다
3) 무엇이 있기 때문에
4) 연기의 각지의 해설
5) 연기의 계열
2. 정각자의 고독
1) 정각자의 고독을 설한 경전
2) 문학형식과 범천설화
3) 범천 권청의 설화
4) 설법의 구상
3. 최초의 설법
1) 녹야원에 이르다
2) 초전법륜
3) 네 가지 명제
4) 깨달은 콘다냐
4. 네가지의 명제
1) 나뭇잎을 손에 들고
2) 사제와 연기의 이법
3) 연기공식에 맞추어
4) 욕망론을 중심으로
5. 부처님의 전도선언
1) 불교교단의 태동
2)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3) 예수의 선언과 비교
4) 전도사업의 중요성

■ 제3장 근본불교의 체계
1. 부처님의 설법 공식
1) 촌장을 위한 설법
2) 설법의 법칙
3) 연기의 공식
4) 설법의 패턴
2. 연기(緣起)
1) 연기를 말하는 설법
2) 연생을 말하는 설법
3) 성스런 제자의 자세
4) 심심미묘한 연기법
3. 무상 (無常)
1) 대기설법
2) 항상인 것은 없다
3) 연기의 이법과 무상의 개념
4) 근본50경
5) 육처에 대해
4. 고(苦)
1) 고란 무엇인가
2) 오온은 고다
3) 고고(苦苦),행고(行苦),괴고(壞苦)
4) 무상한 것은 고다
5. 무아(無我)
1) 무아를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2) 아소(我所)ㆍ아(我)ㆍ아체(我體)
3) 꽃과 향기의 비유
4) 실천으로의 연결

6. 열반 (涅槃)
1) 구극의 목표는 열반
2) 무엇이 열반인가
3) 모든 강물은 바다로
4) 욕망을 자유자재로
7. 부처님의 질문
1) 부처님의 질문
2) 육처에 대한 질문
3) 부처님의 용용문제
4) 또 하나의 응용문제
5) 설명방법의 탁월함
■ 제4장 근본불교의 실천
1. 부처님의 세계
1) 부처님의 생각
2) 리얼리스트의 표백
3) 허망 환상이 아니다
2. 지혜와 실천 사이
1) 지혜는 어떻게 실천과 연결되는가
2) ‘성스러운 것’의 개념
3) 전율할 만한 진실
4) 예류의 구조
3. 욕망에 대하여
1) 사제의 주제는 욕망
2) 불타고 있는 현실
3) 욕망을 부정하지 말라
4. 중도의 철학
1) 실천적 입장의 중도
2) 고행을 버린 사람
3) 양극단을 떠난 상태
4) 중도의 근거인 인간성
5. 승가는 어떤 단체인가
1) 좋은 친구의 모임
2) 선우는 도(道)의 전부
3) 승가의 본질
6. 출가수행자의 생활
1) 최하단 생활의 의미
2) 달의 비유-탁발의 모습
3) 설사 못 얻는다 해도
7. 승가의 생활 - 정사(精舍)의 오후
1) 최초의 정사 성립
2) 법담(法談)과 성스런 침묵
3) 정사의 오후 풍경
4) 지계제일 우파리
5) 포살이라는 행사
■ 제5장 근본불교의 지향
1. 부처님의 가르침에 불만을 품은 제자들
1) 신통에 대한 견해
2) 형이상학에 대한 태도
2. 내방자들의 질문
1) 여러나라로 부터 온 내방자
2) 혼자만의 행복인가
3) 혼자서는 못 산다
4) 자기형성의 길
3. 여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
1) 순리를 따르는 도
2) 불교는 ‘지혜의 길’
■ 제6장 결언
1. 설법의 기본태도
2. 진리 앞에서의 평등
3. 인생의 주인은 곧 나 자신
4. 불교의 종교성 문제《終》

 

 


○ 근본불교는 불교공부의 출발점  ▲ 위로


불교만큼 다양한 교리와 사상을 가진 종교도 그리 많지 않다. 불교에는 화엄철학처럼 고도한 관념론을 전개하는 사상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적인 구원을 설명하는 정토교(淨土敎)도 있다. 현대심리학의 정교한 이론을 방불하는 유식학(唯識學), 정신적 안심입명을 추구하는 선(禪)과 같은 수행체계도 있다.


불교가 이렇게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교리체계를 가진 것은 철학과 사상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 주는 요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도리어 이로 인해 불교의 정확한 이해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불교를 10년 이상 믿어온 신심 깊은 불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교리 이해 수준은 높은 편이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불교를 믿는 것인지, 아니면 불교와 비슷한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교를 매우 어려운 종교라고 속단하거나, 반대로 저급한 미신적 종교라고 외면하기도 한다.


불교에 대한 이 같은 극단적인 오해는 역사적으로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부처님은 깨달음으로 성취한 후 45년 간 전도활동을 하면서 재래의 종교사상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어떤 부분은 포용하고, 또 어떤 부분은 그 의미를 불교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했다. 인과응보설이나 이에 바탕한 윤회론, 인도재래의 우주관이나 세계관의 채용 등이 그것이다. 이런 관용적 태도는 역사적으로 불교사상의 독창성을 제거하고 혼합주의를 배태시켰다.


특히 대승불교의 구제주의는 불교 자체의 엄청난 교리사상적 변화를 불러왔다. 원래 자력적이고 수행중심적이던 교리는 타력적이고 신앙중심적인 교리를 바뀌었다. 힌두교의 수많은 신들이 불교신앙 안에 포용되었으며 그 절정을 보여준 것이 밀교였다. 불보살의 자비를 내세우며 타력구제를 표방하는 정토교의 등장은 불교가 다른 종교사상과 어떤 교섭과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교리의 심천, 심지어는 어떤 것이 불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게 됐다.


중국불교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는 교리해석의 틀을 생각해냈다. 이미 역사적인 변용을 거친 많은 불교문헌을 번역하면서 서로 상이한 교리사상을 어떻게 이해할까 고민한 끝에 찾아낸 방법론이었다. 즉 경전의 내용에 심천이 있고 때로는 상반되는 내용까지 나타나는 것은 부처님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방편설법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상판석이란 바로 이런 생각을 전제로 교리사상의 심천을 구분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근대불교학은 중국적 교상판석이 불교사상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탁월한 방법론으로는 인정하지만 모든 것을 부처님의 친설(親說)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역사적 태도라고 말한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의 많은 교설은 후대로 오면서 첨삭가감된 것이며 일부는 심각하게 불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서로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우리가 부처님이 말씀한 본래의 가르침을 찾아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참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고자 한다면 이 일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불교의 원점과 교리해석의 기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가장 유효한 대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부처님 그 분은 누구이며, 그분은 어떤 구체적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했으며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불교는 역사적 실존인물이며 종교적 성자인 고타마 싯달타의 깨달음과 그 가르침에 바탕한 종교다. 따라서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타마 싯달타의 깨달음과 그것에 근거한 가르침이다.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아무리 그럴듯한 이름이나 사상체계도 불교라고 이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이 불교를 공부하든 그 원점은 당연히 부처님이 직접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그 불교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불교학자 마쓰다니 후미오(增谷文雄)의 <근본본불교 이해>는 매우 주목되는 저술이다. 일찍부터 불교사상의 원초적 형질을 찾는데 전생애를 바쳐온 그는 이 책에서 어두운 밤하늘의 북극성과 같이 불교이해의 기준점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가 제시한 기준점은 이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근본불교, 즉 부처님이 직접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그 불교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쓰다니의 이런 태도는 지나치게 부처님 그분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불교라고 부르는 제도종교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역사적 굴절과 변화를 거친 불교가 아니라 역사적 부처님이 직접 말하고 행동하며 가르친 그 불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갖 이상한 주장과 학설로 머리가 복잡해진 사람들이 불교를 쉽게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주장이나 학설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佛敎)' 그 자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옮긴이가 불교신문사의 기자로 일할 때, 번역 연재했던 것을 묶은 것이다. 1990년 4월 시작된 이 연재는 91년 12월 77회로 끝날 때까지 독자들의 관심 속에 애독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저자는 이 책을 제5장에서 끝맺고 있으나 신문연재가 1991년 말까지 계속되어야 했음으로 제6장은 옮긴이가 원저자의 다른 저술에서 일부를 발췌해 덧붙였다. 출판을 하면서 이 부분은 삭제할까 했으나 대의(大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그냥 두었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를 고백한다면 옮긴이는 불교를 공부하면서 마스다니 선생의 불교관이랄까 해석방법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미 작고한 분이지만 선생에게 머리숙여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 아울러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끝으로 신문스크랩 원고를 모아 예쁜 책으로 꾸며준 불교시대사 여러분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불기 2536년 5월
옮긴이 홍사성 합장

 

 

 

제1장. 서  론

 


1. 아함경전의 성립과정  ▲ 위로


근본 불교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함경전에 의해 전개 되는 불교이다. 그러면 아함경전이라 어떤 것인가? 아마도 수많은 경전 가운데 이 아함경전 만큼 그 성립과정이 상세하게 알려져 있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아함경전의 성립 과정은 이 경전과 거의 비슷한 가치를 지니는 자료의 하나인 율장(율장), 팔리율장[소품], 한역율장[사분률][오분률][십송률]등의 기록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부처님이 쿠시나가라 교외인 사라나무 밑에서 입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었다. 마하카사파(마하가섭) 일행은 부처님보다 좀 늦게 같은 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반대쪽에서 내려오던 한 외도로부터 부처님의 부음을 들었다. 그 때 많은 제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애통해 했지만 그 가운데 한 늙은 비구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라. 상심하지 말라. 우리는 이제사 대사문(부처님)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대사문은 그동안  ‘이것은 허용한다’ ‘이것은 적당치 않다’ 면서 우리를 무척 고통스럽게 속박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이 같은 폭언을 들은 마하카사파는 부처님의 시신을 장례지낸 뒤 동료비구들에게 이렇게 제언했다.

 
[“벗들이여, 우리는 모름지기 교법과 계율을 결집해서 비법(非法)이 성하고 정법이 쇠퇴하며 비율(非律)이 성하고 정률이 퇴색하며, 정법을 말하는 자가 약하고 비법을 말하는 자가 강하며 비율을 말하는 자가 힘을 얻고 정률을 말하는 자가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벗들이여, 우리들 가운데 가르침을 결집하기 위한 비구를 선출해주시오.”]

 
여기서 결집이란 ‘상가하(sangaha)'를 번역한 말이다. 즉, ‘모으다(集)’의 뜻이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는 가르침을 문자를 사용해 정리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당시의 편집은 부처님이 생전에 설한 말씀을 합송(合誦)함으로써 그곳에 모인 사람 모두가 같은 말씀으로 기억한다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한 이유로 ‘결집(結集)’은 합송(sangiti=chorus)이라 부르기도 했다.

 
비구들은 마하카사파의 제안을 찬성하고 그 작업을 위해 대표를 선출하는 일을 그에게 위임해 주었다. 그는 오 백의 비구들을 뽑았다. 그들은 라자가하 교외의 비파라 산에 있는 칠엽굴로 모였다.

 
그는 먼저 아난다와 우파리 두 사람을 송출자로 선임했다. 아난다는 오랫동안 부처님을 시봉했고 스승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가르침을 베풀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다문제일(多聞第一) 이었다.

 
그리고 우파리는 지계제일 (持戒第一)이라고 불릴 정도의 제자였으므로 계율에 관해서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선출 되었다. 마하카사파는 두 사람을 선출한 뒤 교법과 계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답변을 얻어냈다.


[“대중들이여, 내 말을 들어 주시요. 나는 대중들을 대신해 장로 아난다에게 교법을 묻겠소. 벗 아난다여, 부처님의 최초설법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셨소?”
“벗 마하카사파여, 나는 이렇게 들었소.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교외 이시파타나 미가다야 (선인주처 녹야원)에 계셨습니다.  ....  ”]


<십송율>의 기록에 의하면 그것은 참으로 엄숙하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한다. 그 지리에 함께 있던 장로 비구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에 젖어 그 자리에 엎드리고 말았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의……,
(Evam me satam ekam bhagava ...  viharati……, 如是我門  一時拂住王舍城…… )”]


나중에 모든 경전은 이 같은 형식으로 시작 되는데 이는 아난다가 송출한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교법, 계율)은 두 사람의 송출자인 아난다와 우파리에 의해 재현 되었다. 그 말씀은 자리를 함께 했던 장로 비구들에 의해 음미 되었고 그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확인 되자 이번에는 그것을 모두가 합송함 으로써 부처님의 말씀으로 승인 되었고 각자의 기억 속에 뚜렷이 새겨졌다. 이 시기의 편집 작업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2. 경전의 문헌 비판  ▲ 위로


합송에 의해 결집된 부처님의 말씀인 법(法)과 율(律)은 2천여 년을 지나 오늘날 다음과 같은 양식으로 남아 있다.


1) 팔리5부 (Panca Nikaya)
① 장부경전 (長部經典 Digha nikaya) 34경
② 중부경전 (中部經傳 Majjhima nikaya) 52경
③ 상응부경전 (相應部經典 Samyutta nikaya) 56상응 7천7백 62경
④ 증지부경전 (增支部經典 Anguttara nikaya) 11집 9천5백57경
⑤ 소부경전 (小部經典 Khaddaka nikaya) 15분

 
2) 팔리율장(Vinaya pitaka)
① 경분별  (經分別 Sutta vibhanga)
② 건도부  (犍度部 Khandhaka)
    대품(大品 Maha vagga)
    소품(小品 Culla vagga)
③ 부수 (付隨 Parivara)

 
3) 한역4아함(漢譯四阿含)
① 장아함경 22권 30경
② 중아함 60권 224권
③ 잡아함경 50권 1천 3백62경
    별역잡아함경 16권 364권
    잡아함경1권 27권
④ 증일아함경   51권 4백72경


4) 한역율장(漢譯 律藏)
① 사분율 (四分律) 60권
② 오분율 30권
③ 십송율 (十誦律) 61권
④ 마하승기율(摩하僧祈律) 40권
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50권


그러나 이러한 법과 율이 모두 첫 결집에서 합송되었고 고스란히 잘 전승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당연히 후인(後人)들에 의해 부가ㆍ증대 또는 개변(改變) 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편(新編)이 덧붙여져 그 원초적 형태를 손상한 것도 결코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이 점은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하면 할수록 통감하게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먼저 문헌비판의 시도가 절대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마음을 쓰고 있는 것도 역시 그런 일이다. 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연구를 거듭한 끝에 대략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1) 아함의 경전들은 암송으로 전지(傳持)되다가 어느 시기에 와서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었다. 그 시기는 대략 기원전 1세기 무렵이었다고 보아진다. 최초로 문자화된 경전에 씌여진 언어는 마가다어 계통의 프라크리트(Prakrit)로 추정된다. 이것이 스리랑카로 전해져 팔리(Pali)라고 불렸다. 앞서 말한 ‘팔리5부’란 이 같은 유래로 성립된 것이다.

 
2) 이 경전들은 어느 시기에 이르러 서북인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졌고 한문으로 번역되었다. 그것은 대략 397~435년 사이의 일이었다. 앞서 말한  ‘한역4아함’이 그것이다.

 
3) 현대의 학자들은 면밀히 검토한 끝에 한역4아함과 팔리4부(소부경전제외)를 상호대조하는 대조표를 만들어냈다. 그것에 의해 우리는 분명하게 양자가 같은 뿌리임을 알게 되었다. 학자들은 팔리의 4부는 상좌부가, 한역의 잡아함경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가 전지해온 경전이며 그리고 증일아함경은 대중부계통의 경전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감안하면 4아함 또는 4부로서의 경전편집형식은 이미 부파분열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4) ‘팔리5부’ 가운데 ‘상응부경전’과 이에 해당하는 ‘한역4아함’ 가운데 잡아함경 등의 경전군은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며 교훈적인 것이 많다. 또 양식은 어록풍의 것으로서 매우 간략하다. 아난다가 송출하고 대중들의 합송에 의해 확립된 최초 경전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이 가운데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뜻에서 이 경전들은 아함부 여러 경전의 모본(母本)또는 원초적 기체(基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이미 후대의 부가(附加) 또는 증대로 인해 상당부분의 변화가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을 비판하고 검토해서 보다 엄밀한 의미의 불타교설(佛陀敎說)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이 바로 오늘 날 불교 학자들에게 부과된 과제이다.


5) ‘팔리5부’ 가운데 ‘중부경전’과 ‘장부경전’ 그리고 ‘한역 4아함’ 가운데 ‘중아함경’과 ‘장아함경’ 등은 각각 그 속에 들어 있는 경전의 길이를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어째서 중간 정도의 길이와 장대한 길이의 경전이 생겨낫는가의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보다 원초적인 짧은 경이 증대된 것도 있고 또는 전혀 새롭게 제작된 경우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문점은 그러면 다시 무엇 때문에 처음에는 짧았던 경이 증대되거나 새롭게 제작되었는가이다. 그 목적은 다음 세 가지고 추측할 수 있겠다. 첫째는 불전(佛傳)을 만들려는 시도이고, 둘째는 교리의 체계를 확립하려는 시도이며, 셋째는 대외적 논의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이다. 즉 이같은 경전들은 초기 교단의 요구 혹은 필요성에 의해 제작되었다. 따라서 불타직설(佛陀直說)의 교법은 과연 무엇이냐를 추구해야 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요구에 부응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6) ‘팔리5부’의 마지막인 소부경전은 한역4아함에는 없다. 다만 율장 가운데 사분율과 오분률에 서술된 결집의 기사 속에 ‘잡장(雜藏)’으로 불리는 것이 아무래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소부경전은 여러 가지 편집물이 잡다하게 집록된 것이지만 그 가운데는 원초적인 불교의 모습을 찾아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가 많다. 예컨대 <담마파다(법구경)> <우다나경(자설경)> <숫타니파타(경집)> <테라가타(장로게경)> <테리가타(장로니게경)> <자타카(본생담)>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후대의 편집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7) 팔리5부와 한역4아함 못지않게 중요한 자료는 팔리율장과 한역의 여러 가지 율장이다. 팔리율장의 건도부를 구성하는 대품과 소품 그리고 한역율장들의 상당부분은 수계, 포살, 안거, 자자, 정사를 비롯해 교단의 행사와 예법등에 관한 성립의 인연이나 거기에 관련된 이야기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문헌들은 자연히 부처님의 전기를 구성하는 귀중한 자료로 취급되고 있다.

 


3. '근본불교'라는 용어  ▲ 위로


불교학계에서 ‘근본불교’라는 용어가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이 용어는 일본의 메이지시대(明治時代) 불교학자 아네자끼쇼지(姉崎正治) 박사가 1899년에 간행한《불교성전사론(佛敎聖典史論)》이란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이른바 문헌비판의 방법을 불교학 연구, 특히 경전 연구에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문헌비판이란 작업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연구는 거의 10년이 걸려 <한역 4아함 각 부와 팔리 니카야의 상등부(相等部) 대조표>하는 긴 제목의 영문논문으로 발표되었다. 오늘날에도 이 논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데 실로 대단한 작업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한역 4아함’이 중국에 전역(傳譯)된 시기는 399년에서 435년 사이였다. 《중아함경》60권은 계빈삼장(계賓三藏)인 승가제바(僧伽提婆)가 397~398년 사이에 번역했고, 《증일아함경》51권은 역시 승가제바가 397년에, 그리고 《장아함경》22권은 축불념(竺佛念)이 413년에, 《잡아함경》50권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435년에 번역했다. 이 무렵 ‘팔리 5부’에 해당하는 것은 아직 성립하지 않았던가 또는 그 존재유무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그의 견해다.
 

어쨌든 이후 중국에서는 아함경전에서 대한 연구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중국인들의 대승편중(大乘偏重) 경향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지만 좀 더 상세히 조사해 보면 중국불교는 처음부터 대승일변도는 아니었다. 대승편중의 경향이 결정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천태지의(天台智?;538~597)의 교상판석*(敎相判釋:부처님이 일생동안 설한 敎法을 분류하고 비판하는 것. 敎判이라고도 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천태의 이른바 오시교판*(五時敎判:부처님이 일생동안 설한 설법을 설한 시기별로 화엄(華嚴)ㆍ아함(阿含)ㆍ방등(方等)ㆍ반야(般若)ㆍ법화열반(法華涅般)의 다섯 시기로 분류한 교판) 에 의하면 아함부의 경전들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정각(正覺)의 내용을 쉽게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 상황 아래서 아함경전을 연구하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사정은 한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네자끼(姉崎正治) 박사는 이와는 달리 남들이 외면해 온 아함부의 경전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경전의 문헌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아함경전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 작업의 자세한 내용은 매우 전문적이어서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그 개요만 말한다면, 한역 아함부는 그 번역에 있어서 경의 순서를 바꾼 데가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우선 순서를 바로잡는 일부터 한 뒤 ‘한역4아함’과 거기에 대응하는 ‘팔리 니키야’를 통해 불타직설(佛陀直說)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매우 귀중하고도 기초적인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는 얼마후 이런 기초작업을 바탕으로 《근본불교(根本佛敎,1908》라는 대저(大著)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에 의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팔리 니카야’와 ‘한역4아함’에 나타나는 사성제(四聖諸; 苦. 集. 滅. 道)를 널리 설법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불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 후 언제부터인지 ‘원시불교(原始佛敎)’라는 명칭이 일반에게 쓰여지기 시작했다. 원시불교라는 명칭은 영국의 불교학자 리스 데이비드(T.W. Rhys Davids,1843-1922)가 사용했던 ‘초기불교(初期佛敎, Early Buddhism)'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나 그것을 ’원시불교(原始佛敎)‘로 번역한 것은 약간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원시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미개(未開)의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결코 미개한 것이 아니라면 원시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이에 비해 아네자끼 박사가 사용한 ‘근본(根本)’이란 말은 ‘팔리 니카야’에서 볼 수 있는 ‘mucirc;la'의 번역어이다. 이를 영어로 바꾸면 ’root' 또는 ‘foundation'에 해당하는 말이다. 팔리5부 안에서도 가장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경전들의 집록을 호칭하는 ’근본50경(mula Pannsa)‘이란 용법이 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근본불교'라는 제목을 붙여 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불교의 바탕을 이루는 불타직설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원시불교 또는 초기불교라는 말보다 '근본불교'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고 하겠다.

 


■ 제2장. 근본불교의 성립

 


1. 부처님의 깨달음

1)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
 ▲ 위로


아함경전은 주로 부처님의 설법을 집록한 것인데 보리수 아래에서의 부처님은 그 때까지 법을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은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다행히 남전대장경 소부경전에 들어있는 <자설경>(1.1)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비로소 정각을 나타내신 부처님은 우루벨라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한 번 결가부좌한 그대로 7일 동안 해탈의 기쁨을 누리면서 앉아 계셨다. 7일이 지난 후 초 저녁 경(오후8시경)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기(緣起)의 법을 생각해 내셨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즉 무명(無明) 에 의해 행(行)이 있다. 행에 의해 식(識)이 있다. 식에 의해 명색(名色)이 있다. 명색에 의해 육입(六入)이 있다. 육입에 의해 촉(觸)이 있다. 촉에 의해 수(受)가 있다. 수에 의해 애(愛)가 있다. 애에 의해 취(取)가 있다. 취에 의해 유(有)가 있다. 유에 의해서 노(老). 사(死). 수(愁). 비(悲). 고(苦) .우(憂). 뇌(惱)가 사라진다. 모든 괴로움은 이렇게 해서 사라지는 (멸)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일의 연유를 알고 그때의 감흥을 게(偈)로 읊었다.
 

“진지한 열성을 다해 사유하던 성자에게
만법의 이치가 확실해졌을 때
그의 의혹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유인(有因)의 법이 사라짐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어서 <자설경> (1.2) 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비로소 정각을 이룩하신 부처님은 우루벨라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다시 한번 결가부좌한 채 7일 동안 해탈의 기쁨을 누리고 앉아 계셨다. 7일이 지난 뒤 한밤중 10시부터 새벽2시 사이에 부처님은 삼매에서 나와 다음과 같이 거꾸로 연기의 법을 생각해 내셨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 즉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진다. 행이 사라지면 식이 사라진다. 식이 사라지면 명색이 사라진다. 명색이 사라지면 육입이 사라진다. 육입이 사라지면 촉이 사라진다. 촉이 사라지면 수가 사라진다. 수가 사라지면 애가 사라진다. 애가 사라지면 취가 사라진다. 취가 사라지면 유가 사라진다. 유가 사라지면 생이 사라진다. 생이 사라지면 노. 사. 수. 비. 고. 우. 뇌가 사라진다. 모든 괴로움은 이렇게 해서 사라지는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일의 연유를 알고 그때의 감흥을 게로 읊었다.
 

“진지하게 열성을 다해 사유하던 성자에게
만법의 이치가 확실해졌을 때
그의 의혹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제연(諸緣)의 사라짐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상과 같은 내용의 서술은 남전의 율장<대품> (1.1)을 비롯해 한역 율장의 <오분율> 제 15권, (사분율> 제 31권과 그 밖의 자료에서도 볼 수 있다.

 


2) 정각은 직관이다  ▲ 위로


부처님의 정각은 직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직관은 인간에게는 수동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선승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대로 한다면 ‘만법(萬法)은 드러나 감출 것이없다’는 경지다. 보리수 아래 의연히 앉아 있는 부처님의 앞에 그 만법이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 때 그의 깨달음은 이루어졌다. 앞서의 감흥게의 한 구절 ‘만법이 확실해졌을 때’ 라는 표현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 정각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내용(無內容)이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실제로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한편 인간의 오성에 의해 생각이 정리된 사상적 내용은 전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은 이미 성취하였다고 하여도 부처님이 얻은 직관이 모두 분명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성이 그것을 다시 생각해서 하나의 사상으로써 마음을 형성해 가는 것은 그때부터의 작업이라는 얘기다.
 

앞서 인용한 <자설경>의 문장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부처님이 깨달은 직후에 정리해 가고 있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해서 <자설경> (1.1)의 글은 먼저 부처님이 “7일이 지난 뒤에 그 삼매에서 나와 초저녁 무렵 순관(順觀)의 연기법을 깨닫고 이어 한밤중에 역관의(逆觀)의 연기법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 즉 무명에 의해서 행이 있다...............이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이것이 사라진다. 즉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진다...............]
 

이러한 <자설경>의 문장 가운데 불교학자들은 특히 다음 두 구절을 뽑아내 그것을 “연기의 공식”이라고 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此起故彼起)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 (此滅故彼滅)
 

무엇 때문에 이것을 연기의 공식이라고 하는가? 공식이란 일반적으로 통하는 법칙의 관계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 언제나 앞의 두 문구 중 어느 것인가를 공식으로 해서 문제를 풀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무엇이 있기 때문에  ▲ 위로


연기의 공식을 말할 때 먼저 생각나는 경(남전 상응부경전12.10, 한역잡아함경 12.3 불전)이 있다. 그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이 사밧티(사위성)의 제타숲 아나타핀티카 동산에 계실 때 였다. 그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내가 아직 정각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일편단심 이렇게 생각했다. ‘진실로 이 세상은 고통 속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어간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없고, 늙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대체 언제라야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고, 늙고 죽는 일에서 벗어나는 길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있기 때문에 늙고 죽음이 있는 것일까? 무엇에 연고해서 노사가 있는 것일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올바른 사유와 지혜로써 이렇게 그 문제를 풀 수 있었다.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고 죽음이 있는 것이다. 태어남을 인연해서 노사가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무엇이 있음으로써 태어남이 있는 것일까? 무엇에 의해서 태어남이 있는 것일까?’ 비구들이여, 그때 또 나는 올바른 사유와 지혜로써 이렇게 그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유(有)가 있음으로 생(生)이 있는 것이다. 유에 의해 노사가 있는 것이다.’
 

(이하 유有, 취取, 애愛, 촉觸, 육처六處, 명색名色, 식識, 행行에 대한 추구와 이해가 계속된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또 올바른 사유와 지혜로써 이렇게 그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무명이 있음으로 행이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의해서 행이 있다. 행에 의해서 식이 있다. 식에 의해서 명색이 있다. 명색에 의해서 육처가 있다. 육처에 의해서 촉이 있다. 촉에 의해서 수가 있다. 수에 의해서 애가 있다. 애에 의해서 취가 있다. 취에 의해서 유가 있다. 유에 의해서 생이 있다. 생에 의해서 노사가 있고, 수. 비. 고. 우. 뇌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고통의 집적을 생기게 하는 까닭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인연해서 생기는 것’ 이라고 아직 들어보지 못한 진리에 의해 나는 눈을 떴고, 지(智)가 생겼고 혜(慧)가 생겨 깨달음을 얻고 광명을 얻을 수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없으면 노사가 없겠는가? 무엇이 사라지면(멸하면) 노사가 사라질 수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그 때 나는 또 올바른 사유와 지혜로써 그 문제를 이렇게 풀 수가 있었다. ‘태어남이 없다면 늙고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다. 생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노사를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없으면 생이 없는 것일까, 무엇을 사라지게 하면 생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또 올바른 사유와 지혜로써 이렇게 그 문제를 풀 수가 있었다. ‘유가 없으면 생은 없는 것이다. 유를 사라지게 하면 생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무명이 사라짐에 의해서 행이 사라진다. 행이 사라짐에 의해서 식이 사라진다. 식이 사라짐에 의해서 명색이 사라진다. 명색이 사라짐에 의해서 육처가 사라진다. 육처가 사라짐에 의해서 촉이 사라진다. 촉이 사라짐에 의해서 수가 사라진다. 수가 사라짐에 의해서 애가 사라진다. 애가 사라짐에 의해서 취가 사라진다. 취가 사라짐에 의해서 유가 사라진다. 유가 사라짐에 의해서 생이 사라진다. 생이 사라짐에 의해서 노사가 사라지고, 수. 비. 고. 우. 뇌가 사라진다. 이것이 모든 고통의 집적을 사라지게 하는 까닭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에 의해 사라지는 것’ 이라고 아직 들어보지 못한 진리에 의해 나는 눈을 떴고 지(智)가 생겼고 혜(慧)가 생겨 깨달음을 얻고 광명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 설법은 정각을 얻은 훨씬 뒤에 한 것으로 우리는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어떤 사색을 했는지 그 흔적을 역력하게 살필 수 있다. 그 때 부처님이 제일 먼저 생각했던 문제는 역시 고통의 문제였다. ‘무엇이 있기 때문에 노사(老死)가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노사가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은 이미 앞에서 말했던 연기의 공식 앞부분을 연상케 한다. 즉 ‘이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 라는 공식을 의문의 형태로 자문(自問)한 것이다.


즉 ‘이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다. 이것이 사라지면 이것이 사라진다’ 는 것이다. 이것은 의문의 형태로 자문한 것에 대한 자답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보리수 아래 정좌하여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그 깨달음의 내용을 확립함에 있어 대충 어떤 과정과 단계를 거쳐 12지 연기로까지 정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보리수 아래에 정좌한 채 오로지 깨달음(정각)의 기쁨을 맛보았다. 두 번째 단계는 이른바 연기의 공식이 정리 되었던 기간이다. 세 번째 단계는 이런 연기의 공식을 활용해서 고통의 생기(生起)와 멸진(滅盡)을 사색함으로써 12지의 연기계열이 형성되었다. 단숨에 성립된 것이냐에 대해서는 아직 약간의 의문이 남아 있다.

 


4) 연기의 각지의 해설  ▲ 위로


남전 상응부경전(12.2) 분별(分別). 한역 잡아함경(12.16) 법설의경(法說義經)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밧티(사위성)의 제타숲(기타림) 아나타핀디카(급고독) 동산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연기를 분석하여 말하고자 한다. 그대들은 잘 듣고 생각하여라.”
“스승이시여, 잘 알았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을 들은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연기(因緣生起)란 무엇이겠느냐? 비구들이여, 무명(無明)에 의해 행(行)이 있다. 행에 의해 식(識)이 있다. 식에 의해 명색(名色)이 있다. 명색에 의해 육처(六處)가 있다. 육처에 의해 촉(觸)이 있다. 촉에 의해 애(愛)가 있다. 애에 의해 취(取)가 있다. 취에 의해 유(有)가 있다. 유에 의해 생(生)이 있다. 생에 의해 노사(老死)가 있다. 노사에 의해 수(愁) 비(悲) 고(苦) 우(憂) 뇌(惱)가 있다. 이러한 것이 괴로움의 집적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노사(老死)란 무엇인가?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늙고 쇠약하고 일그러지고 백발이 되며, 주름이 잡히고 이빨이 빠지며 모든 감각기관이 쇠진해진다. 이것을 늙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태어난 모든 것은 생명이 끝나고 숨이 끊기고 육신이 파괴되어 마침내 죽어서 시체가 되어 버려진다. 이것을 사(死)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생(生)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태어나 살고 있는 모든 것에 신체 각 부가 나타나고 손발이 생긴다. 이것을 생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취착(就捉)이란 무엇인가. 취착에는 네 가지가 있다. 욕심에 대한 취착, 소견(所見)에 대한 취착, 계(戒)에 대한 취착, 아(我)에 대한 취착이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애(愛; 갈애)란 무엇이겠는가? 갈애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물질(色)에 대한 갈애, 소리(聲)에 대한 갈애, 향기(香)에 대한 갈애, 맛(味)에 대한 갈애, 감촉(觸)에 대한 갈애, 법(法)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 이것을 애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수(受; 감각) 란 무엇이겠는가. 감각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눈(眼)이 무엇을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감각, 귀(耳)가 무엇을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감각, 코(鼻)가 무엇을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감각, 몸(身)이 무엇을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감각, 그리고 뜻(意)이 무엇을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감각이 그것이다. 이를 수(受)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촉(觸; 접촉)이란 무엇인가. 촉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눈에 의한 접촉, 귀에 의한 접촉, 코에 의한 접촉, 혀에 의한 접촉, 몸에 의한 접촉, 뜻에 의한 접촉이 그것이다. 이것을 촉이라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육처(六處; 六根과 六境으로 된 인식)란 무엇이겠는가. 눈의 인식과 코의 인식과 혀의 인식과 몸의 인식과 뜻의 인식이 그것이다. 이것을 육처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명색(名色; 오온)이란 무엇이겠는가. 수(受; 감각)와 상(像; 표상)과 사(思; 사유)와 촉(觸; 접촉)과 작의(作意; 의지)를 명(名)이라 하고 4대(四大; 지 수 화 풍)와 그것으로 만들어진 것을 색(色)이라 한다. 이것을 명색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識(식; 식별하는 작용)이란 무엇이겠는가. 식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그것이다. 이것을 식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행(行; 의지의 동작)이란 무엇이겠는가. 행에는 세 가지가 있다. 몸에서의 행, 입에서의 행, 뜻에서의 행이 그것이다. 이것을 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명(無名; 無智)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고(苦)에 대한 무지, 고의 발생(原因)에 대한 무지, 고의 멸진(滅盡)에 대한 무지, 고의 멸진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무지다. 이것을 무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무명에 의해 행이 있다. 행에 의해 식이 있다. 이것이 모든 괴로움을 집적시키는 원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무명을 남김없이 소멸시킴으로써 행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을 남김없이 소멸 시킴으로써 식이 소멸하는 것이다. …… 이것이 모든 고(苦)의 집적이 소멸하는 것이다.”]

 


5) 연기의 계열  ▲ 위로


아함부의 여러 경전들은 12연기 외에도 많은 계열의 연기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 10지연기: 상응부경전 12.65 성읍(한역 잡아함 12.5城邑)에는 노사(老死), 생(生), 유(有), 취(取), 애(愛), 수(受), 촉(觸), 육처(六處), 명색(名色), 식(識) 등 10지 연기가 거론되고 있다.
 

2) 6지연기: 상응부경전 12.52 취 (한역 잡아함경12.4 取)등에는 무지(無智),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등 6지의 연기가 거론되고 있다.
 

3) 4지연기: 상응부경전12.66 촉법) (한역잡아함경 12.9 觸法)등에는 무지(無智), 애(愛), 취(取), 노사(老死) 등 사지의 연기가 거론되고 있다.
 

4) 3지연기: 상응부경전 22.7 취착공구(한역잡아함 2.11就捉)등에는 무지(無智), 취(取), 고(苦)의 3지연기가 거론되고 있다.
 

이 자료를 통해 본다면 처음부터 12지와 같은 복잡한 형태의 연기론이 확립되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오히려 보다 간단한 형태, 즉 무지, 취, 고의 3지 연기에서 점차 복잡한 12지연기로 발전해 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것이 불교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로는 그 원형이 어떤 것인지, 또 발전의 경로가 어떠했는지는 명확하게 구명되고 있지 않다.

 


2. 정각자의 고독

1) 정각자의 고독을 설한 경전
 ▲ 위로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한 경(經: 남전 상응부경전 6.2 공경, 한역 잡아함경 44.11 존중)은 그때의 부처님에 대한 얘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우루벨라 마을의 네란자라강변 아자파라니 구로다나무 아래 머물고 있었다. 정녕 깨달음을 성취하셨을 때의 일이었다.
 
“존경할 곳도 없고 공경할 사람도 없는 삶은 괴롭다. 나는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을 가까이서 존경하며 살아야 좋을까...” ]
 

깨달음을 얻었으면 그만이지 왜 또 존경하며 가까이서 모시고 살 스승을 찾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 누구도 의지하고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의 삶이란 불안한 것이다. 나는 누군가 존경할 만한 수행자나 바라문을 찾아내 그의 제자라도 되고 싶다.’ 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이 어째서 이러한 생각을 했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정각자의 고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정녕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다. 과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문득 생각하면 이러한 깨달음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은 이 세상이 넓다 해도 오직 부처님 혼자뿐이었다. 그것은 외로운 일이고 불안한 일이다. 바로 ‘정각자의 고독’이었다. 만약 누가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진 수행자나 바라문이 있다면 그 곁에서 제자라도 되어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였던 것이리라.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의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부처님은 다시 여러 가지 생각을 한 끝에 새로운 생각을 해냈다. 즉 경전에서 보여 지는 ‘나는 오히려 내가 깨달은 법, 이 법을 존경하고 그 곁에서 사는 것이 좋으리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누군가 사람에게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깨달은 법이야말로 자신이 의지하고 존경하며 살아가야할 의지처였음을 겨우 깨닫게 된 것이다. 이때의 뼈져린 경험은 부처님이 임종하면서 남긴 ‘자신에 귀의하고 진리에 귀의하라. 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 삼으라.’는 유훈에서도 나타난다. 후세의 불교인들은 부처님의 이 같은 태도를 ‘법에 의지하되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로 정리하고 있거니와 부처님은 마침내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어서 경전은 신화적인 수법으로 이때의 부처님 심경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그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부처님의 심중을 헤아리고, 마치 힘센 남자가 팔을 굽혔다 펴듯이 범천계에서 내려와 부처님 앞에 나타났다. 범천은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부처님께 합장 예배하며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바로 그대로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바로 그러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과거의 정각자이던 부처님도 법을 존경하고 가까이에서 사시었습니다. 미래의 정등각자인 부처님도 법을 존경하고 가까이에서 사실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정등각자인 부처님도 법을 가장 존경하고 가까이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범천은 다시 이런 노래를 불렀다.

“과거의 모든 정각자들도 미래의 모든 정각자들도 그리고 현재의 정각자들도 중생의 우뇌(憂惱)를 면한 자는 모두 정법을 존경하며 살아간다. 지금도 정법을 존경하며 살며 미래도 정법을 존경하며 살 것이다.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이다. 자신의 행복을 원하며 이웃도 그러하기를 원하는 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길이 기억하고 정법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2) 문학형식과 범천설화  ▲ 위로


여기서 우리는 범천설화(梵天說話)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아함경전의 문학 형식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경의 후반부에서 보듯이 아함경전의 곳곳에 범천이 등장한다. 범천이라면 본래 인도의 최고신이다. 그런데 그 신이 하늘에서 나타나 부처님의 생각을 찬탄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신화적이다. 그러나 놀랄 것은 없다. 그것이 경전의 문학형식이기 때문이다.
 

모든 경전은 서술방법에 있어 약속사항이 있다. 이를테면 경전은 부처님이 설법할 때 대지가 미묘하게 진동했다는 식의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현실적으로 지진이 일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그 당시 불교에서는 어떤 최고이 일이 일어났었다는 정도의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형식이다. 아함경전에 악마와 범천이 출현하는 것도 경전 서술에 있어 하나의 약속된 형식이다. 불쑥 악마가 나타나서 부처님께 무엇을 속삭였다고 하는 것은 어떤 심리적 갈등의 그림자가 내심을 스치고 있었다는 심리적 묘사의 문학형식인 것이다.
 

범천이 모습을 나타내 부처님의 생각을 찬양한 것도 어떤 좋은 생각이 부처님의 내심에서 확립되었음을 표현하는 묘사의 약속인 것이다. 범천이 부처님에게 법에 의지하라고 권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가슴 속에 어떤 결심이 확립되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정법에 의지하겠다는 결심이 범천의 말로써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자신이 의지할 곳은 자신밖에 정법밖에 없음을 알게 된 것은 불교의 종교적 성격을 규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모범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 부처님이라고 할 때 그들 역시 의지해야 할 곳은 부처님처럼 정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정법에 의지하기로 한 부처님은 정법에 의지한다고 하더라도 그 정법이 혼자만의 가슴 속에 들어 있는 한 정각자로서의 고독은 언제까지나 이겨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이 죽어버리면 혼자만 알고 있던 정법은 없어져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은 부처님 자신이 그 정법을 짊어지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사람들에게 그 정법을 설하여 정법을 인간세계에 영주토록 하는 것이다. 즉 설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부처님 앞에는 그 이전까지 없었던 설법이란 새로운 과제가 놓이게 되었다.

 


3) 범천 권청의 설화  ▲ 위로


그러나 부처님은 그 때 자기 앞에 놓인 새로운 과제, 즉 설법에 대하여 처음에는 명백하게 주저했다. 한 경전은 (남전 상응부경전 6.1勸請권청, 한역증일아함경19.1)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이 우루벨라 네란자라 강변인 아자퍄라니 구로다나무 밑에 있을 때였다. 처음 정각을 이룬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 때 부처님은 혼자 고독한 사색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내가 깨달은 이 법은 매우 깊어서 보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적정(寂靜) 미묘해서 사유(思惟)의 영역을 뛰어 넘은 지자(智者)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그저 욕망을 기뻐하며 날 뛸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깊은 이치를 가르치기는 도저히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은 상의성(相依性)이며 연(緣: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 반대로 모든 번뇌를 버리고 모든 소의(所衣)를 버린다면 갈애는 끝나고 탐욕을 떠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 만일 내가 이런 법을 가르쳐도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저 피곤하고 곤혹스러울 뿐일 것이다.’


‘애써 증득한 법을 왜 사람들에게 설해야 하는가? 탐욕과 분노에 불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법을 깨닫는 일이 쉽지 않다. 이 법은 세간을 거스르고 미묘하고 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욕망의 격정에 빠진 자, 암흑으로 휩싸인 자를 깨닫게 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이 생각한 부처님은 설법을 주저했다.]


이것은 이 경의 전반부의 내용이다. 이에 의하면 그 때 부처님의 심중은 분명히 침묵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다시 말해 설법을 주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하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욕망의 격정에 사로잡혀 탐욕과 분노에 불타고 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이 법이 깊고 미묘해서 도저히 그들의 이해가 미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이 두 가지 이유는 오늘에도 불교가 짊어지고 있는 문제점이지만 부처님 또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차라리 침묵할지언정 쉽게 설법자로서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마침내 부처님은 만인을 위해 법을 설했다. 그렇다면 침묵을 지키려고 마음먹었던 부처님이 왜 설법을 하게 되었을까? 이 부분의 미묘한 정황을 이 경은 또한 신화적인 수법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부처님의 심중을 헤아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아, 이러다가는 세상이 멸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붓다 정등각자의 마음은 침묵으로 기울어져 설법을 주저하고 있다.’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치 힘센 남자가 팔을 굽혔다 펴듯이 범천 세계에서 내려와 부처님 앞에 나타났다. 범천은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이 세상에는 눈이 먼지로 가려져 있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법을 듣지 못한다면 타락해 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법을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범천은 이어 다시 게송으로 부처님이 설법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일찍이 이 마가다 나라에서는 더러움에 물든 자가 부정한 법을 설했습니다. 이제 감로(甘露. 불교의 교법)의 문을 여셔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자가 깨달을 수 있는 법을 들려주소서. 산꼭대기 바위 위에 서서 사방의 사람들을 굽어보시듯이 현명하신 분이시여, 당신을 우러러 보는 사람들이 슬픔을 넘어 진리의 누각에 서도록 하소서. 태어남과 늙음에 지친 자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영웅이시여, 싸움에서 승리한 분이시여, 일어서소서. 짐 없는 분이시여, 대상(隊商)의 주인이시여, 이 세상 구석구석을 유행(遊行)하소서. 부처님 당신이 법을 설한다면 반드시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옵니다.”]
 

이 게송을 불교학자들은 ‘범천권청(梵天勸請)’이라고 한다. 경의 제목도 역시 ‘권청’이다. ‘설법 하소서’ 하고 범천이 간청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 부처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 때 부처님은 범천의 권청을 납득하고 또한 모든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았다. 부처님이 불안(佛眼)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눈은 그늘이 많은 자도 있었고 적은 자도 있었다. 명석한 자도 있었고 아둔한 자도 있었다. 착한 모습을 가진 자도 있었고 악한 모습을 가진 자도 있었다. 가르치기 쉬운 자도 있었고 가르치기 어려운 자도 있었다. 또 그 중에는 내세의 죄의 무서움을 알고 지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청련화(靑蓮花) 홍련화(紅蓮花)가 서로 어우러져 피어 있는 연못과 같았다. 그 곳의 어떤 꽃은 물 속에 살며 물속에 익숙하여 물에서 나오지 않고 물 속에 잠긴 채로 피어 있지만 어떤 꽃은 수면까지 나와서 피어 있고, 또 어떤 꽃은 수면을 빠져 나와 물에 젖지 않고 피어 있는 것과 같았다…….]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인 부처님은 드디어 설법을 결심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들을 위해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있는 자는 듣고 낡은 믿음을 버려라.”]
 

범천은 부처님이 자신의 권청을 수용했음을 알고 그 곳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여기서 ‘그들’이란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 ‘낡은 믿음을 버려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자기가 믿던 것을 떠나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정각자의 교법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이다.

 


4) 설법의 구상  ▲ 위로


이리하여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했지만 그와 함께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진리 즉 법을 설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미 앞에서도 말한 대로 이 법의 ‘이 세상의 자연의 흐름을 거역하고’ 심심미묘 해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에 비해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탐욕과 분노에 불타고’ 있으므로 이 법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 법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말한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설법하기 위해 그 내용을 요약하고 새로운 체계로 바꿔 설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부처님이 어떠한 설법을 해야겠다고 구상했다고는 어느 경전도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부처님은 마침내 네란자라 강변의 나무 밑을 떠나 멀리 바라나시의 교외인 이시파타나 마가다야에 이르러 5명의 수행자를 앞에 놓고 설법한다. 이른바 초전법륜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최초의 설법내용을 살펴보면 보리수 아래서 정리했던 ‘연기의 체계’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롭게 편성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부처님이 자신의 깨달음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3. 최초의 설법

1) 녹야원에 이르다
 ▲ 위로


나무 밑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던 부처님은 이윽고 일어나 바라나시를 향해 출발했다. 최초의 설법을 위해서였다. 우루벨라에서 바라나시까지라면 대단히 먼 거리였다. 옛날 사람들은 그 거리를 18유순이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18일이 걸리는 거리였다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부처님은 왜 18일이나 걸리는 먼 곳으로 설법을 하러 가야 했을까? 초전법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율장<대품> (1.1)은 그사정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생각했다.
‘나는 먼저 누구를 위해 법을 설해야 할 것인가? 이 법을 신속하게 깨달을 자는 누구일까?’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셨다.
‘내가 일찍이 찾아 보았던 알라라 카라마는 현명한 분이었다. 총명하고 영리하고 마음이 깨끗한 분이었다. 나는 먼저 그 분을 위해 설법하리라. 그 분은 신속하게 이 법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천신이 있어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부처님께 알라라 카라마는 이미 죽은 지 7일이 지났다고 말했다. 부처님은 이미 그가 죽은 것을 알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처님은 다시 자신의 설법을 듣고 빨리 깨달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역시 자신을 지도했던 웃다카 라마풋타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또 천신이 나타나 그는 어젯밤에 죽었다고 말했다. 부처님은 다시 안타까운 마음이 되었다. ‘알라라카마라와 웃다카라마풋다는 큰 손해를 보았다. 그 분들이라면 이 법에 대해 빨리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부처님은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설명해야 할까? 누가 이법을 깨달을 수 있을까? 그때 부처님의 생각에 떠 오른 사람이 있었다.
‘저 5명의 수행자에게 나는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다. 내가 전심으로 정진하고 있을 때 그들은 여러모로 나를 도와주었다. 그래 나는 먼저 그 5명의 수행자에게 설법하리라.’


부처님은 다시 그들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했다. 부처님은 그 5명의 수행자들이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선인주처 녹야원)에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우루벨라에서 바라나시를 향해 출발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중부 (중부)경전 26, 성구경(聖求經, 한역 중아함경 204, 라마경)에도 나온다. 그 내용은 모두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 된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라는 장소이다.


바라나시라는 도성은 예부터 카시의 수도로 알려진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듯하다. 그런데 부처님이 생존했을 당시에는 코살라와 마가다의 두 강대국이 번갈아 침략해 피폐해 졌지만 문호나 사상의 측면에서는 많은 사상가와 수행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렇게 볼 때 부처님이 그 처음의 설법지로 멀리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까지 여행을 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 초전법륜  ▲ 위로


[“저기 오고 있는 자는 사문 고오타마다. 그는 사치스러운 사내이며 고행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져 있다. 그가 오더라도 인사하지 않겠다. 일어나 맞이하지도 말고 의발(衣鉢)도 주지 말자. 그저 자리만은 마련해 주겠다. 앉고 싶으면 앉으라지.” ] <율장 대품>

 
이러한 말투로 보아 그들과 부처님은 구면의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면 그들은 부처님이 고행수행을 하고 있을 때는 찬탄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시중도 들어주던 동료 들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자 실망하여 경멸의 침을 뱉고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부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일어나서 맞아주었고 어떤 사람은 발 씻을 물도 떠다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처님이 자신이 터득한 진리를 그들에게 설법하려고 했을 때, 그들은 완강하게 그것을 거절했다. 그들의 가슴에는 고행을 포기한 ‘타락한 수행자’의 인상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행을 버리고 사치에 빠져버린 사문 고타마가 위대한 진리를 깨달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부처님은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자신이 터득한 진리를 설하려고 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일찍이 나의 얼굴 모습이 이토록 빛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부처님은 거룩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지혜 광채는 그 얼굴에까지 나타나는 법이다. 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이므로 부처님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부처님의 얼굴은 과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약간 놀라는 기색이었다. 부처님은 비로소 지신이 깨달은 바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같은 과정에 대해 경(남전 상응부경전 56.11 여래소경 如來所經. 한역잡아함경 15.17 전법륜 轉法輪)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있었다. 그곳에서 부처님은 5명의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출가한 수행자는 두 가지의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그 두 가지란 이런 것이다. 애욕에 탐닉하는 것은 하열하고 비천한 범부가 하는 짓이다. 성스러운 것이 아니며 쓸모없는 일이다. 또한 고행을 일삼는 것도 다만 괴로울 뿐이며 성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울러 쓸모없는 짓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의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그것은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생기게 하며 적정(寂靜) 증지(證智) 등각(等覺) 열반(涅槃)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래가 눈을 뜨고 지혜가 생기고 적정 증지 등각 열반에 이르게 하는 중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를 말하는 것이다. 즉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汀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깨달을 수 있었던 중도이며, 이것이 눈을 뜨고 지혜가 생기고 적정 증지 등각 열반에 이르게 한 것이다.” ]


최초 설법의 서사(序詞)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 설법에 의하면 그 속에는 분명히 5비구의 비판에 대한 변명이 담겨 있다. 즉 ‘출가한 수행자는 두 가지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언명(言明)이 그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극단이란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를 말한다. 특히 이 가운데 후자, 다시 말해 금욕주의도 극단이라는 지적은 그들이 비난해 마지않는 고행의 포기에 대한 변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두 가지 극단적 입장이 비판되는 것일까. 이유를 경전은 ‘무의상응(無義相應)’ 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도리 없는 일’이라는 정도의 의미로서 요즘말로 하면 불합리하다는 뜻이다. 부처님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체험에 의해 증명된 것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이 있은 후에 부처님은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실천적 입장을 제시한다. 경전은 그것을 ‘여래는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 중도라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리를 말한다. 즉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을 말한다. 이것은 이른바 중도요 팔정도이다. 여기에서 중도는 부처님이 선택한 새로운 실천적 입장의 명칭이고 팔정도는 그것을 펴서 8가지 실천 항목으로 나란히 정리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중도라는 입장이 선택되고 또한 팔정도라는 항목들이 제시되는 것일까? 그러한 사상적 근거는 계속해서 부처님에 의해 ‘사제설법(四제說法)’이라 부르는 것으로 초전법륜의 중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3) 네 가지 명제  ▲ 위로


사제설법이란 네 가지 명제로 된 설법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제(sacca)'란 일반적으로 진실 또는 진상을 뜻하는 말로 해석되고 있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엄숙한 단어’를 의미하기도 한다.


[“비구들이여, 고성제(苦聖제)란 이런 것이다. 태어나는 것(生)은 고이다. 늙어 가는 것도 고다. 병드는 것(病)은 고다. 죽는 것(死)도 고다. 한탄과 슬픔, 근심과 걱정도 고다. 싫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고다(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도 고다(愛別離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고다(求不得苦).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그 자체가 고다(五蘊成苦).]

 
사제설법 가운데 제 1명제는 ‘이것이 고(苦)이다’라는 것이다. 즉 인생은 바로 괴로움(苦)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생에서 즐거운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다. 부처님은 이런 즐거움이나 기쁨에 굳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시 눈을 크게 뜨고 그 진상을 보면 즐거움이란 괴로움으로 연결되고, 기쁨도 조만간 슬픔으로 바뀐다. 인간이 이러한 유한성을 짊어지고 있는 한 인생은 고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고(苦)가 생기는 원인은 이러하다. 미혹의 삶을 불러일으키고 기쁨과 탐욕을 수반하고 이것저것 얽혀 드는 갈애(渴愛)가 그것이다. 욕(欲)의 갈애, 유(有)의 갈애, 무유(無有)의 갈애가 그것이다.”]


이 제2의 명제는 ‘이것이 고가 생기(生起)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인생이 그토록 괴로운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갈애, 다시 말해 끝없는 욕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 갈애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문제가 좀 난해한 부분이다. 먼저 ‘미혹한 삶을 불러 일으킨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이것은 현대인의 생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 굳이 설명 한다면 갈애가 번뇌를 부추겨서 인간으로 하여금 윤회를 반복케 한다는 것이다. 갈애는 ‘욕(欲)의 갈애’ ‘유(有)의 갈애’ ‘무유(無有)의 갈애’ 로 다시 분류 된다. 여기서 욕의 갈애란 자기 연장의 욕구로써 성욕을 말한다. 유의 갈애란 자기보존의 욕구로써 식욕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무유애’란 자기 우월의 욕구로써 명예욕과 같은 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고(苦)가 멸진(滅盡)한 원인은 이렇다. 갈애를 남김없이 떨쳐 버리고 뿌리치고 버리고 해탈해서 집착 없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 제3의 명제는 ‘이것이 고의 멸진이다’ 라는 것이다. 만약 인생고의 원인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갈애의 존재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고를 멸진하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즉, 철저하게 그 갈애를 멸진케 할 때 고는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명쾌한 재단이며 더 이상 아무런 설명도 주석도 필요 없다.


제4의 명제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 여기서 길이란 실천을 뜻하는 말이다. 제3의 명제에 의해 제시된 처방에 따라서 고의 멸진을 실현해야 할 실천항목이 설명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실천항목이란 앞에서 말한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길이다. 이 사제(四諦)의 체계란 결국 앞에서 말한 대로 중도(中道), 그리고 팔정도(八正道)를 받쳐주는 사상적 근거이다.

 


4) 깨달은 콘다냐  ▲ 위로


부처님은 이와 같은 명제를 연이어 내놓고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했다. 그러나 다섯 비구들이 결코 그것을 단순하게 이해하고 납득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방대하고 치밀한 인생의 대 계획이다. 또 다섯 비구들도 새로운 자유사상가들이었으므로 네 가지 명제에 대한 나름의 의견과 질문, 또는 토론을 반복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 뜻에서 초전 법륜 때의 설법은 스승과 제자, 설법자와 청중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차라리 하나의 토론장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새로운 진리를 가지고 와서 이들 5명의 비구들 앞에 내놓고 음미하고 테스트 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한 경전<남전 중부경전26 성구경(聖求經) 한역 중아함경 204 라마경(羅摩)>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기록을 전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리하여 내가 두 사람의 비구들에게 가르치고 있을 때에는 3명의 비구들이 탁발을 해와 우리들 6명이 생활했다.
또 내가 세 사람의 비구들에게 가르치고 있을 때는 2명의 비구들이 탁발을 해와 우리들 6명이 생활했다.”]
 

이것은 최초의 설법이 결코 하루 이틀에 끝난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다섯 비구의 질의응답이 계속된지 며칠 후, 그 중 한사람인 콘다냐(憍陳如)란 사람이 드디어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를 이해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였다. 앞서 말한 <여래소설 如來所說>은 그것을 [콘다냐에게는 맑고 깨끗한 법안이 생겼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콘다냐에게도 기쁜 일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기쁜 사람은 부처님이었다. [참으로 콘다냐는 깨달았다. 정말로 콘다냐는 깨달았다.]라고 부처님은 그 기쁨을 표현했다. 이 표현 속에는 지금까지 혼자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정각의 내용을 마침내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는 기쁨이 담겨져 있다. 경전에 의하면 이로 인해 콘다냐는 이름 앞에 ‘아냐타(annata)'라는 별명을 하나 붙이게 되었다. 깨달은 콘다냐란 뜻인데 이는 그 때 부처님이 소리쳐 했던 말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콘다냐에 이어 다른 네 명도 뒤를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여래소설경은 이때의 감격을 ‘이때 삼천세계는 아주 크게 흔들렸다. 또한 무한하고 광대한 광명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율장< 대품 >(1.1)에서는 ‘그때 이 세상에는 6명의 성자가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4. 네가지의 명제

1) 나뭇잎을 손에 들고
 ▲ 위로


부처님의 초전법륜 즉 최초의 설법은 이렇게 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설법의 주내용이었다고 생각되는 사제(四諦)에 대해서는 좀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제야말로 불교교리의 가장 중요한 기초이기 때문이다. 실로 뒤에 발달한 모든 교리사상도 이 사제의 기본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더 강조해서 말한다면 이 사제의 원리에 합당하지 않은 교설이라면 그것은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신서(申恕)’*(남전 상응부경전(56.31)申恕. 한역 잡아함경(15.43)申恕林)라는 제목이 붙은 경이다. 그것을 옮기면 이렇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이 코삼비(憍賞彌)의 신서파(申恕) 숲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신서파잎을 따서 손에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손에 가지고 있는 약간의 신서파잎과 이 숲에 있는 그것과 어느 쪽이 더 많은가.”


“부처님, 그야 물론 손에 있는 잎이 적고 숲에 잎이 더 많사옵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고 내가 깨달아 알고(證智) 있으나 너희들에게 소용없고 범행(梵行)에 크게 도움이 안 될뿐더러 염리(厭離)ㆍ이탐(離貪)ㆍ멸진(滅盡)ㆍ적정(寂靜)ㆍ증지(證智)ㆍ등각(等覺)ㆍ열반(涅槃)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내가 말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고(苦)’라고 나는 말했다. ‘이것은 고의 원인’이라고 나는 말했다. ‘이것은 고의 멸진’이라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라고 나는 말했다.


비구들이여, 내가 왜 이런 것들을 말했겠는가. 그것은 너희들에게 소용이 있고 범행에 도움이 될뿐더러 염리ㆍ이탐ㆍ멸진ㆍ적정ㆍ증지ㆍ등각ㆍ열반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것은 고다’라고 부지런히 수행하라. ‘이것은 고의 멸진이다’라고 부지런히 수행하라. 그리고 ‘이것은 고의 멸진에 이르는 것이다’라고 부지런히 수행하라.”]


신서파라는 나무는 단단하고 커다란 나무였던 듯하다. 부처님은 제자들과 코삼비에 있는 신서파가 무성한 숲을 산책하다가 문득 나뭇잎을 몇 개 따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비구들과 자신이 설법한 양이 어느 정도고 무엇을 설법했는지를 비유해 말씀하고 있다.


부처님이 신서파라는 나뭇잎을 비유해서 설한 내용을 간추려보면 첫째는 부처님이 증지(證智)했던 내용을 제자들에게 설법한 것은 극히 적고 설법하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점이다. 둘째는 부처님이 제자들에 설법한 내용은 한 마디로 사제(四諦)라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는 부처님이 무엇 때문에 그러한 것을 설법했는가 하는 점인데 그것은 비구들에게 소용이 있기 때문이며, 범행(梵行)의 첫걸음이 되지 때문이며, 마침내는 등각ㆍ열반에 이르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부처님은 이런 점을 반복해서 여러번 설명하고 있는데 사제설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할 대목이다.

 


2) 사제와 연기의 이법  ▲ 위로


사제의 설법을 들으면 이상한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사제 속에는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았던 정각의 내용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신서(申恕)’라는 경의 앞부분에도 이런 느낌을 주는 구절이 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그것에 의해 눈을 떴고 지혜가 생겼고 적정(寂靜)ㆍ증지(證智)ㆍ등각(等覺)에 이르렀다.”]


이미 말했듯이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닫고 얻은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연기의 이법’이다. 앞서 인용한 《자설경(自說經)》(1ㆍ1) (1ㆍ2)의 게송을 보아도 이 점은 명백하다. 다시 인용하면 이렇다.


[진실로 열성을 다해 수행하던 수행자에게

만법이 확실해졌을 때

그의 의혹은 모두 사라졌다.

유인(有因)의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실로 열성을 다해 수행하던 수행자에게

만법이 확실해졌을 때

그의 의혹은 모두 사라졌다.

제연(諸緣)의 멸진(滅盡)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인의 법’이라든가 ‘제연의 멸진’이란 다름아닌 연기의 이법이며 그것은 곧 깨달음의 당체이다. 그럼에도 사제를 설함에 있어 부처님은 그 어디에도 그러한 언급은 하고 있지 않다. 연기의 연자도 없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경전의 전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최초의 설법에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정각의 내용을 그대로 설법하지 않았다. 우선 경전의 내용을 검토해 보자.
 

현존하는 아함경전에서도 사제설법을 기록하고 있는 ‘여래소설(如來所說)’이라는 제목의 경전은 상응부경전 제5권 ‘대품(大品)’ 속에 집록되어 있다. ‘대품’은 상응부경전에서도 가장 많은 분량의 집록임을 뜻하는 말이거니와 또한 여기에 들어 있는 경전들은 모두 실천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정각의 내용 즉 연기의 이법에 관한 경전들은 모두 상응부경전의 제 2권 인연품(因緣品) 속에 들어 있다. 인연품이란 연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설법한 내용을 모은 것으로 말하자면 연기의 이법을 중심으로 한 사상편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부처님은 최초의 설법에 임해서 사상으로서의 연기의 이법을 실천체계로서의 사제로 재편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이같은 재편성을 해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이미 인용한 ‘권청(勸請)’이란 경에서 길게 설명한 바와 같다. 그에 의하면 당초 부처님은 설법을 주저하였었다. 그 이유는 이 이치*(부처님이 깨달은 내용, 즉 연기의 이법)는 모든 것이 상의성(相依性)이며 연(緣;조건)인데 그것은 ‘적정 미묘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선 우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부처님이 일단 설법을 주저하였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알아듣지 못할 사람에게 설법을 주저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윽고 생각을 바꿔 설법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런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권청’이라는 제목의 장에서는 ‘범천의 권청’이라는 신화적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여전히 최초의 설법에서 정각의 내용 즉 연기의 이법을 그대로 털어놓고 설법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도 인용한 실제의 설법내용을 검토해 보면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3) 연기공식에 맞추어  ▲ 위로


그러면 부처님은 연기의 이법을 어떻게 해서 사제의 체계로까지 바꿔놓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어느 경에서도 설명이 없다. 그러나 조용히 사제설법을 듣노라면 아아 그랬었구나 하고 수긍하게 된다. 먼저 사제의 첫 번째 명제인 고성제(苦聖諦)를 살펴보기로 한다.
 

["비구들이여, 고(苦)의 성제(聖諦)란 이렇다. 태어남은 고다. 늙음은 고다. 병드는 것은 고다. 죽음은 고다. 탄식ㆍ슬픔ㆍ고통ㆍ근심ㆍ걱정은 고다.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고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은 고다. 원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고다.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그 자체가 고다."]


이것은 이른바 일체개고(一切皆苦)의 명제이며 부처님이 출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앞에서 ‘신서(申恕)’라는 경의 표현대로 한다면 ‘이는 고다’이다. 그것을 부처님은 지금 5명의 비구들 앞에 내놓고 그에 대한 공감과 납득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고제에 이어 제시된 두 번째 명제 즉 고의 원인(生起)이 되는 성제는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비구들이여, 고가 생기는 원인의 성제는 이러하다. 다시 말해 미혹의 생애를 만들고 기쁨과 탐욕을 수반하고 이것 저것 얽혀가는 갈애가 그것이다. 즉 욕(欲)의 갈애, 유(有)의 갈애, 무유(無有)의 갈애가 그것이다."]
 

여기서 고의 원인은 ‘갈애’로 설명되고 있다. 앞에서《신서경》은 ‘이를 고의 원인(生起)’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고 있는 사제의 제1명제와 제2명제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공식이 떠오른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는 연기(緣起)의 공식이다. 다시 말해 제1명제와 제2명제는 따로따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두 개가 하나의 공식에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3의 명제 즉 고의 멸진에 관한 성제에 대해 경에서는 ‘비구들이여, 고의 멸진에 관한 성제는 이렇다. 갈애를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해탈해서 집착이 없는 상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은 앞서 예를 든 ‘신서’라는 경에서 말하는 ‘이는 고의 멸진이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괴로운 삶의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괴로움을 생기게 하는 갈애 즉 욕망을 잠재우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것은 대단히 간명한 이치다. 제2의 명제와 제3의 명제를 나란히 놓고 보면 여기에도 역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연기의 공식’가운데 뒷부분이 떠오르게 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

 
다시 말해 제3의 명제는 연기의 공식에 의해서 제2의 명제로부터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제4의 명제 즉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道)의 성제에 관해 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는 이러하다. 그것은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길이다. 즉 정견(正見)ㆍ정사(正思)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이다."]


이것이 ‘신서’라는 경에서 말하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 여기서 길이란 실천을 말한다. 제3의 명제에서 제시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항목을 여덟 가지로 정리 요약한 것이 도(道)이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부처님이 깨달은 연기의 이법이 어떻게 실천론으로 바뀌고 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연기를 원리로 하여 사제를 실천론으로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연기의 이법이 배경으로 물러나고 실천론이 전면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재편성의 작업은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은 직후였으리라고 추측된다.

 


4) 욕망론을 중심으로  ▲ 위로


사제의 체계에 대해서는 아직 더 말해 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 사제의 체계는 한마디로 말하면 욕망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 역시 조용히 사제법문을 듣고 있노라면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이다.
 

이미 말했던 제1명제 ‘이것은 고이다’라는 것은 부처님이 출가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 고통의 삶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가 과제였다. 부처님은 이에 대해 무엇에 인연해서 이 고통의 인생이 계속되고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제2의 명제 ‘이는 고의 원인(生起)이다’라는 것이다. 그 연(緣)으로 생기는 인(因)은 갈애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거기에 대한 대답이 제3의 명제 ‘이는 고의 멸진이다’라는 것이다. 갈애를 멸진시키면 괴로움(苦)도 멸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4의 명제로서 ‘이는 멸진에 이르는 길(道)이다’는 실천항목이 제시된다. 그것이 이른바 팔정도이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의 명제로서 사제의 체계를 유의해서 살펴보면 욕망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사제설에는 ‘욕망’이란 말은 없다. 그 대신에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갈애(渴愛, tanha)’라는 말이다. 갈애란 그 본 뜻이 ‘목마름(갈증)’을 의미하는 말로, 부처님은 인간의 욕망이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갈구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이다. 부처님은 또 가끔 갈애 대신 ‘탐욕(貪慾, raga)’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 말 역시 그 본 뜻은 ‘붉은 색’ 또는 ‘연소’를 뜻하는 말로, 욕망이란 마치 빨간 불꽃과 같이 맹렬한 격정을 일으키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부처님이 이렇게 ‘욕망’이라 말하지 않고 ‘갈애’ 또는 ‘탐욕’이란 용어로 말하고 있는 것은 주의할 만한 일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부처님은 절대로 욕망 그 자체를 부정했던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욕망 그 자체는 부처님의 견해에 따르면 ‘무기(無記)’라는 것이다. 무기란 선악을 판별하기 이전의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부처님은 욕망 그 자체를 악이라거나 반대로 선이라거나 단정적으로 말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만일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우리는 탐욕이라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욕망의 재촉을 받고 음식을 먹는다. 이때 음식을 적당히 먹고 심신을 잘 다스릴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음식을 과식해서 몸을 해친다면 그것은 나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또 탐욕을 부정하고 전혀 먹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일찍이 부처님 자신이 고행을 통해서 경험했던 바였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용어 속에는 ‘무욕(無欲)’이란 말은 없다. 부처님은 그 대신 ‘이탐(離貪)’이란 말을 쓴다. 또는 ‘지족(知足)’이라고도 하고 ‘이양(易養)’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이런 가르침은 ‘세상의 순리에 거역하는 것’ 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 인생을 고라고 하는 것은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늙음과 죽음이 찾아오는 일이 뜻밖에 빠르기 때문이다. 또 소유가 더욱 풍족함을 원하면서도 아직도 얻지 못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부처님은 이런 고행의 원인을 오히려 오래 살기를 원하고, 소유가 더욱 풍족해지기를 원하는 바로 그것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지적은 분명히 우리가 원하는 것과 배치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일상적 흐름이 어떻든간에, 또 사람의 소원이 어떻든 간에 사물의 도리는 역시 부처님이 말하는 바와 같다. 제 아무리 장수를 기원한들 이 무상의 현실에서 인간은 끝내 죽음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또 풍족한 소유를 원하는 사람도 그 욕심을 다 채울 만족을 끝내는 얻을 수 없다. 얻으면 얻을수록 더욱 커지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경전의 표현대로 한다면 마치 ‘바닷물의 흐름(욕망)을 다 마시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라도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부처님의 생각은 바로 이같은 인간의 욕망 그 자체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부처님의 생각은 ‘욕망’이라는 것에 집중한다. 고통스러운 인생이 바로 격정적 욕망에 있다고 한다면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오직 이러한 격정적 욕망을 제거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어느 경*(남전 상응부경전(1.63)渴愛)에서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은 갈애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또한 갈애에 의해 괴로움을 받고 있다.

오직 하나, 갈애라는 것이 있어

모든 것을 예속시키고 있다.]


이것이 인생의 숨김없는 현실이라면 우리가 예속없는 인생을 살기위해 할 일은 하나뿐이다. 먼저 갈애를 없애는(滅盡) 일이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세 번째 명제인 ‘이것은 고의 멸진이다’라는 한 마디에 묵직한 중량감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5. 부처님의 전도선언

1) 불교교단의 태동
 ▲ 위로


부처님이 바라나시(波羅捺)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仙人住處 鹿野苑) 에서 다섯 수행자를 대상으로 했던 최초초의 설법은 성공적이었다. 그 설법의 대요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한 경전*(남전 상응부경전(56.11,) 여래소설. 한역잡아함경 (15.15) 轉法輪)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기록해 놓고 있다.


[부처님이 이와 같이 법륜을 굴렸을 때(정법을 宣說했을 때) 땅에 있는 신들이 큰소리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서 위없이 위대한 법륜(法輪)을 굴리셨다.  그것은 이미 사문이나 바라문, 또는 천신 ㆍ악마ㆍ범천 그밖에 이 세상 누구라도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전은 계속해서, 하늘에 있는 여러 신들도 그것을 듣고나서 차례차례로 소리 높여 같은 말을 했던 까닭을 설명한 뒤 이렇게 끝맺고 있다.


["눈 깜짝할 찰나에 그 음성은 범천의 세계에까지 달했다. 그리고 대천세계(大千世界)는 크게 흔들리며 진동했다.  또한 무한하고 광대한 광명이 이 세상에 나타난 많은 신들의 위광까지도 초월했다."]


이러한 묘사는 물론 신화적 표현이다. 이러한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예부터 일정하게 어떤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애매한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의 일부분인 천지의 신들이 최초의 설법을 축하하고 ‘누구도 뒤집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로써 불법이 확고부동하게 확립되었음을 신화적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 뒷부분에서 ‘세계가 진동하고 무량광대한 광명이 나타났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부처님의 생애에서 최상의 큰일(大事)임을 나타내는 경전문학의 수법이다. 예부터 불교도들이 이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 이라하여 부처님의 생애 가운데 중요한 사건으로 꼽은 사고방식의 근원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앞에서 말했던 ‘정각자의 고독’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이 아직 보리수 밑에 앉아 있을 때의 일이다. 경전은 그때를 ‘존경할 것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생활은 괴롭다…’고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가슴 속을 묘사하고 있다. 부처님은 이제 그 고독을 떨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할 일은 이제부터였다. 부처님은 정녕 정각자였다. 부처님이 자신에게 그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득 깨달은 것은 그러한 깨달음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이 넓은 세상에서 혼자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몹시 외롭고 불안한 일이었다.


사실 사상이라는 것도 개인에게만 내재하는 한, 아직 사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야만 비로소 하나의 확립된 사상이 된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마침내 설법을 결심하고 사제(四諦)라는 실천체계를 갖춘 뒤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이르러 다섯 명의 비구를 설득시켰다. 앞서 인용한 《전법륜경》의 말씀은 이로 인해 비로소 이 세상에 불교라는 종교가 생겨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 위로


이로부터 얼마 동안 부처님은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머물고 있었다. 다섯 명의 비구들과 함께였다. 율장《대품》(1.1)에 ‘그때 이 세상에는 여섯 명의 성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이 조그만 교단이 언제까지나 그대로는 아니었다. 얼마 후 이 바라나시의 장자의 아들 야사라는 젊은 청년이 합류했고 그의 친구들도 잇따라 부처님에게 귀의해 출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사이엔가 그 작은 교단은 ‘61명의 성자’로 불어나게 되었다. 이때 부처님은 그들을 모아놓고 유명한 ‘전도선언(傳道宣言)’을 했다. 이것은 교단사적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4.5)係蹄.한역 잡아함경(39.16)繩索)에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들이여’하고 제자들을 불렀다. 비구들은 ‘부처님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부처님은 비구들을 향해 말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올가미에서 풀려났다. 그대들 또한 모든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비구들이여, 그러니 이제 유행*(遊行: to go on journey, carikam carati. 여행을 다니는 것. 傳道와 다르지 않음)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게 논리정연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법을 설하라. 그리고 진정으로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사람들 가운데는 아직 때묻지 않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들도 설법을 듣지 못한다면 금방 타락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설법을 들으면 곧 깨달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마을(將軍村)로 갈 것이다.”


그때 못된 악마(마라)가 부처님께 다가와 게(偈)로써 말했다.


당신은 인천(人天)의 세계에서

악마의 올가미에 걸렸도다.

악마의 밧줄에 묶였도다.

사문이여, 너는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이에 부처님도 게로써 답했다.


나는 인천의 세계에서

악마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났다.

악마의 밧줄로부터 벗어났다.

마라여, 너는 이미 패배하였다.


그러자 악마는 ‘부처님은 나를 알고 있다. 부처님은 나를 간파하고 있다’고 외치면서 도망치고 말았다.]


이것은 아주 작은 경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은 경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경전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정연한 생각과 표현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올가미에서 풀려났다. 그대들 또한 모든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졌다’라는 구절은 부처님이 전도선언에 앞서 자신과 제자들이 성취한 깨달음에 대해서 명쾌하게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제 유행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지고 인천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


여지서 ‘유행(遊行)’이란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전도를 뜻한다. 부처님은 전도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구제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같은 곳을 갈 것이 아니라 흩어져서 혼자 다니라고 당부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 논리 정연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법을 설하라. 그리고 진정으로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이것은 설법을 할 때 사람들을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르친 대목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정연하고 바른 표현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부처님은 ‘나 또한 법을 가르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마을로 갈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은 부처님이 과거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었던 곳이다. 부처님은 아직 그곳에서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서 부처님 자신은 다시 그곳으로 가서 설법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예수의 선언과 비교  ▲ 위로


부처님의 전도선언을 예수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매우 흥미있는 차이가 나타난다. 앞서 인용한 《전법륜경》에서 부처님의 전도선언은 복음서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전도를 지시하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마태복음》제10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전도 선언 장면을 옮기면 이렇다.


[…그리하여 예수는 열두 제자를 불러 더럽혀진 영혼을 제압하는 권위를 주었다. 또한 모든 질병을 낫게 하는 능력을 부여했다.


이어 열두 사도의 이름을 차례로 기록하고 예수가 이들에게 전도를 명령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라. 또 사마리아인의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라. 병든 사람은 고쳐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주어라. 나병환자는 낫게 해주고 마귀는 쫓아내어주어라. 너희가 나로부터 그 능력을 거저 받았으니 그들에게 거저 주어라….


이제 내가 너희들을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떼 속으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 한다. 너희들을 법정에 넘겨주고 공회당에서 매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조심해야 한다. 또 너희들은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불려가 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잡혀갔을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은 그때 얻을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니라."]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전도선언, 즉 열두 사도를 파견하려고 그들에게 내리는 말은 이보다 훨씬 길다. 여기서는 부처님의 전도선언과 대조를 이루는 부분만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이 선언을 읽으면서 우리가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전도선언이 예수의 그것보다 훨씬 순수하고 간결하다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도 보았듯이 부처님은 먼저 당신과 제자들의 자각에 대해서 간단히 말한 뒤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제 유행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이것이 부처님의 전도목적의 전부다. 거기에는 아무런 제한도 없고 또한 경계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다만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유행을 하는 것이므로 이제 그들 앞에 가서는 안 되는 ‘이방인의 길’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물론 ‘사마리아인의 마을’도 없었다.


이 조항에 이어 부처님의 전도선언에는 ‘하나의 길을 두 사람이 가지 말라’는 짤막한 한 마디가 있다. 이 한 마디가 뜻하는 바는 전도의 열정이 얼마나 컸던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이제 내가 너희들을 보내는 것은 양을 이리떼 속으로 보내는 것과 같다’는 염려가 앞선다.


또 다른 복음서(마가복음 6장)에 의하면 예수는 ‘열두 제자를 불러놓고 둘씩 짝지어 파견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양을 이리떼 속으로 몰아넣는 그런 정도라면 누구라도 한 명씩 파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가 두 명씩 짝지어 전도를 보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다만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유행이라면 마땅히 가급적 한 사람씩 넓은 지역을 다니라고 지시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부처님은 ‘한 길 두 사람이 가지 말라’고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전도선언은 그들이 체포되어 재판관과 왕들 앞에 끌려나갔을 때 ‘어떻게 말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왜냐하면 할 말은 그때가 되면 얻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때 그들이 얻는 말, 하게 되는 말은 ‘이 말을 하는 자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혀의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경우 이같은 언어는 제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부처님 자신에게도 없다. 부처님이 그의 제자들을 위해 맨 처음 가르쳐준 설교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내용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해 설법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원만하고 또한 청정한 범행을 설법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설법은 어디까지나 바른 생각(正念)과 바른 지혜(正智)로써 진리를 말하고 또한 실천을 가르치라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성령에 의해 신들린 듯이 말한다는 것은 오히려 부처님이 전혀 원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설법은 해서도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불교가 기독교와 다른 종교적 특색은 바로 전도선언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즉 신적이고 초월적이며 영성적인 힘에 의한 전도는 불교에 없다. 어디까지나 자각에 의해 진리에 눈먼 이웃의 눈을 뜨게 하겠다는 굳은 결의, 그리하여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자비심이 불교전도의 근본정신이다.

 


4) 전도사업의 중요성  ▲ 위로


그런데도 부처님이 전도선언을 기록하고 있는 잡아함경 제39경(繩索) 말미에는 약간 석연치 못한 대목이 있다. 다름아니라 뜻밖의 악마가 나타나 게송으로 부처님에게 협박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대는 인천(人天)의 세계에서

악마의 올가미에 걸렸도다.

악마의 밧줄에 묶였도다.

사문이여, 당신은 아직도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악마의 이같은 게송에 대해 부처님도 게송으로 대답한다.


나는 인천의 세계에서

악마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났다.

악마의 밧줄로부터 탈출했다.

파괴자여, 너는 이미 패배했다.]


악마는 부처님의 이같은 대답을 듣고 전도결심을 깨뜨릴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물러난다. 바로 이 부분이 석연치 못한 대목이다.


경전을 읽다보면 악마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그때마다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여기의 대목도 마찬가지다. 아함부의 여러경전 가운데는 이같은 악마의 이야기만 모아놓은 것도 있다. 남전대장경 상응부경전에는 ‘악마상응(惡魔相應)’이라 해서 25개의 악마 이야기가 집록되어 있다. 전도선언이 나오는 조그만 경전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경전은 부처님의 정연한 논리를 생각할 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부처님의 설법 기록인 경전에 악마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들을 자세히 읽다보면 오히려 부처님이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경전 속에 나오는 악마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점에 대해 우리의 눈을 열러주는 경전*(남전 상응부경전(23.11) 魔. 한역 잡아함경(6.14) 魔)이 있다. 어느 때 부처님이 사밧티(舍衛城) 의 제타 숲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계실 때 라다(羅陀)라는 비구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부처님이시여, 악마 악마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악마라고 하는 것입니까?”


매우 당돌한 이 질문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라다여, 색(色;육체)이 곧 마라다. 수(受;감각)가 곧 마라다. 상(想;표상)이 곧 마라다. 행(行;의지)이 곧 마라다. 식(識;의식)이 곧 마라다.


라다여, 이렇게 보고 나의 가르침을 들었던 성스러운 제자들은 색을 싫어해 여의고, 수를 싫어해 여의고, 상을 싫어해 여의고, 행을 싫어해 여의고, 식을 싫어해 여의었다. 또 탐욕을 싫어해 여의었다. 이렇게 탐욕을 염리(厭離) 함으로써 마침내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 존재를 오온 즉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부처님이 언제나 채택해 온 인간분석 방법론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경에서 그러한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모두 악마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악마를 설명하는 방법은 악마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안목을 열어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악마란 결코 인간을 현혹하는 객관적 어떤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자신의 미혹에 의해 스스로 느끼는 정신의 그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경전에서 부처님과 관련된 악마란, 부처님이 어떤 시기에 어떤 문제를 놓고 망설인다든가 하는 묘한 심리적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그러한 악마 이야기가 갖는 의미를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인정하듯이 부처님은 자비와 지혜가 뛰어난 분이었다. 그런 부처님이 어떤 문제를 결단 하는 데 있어 망설임이 있었다면 그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모든 악마의 이야기를 이러한 시각으로 본다면 경전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다시 전도선언 문제로 돌아가 보자. 경전은 부처님의 전도 선언을 했을 때 문득 악마의 속삭임을 들었다고 쓰고 있다. 여기서 악마의 속삭임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부처님이 어떤 생각을 했기에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심리적 묘사를 하는 것일까.  부처님의 마음 속을 범부의 안목으로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아마 그것은 부처님일지라도 전도사업이 갖는 중대함 때문에 약간 마음의 흔들림, 또는 신중함을 보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불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들이 부처님은 이 전도선언이 있은 후 45년의 긴 세월에 걸쳐 열사의 모래바람, 뜨거운 햇빛을 마다않고 넓은 지역을 유행하며 전도사업에 종사했다. 그리하여 놀랍게도 정법의 왕국을 중인도에 건설했다. 그 엄청난 과업의 중대한 의미를 생각해 본 다면 지금 그 전도의 첫발을 내디딤에 있어 마음의 주저가 있었다 하여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 제3장. 근본불교의 체계

 


1. 부처님의 설법 공식

1) 촌장을 위한 설법
 ▲ 위로


지금까지 우리는 근본불교의 성립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에 의하면 일단 보리수 아래서 부처님에 의한 대각의 성취가 있었고 또한 설법에 대한 결심이 있었다. 그리고 저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서 최초의 설법이 있었고 또 전도선언이 있었다. 이후 부처님은 45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중인도 전체를 구석구석 유행하며 진리(법)를 설해 위대한 정법 왕국을 설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사정을 상세하게 편년사적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어떠한 불전도 그간의 사정을 편년사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부처님이 45 년 동안 가르쳤던 설법의 대요(大要)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부처님이 입멸한 뒤 1년도 안 되어 마하카사파를 비롯해 오백 명의 제자에 의해 그 가르침이 결집되고 그 후 잘 전승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서 제 1장에서 이미 자세하게 언급한 바 있다. 오늘 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남전의 팔리5부와 한역4아함에 들어 있는 많은 경전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실은 분명히 후대에 없어진 부분, 부가된 부분, 증가된 부분이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원초성을 보존해서 부처님이 직접 말했다고 인정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팔리5부 가운데 상응부경전이나 4아함 가운데 잡아함경 등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경들을 중심으로 하면서 부처님의 사상과 실천의 대요가 무엇인가를 추구해 갈 것이다.


먼저 그러한 경전의 하나인 포악(暴惡)이란 제목에 들어 잇는 부처님의 설법을 들어보기로 한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밧티의 제타숲 아나타핀티카 동산에 있었다. 그때 포악이라고 부르는 한 촌장(gamani)이 부처님을 찾아와 예배하고 그 곁에 앉았다. 포악이라는 촌장이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포악하다. 난폭하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인간은 어떠한 원인, 어떠한 연고로 해서 유화해지고 얌전해지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촌장의 질문을 받고 말했다.


“촌장이시여, 만일 인간이 아직도 탐욕을 버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까지 탐욕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타인을 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을 분노케 함으로써 자신 또한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그는 포악이라고 불리어질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일 아직도 진노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는 그것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남을 노엽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남을 분노하게 함으로써 자신 또한 분노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는 포악하다고 불리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아직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았다면 그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남을 노엽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남을 분노하게 함으로써 자신 또한 분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포악이라고 불리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촌장이여, 사람이 포악하다거나 난폭자라고 불리는 것은 이 같은 인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촌장이여, 만일 인간이 탐욕을 버린다면 그는 탐욕이 없으므로 남을 화나게 할 일도 없고 또한 남의 분노로 자신도 분노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때 그는 유화하다고 불리어질 것이다. 또 만일 사람이 분노를 버린다면 그는 분노가 없으므로 남을 화나게 할 일도 없고 또한 남의 분노로 자신도 분노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때 그는 유화하다고 불리어질 것이다. 또 만일 사람이 어리석음을 버린다면 이것 역시 그로 인해 남을 분노하게 할 일도, 남의 분노로 자신이 분노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때 그는 유화하다고 불리어질 것이다.”]


촌장을 한역에서는 ‘취락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을의 우두머리라는 정도의 뜻이다. 이 경에 등장하는 촌장은 ‘포악’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람의 자식이었다. 항상 사람들로부터 포악하다든지 난폭자라고 불리우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날 드디어 결심을 하고 부처님을 찾아와 ‘어째서 저는 이토록 평판이 나쁜 것입니까’ 하고 질문하였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매우 구체적이고 명쾌한 것이었다. 포악의 원인을 우리가 흔히 삼독(三毒)이라고 부르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지적을 받은 촌장은 그 뜻을 이해하고 설법을 들은 사람이 감동해 하는 경전의 고유한 형식으로 이렇게 말한다.


[“스승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이를테면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 듯, 덮인 것을 벗겨주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어둠 속에서 등불을 주시어 ‘눈 있는 자는 보라’ 고 하시듯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즉시 삼보에 귀의를 표명하고 우바새 즉 남자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2) 설법의 법칙  ▲ 위로


예부터 부처님의 설법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불러왔다. 기(機)란 사람의 근기 수준을 뜻하는 말이다. 대기설법이란 사람의 근기에 맞춰 융통무애하게 설법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부처님만이 갖는 일정한 공식이 있었다. 공식이란 말은 원래 근대의 수학이 도입된 이후 생겨난 말이다. 수학에서 공식이란 일반적으로 통하는 법칙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를테면 대수(代數)의 공식과 같은 것인데 부처님에게도 그러한 법칙을 나타내는 공식이 있었던 것이다.

 
불교에서 자주 쓰는 ‘법’이라는 말이 무엇보다도 그것을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다. 법이라는 말은 매우 난해한 단어이다. 불교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이 법이라는 말이 갖는 뜻이 워낙 난해해서 당황하기도 한다. 명저<유식론(唯識論)>에 의하면 ‘법이란 궤지를 말한다(法謂軌持).’ 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주석해 ‘궤범을 말한다(軌範). 물해(物解)를 낳게 한다. 지(持)란 임지(任指)를 말한다. 자상(自相)을 버리지 말라(軌謂 軌範 加生物解, 持謂任持 不捨自相).’고 설명하고 있다.

 
초심자에게 이 말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먼저 법이란 ‘궤지를 말 한다‘ 는 해석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이것을 주석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해석이 더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차차 세월이 지나면 처음에는 도무지 알 수 없던 것도 어렴풋이 알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뜸 들여 설명할 필요 없이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말한다면 ‘법칙’이라던가 ‘공식’이라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공식이라는 것을 본보기랄까 형식 이라고 한다면 어떤 문제나 사물을 거기에 올려놓고 이해하려는 방법이 공식을 갖는 기능이다.


<유식론>에서 법이란 말을 주석해서 ‘궤란 궤범을 말한다. 물해를 낳게 한다.’ 는 해설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계속해서 ‘지란 임지를 말한다. 자상을 버리지 말라.’ 라고 할 때 ‘임지’란 ‘유지한다’ 는 뜻이고 ‘자상을 버리지 않는다.’ 는 것은 그 자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좀 더 부연해 말하면 법(法)이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공식이 변하면 공식의 기능도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법이란 먼저 그것이 본보기가(궤범) 되어서 사물의 이해를 낳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며 다음은 그 자신은 조금도 변화하는 일이 없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 뜻이다. 법을 설명하려다가 조금 어려워 졌지만 부처님의 설법은 원통무애하고 자유자재 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공식에 의해 설해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서 예로 든 ‘포악’이라는 제목이 붙은 경전이 바로 그 좋은 예이다. 그러면 부처님은 거기서 어떤 공식으로 설법하고 있는가. 먼저 그것을 살펴보아야 이해가 쉬울 것 같다.

 


3) 연기의 공식  ▲ 위로


‘포악’이라는 장에서 보여 지는 공식은 어느 날 기원정사로 부처님을 방문했던 ‘포악’이란 자의 질문과 거기에 대한 부처님의 간절한 교훈이다. 이것을 종래의 사고방식으로 말하면 부처님의 대기설법의 한 전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부처님의 그 간절한 가르침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분명히 ‘부처님의 공식’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그 포악이라는 별명이 붙은 촌장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촌장이여, 만일 인간이 탐욕을 버리지 못했다면 그는 그렇기 때문에 남을 화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노여움으로 자신도 역시 분노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는 포악이라고 불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탐욕(貪)을 분노(瞋)로 바꾸고 다시 어리석음(癡)으로 바꾸면서 두 번 세 번 같은 의미의 말을 한다. 그런 뒤 다시 부처님은 그것을 뒤집어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촌장이여, 만일 인간이 탐욕을 버린다면 그는 그로 인해 남을 화나게 만드는 일도 없고 또 타인의 노여움으로 인해 자기도 분노 하게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때 그는 유화한 사람이라고 불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부처님은 탐욕을 분노로 바꾸고 다시 어리석음으로 바꾸면서 두 번 세 번 같은 뜻의 설법을 하고 있다. 거의 모든 경전은 지루하리만큼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참고 반복해 읽다보면 명료한 깨달음이 온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부처님의 사고방식의 전형이랄까, 설법의 패턴이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사고방식 또는 설법의 패턴은 바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직후 도달했던 저 ‘연기의(緣起) 공식(公式)’이라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했던 바이지만 한 경전은 (남전소부경전 자설경 1.3) 그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

 


4) 설법의 패턴  ▲ 위로


연기의 공식이 부처님의 설법에 가장 중요한 패턴이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을 할 때까지의 과정에서 부처님이 사용한 사고의 패턴, 또는 설법의 형식은 대체로 이 공식에 의한 것이었다. 이미 인용했던 경이지만 한 경전은 보리수 아래 계셨을 때 부처님의 사고 내용을 부처님 자신의 입을 통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있으므로 노사가 있는 것일까? 무엇에 의해서 (緣해서) 노사가 있는 것일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올바른 사유와 지혜로써 이렇게 이해할 수 있었다.
‘태어남이 있으므로 (生) 노사가 있는 것이다. 태어남을 연고로 해서 노사가 있는 것이다.’ (중략)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없어야 노사가 없어질까? 무엇을 멸하면(滅) 노사가 멸할 수 있을 것인가?’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다시 올바른 사유와 지혜로써 이렇게 이해할 수 있었다.
‘태어남이 없다면 노사는 없을 것이다. 태어남이 멸함으로써 노사를 멸할 수가 있는 것이다.’ (후략)]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12지연기의 성립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순역(順逆)의 두 가지 방법에 의해 12지 연기를 각각 공식을 해당시켜 말하고 있으니까 생략된 부분을 넣어 생각하면 실로 24회나 같은 공식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서 녹야원에서의 최초설법에서는 이미 연기의 법칙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해석할 때 연기의 법칙을 배경으로 돌린 뒤 새롭게 구성된 실천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설명해 왔다. 이러한 이해는 전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결코 연기의 법칙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연기는 여전히 사제법의 체계를 지탱해 주고 있는 배경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제법의 첫 번째는 고(苦)의 성제(聖帝)이다. 이 인생이 모두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에 관한 성제이다. 인생이 모두 괴로움일 수밖에 없는 까닭을 추궁해 그것을 갈애 즉, 욕망의 소산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성제는 잘 생각해 보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라고 하는 연기공식의 전반부가 그 배경으로 있고 두개의 성제는 그것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고의 멸진에 관한 성제다. 두 번째의 갈애가 멸할 때 괴로움도 역시 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두 번째의 성제와 세 번째의 성제가 연기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는 연기공식의 후반부가 그 배경에 있고 두 번째 세 번째 성제는 그것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와 같은 연기의 공식은 어디에서 생겨나 어떻게 성립된 것일까?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2. 연기(緣起)

1) 연기를 말하는 설법
 ▲ 위로


그러면 그 연기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먼저 이런 질문을 가지고 부처님 에게 그것을 물어보아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연기’(緣起: causal gnesis, paticcasamuppada.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것)란 말할 것도 없이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이룬 정각의 당체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함부의 여러 경전들이 기록해 놓은 수많은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는 정각의 내용을 부처님 자신이 술회하고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 되는 것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 정각의 결정적 순간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갈 곳도 없어진(言語道斷 心行處滅)’ 경지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직관만이 빛나고 있을 뿐이고 오성(悟性)은 아직 그에 대한 아무런 사념의(思念) 작용도 시작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언어도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표현 작용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당시의 소식에 대해 명쾌하게 ‘그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라고 이야기한 것이 매우 적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뒷날 부처님이 그의 제자인 비구들을 위해 12지연기를 설명하였을 때에는 역시 이따금 그 정각의 소식에 대해 조금씩 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 설법이 어떤 것인지는 신중하게 경전을 읽은 사람이라면 발견해낼 수 있다. 그러면 먼저 그러한 설법을 하나 들어 보기로 한다. 한 경에서는(남전 상응부경전12.20 연 緣. 한역 잡아함경 12.14인연법 因緣法)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밧티의 제타 숲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있었다. 그 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연기와 연생’(緣生: having its foundation in this: causally connected. paticcasamuppanna)의 법에 대하여 말할까 한다. 그대들은 나의 설법을 듣고 잘 생각해 보도록 하라.” “스승이시여, 어서 말씀 주소서” 비구들은 부처님께 설법을 요청 드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구들이여, 연기란 무엇이겠는가. 태어남에 의해 늙고 죽음이 있다. 이것은 여래가 이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법으로써 정해져 있고 법으로써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의성(相依性)이다.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알아낸 것뿐이다.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알아내고 이것을 교시하고 이것을 선포하고 이것을 상설(詳說)하고, 이것을 개현(開顯)하고 이것을 분별하고 이것을 밝히고 그리하여 ‘그대들은 보라’고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생에 의해 노사가 있다. 비구들이여 유(有)에 의해 생이 있다. 비구들이여, 취(取)에 의해 유가 있다. 비구들이여 수(受)에 의해 취가 있다. 비구들이여 수에 의해 애(愛)가 있다. 비구들이여, 촉(觸)에 의해 수가 있다. 비구들이여 육처(六處)에 의해 촉이 있다. 비구들이여, 명색 (名色)에 의해 육처가 있다. 비구들이여, 식(識)에 의해 명색이 있다. 비구들이여, 행(行)에 의해 식이 있다. 비구들이여, 무명(無明)에 의해 행이 있다. 이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법으로써 정해져 있고 법으로써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의성이다.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알아낸 것뿐이다.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알아내고, 이것을 교시하고, 이것을 선포하고, 이것을 상설하고, 이것을 개현하고, 이것을 분별하고, 이것을 밝히고, 그리하여 그대들은 보라고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의해 행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것, 허망하지 않은 것, 있는 그대로 다르지 않은 것, 상의인 것, 이것을 연기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은 더 계속된다. 그러나 우선 여기서 멈추고 그 뜻을 되새겨 보면 이렇다. 이 설법은 경의 첫 머리에 나오듯 사밧티의 제타숲 아나타핀 티카동산 즉 기원정사에서 있었던 듯하다. 기원정사가 세워진 것은 부처님이 정각을 성취하고 나서 적어도 2년쯤 뒤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설법이 행해진 것은 그보다도 훨씬 뒷날의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부처님은 먼저 비구들에게 ‘연기란 무엇이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어 ‘생에 의해 노사가 있다’ 라고 스스로 답변하면서 12지연기의 하나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그 자리에 참석해 있던 제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12지연기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의 부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연기 라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 그것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부처님의 설명 방법은 이러했다.

 
그 첫째는 연기란 애당초 법으로써 정해져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경전에서는 ‘이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법으로써 정해져 있고 법으로써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더 이상의 어떤 설명도 필요 없다.

 
두 번째는 ‘그것은 상의성(相依性)이다.’ 라는 설명이다. 상의성이란 말이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으나 풀어서 말하면 그것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맺어져 있다는 정도의 뜻으로 요즘말로 바꾼다면 ‘관계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그 법에 대한 부처님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그것은 경전에서는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알아내고, 이것을 교시하고, 이것을 선포하고, 이것을 상설하고, 이것을 개현하고, 이것을 분별하고, 이것을 밝히고, 그리하여 그대들은 보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네 번째는 이 단락의 마지막에서 네 가지로 이 법의 성질을 설명하고 있다. 그 하나는 ‘여성’(如性:  tathata, 있는 그대로의 것), 둘째는 ‘불허망성’(不虛妄性: avitathat, 허망하지 않은 것), 셋째는 ‘불이여성’(不異如性:  anannathat, 있는 그대로 다르지 않은 것), 그리고 넷째로 다시 한번 ‘상의성’을 강조한다. 즉 서로 의지하고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거기에는 제법실상(諸法實相) 또는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다(華紅柳綠).’ 라고 후세의 불교인들이 말하는 표현의 원천이 있는 것이다.

 


2) 연생을 말하는 설법  ▲ 위로


부처님의 설법은 다시 계속된다. 이번에는 연생(緣生)에 관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연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비구들이여, 노사는 무상한 것, 인간이 삶을 영위함에 의한 것, 조건에 의해 생기는 것, 없게 할 수 있는 것, 망가져 버리는 것, 탐욕을 떠나야 하는 것, 그리고 없어 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생은 무상한 것, 인간이 삶을 영위함에 의한 것, 조건에 의해 생기는 것, 없게 할 수 있는 것, 망가져 버리는 것, 탐욕을 떠나야 하는 것, 그리고 없어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유(有)는 무상한 것……. 비구들이여, 취(取)는 무상한 것……. 비구들이여, 애(愛)는 무상한 것……. 비구들이여, 무명(無明)은 무상한 것 인간이 삶을 영위함에 의한 것, 조건에 의해 생기는 것, 없게 할 수 있는 것, 망가져 버리는 것, 탐욕을 떠나야 하는 것, 그리고 없어지는 것이다.”]
 

‘연생’이란 말은 부처님이 그다지 많이 사용했던 말은 아닌 듯 하다. 아함부의 여러 경전에서의 사용빈도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 부처님은 이 연생이란 말이 뜻하는 바를 설명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설명은 다음 네 조항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첫째로 그것은 무상(無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상이란 말할 것도 없이 항상(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한 가지도 항상하여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빌린다면 ‘만물은 유전(流轉)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그것은 유위(有爲)라고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 우리는 유위(有爲)를 ‘인간이 삶을 영위함’ 이라고 했다. 또 ‘조건에 의해 생기는 것’ 이라고도 했다. 결국 이런 표현은 연기의 법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연멸(緣滅)의 법에 의해 멸하는 것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세 번째로 그것은 멸진(滅盡)의 법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즉 파괴의 법칙이다. 그것은 썩고 퇴색해 가는 것이고 또한 반드시 연멸의 법에 의해 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그것은 이탐(離貪)의 법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여기서 탐욕을 떠나는 것이란 인간이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그것에 대해서는 집착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될 때 ‘연생’을 잘 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부처님이 이 경에서 설법한 내용의 제 2단락이다. 이렇게 해서 이 경의 주제인 ‘연기와 연생의 법‘에 대한 설명은 끝나고 있다. 그러나 이 설법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3) 성스런 제자의 자세  ▲ 위로


부처님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법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들은 이 연기와 연생의 법을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잘 본다.
 

하지만 그들 또한 과거세(過去世)의 일을 상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과거세에 있었던 것일까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과거세에 있었던 것일까? 또 과거에는 어떠 했을까? 과거세에는 어떤 상태로 있었을까?’ 라고.


그리고 다시 미래의 일도 생각해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무엇 때문에 내세에 있게 될까? 또 내세에는 어떻게 있게 될까? 내세에는 어떤 상태로 있게 될까?’ 라고.


또 현세에서의 자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갈등을 가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我)라는 것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일까. 나는 도대체 어떻게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또 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라고.


그러나 그들은 그 이치는 모르는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들은 다만 있는 그 대로 이 연기와 연생의 법을 올바른 지혜로써 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경에서 말하는 부처님이 설법한 마지막 제 3단락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부처님이 말하고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나의 성스러운 제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그대들 중에는 문득, 과거세의 일이나 미래세의 일, 또는 현재의 자기 존재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다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걱정하는 것은 나의 성스러운 제자로서는 적당한 일이 아니다. 그러지 말고 다만 올바른 지혜로써 연기(緣起)와 연생(緣生)의 법을 있는 그대로 보라. 그것이 나의 거룩한 제자의 태도이다’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오늘을 사는 우리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심심미묘한 연기법  ▲ 위로


연기의 이법(理法)은 걸코 이해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처님 자신 술회에서나 제자들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앞 서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님이 설법에 앞서 고민하였던 것도 바로 이점이었다. 한 경은(남전상응부경전6.1권청, 증일아함경19.1)은 그 때 부처님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

 
[“내가 깨달은 이 법은 대단히 깊고도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적정미묘(寂靜微妙)하고 사유의 세계를 초월하고 있으므로 우수한 자만이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세간의 사람들은 다만 욕망을 즐기고 욕망을 좋아하며 욕망에 날뛰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도저히 이 이치를 보기 어렵다.


이 이치란 모든 것이 상의성에서 연(緣)이 있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 반대로 모든 계량(計量)을 멈추고 소의(所衣)를 버리게 되면 갈애는 끝나고 탐욕을 떠나 완전히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 법을 설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다만 피로해지고 지칠 뿐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연기의 이법을 ‘대단히 깊고도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그다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이치를 터득했다고 생각해도 그것으로써 우리의 인생관이 바뀐다고 하는 감개(感慨)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직도 그 이치를 터득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 경에서(남전 상응부경전12.60 인(因), 한역은 없음) 이 점은 명백하게 지적되고 있다.

 
[부처님이 구루지방의 감마 사담마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늘 부처님을 따라다니던 아난다가 부처님께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이 연기의 법은 대단히 깊고 미묘한 이치라고 하는데 저로서는 아무래도 미묘하거나 불가사의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스승이시여, 그것은 제가 보기에 명명백백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때 부처님은 아난다의 소견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이 연기의 법은 매우 심원하고 미묘한 모양을 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이법을 모르기 때문에 마치 실타래가 뒤엉기듯, 종기가 뒤덮이듯, 또는 문차라는 풀이나 피라파라는 풀처럼 나쁜 곳에서 태어나 나쁜 곳으로 가고 언제까지라도 지옥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다시 그 연기의 이법을 인간존재에 대입시켜 어떻게 해서 이 고통스러운 인간존재를 탄생시키는지, 어떻게 그 고통스런 실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간곡한 비유를 섞어 설법하고 있다. 이 경에서 아난다가 연기의 이법에 대해 쉽게 생각하다가 끝내 부처님의 꾸중을 듣는 장면은 매우 흥미 있다. 그러면 이 연기법이란 어떤 이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가. 대관절 어디가 미묘하고 어디가 난해한 것인가. 이에 관한 문제도 매우 흥미 있다.
 

부처님에 의해 득오된 진리를 우리는 부처님의 표현에 따라서 ‘연기(緣起)’라고 부른다. 오늘의 철학적 용어에 해당시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하나의 존재론 임을 알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존재론이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존재 일반을 논하는 학문이다. 이 용어는 17세기경 독일의 철학자 클라우베르트(Clauberg, 1622~1665)라는 학자가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라 한다. 존재 일반이란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희랍어 'onta(존재자)‘이다.


그리고 이 같은 견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론과 그의 저서 <형이상학> 제6권 첫머리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서 탐구하는 것은 존재자의, 또 말할 것도 없이 존재자로써 있는 한에서의 여러 가지 원리와 원인이다.” 즉 존재를 다만 존재로써 논하는 것이 이 학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부처님이 저 보리수 아래서 증득한 연기의 이법이라는 것도 또한 이 같은 존재 일반에 관한 원리였다. 그것을 우리는 그때 ‘만법이 분명해졌다’고 말했고 또는 ‘부처님은 능히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았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일반의 파악법, 사고법에는 예부터 여러 가지 유형이 존재하는데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존재일반을 ‘만들어진 것’ 으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가령 ‘구약(舊約)’에서 말하는 천지창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사상이라던가 철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화적 사유 속에서 태어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사고방식이 오늘날에도 아직 하나의 인생관 또는 인생관의 바탕이 되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기독교의 존재가 이것을 말해 주고 있다.


둘째는 존재일반을 ‘있는 것(유)’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초기의 희랍 철학자의 표현대로 하면 ‘존재자’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앞서 말한 ‘존재론(Ontologie)' 이라는 말도 이런 사고방식에 근원하는 것이다. 결국 여기에서 존재일반이란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그 실상을 원질에까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 포착방법의 전형적인 것을 우리는 희랍 철학자들과 근대 자연과학자들의 사고방식에서 볼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은 모든 존재는 결국 ‘이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좀 더 비유해서 말한다면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라는 사고법이다. ‘만물은 유전한다.’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이동하는 것’ 또는 ‘유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현상적인 측면에서 말하면 생성하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이 된다. 초점을 이처럼 존재일반에 적용하면 이번에는 그것을 생성과 유전 속에 넣고 포착하려는데 도가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관찰의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자연 거기에는 분석대신 종합이 등장한다. 이것은 결국 모든 것을 관계 속에 놓고 보는 태도이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 생성하고 유전하는 변화의 법칙을 묻는 일이 그것의 중심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지금 부처님도 역시 존재일반을 그와 같이 ‘이동하는 것’ 또는 ‘흐르는 것’으로 포착하고 또한 그 변화의 법칙을 추구해서 그것을 ‘연기의 존재론’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존재론의 세 가지 유형을 선정 했다고 해서 그 어느 것이 우수하고 어느 것이 뒤진다는 우열론은 삼가야한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세 가지 유형이라 어느 것엔가 익숙해진 우리로는 그 외의 사고방식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존재일반을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이동하는 것’ 또는 ‘흘러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 예로 우리는 다음의 한 經(남전상응부경전12.67 葦束갈대묶음) 한역 잡아함경12.6葦)의  예를 생각할 수 있다.

 
[어느 때인가 사리풋타와 마하코티타라는 비구가 바라나시의 녹야원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마하코티타는 명상의 자리에서 일어나 사리풋타를 찾아가 정중한 인사를 한 다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친구 사리풋타여, 노사는 자작(自作)일까 타작일까. 또는 노사는 자작인 동시에 타작일까. 아니면 노사는 자작도 타작도 아니고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일까.”]

 
여기서 ‘자작’이라거나 ‘타작’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자기가 만드는 것’ 또는 ‘남이 만드는 것’ 이라는 뜻이다. 즉 그는 먼저 늙음과 죽음의 문제를 예로 들면서 그것이 누가 만드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날 사리풋타에게 질문을 한 마하코티타라는 제자는 상당히 알려진 인물이었던 듯싶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의 질문은 매우 엉뚱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리풋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여, 노사는 자작이 아니다. 또한 타작도 아니다. 그리고 노사는 자작이거나 타작인 것도 아니다. 그리고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생이 있으므로 해서 노사가 있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다시 두 사람의 계속되는 문답의 내용은  노사 - 생 - 유 - 취 - 애 - 수 - 촉 - 육처 - 명색 - 식으로 대치해 놓고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12지연기의 지절(여기서는 10지까지만 있다.)로써 마하코티타는 그 하나하나에 대해 자작인가 타작인가를 묻고 사리풋타는 그것을 모조리 부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하코티타는 전혀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버렸다.


[그래서 그는 다시 물었다.
“친구여, 지금 설법한 바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 사리풋타는 비유를 들어 설명해 나갔다.
“친구여, 그러면 한 가지 비유를 들어보자. 그대는 이 비유의 뜻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친구여, 그것은 이를테면 두 개의 갈대묶음이 서로 기대어 서 있는 것과 같다. 바로 그것이다. 친구여 이와 마찬가지로 명색에 의해 식이 있는 것이고 식에 의해 명색이 있는 것이다. 또 명색에 의해 육처가 있는 것이고 ... 이러한 것이 모든 고의 집적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여, 만일 그 갈대 다발 중 어느 것인가를 치워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하나도 쓰러질 것이다. 또 다른 하나를 치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처럼 명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 이와 같이 모든 고의 집적이 멸하는 것이다.”]


사리풋타의 설명에 마하코티타는 찬사를 보내며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3. 무상 (無常)

1) 대기설법
 ▲ 위로


부처님은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서 최초로 설법을 한 뒤 쿠시나가라 교외의 사라나무 숲에서 위대한 죽음(涅槃)에 이를 때까지 45년이란 세월에 걸쳐 유행설법(遊行說法)의 생활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부처님이 말씀했던 설법은 양적으로 엄청났다. 따라서 그 전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제자들 가운데 선택된 5백 명의 비구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정리하기 위해 라자가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파라라는 바위산의 칠엽굴의 라는 동굴에 결집했다. 교법과 계율에 관한 이 최초의 결집은 그 후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결집에 의해 정리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경전이라 하는데 이 경전을 통하여 부처님의 설법을 듣노라면 그분의 설교방법은 깜짝 놀랄 만큼 자유 자재함을 알 수 있다. 뒷날 불교학자들이 부처님의 설법의 특징을 흔히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듣는 사람의 능력(根機)에 따른 설법이란 뜻이다. 그 좋은 예가 ‘경전(耕田)’이란 이름이 붙은 경이다. 경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남전상응부경전7.11경전. 한역 잡아함경 4.11 경전)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다키니기리(南山)에 카나라(日草)라는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 마을에는 ‘경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라문이 파종의 계절을 맞아500개의 삽(가래)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 때 부처님은 새벽에 옷을 갈아입고 발우를 들고 그 바라문이 사람들과 만나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 바라문은 마침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부처님은 음식을 얻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 바라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성인 바라드바자는 당시 바라문 사회에서는 7명가(名家)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제를 업으로 하는 바라문은 아니고 많은 농사를 짓는 농부였던 모양이다. 경전(經典)에는 그를 ‘경전(耕田)’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었던 듯하다.


때마침 파종기를 맞아 그는 씨를 뿌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모아 아침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거기에 마침 그 마을로 걸식을 나깠던 부처님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 바라문은 부처님이 탁발을 위해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수행자여, 나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김도 매고 곡식이 익으면 추수를 한다. 수행자여, 그대도 밭 갈고 씨를 뿌리는 수고를 한 뒤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바라문이여, 나도 역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나서 음식을 먹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우리는 좀 당혹스러워진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어째서 부처님이 이런 말을 하는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전이라는 바라문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대가 멍에도 삽도 없고 회초리로 소를 모는 것도 본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나 또한 밭 갈고 씨 뿌린 뒤 음식을 먹는다’ 고 하는 것은 어찌된 것인가.”]

 
그러면서 경전은 다시 이런 노래로 그 까닭을 반복해서 묻고 있다.

 
[“그대는 자신도 농부라고 말하지만 나는 여지껏 그대가 밭갈이 하는 걸 못 보았다. 나는 그대에게 묻노니, 대답해 보라. 어찌하여 나는 그대의 밭갈이를 모르는가?”

 
그러자 부처님도 노래로 답한다.

 
“나의 씨앗은 믿음이고 계는 비니라. 지혜는 멍에고, 반성은 가래의 손잡이. 선정은 밧줄이고 정념은 회초리가 되어 몸을 지키고 말을 지키며 먹을 때는 양을 제한하고 진리로써 풀을 베고 조용한 곳을 즐김은 나의 휴식이라네. 정진은 내가 모는 소이고 그 소는 나를 조용하고 안온한 곳으로 가게 하네. 갔다고 돌아오지 않고 당해서 슬퍼하지 않으니 이것이 나의 밭갈이이고 감로는(甘露)는 그 결과라네. 나는 이렇게 밭을 갈아 모든 고뇌로부터 해탈하였노라.”]

 
그 바라문은 부처님의 이 같은 노래를 듣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우바새가 되었다. 생각컨대 ‘밭을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개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농부가 황무지를 개간해 옥답을 만들듯이 인간의 정신적 황야를 개발해 보다 나은 인간의 모습을 구현하는 사업 또한 중요하다. 부처님이 ‘나도 밭을 간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였다. 인간도 스스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좋은 결실을 얻어야 한다. 이마에 땀도 흘리지 않고 남의 동정에 의지하려는 것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존재이다. 인간이 갈아야 하는 것은 결코 밭(田)만이 아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밭가는 일과 함께 인간 정신의 황무지를 일구어 좋은 수확을 거두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다. 부처님은 그 중요한 일을 ‘나도 밭을 간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훌륭한 대기 설법이 아닐 수 없다.

 


2) 항상인 것은 없다  ▲ 위로


부처님이 재기신자들을 대상으로 설법하는 방법은 문자 그대로 자유자재해서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출가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법은 좀 더 확고한 체계와 논리를 구비하고 있는데, 그것은 중생들에게 ‘지혜의 길(jnana-marga)’을 열어 보인 지자(智者) 또는 사상가로서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 부처님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이론적 체계의 바탕을 이룬 것이 다름 아닌 무상(無常)의 개념이다. 무상에 관하여 한 경(남전상응부경전 22.97 과정瓜頂. 한역 증일아함경 14.4) 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언젠가 부처님이 사밧디의 제타 숲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 한 비구가 부처님이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께 예배하고 그 곁에 앉았다. 그 비구는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스승이시여, 아주 작은 색(肉體)이라도 상주하고 영주하여 변화하지 않은 것, 영원에 걸쳐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없겠지요.”]

 
여기서 색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인간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물질적 요소인 색, 그리고 수(感覺), 상(表象), 행(意志), 식(意識) 등 4가지 정신적 요소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다. 이것을 오온(五蘊, panca- kkhandha)이라 한다. 이 비구는 그 분류법에 따라서 먼저 색 즉, 물질적 요소에 관해서 묻는데, 항상 영주하여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느냐고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물론 부정적인 것이었다.

 
[“비구여, 아주 작은 색이라도 상주하고 항존하고 변화하는 일이 없는 것, 영원히 정말로 존재하는 그런 것은 없다.”]

 
이어서 이 비구는 다시 또 수, 상, 행, 식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역시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리고 부처님은 잠시 엎드려 그 주위의 흙을 조금 집어 들고는 그것을 손톱 위에 올려놓고 그 비구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비구여, 만약 이만큼의 색이라도 상주하고 항존해서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청정한 행을 닦아 정령 고를 멸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여, 단 이만큼의 색이라도 상주하고 항존해서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는 까닭에 우리가 청정행을 잘 닦으면 정녕 고(苦)를 멸할 수 있다.”]

 
이것도 무심히 읽어버리면 아무런 깊은 뜻이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음미해 가면서 재독해 보면 거기에는 부처님이 당신의 교법에 근거한 기본적 입장을  활짝 드러내 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이 세상에 손톱 위의 흙만큼이라도 항상 영주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 자신이 설명하는 이 길, 즉 지혜의 길이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불교라는 종교는 무상, 즉 전적으로 ‘항상 하는 것은 없다’고 하는 세계 해석 위에 서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 무상의 개념을 어디에서 어떻게 도출하고 있는 것일까.

 


3) 연기의 이법과 무상의 개념  ▲ 위로


그것은 다름 아니다. 무상이란 연기의 이법에서 직접 도출해 나온 개념인 것이다. 한 경(남전상응부경전 22.18 인 因 <1> 한역 잡아함경1.11인 因)은 무상에 대해 부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

 
[“비구들아, 색은 무상하다. 색을 생기게 하는 원인도, 연(조건)도 무상이다. 비구들아, 무상한 것에 의해 생긴 색이 어찌 항상 할 수 있겠는가? 비구들아, 수는 무상이다. 수를 생기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무상이다. 비구들아, 무상한 것에 의해 생긴 수가 어찌 항상 할 수 있겠는가? 비구들아, 상은 무상이다. ··· 행은 무상이다. ···· 식은 무상이다. 식을 생기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무상이다.


비구들아, 무상한 것에 의해 생긴 식이 어찌 항상 할 수 있겠는가? 비구들아, 나의 가르침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들은 이와 같이 보고 그것을 싫어해 떠난다. 그렇게 되면 탐욕을 버리게 된다. 탐욕을 버리게 되면 해탈을 얻게 된다. 해탈을 얻게 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기고, 지혜가 생기게 되면 ‘나의 미혹한 삶은 이미 끝났다. 청정행은 이제 성취 되었다. 더 이상 미혹의 삶은 되풀이 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부처님은 무상의 개념을 신기하게도 연기의 이법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부처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색은 무상이다. 수, 상, 행, 식은 무상이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그 근거로 그것(色 受 想 行 識)을 생기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모두 무상이기 때문임을 들고 있다. 아니, 무상한 인과 연으로 생긴 그것(색 수 상 행 식)이 어떻게 항상 할 수 있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하고 있다. 이미 말했듯이 연기란 하나의 존재들을 표현 하는 것이다. 만법 즉 모든 존재는 연, 즉 조건지어져 있음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그러한 것은 연이 멸하면 없어지는 것이다.

 
연기론적 존재론은 당연히 유동적인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모든 것이 ‘옮겨 간다’ 는 것이나 만물은 ‘유전 한다’ 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그것을 무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연기의 이법과 무상의 개념은 표리 일체의 것으로, 그 사이에는 전혀 설명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런 뜻에서 앞서 말한 ‘색은 무상이다’ 라는 것은 연기의 이법에 따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의 제1 명제라 해도 좋다. 이 무상이라는 제 1명제는 다른 경전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전혀 설명이 가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금 잠아함경(1.11)에서는 연기의 이법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경의 서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4) 근본50경  ▲ 위로


남전대장경의 <상응부경전> 제3권과 제4권 머리에 각각 ‘근본50권경(muia, pannasa)'이라는 경전군(각각50경이다)이 있다. 경전의 편집자는 그 경전들을 무슨 까닭에 ‘근본50경’이라고 부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유의해서 읽어보면 저절로 어째서 그 경전 들을 ‘근본50경’이라고 부르는가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먼저 그 경전들에서의 대고중(對告衆), 즉 부처님이 설법하는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불과 몇 가지 예를 제외하고 모두가 출가자(비구)라는 점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부처님이 설법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무상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설법들은 어느 정도 정형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즉 거기에는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했던 설법의 가장 기본적인 유형이 집록되어 있다. 따라서 그런 경전들이라면 ‘근본50경’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이러한 경전들 가운데 우선 가장 기본적이고 또한 고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두세 가지 경전을 일단 읽어보기로 한다.

 
이 경전들은 매우 소박하고 정형적인데 그런 소박함 속에서 교리의 원초적인 모습이 발견되고 있다. 그 중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 22.12 무상. 한역 잡아함경 1.1 무상)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색(肉體)은 무상이다. 비구들이여, 나의 가르침들을 성스러운 제자들은 이렇게 보고 색을 염리(厭離)한다. 색을 염리하게 되면 탐욕을 떠난다. 탐욕을 떠나게 되면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기고 ‘나의 미혹한 삶은 이미 끝났다. 청정한 행은 이미 성취 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미 다했다. 더 이성의 미혹한 삶을 되풀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깨달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수(감각)는 무상이다. ···············
비구들이여, 상(표상)은 무상이다. ···············
비구들이여, 행(의지)은 무상이다. ···············
비구들이여, 식(의식)은 무상이다. ···············


비구들이여, 나의 가르침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들은 이렇게 보고 수, 상, 행, 식를 염리한다. 수를 염리하게 되면 탐욕을 떠난다(이탐離貪). 탐욕을 떠나게 되면 해탈한다. 해탈을 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기고 ‘나의 미혹한 삶은 이미 끝났다. 청정행은 이미 성취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미 다했다. 더 이상의 미혹한 삶을 되풀이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깨달을 것이다.”]


이것은 필경 ‘색은 무상’이라고 말했던 많은 경전 가운데 가장 간략하고 단순한 형식의 서술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에 비해 다음에 소개하는 경은 이 보다 약간 장문이고 무상 외에 다시 고, 그리고 무아의 개념도 언급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색은 무상이다. 무상인 것은 괴로움이다(苦) 괴로움인 것은 무아이다. 무아인 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며 내가 아니며 또한 나의 본체도 아니다. 진정 이와 같은 올바른 지혜로 보는 것이 좋다.


비구들이여, 수는 무상이다. ···················
비구들이여, 상은 무상이다. ···················
비구들이여, 행은 무상이다. ···················
비구들이여, 식은 무상이다. 무상인 것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인 것은 무아이다. 무아인 것은 나의 소유(我所)가 아니며 내(我)가 아니며 또한 나의 본체(我體)도 아니다. 진정 이와 같은 올바른 지혜로 보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 부처님은 먼저 무상의 문제로부터 출발하고 있지만 다시 그것을 괴로움의 문제로 결부시키고 또 무아의 문제와 결부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뒷날 삼법인으로 정리되는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라는 현실인식이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염리(厭離), 이탐(離貪), 해탈(解脫)이라는 형식의 실천방식이 뒤따르고 있다.

 
이와 같은 유형의 설법은 앞에서 말한 ‘근본50경’을 비롯해서 부처님의 설법 형식으로는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이 같은 유형은 아마 부처님이 비구를 지도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즉 부처님은 색(수, 상, 행, 식)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며 무아(無我)인 것을 일깨워 그것을 염리하고 이탐하게 하여 마침내 해탈을 성취하도록 하는데 설법의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5) 육처에 대해  ▲ 위로


한 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전 상응부경전35.1 무상<1>內내. 한역 잡아함경8.9~10 무상, 고, 공, 무아)

 
[“비구들이여, 눈(眼)은 무상(無常)이다. 무상(無常)인 것은 모두 고(苦)다. 모든 고(苦)인 것은 무아(無我)이다. 그리고 모든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 이는 내가 아니다. 이는 나의 본체가 아니다.’ 라고 그렇게 바른 지혜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또한 귀(耳)는 무상이다····································
비구들이여, 또한 코(鼻)는 무상이다····································
비구들이여, 또한 혀(舌)는 무상이다····································
비구들이여, 또한 몸(身)은 무상이다····································
비구들이여, 또한 의식(意識)은 무상이다. 무상인 것은 모두 고다. 모든 고인 것은 무아이다. 그리고 모든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 이는 내가 아니다. 이는 나의 본체가 아니다.’ 라고 그렇게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렇게 보고 나의 가르침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들은 눈에 대해 그것을 염리하면 탐욕에서 떠난다. 탐욕을 떠나면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나의 미혹한 삶은 이미 끝났다. 청정한 삶은 이미 성취 되었다.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더 이상 미혹한 삶을 되풀이하는 법 (윤회)은 없으리라.’ 이렇게 깨닭는 것이다.”]


이 경은 상응부경전 35의 ‘육처상응’이라는 이름에 붙은 경전군 안에 있다. 이 경전군은 그 속에 2백 개가 넘는 많은 경전을 수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전군 맨 앞에 ‘근본 50경’으로 불리는 경전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앞에 있는 것이 바로 이 경이다.


여기서 상응부경전 35의  ‘육처상응(六處相應)’의 육처란 육입(六入) 또는 육근(六根)이라고도 한다. 즉,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라는 인간이 가진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말한다. 이 감각기관은 각기 물체(色), 소리(聲), 향기(香), 맛(味), 감촉(觸), 관념(法)이라는 여섯 가지 대상 즉, 육경(六境)에 서로 연관 되어 거기에서 인식이 성립된다. 부처님은 이 경에서 먼저 육근 즉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예로 들면서 그 하나하나에 대해 ‘그것은 무상이다. 무상인 것은 모두 고다. 모든 고인 것은 무아이다. ····’ 라는 식으로 무상-고-무아라는 나중에 삼법인(三法印)의 정형이 되는 설법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눈, 귀, 코, 혀, 의식 등의 육근을 말하자면 인간의 내적 감각기관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것을 ‘내육입(內六入)’ 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경의 제목이 ‘무상(1)내’로 되어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와는 반대로 ‘무상<2>외’ 라고 제목이 붙은 경(남전 상응부경전35.4무상<2>外‘ 한역 잡아함경8.9~10 무상, 고, 공, 무아)이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비구들이여, 색(물체)은 무상이다. 무상인 것은 모두 고다. 고인 것은 모두 무아이다. 무아인 것은 모두 ‘이는 나의 소유가 아니다. 이는 내가 아니다. 이는 나의 본체가 아니다.’ 라고 그렇게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또한 소리(聲)는 무상이다·················
비구들이여, 또한 향기(香)는 무상이다·················
비구들이여, 또한 맛(味)은 무상이다····················
비구들이여, 또한 감촉(觸)은 무상이다·················
비구들이여, 또한 관념(法)은 무상이다. 무상인 것은 모두 고다. 고인 것은 모두 무아이다. 무아인 것은 모두 ‘이는 나의 소유가 아니다. 이는 내가 아니다. 이는 나의 본체가 아니다.’ 라고 그렇게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렇게 보고 나의 가르침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들은 물체에 대해 그것을 염리하며, 소리에 대해 그것을 염리하고 맛에 대해 그것을 염리하며, 감촉에 대해 그것을 염리하고 관념에 대해 그것을 염리한다. 이렇게 염리하면 탐욕에서 떠난다. 탐욕에서 떠나면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나의 미혹한 삶은 이미 끝났다. 청정행은 이미 성취 되었다.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더 이상 미혹한 삶을 되풀이하는 일(윤회)은 없으리라.’ 이렇게 깨닫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육근은 육경과 서로 연관 되어 있으며 거기서 우리들 인간의 인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말하는 세계란 바로 이것에 불과하다. 부처님은 앞에서 육근이 각각 무상(無常)임을 강조한 뒤 다시 여기서 그것을 뒤집어서 그 대상이 되는 육경에 대해서도 각각 무상 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 세계란 인간 측에서 보아도, 또 그 대상 측에서 보아도 모두가 무상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고(苦)

1) 고란 무엇인가
 ▲ 위로


부처님이 그 제자들인 비구들에게 했던 설법의 가장 기본적인 유형은 무상 - 고 - 무아의 세 가지였다. 그것은 이미 여러 번 언급했듯이 ‘무상인 것은 고다. 고인 것은 무아이다.’ 라는 설법의 내용에서도 간파된다.


이제부터는 그 가운데 ‘고(苦)’ 라는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갖기로 한다. 고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먼저 생각나는 경전이 있다. (남전 상응부 경전38.4. 한역 잡아함경18.1난등(難等 )그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장로 사리풋타(사리자)가 마가다국의 나라카라는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잠부카다카라는 한 유행자가 장로 사리풋타를 찾아와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친근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잠부카다카는 장로 사리풋타에게 옆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벗이여, 당신은 무슨 이익을 얻고자 부처님을 따라 수행하는 것인가요?”
“친구여, 나는 고(苦)를 다 알고자 부처님을 따라 수행하고 있지요.”
“그러면 벗이여, 그 고(苦)를 다 알기 위한 길이 있는 것일까요? 거기에 이르는 방법이 있는 것일까요?”
“친구여, 그 고를 다 아는 길이 있고말고요.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지요.”
“그러면 친구여, 그 길은 무엇인가요? 그 방법은 무엇인가요?”
“친구여, 저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길(八正道)야말로 고를 다 알 수 있는 길이지요. 그것은 바로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지요. 친구여, 이것이 그 고를 다 알게 하는 길이고 그곳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지요.”
“친구여, 당신이 말한 고를 다 아는 길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거기에 이르는 방법도 참으로 훌륭합니다. 친애하는 벗 사리푸타여, 그것을 닦는데 힘써야겠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나라카라는 마을은 라자가하의 동쪽으로 하루쯤 걸리는 거리에 있는 마을로 그곳은 사리풋타의 출생지였다고 한다. 그리고 잠부카다카라는 외도(外道)로 사리풋타의 가까운 친구였던 듯하다. 그는 가끔 나라카 마을로 사리풋타를 찾아가 부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대해 묻곤 했다. 이런 사실은 다른 여러 경전의 기록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이 경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그는 이 경에서 사리풋타에게 ‘당신은 무슨 이익을 얻고자 부처님 밑에서 수행하는가?’ 라고 묻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사리풋타는 ‘친구여, 나는 고를 다 알기 위해서 부처님을 따라 수행하는 것’이 라고 대답하고 있다.


여기서 사리풋타가 ‘고를 다 알기 위해서’ 라고 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고의 진상을 통찰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목적이라는 것을 불교도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불교도들은 늘상 ‘고’ 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그러나 문득 멈춰 서서 ‘그러면 고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것을 잘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스의 한 철학자는 ‘질문을 받지 않았을 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나는 알지 못한다.’ 라고 말했지만 이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아함부의 여러 경전을 펼쳐보면 가끔 새삼스럽게 ‘고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예는 먼저 두세 가지의 경전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2) 오온은 고다  ▲ 위로


한 경은(남전 상응부경전 23.15 고(苦). 한역 없음) ‘라다(羅陀)’ 라는 제자의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라는 형식으로 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이 사밧티의 제타 숲 아나타핀티카 동산에 있었다. 그때 장로 라다가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와서 예배를 한 뒤 이렇게 여쭈었다.

 
“스승이시여, 고 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고라고 하는 것입니까?”


“라다여, 색은 고다. 수는 고다. 상은 고다. 행은 고다. 식은 고다. 라다여, 이렇게 보고 나의 가르침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들은 색을 염리하고 수· 상· 행· 식을 염리한다. 그리하여 탐욕을 떠난다. 탐욕을 떠나면 해탈하게 된다. 그리고 해탈을 얻게 되면 나는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그리하여 ‘나의 미혹한 삶은 끝났다. 청정행은 이미 성취했다. 더 이상 이 같은 삶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라다라는 인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는 널리 알려진 사리풋타나 목갈라나 또는 마하카사파와 같은 제자들처럼 걸출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른바 10대 제자들 속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 그러나 아함부의 여러 경전을 앍다보면 그 가운데는 ‘라다상응(羅陀相應)’ 이라는 것이 있다.


부처님이 대고상 즉 설법의 상대로 라다를 삼은 것이 무려 46가지 경전에 집록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라든가 무아라든가 하는 불교의 기본적인 술어가 그에 의해 노골적으로 질문되고 있다. 이런 뜻에서 그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라다상응’에서 라다라는 비구는 이런 질문을 서슴없이 던진다.

 
[“대덕이시여, 무상, 무상이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어떤 것을 무상이라고 합니까”
“라다여, 색은 무상이다. 수는 무상이다. 상은 무상이다. 행은 무상이다. 식은 무상이다……”]

 
이런 식이다. 이것은 매우 간단명료하고 솔직한 답변이다. 잘 알다시피 불교에는 어려운 술어가 많다. 그것을 모조리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후대의 주석을 갖다 놓고 보아도 오히려 이해가 힘들어 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우리는 언제나 부처님 그 분에게 묻고 싶어진다.


철학자 니체는 무엇인가 철학적인 문제로 벽에 부딪힐 때마다 언제나 소크라테스에게로 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니체가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답을 거기서 구한다는 것은 그의 철학하는 태도에 어떤 시사를 던져준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부처님 그분에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럴 때 ‘라다상응’을 펼쳐보면 언제나 눈앞이 밝아진다. 거기에는 불교의 기본 적인 술어에 대해 라다의 단도직입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질문이 던져지고 부처님의 간단명료하고 솔직한 대답이 나온다. 이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라다상응’을 읽다보면 이 라다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매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인물은 필시 청순한 마음을 가진, 솔직한 성격의 청년 수행자가 아닐까 하는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조사해 보면 그는 젊은이가 아니다. 사밧디 출신의 바라문으로 늙은 나이에 늦게 출가해 부처님의 제자가 된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는 청년과 같은 청순함과 솔직함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제자들이 체면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 물어보지 못하는 문제, 즉 불교의 기본적인 술어에 대해 솔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앞에서 부처님에게 질문을 했던 것도 그런 내용의 일부이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명쾌한 답변을 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주석을 단다는 것이 오히려 사족이 될 뿐이다.

 


3) 고고(苦苦), 행고(行苦), 괴고(壞苦)  ▲ 위로


그러면 또 한 가지 명료한 대답이 나오는 경(남전 상응부경전 38.14 고. 한역잡아함경18.1 난등)을 예로 들어 보자.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잠부카다카라는 외도(外道) 수행자와 사리풋타와의 문답이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장로 사리풋타가 마가다국의 나라카라는 마을에 머물고 있을 무렵의 일이다. 그때 잠부다카라는 외도 수행자가 장로 사리풋타를 찾아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그 옆에 앉아 이렇게 물었다.


“친애하는 벗 사리풋타여, 고 고 하는데 도대체 고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친구여, 이런 세 가지가 괴로움이다. 즉, 고고성(苦苦性. 육체적 감각에 연유하여 느끼는 괴로움)· 행고성(行苦性. 제행무상에 연유하여 느끼는 괴로움) · 괴고성(壞苦性. 즐거움이 없어질 때 느끼는 괴로움)이다.”


“그러면 친구여, 그런 고를 다 알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거기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친구여, 물론 그런 고를 다 아는 길이 있다. 그곳에 이르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친구여, 그 길이란 무엇인가. 그 방법이란 무엇인가?”
“친구여, 저 성스러운 여덟 가지 바른 길이야말로 그러한 고를 다 알게 되는 길이다. 그것은 바로 정견 ·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 친구여, 이것이 그런 고들을 다 알게 되는 길이며 거기에 이르는 방법이다.”


“친구여, 그 고를 다 알게 되는 길은 참으로 좋다. 그 방법은 참으로 훌륭 하도다. 친구 사리풋타여, 그것은 또한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 길이다.”]


여기서 사리풋타가 외도수행자 잠부다카를 위해 설법한 고에 대한 설명은 앞서 부처님이 라다를 위해 설명했던 그것과는 그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부처님과 사리풋타가 각각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내용을 나란히 기록해 놓고 살펴보자. 부처님은 라다를 위해 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라다여, 색은 고다. 수는 고다. 상도 고다. 행은 고다. 식도 고다.”
그런데 사리풋타는 잠부다카를 위해 고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친구여 이 세가지가 고다. 즉 고고성· 행고성· 괴고성이다. 이 세 가지가 고인 것이다.”

 
얼핏 보면 스승인 부처님과 제자인 사리풋타의 대답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두 가지 설명 사이에는 어디에도 상통되는 곳이 없는 듯 생각된다. 그러나 사리풋타가 누구인가? ‘부처님으로 하여금 위대한 법륜을 굴리게 하고 그것에 따라서 법륜을 바르게 굴려간다.’ (남전중부경전 111 부단경 不斷經) 고 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스승과 전혀 상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앞서 예로 든 고의 설명에서는 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이것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고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4) 무상한 것은 고다  ▲ 위로


부처님이 라다를 위해 고에 대해 설명했던 방법은 지극히 알기 쉬운 것이었다. 부처님은 보이는 그대로 그것을 오온(五蘊)에 대입시켜 설명하고 있다.

 
즉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하나하나를 고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라다여, 너의 육체(色)와 정신(受·想·行·識)은 고이니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마 라다도 그런 뜻으로 받아 들였을 것이 틀림없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라다는 늙어서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짙게 그의 심신을 뒤덮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설명은 그에게 더없이 구체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은 고의 문제를 매우 주관적인 입장에서 해설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사리풋타가 잠부다카를 위해 설명했던 예화는 오히려 객관적인 입장에서 고의 문제를 해설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리풋타가 잠부다카의 질문에 대답한 내용은 세 가지이다.

 
그것은 고고성 · 행고성 · 괴고성이다. 이 세 가지의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고고성이란, 고연(苦緣) 즉 애당초 괴로운 조건으로 생기는 고통이란 뜻이다. 춥고 더운 것이 심하면 괴롭다. 목마름도 괴롭다. 칼이나 창에 찔려도 괴롭고 채찍으로 맞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괴로운 조건에서 생기는 고를 고고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추상명사형으로 말해 고고성이라 한다.

 
둘째 행고성이란,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행(行)이란 옛사람의 주석에 의하면 천류(遷流)라는 의미다. 즉 만물은 변천하고 흘러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의 무상함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러한 무상을 조건으로 생기는 괴로움을 행고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추상명사형으로 말해 행고성이라고 한다.

 
셋째 괴고성이란, 언젠가 쇠퇴해서 무너지는 것은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옛 사람은 괴고를 ‘즐거움이 무너지는 괴로움’ 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아무리 부귀를 욕심껏 누린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쇠퇴하고 만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꽃도 마침내 시든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무상을 만나면 반드시 이별을 하게 된다. 애당초 즐거움이란 인간의 애착하는 마음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 대상이 무너지면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이 괴고다. 그리고 이것을 추상명사로 말해 괴고성이라 한다.

 
그러면 이 같은 여러 가지 고(苦) 또는 고성(苦性) 가운데 부처님이 주로 문제로 삼았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행고 또는 행고성이었다. ‘무상한 것은 고다’ 라고 말한 것에서도 이 점은 명확하다. 이 무상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였고, 그것은 바로 고였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의 색·수·상·행·식이 바로 고(苦)’ 라는 설명이 된다.

 


5. 무아(無我)

1) 무아를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 위로


부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체계에서 세 번째 항목은 무아이다. 이 무아란 말은 불교의 기본적 술어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나오는 것 가운데 하나로서 보다 정확한 이해가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무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것을 ‘무아의 황홀한 경지’로 이해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데 그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또 자신을 억제하고 자아(自意識)를 없앤 상태를 무아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올바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만약 이렇게 무아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담마파다(法句經)》의 ‘자기품(自己品)’에 나오는 게송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근본(지주)은 자기뿐이다.

자기 외에 어떤 근본이 있겠는가.

자기가 잘 조어될 때,

사람은 얻기 어려운 근본을 얻게 된다.]


이 게송에서는 결코 자기를 망각하라거나 자기를 없애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자기의 인간형성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노력을 집중시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인간형성의 완성이 되었을 때 인간은 참으로 얻기 어려운 근본을 얻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본래 하나의 인간형성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범부인 인간이 자기의 인간을 잘 조어하고 형성해서 끝내 부처님이 가르친 이상적 인간성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것이 불교의 전도정(全道程)인 것이다. 이 길은 요즘말로 표현한다면 자기확립의 길이다. 결코 자기망각의 길도 아니고 자기압살의 길도 아니다. 그런 것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아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그것을 이해해야 바른 이해일 수 있을 것인가.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에 대해 부처님의 설법을 곰곰이 되씹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2) 아소(我所)ㆍ아(我)ㆍ아체(我體)  ▲ 위로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22ㆍ15) 無常<1>. 한역 잡아함경(1ㆍ9) 厭離)에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색(육체)은 무상이다. 무상한 것은 고다. 고라는 것은 무아이다. 무아인 것은 나의 것(我有)이 아니다. 나의 나가 아니다. 도 나의 본체도 아니다. 참으로 이와 같은 올바른 지혜로 보도록 하여라.”]


또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22ㆍ49) 한역 잡아함경(1ㆍ31) 輸屢那)에서는 소나(輸屢那)라는 제자와 함께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색은 상인가 무상인가.”

“스승이시여, 무상이옵니다.”


“무상이라면 고인가 낙(樂)인가.”

“스승이시여, 고입니다.”


“그러면 무상이고 고이고 변화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보고 이것은 나의 소유이다. 이것은 나(我)다. 이것은 나의 본체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설법이나 문답 속에는 부처님이 어떤 의미에서 무아라는 말을 사용했는가 하는 하나의 정형적인 표현이 잘 나타나고 있다.

 
[“무아라는 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고 나의 내가 아니고 또 나의 본체도 아니다.”

“무상이고 고이고 변화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보고 이것은 나의 소유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본체다 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 두 개의 인용문은 부처님이 ‘무아(無我)’라는 말로써 부정하는 것이 세 가지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1) 아소(我所)의 부정

2) 아(我)의 부정

3) 아체(我體)의 부정


이러한 용어는 한역을 그대로 옮긴 것이어서 이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뜻은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첫째, 아소의 부정이다. 여기서 아소란 본래 'mama'를 번역한 ‘아소유(我所有)’란 말인데 그것을 생략해서 ‘아소’라고 한 것이다. 이 용어를 현대적인 용어로 바꾼다면 ‘나의 소유’라는 정도의 말이다. 즉 나에게 소유되고 나의 집착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부처님이 거기에 대해 ‘이는 아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것은 그러한 소유의 항구적 고정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불교는 연기의 존재론에 의해 성립되고 무상의 존재론에 의해 성립된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한 그 같은 ‘나의 소유’란 있을 수 없다. 즉 ‘이는 아소가 아니다’라는, 우리들의 상식의 세계에서 지배적인 자기의 소유에 관한 고정적인 관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소유에 관한 고정적인 관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소유에 관한 집착을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아의 부정이다. 여기에서 ‘아’란 본래 ‘asmi'또는 ’attan'을 번역한 말로 현대어로 바꾼다면 ‘자아(自我)’ 또는 ‘자기(自己)’란 말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그것을 지칭해 ‘이는 자아가 아니다’라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 문제는 대단히 미묘한 것이지만 여기서도 부처님은 사람들의 상식적 세계에서 지배적인 자아에 관한 고정적인 사고방식을 부정하고 있다. 즉 사람들은 자기 육체와 정신의 영위를 주체적으로 통일하는 무엇인가 항상하고 변하지 않는 객체적인 자기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연기의 이법 아래 놓여 있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나’ 또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 둘 것은 이 아(我)의 부정은 과거의 사상가들 사이에서 믿어져 온 자아에 대한 사고방식까지를 부정하는 것이란 점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부처님 당시 우파니샤드의 사상가들은 개아(個我)를 뜻하는 아트만(ātman)에 보편적 실재자의 지위를 부여해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체계를 확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바라문적 자아관도 역시 연기의 존재론 입장에서는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부처님은 이에 대해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 설명으로 가르침을 폈다.

 
셋째, 아체(我體)의 부정이다. 여기서 아체란 본래 ‘me attā'를 번역한 말로 현대어로 바꾼다면 ’나의 본질‘ 또는 ’나의 본체‘라는 정도의 의미다. ’me attā'라는 말을 직역하면 ‘나의 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중국의 역경가들이 ‘아체’라고 번역한 것은 그 속에 자아의 항구불변 하는 본체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즉 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불변하는 본체ㆍ본성 또는 본질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자아의 본질 또는 본체를 고정하는 일은 부처님이 말하는 무상의 존재에 비추어 볼 때 전혀 용납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영혼이라는 사고방식도 역시 그러한 것이었다. 그것은 육체가 소멸해도 다시 영속되는 나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무상의 존재론은 그러한 사고방식까지도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아체가 아니다’라는 말은 곧 항구적인 본질 또는 본체를 주장하는 것에 대한 부정을 뜻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애당초 무아(anattā)란 아(attan)의 부정을 나타내는 접두사 ‘a'를 붙여 만들어진 말이다. 이것에 의해 부정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사유와 행동의 주체인 자기 그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무아란 그 시대의 상식과 사상세계에서 지배적이었던 자아에 관한 고정적 사고방식을 부정하는 의미다.


그것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게 된 연기적 존재론의 입장에서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확인된 인간존재의 참모습이기도하다. 말하자면 무아란 인간을 대상으로 한 부처님의 사상적 입장의 표백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부처님이 말하는 자기확립의 길은 당당하게 그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3) 꽃과 향기의 비유  ▲ 위로


여기서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22ㆍ89)差摩. 한역 잡아함경(5ㆍ1)差摩)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무아라는 말이 갖는 미묘한 의미를 잘 묘사하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언젠가 수많은 장로 비구들이 코삼비의 고시타(瞿師羅) 동산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 장로 케마(差摩)는 바다리카(跋陀梨) 동산에서 병이 들어 중태였다.


코삼바라는 곳은 바라나시에서 멀리 서쪽에 위치한 발사(跋사)라는 나라의 수도였다. 거기에는 불교의 비구들을 위해 세워진 3개의 정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하나인 바다리카 동산의 정사에 있던 장로 케마라는 비구가 병을 얻어 매우 위중한 상태였던 모양이다. 그러자 다른 한 곳인 고시타 동산의 정사에 있던 장오 다사카(陀娑)가 문병을 가게 되었다. 바다리카 동산으로 문병을 간 다사카는 병든 비구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가, 견딜 수 있는가 좀 괜찮은가.”


그러나 케마의 병세는 절망적이었다.

“아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점점 나빠질 뿐이야.”


문병을 갔던 비구니는 그 상황을 고시타 동산의 장로들에게 알렸다. 그들은 장로 케마를 위로할 생각으로 문병갔던 비구로 하여금 그를 찾아 가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위로했다.

 
“벗이여, 부처님이 오온에 대해 설법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오온은 나(我)도 없고 나의 것(我所)도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자 장로 케마는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오온을 설법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 오온에서 조금은 나를 보고 나의 것을 보고 있다.”]


즉 케마는 아직 내(我)가 있고 나의 것(我所)이 있다고 했던 것이다. 이런 답변을 들은 장로들은 웅성거리며 소동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마자 마침내는 장로 케마가 지팡이에 의지해 고시타 동산을 찾아가서 그곳 비구들과 한바탕 토론을 주고 받게 되었다. 여기서 케마의 논지를 소개하면 대충 이렇다.

 
[“벗들이여, 내가 ‘아가 있다’고 한 것은 색(육체)이 나라는 것은 아니다. 색을 떠나 내가 있다는 것도 아니다. 수(감각)ㆍ상(표상)ㆍ행(의지)ㆍ식(의식)이 나라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을 따라서 내가 있다는 것도 아니다. 벗들이여, 나는 오온에서 ‘아가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나(我)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벗들이여, 그것은 즉 청련(靑漣)ㆍ홍련(紅蓮)ㆍ백련(白蓮)의 향기와 같은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꽃잎에 향기가 있다고 한다면 또는 줄기나 꽃술에 향기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옳겠는가.”


“벗이여 그 말은 옳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다만 꽃에 향기가 있다고 해야 한다.”


“벗들이여, 그와 같다. 나는 색이 나라거나 색을 떠나서 내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수ㆍ상ㆍ행ㆍ식이 나라거나 그것을 떠나 내가 있다는 것도 아니다. 벗들이여, 오온에서 ‘내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나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장로 케마가 말하는 것을 우리들은 어떻게 이해 해야할까. 그것은 대단히 미묘한 것이지만 지금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그는 오온이 나라고 하는 그런 고정적 사고방식은 물론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떠나 그런 것의 유동하는 통일체에서 ‘내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나(我)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장로 케마는 다시 이런 설명을 계속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들은 이미 사람을 세속적 삶에 결박시키는 다섯 가지 번뇌를 끊어도 아직 그들 가운데는 이 삶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요소를 따르는 미묘한 잔재로서의 자마과 아욕(我欲)이 아직 단절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뒤에도 다직 다섯 가지 요소에 대해서 그 생명을 계속 관찰해 나간다.


그리고는 ‘이것이 색이다. 이것이 색의 생기(生起)다. 이것이 색의 멸진(滅盡)이다. 이것이 수ㆍ상ㆍ행ㆍ식이다. 이것이 식의 생기다. 이것이 식의 멸진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그 다섯 가지 요소에 대해서 그 생멸을 관찰해 가고 있노라면 이 다섯 가지 요소에 따르는 미묘한 잔재로서 아직 남아있던 자만이 아욕이 마침내는 영원히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케마의 비유적 설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벗들이여, 그것은 즉 더럽고 때묻은 옷과 같은 것이다. 그 주인은 그것을 세탁소에 맡길 것이다. 세탁소는 그것을 소금ㆍ잿물에 넣어 골고루 비벼서 맑은 물에 헹굴 것이다. 그래서 그 옷은 깨끗하게 되지만 아직 거기에는 소금냄새와 잿물냄새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세탁소는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준다. 그러면 주인은 이것을 향기좋은 장롱 속에 넣는다. 그리하여 거기에 묻었던 냄새들을 영원히 제거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장로비구들은 그가 말하는 뜻을 이해했다. 그리하여 ‘장로 케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충분히 설명하고 가르치고 명석하게 분석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4) 실천으로의 연결  ▲ 위로


그러면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무상→고→무아의 체계로 설법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처님은 제자들을 어디로 인도하려고 이런 설법을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체계를 설명한 경전들의 결론부분을 먼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부처님은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22ㆍ59) 五比丘. 한역 잡아함경(2ㆍ2) 五比丘)에서 5명의 비구들을 위해 무상→고→무아의 체계에 관해 설명한 뒤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비구들아, 나의 설법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들은 이와 같이 관찰하고 색을 염리하고 수를 염리하고 식을 염리한다. 이렇게 염리하게 되면 탐욕을 염리하게 되고, 탐욕을 염리하면 해탈을 하게 된다. 해탈을 하게 되면 해탈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나의 미혹한 삶은 이미 끝났다. 청정의 행은 이미 이룩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미 다했다. 이제 더 이상 미혹의 삶을 되풀이하는 일은 없다’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여기서 존재(五蘊)의 무상→고→무아를 깨닫게 되면 그것이 염리(厭離)→이탐(離貪)→해탈(解脫)하게 되는 체계를 나란히 제시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무상→고→무아는 이론적 사상체계이고 염리→이탐→해탈은 행위적 실천체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상체계는 실천체계로 연결되고 있으며, 이 가르침대로 관찰하고 깨닫게 되면 해탈과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6. 열반 (涅槃)

1) 구극의 목표는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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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열반이란 어떠한 경지인가. 여러 가지 해석보다 먼저 부처님의 설명을 기록한 경*(남전 상응부경전(23ㆍ1)魔. 한역 잡아함경(6ㆍ10)魔)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언젠가 부처님은 사밧티의 제타 숨인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계셨다. 그때 장로 라다(羅陀)가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와 부처님을 찾아 뵙고 이렇게 물었다.


“부처님 마라(摩羅) 말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마라라고 하는 것입니까?”

“라다여, 색이 있으면 거기에는 마라가 있다. 죽이는 자*(죽이는자(殺者):killer. mēretā, māra와 뜻이 비슷한 말)가 있고 또 죽는자*(죽는 자(死者):to die. mīyati, māra와 뜻이 비슷한 말)가 있다. 라다여, 그러므로 색을 마라라고 보아야 한다. 색을 죽이는 자로 보고 또 죽은 자로 보며 또한 병이고 종기이며 가시이고 아픔이고, 아픔의 근본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보아야 그것이 올바른 관찰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다시 수.상.행.식에 대해서 똑같이 관찰할 것을 가르쳤다. 글자 라다가 가시 물었다.

 
“스승이시여,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이 바르게 관찰해야 합니까?”

“라다여, 염리하기 위해서 바르게 관찰해야 한다.”


“스승이시여, 그러면 무엇 때문에 염리*(厭離:weariness, nibbidā. 싫어함)해야 하는 것입니까.”

“라다여, 해탈하기 위해서다.”


“스승이시여,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열반해야 하는 것입니까.”

“라다여, 그것은 훌륭한 질문이 아니구나. 너는 질문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라다여, 출가수행자가 청정의 삶을 살아야 하는 까닭은 오직 열반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열반이야말로 구극적인 것이며 수행의 마지막 목표이니라.”]


이 내용은 남전의 ‘라다상응’이라는 경전군의 앞머리에 있다. 그리고 여기서 질문에 나선 라다 비구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 경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반에서는 라다가 악마(摩羅)란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니다.


부처님은 이에 대해 오온, 즉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들고 그런 것을 악마로 보는 것이 바른 관찰이라고 가르친다. 후반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이 바른 관찰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그것은 ‘염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탐하기 위해서’ 그리고 ‘해탈하기 위해서’라고 답변하고 마지막으로 왜 해탈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열반하기 위해서’라고 답변한다.
 

그러면 라다는 다시 ‘그러면 왜 열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부처님은 여기에서 라다의 질문을 가로막고 말한다. 이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라다여, 그것은 훌륭한 질문이 아니구나. 너는 질문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라다여, 출가수행자가 청정의 삶을 살아야 하는 까닭은 오직 열반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열반이야말로 구극적인 것이며 수행의 마지막 목표이니라.”]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말할 것도 없이 열반이야말로 구극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곳에 도달되었을 때 청정의 삶 즉 불도(佛道)의 수행은 성취되는 것이다.

 


2) 무엇이 열반인가  ▲ 위로


열반이란 말은 그 원어를 살펴보면 팔리어로는 ‘닙바나(nibbāna)' 범어로는 ’니르바나(nirvāṇa)'다. 중국의 역경가들은 이것을 의역해서 ‘멸도(滅度)’라든가 ‘적멸(寂滅)’ ‘원적(圓寂), 또는 단순히 ’멸(滅)‘이 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그 본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것을 음사한 ’열반‘이란 말을 썼다. 이것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다. 열반이란 말의 원뜻을 굳이 풀어보면 ’불이 꺼진 상태‘ 즉 ’연소의 괴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만으로 원뜻이 충분히 이해 되지 않으므로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38ㆍ1)涅槃. 한역 잡아함경(18ㆍ1) 難等)을 읽었으면 한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언젠가 장로 사리풋타(舍利佛)가 마가다(摩揭陀)의 나라카( 那羅迦) 마을에 있었다. 그때 잠부카다카(閻浮車)라는 유행자가 장로 사리풋타를 찾아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정중하게 질문을 했다.


“사리풋타여, 열반, 열반 하는데 도대체 열반이란 무엇입니까.”

“벗이여, 탐욕의 소멸, 진에의 소멸, 우치의 소멸, 이것을 가리켜 열반이라 한다.”]

 
잠부카다카는 외도수행자였다. 그의 질문은 열반이란 개념이 그 당시로서는 아직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던 듯한 인상을 준다. 아마 부처님에 의해 새롭게 주창된 개념이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쨌거나 이 질문에 대한 사리풋타의 답변은 매우 명쾌한 것이었다. 잠부카다카도 사리풋타의 대답으로 일단 열반이란 말의 개념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다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사리풋타여, 그 열반을 실현하는 데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벗이여, 열반을 실현하는 데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正道)이다.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란 정견ㆍ정사ㆍ정어ㆍ정업ㆍ정명ㆍ정정진ㆍ정념ㆍ정정이다. 벗이여, 이것이야말로 열반을 실현하는 바른 길이여, 거기에 이르는 방법이다.”


“사리풋타여, 당신이 일러준 열반을 실현하는 길은 참으로 좋고 훌륭한 방법이다. 그것은 역시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나라카마을은 라자가하에서 동쪽으로 하루쯤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사리풋타는 종종 이 곳에 머물렀던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잠부카다카라는 외도수행자도 종종 그 마을로 사리풋타를 찾아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었다. 이런 사정은 상응부경전 38 ‘염부차상응(閻浮車相應)'이라는 경전에 집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16경이 집록되어 있는데 앞에서 인용한 것은 그 첫 번째 경이다.
 

이 경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앞에서 예로 든 부처님이 라다의 질문에 대답한 경전*(남전 상응부경전(23ㆍ1)魔. 한역 잡아함경(6ㆍ10)魔)과 비교하면 거기에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이 경에서는 사리풋타가 잠부카다카를 위해 열반을 실현하는 길, 열반에 이르는 방법으로서 팔정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라다를 위해 제시했던 길은 염리→이탐→해탈→열반의 체계였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것 또한 불가사의한 것은 아니다.


다시 한 경을 읽어보자.

 


3) 모든 강물은 바다로  ▲ 위로


그 경*(남전 상응부경전(45ㆍ102)海)<6>)은 부처님이 제자들을 위해 설법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테면 여러 개의 큰 강이 있다고 하자. 그 강의 이름은 강가강(恒河) ㆍ야무나강(耶符那河)ㆍ아치라바티강(阿致羅符底河)ㆍ사라브강(舍牢那浮河)ㆍ마히강(摩企河) 등이다. 그것들은 모두 바다로 향하고, 바다로 기울어져 바다로 들어간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들 또한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도((八支聖道)를 닦고 배우고 수행을 거듭한다면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으로 기울어져, 마침내 열반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부처님이 비유로 든 다섯 개의 큰 강은 모두 중인도로 흘러 내려와 강가에 합치게 되고 마침내 벵갈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이다. 부처님은 가끔 이 여러 개의 큰 강을 비유해 설법하곤 했다. 여기에서도 부처님은 출가수행자들이 팔정도를 열심히 닦으면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조금도 신비하거나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다. 이미 앞에서 예로 든 경에서도 말했듯이 수행자들이 청정행을 닦는 까닭은 모두 열반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열반이야말로 그 목표이고 종극이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말한 여러 가지 실천항목 중에서도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길(八支聖道)이 가장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부처님은 다시 그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길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것들은 원리*(遠離:detachment, viveka. 멀어지는 것. 厭離와 같은 말)와 이탐과 멸진*(滅盡:destruction, nirodha. 해탈과 같은 말)을 수습하게 하고 이윽고 그것이 평안한 심경*(平安한 心境:maturity of surrender which is the zero point between joy and sorrow, vossaggapariṇāmi. 해탈의 심경. 기쁨과 슬픔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닌 마음의 평안한 상태)으로 바뀌어 갈 때 성취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용어는 다르지만 앞에서 라다를 위해 말했던 염리ㆍ이탐ㆍ해탈ㆍ열반의 길과 다르지 않다. 어쨌든 부처님이 제시한 방법(道)에 따라 수행하는 청정한 행은 모두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으로 기울고 열반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면 부처님은 그런 열반의 경지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셨는가.

 


4) 욕망을 자유자재로  ▲ 위로


먼저 한 경*(남전 中部經典 72婆蹉衢多喩經. 한역 잡아함경(34ㆍ24)見)을 읽어보자. 부처님이 사밧티의 제타 숲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그곳에 어느 날 밧차구타(婆蹉衢多)라는 외도수행자가 찾아와 부처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이 경은 약간 장문으로 되어 있는데 여러 가지 토론을 하다가 이야기는 해탈이란 어떤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이 대목의 질문과 답변은 이렇다.
 

[“고타마여, 그와 같이 해탈한 마음을 가진 비구니는 도대체 어디를 향해서 태어나는 것입니까.”

“밧타여, 어디를 향해서 태어난다는 것은 부적당한 표현이다.”


“그러면 어디를 향해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이신지요.”

“밧차여, 그것도 부적당하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란 말씀이신지요.”

“밧차여, 그것도 부적당한 표현이다.”]
 

그러자 그 외도수행자는 그만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머리가 이상해졌다.’며 실망을 한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에게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밧차여, 그럼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네가 생각한 대로 대답해 보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네 앞에 불이 타고 있을 때 너는 그것을 ‘내 앞에 불이 타고 있다’고 알겠는가.”

“그렇지요. 나는 ‘내 앞에 불이 타고 있음’을 알겠지요.”


“그때 만약 너에게 이 불은 무엇에 의해 타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이 불은 풀과 장작이 있으니까 타고 있다, 이렇게 대답하겠지요.“


“그럼 네 앞에 불이 꺼졌다면 그것을 보고 불이 꺼진 줄 알겠는가.”

“그렇지요. 불이 꺼진 줄 알겠지요.”


“그럼 그때 만약 너에게 네 앞의 불은 꺼졌지만 그 불은 여기에서 어느 쪽으로 사라진 것인가? 동쪽인가 서쪽인가 아니면 남쪽인가 북쪽인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어찌 대답할 것인가.”


“고타마여, 그 질문은 부적당합니다. 그 불은 풀과 장작이 있었으니까 탔던 것이고 그런 것들이 없어지면 다시 장작을 넣지 않으면 불탈재료가 없으니까 꺼지는 것입니다.”

 
밧차가 이렇게 대답하자 부처님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씀했다.

“밧차여, 정녕 그와 같은 것이다. 그처럼 저 색(육색)으로 인간을 나타내는 자에게는 그 색이 사라지고 그 뿌리가 끊길 때, 그 사람은 이미 없고 또 생길 수 없게 될 것이다.


밧차여, 그때 그 사람은 색에서 해탈한 것이다. 그것은 심심무량(甚深無量)해서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와 같아서 어디를 향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밧차여, 그것은 저 수(감각)ㆍ상(표상)ㆍ행(의지)ㆍ식(의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니라.”]


여기에서 부처님이 밧차에게 설명했던 내용은 이렇다. 즉 사람들에게 괴롭고 불안한 생활이 있는 것은 반드시 갈애 즉 지나친 욕망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지나친 욕망이 없을 때 사람들의 불안하고 괴로운 생활은 없어진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어디로 향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변화가 없덨던 것도 아니다. 즉 열반과 해탈은 어디 다른 곳을 향해 떠나는 것이거나 그곳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리라는 것이다.

 
밧차가 부처님에 의해 깨닫게 된 인간의 이상적 상태 즉 열반의 경지는 지극히 구상적(具象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여기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처님이 밧차를 위해 비유적 표현으로 그려낸 인간의 이상적 상태 즉 열반은 아직까지 이른바 ‘회신멸지(灰身滅智)’의 경지를 지칭한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여기서 ‘불이 꺼지듯’ 멸했다는 그것은 갈애이고 탐욕이고 번뇌를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 그 자체는 여기로부터 멸해버려 어디로 ‘향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직 이 지상에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결코 본래 그대로의 그가 아니다. 일찍이 불안하고 괴로웠던 인생을 살았던 그는 이제 갈애와 번뇌를 멸함으로써 완전히 평안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게송*(남전 상응부경전(1ㆍ18) 無諍)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문은 이 세상의 욕망을 다 알고 나서

항상 자유의 인간으로 있도다.]

 


7. 부처님의 질문

1) 부처님의 질문
 ▲ 위로


부처님이 그이 제자인 비구들을 위해 하셨던 설법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무상→고→무아의 계열로 이루어진 정형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설법들은 남전 상응부경전 제3권(인간분석에 대한 경전군),*(인간분석에 대한 경전군:khanda vagga. 五蘊에 관한 경전의 집록) 제4권 (인간감관에 관한 경전군)*(인간감관에 관한 경전군:saḷāyatana vagga. 六處에 관한 경전의 집록)의 앞머리에 각각 ‘근본 50경’으로 집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오온과 육처에 대해서 역시 같은 정형으로 말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러한 경전들을 보는 사람들은 은연중 부처님이 이런 사상적 체계를 설명하는 데 얼마나 진지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가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런데 부처님은 또 이런 사상적 체계를 자신의 설법방법의 정형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다시 뒤집어서 비구들에게 질문하는 방법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컨대 부처님은 그런 것들을 다만 비구들에게 설법했던 것만은 아니고 또한 그들이 그것을 잘 기억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서는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질문으로 시험하고 확인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이미 인용한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22ㆍ49)輸屢那<1>. 한역 잡아함경(1ㆍ31)輸屢那)에서 부처님은 소나라는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색(육체)은 항상한 것인가 무상한 것인가.”

“스승이시여, 무상한 것이옵니다.”


“무상이라면 그것은 고인가 낙인가.”

“스승이시여, 괴로움(苦)이옵니다.”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을 보고 이것은 나의 소유다, 이것은 나이다,

또는 나의 본체이다 라고 하는 것이 옳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이시여.”]


그리고 똑 같은 질의응답을 다시 수(감각)ㆍ상(표상)ㆍ행(의지)ㆍ식(의식)에 대해서 반복한 뒤 결론은 언제나처럼 다음과 같은 말로 맺고 있다.


[“소나야, 그렇게 해서 나의 가르침을 들었던 성스러운 제자들은 색을 염리하고 수와 상과 행과 식을 염리한다. 그리하여 탐욕을 떠나고 탐욕을 떠남으로서 해탈한다. 해탈함으로써 해탈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나의 미혹한 삶은 이미 끝났다. 청정의 행은 이미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했다. 이제 더 이상 미혹의 삶을 반복하는 일은 없으리라’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소나라는 인물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서도 상당히 그 이름이 알려졌던 비구였던 것 같다. 한 경*(남전 증지부경전(6ㆍ55)輸屢那. 한역잡아함경(9ㆍ30) 二十 億耳)에 의하면 그는 처음에 남보다 유달리 엄격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진척이 없자 환속까지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때 부처님이 소나에게 가르쳤던 ‘거문고줄’의 비유는 너무나 유명하다. 부처님은 비유 중에 ‘가운데를 취하라’고 교시했는데 이것은 나중에 ‘불고불락(不苦不樂)의 중도(中道)’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었다.

 
어쨋거나 부처님의 이같은 질문에 막힘이 없이 응답할 수 있는 제자들은 결코 소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소나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기록하고 있는 경전은 이밖에도 10여종이 넘는다. 이러한 경전 속에 나오는 비구들은 모두 소나처럼 부처님의 질문에 막힘없이 응답하고 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러한 부처님의 질문에는 다만 앞에서 말한 무상→고→무아라는 정형으로 이루어진 설법을 잘 기억하고 있으면 대답을 쉽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그들은 그 설법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2) 육처에 대한 질문  ▲ 위로


부처님의 질문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35ㆍ62)了悟. 한역은 없음)에 의하면 그것 역시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부처님은 먼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 나는 너희들을 위해 일체의 집착을 척결하는 방법을 설하려고 한다. 잘 듣도록 하라.”

그리고나서 이런 질문을 했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눈(眼)은 상주(常住)이겠는가, 아니면 무상(無常)이겠는가.”

“스승이시여, 그것은 무상이옵니다.”


“그것은 무상이라면 괴로움(苦)이겠는가, 즐거움(樂)이겠는가.”

“그것은 괴로움이다.”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변화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보고 그것은 내것이다, 그것은 나이다. 그것은 나의 본체이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부처님은 육처에 대해 질문하면서 제자들을 시험하고 있다. 육처에 대한 질문은 오온에 대한 것처럼 간단하게는 안 된다. 먼저 육근(六根) 즉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라는 여섯 가지 감관이 있다. 또 그 대상으로서 육경(六境) 즉 색깔ㆍ소리ㆍ향기ㆍ맛ㆍ감촉ㆍ관념 등의 대상이 있다. 그리고 그 육근과 육경이 서로 상관되어 여섯 개의 인식이 성립된다. 따라서 부처님은 여기에서 그러한 육근과 육경의 하나하나에 대해 질문을 계속한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가운데 어느 것이든지 술술 대답을 한다. 부처님은 제자들의 대답을 듣고 매우 만족해 한다.

 


3) 부처님의 용용문제  ▲ 위로


그러나 부처님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좀더 어려운, 말하자면 응용문제로 제자들을 시험하기도 했다. 이 경우, 제자들은 앞의 경에서 처럼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서도 한두 가지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22ㆍ155) 我, 한역은 없음)은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을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다.


[“비구들이여, 도대체 무엇이 있음으로 해서, 무엇을 취함으로써, 또 무엇에 집착함으로써 아견(我見)이 생기는 것인가.”

“부처님이시여, 참으로 우리의 법(法)의 근본이십니다. 원하옵건대 그것을 설해 주십시오.”]


이 질문은 부처님이 즐겨 사용했던 설법의 정형을 기억하고 있다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비구들은 다른 때와 달리 거침없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구들은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법의 근본이십니다. 원하옵건대 그것을 설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간청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스승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때 언제나 사용하는 상투적인 말이다. 그러자 부처님은 제자들을 위해 설명을 해 나갔다.


[“잘 들으라. 그것은 색이 있음으로, 색을 취함으로써, 또 색에 집착함으로써 아견이 생기는 것이다. 또 수ㆍ상ㆍ행ㆍ식이 있음을 그것을 취하고 집착함으로써 아견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다시 제자들에게 물었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색은 상주(常住)이겠는가 무상이겠는가.”

“스승이시여, 그것은 무상이옵니다.”


“무상이라면 괴로움이겠는가, 즐거움이겠는가.”

“괴로움입니다.”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변화하는 것을 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아견이 생기겠는가.”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묻는 방법은 앞에서의 그것과 같은 문답식이다. 비구들은 이런 형식의 질문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거침없이 대답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술술 대답하고 있는 동안 어느덧 아견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여기서도 역시 앞에서와 같은 결론으로서 ...

 


4) 또 하나의 응용문제  ▲ 위로


이번에는 육처를 주제로 한 응용문제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35ㆍ105)執取. 한역 잡아함경(7ㆍ6) 三受)에 따르면 역시 기원정사에 계실 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도대체 무엇이 있음으로써 무엇을 집착함으로써 즐거운 또는 괴로움이 생기는 것인가?"]


이번에도 제자들은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도 응용문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원하옵건대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옵소서’라고 간청했다. 제자들은 청을 받은 부처님은 그들을 위해 설명해 나갔다.


["비구들이여, 눈(眼)이 있고 눈이 취함으로써 너희들 안에 즐거움이나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또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이 있고 그것이 무엇을 취함으로써 너희들 안에 즐거움이나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경전의 표현은 조금 지루할 정도로 자상하고 반복적이다. 한꺼번에 육근을 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ㆍ귀ㆍ코ㆍ혀를 차례대로 예를 들면서 똑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이런 질문과 답변을 반복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부처님이 육처에 대해 자상한 질문을 거듭하는 의도는 이런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이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눈(眼)은 상주이겠는가 무상이겠는가.”

“부처님이시여, 물론 무상한 것입니다.”


“무상이라면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제자들의 대답은 물론 괴로움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만약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변화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괴로움이나 즐거움이 생기겠는가?"]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부처님은 육체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낱낱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같은 대답을 얻어내고 있다. 그리고 또한 결론은 앞에서와 같이 해탈을 얻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유도한 다음 내리는 결론의 내용은 언제나 같다. 예를 들면 오온 또는 육체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정리해 보면 바른 지혜(正智)로써 그런 것들을 관찰하고 그런 것들을 염리하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러 것들을 염리할 수 있게 될 때, 탐욕을 떠날 수가 있고, 탐욕을 떠날 수 있게 될 때 해탈할 수 있게 된다. 해탈할 수 있으면 거기에 해탈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이제 나의 미혹한 삶은 끝났다. 청정한 삶을 이미 성취했다. 더 이상의 미혹한 삶을 반복하는 일은 없다’고 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부처님은 이 점을 몇십 번 몇백 번 수없이 반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이 의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실천단계에 속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나오는 문답식의 질문은 분명히 지혜의 단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개의 부분이 ‘그와 같이 관찰하고’라는 구절에 결부됨으로써 무상→고→무아의 지혜체계는 염리→이탐→해탈의 실천체계로 연결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들은 지혜의 눈(智目)과 함께 실천의 발(行足)을 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부처님의 문답방법은 이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사제(四諦) 즉 네 가지 명제로 된 체계에 대해서 부처님은 제자들과 수없이 문답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제자들은 부처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참뜻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만약 부처님의 질문을 받는 일이 있으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다…이것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이다…’하고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많은 경전들은 이렇게 스승과 제자가 사제의 논리구조에 따라 묻고 대답하는 모습을 기록해 놓고 있다.
 

경전의 기록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설명방법은 매우 견고하고 정확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 부처님은 무상→무아→고라는 틀을 사용한다. 그리고 해탈의 방법 또한 분명하다. 염리→이탐→해탈이라는 틀이 그것이다. 부처님은 이 정형을 한 번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회있을 때마다 수없이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 강조는 어느덧 제자들이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의 정형이 된다.


이것은 ‘인류의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5) 설명방법의 탁월함  ▲ 위로


사실 부처님의 설법을 찬찬하게 음미해 보면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자상한 스승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특히 문답식으로 정형화된 설법의 태도는 요즘의 교육방법론과 비교하여 손색없는 뛰어난 방법이란 점에서 어떤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교육방법에 관한 한 문답식 이상 가는 것은 없다. 일방적이고 주입적인 방법은 강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결 편하고 쉬운 것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방통행과 같은 설법이 썩 좋은 방법은 못 된다. 알아들을 수 없고는 논외로 하더라고 친밀도에서만 하더라도 문답식이 더 좋다. 또한 학습효과랄까 성과적 측면에서 말한다 하더라도 문답식의 효과가 탁월하다.


무엇보다 스승과 제자가 언제든지 서로의 이해수준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를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점에서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언제나 좋은 스승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좋다.

 
아함의 여러 경전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부처님 그분이 가르치고자 했던 진실이 무엇이었던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부처님의 설법내용이 워낙 탁월한 데도 있지만 그 방법이 내용 못지않게 문답식을 선택하고 있음에도 원인이 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부처님의 설법내용의 탁월함에만 관심을 갖고 형식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내용 못지않게 설법형식의 뛰어남에 또한 감탄하게 된다. 흔히 간과하기 쉬운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관심과 주목을 기울여야 한다. 부처님이라는 위대한 인류의 교사의 그 교사다운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답식 설법에 있기 때문이다.

 


■ 제4장 근본불교의 실천

 


1. 부처님의 세계

1) 부처님의 생각
 ▲ 위로


지금까지 우리는 연기와 무상, 고와 무아, 그리고 열반과 같은 불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문제 한 가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것은 부처님이 당신의 가슴에 그렸던 세계는 도대체 어떤 세계일까, 또 부처님은 도대체 우리들을 어느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에 인용하는 경*(남전 상응부경전(35ㆍ23)一切. 한역 잡아함경(13ㆍ17)生聞一切)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이렇게 들어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밧티의 제타 숲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들아’하고 제자들을 부르자, 제자들은 ‘스승이시여’하고 대답했다. 부처님은 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일체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눈(眼)과 색(色)이다. 귀(耳)와 소리(聲)다. 코(鼻)와 향기(香)다. 혀(舌)와 맛(味)이다. 신체(身)와 감촉(觸)이다. 의식(意)과 관념(法)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것을 일컬어 일체라고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이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설하리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말일 뿐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것을 잘 설명도 못할뿐더러 더욱 곤란에 빠질 것이다. 어째서이겠는가. 그것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의 전문(全文)이다. 매우 짧은 경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누구나 감지할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가르침이 반드시 알기 쉬운 것만은 아니다. 물론 부처님이 하나의 훌륭한 사상가로서 그 가르침은 언제나 정연한 체계 속에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느 정도의 지적 교양을 쌓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직후 설법을 주저하는 장면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남전 상응부경전(6·1)勸請. 한역 증일아함경(19·1)勸請)


[내가 깨닫게 된 이 법은 대단히 깊고 또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적정미묘(寂靜微妙)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수한 사람(智者)만이 잘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말씀하신 바를 충분히 이해하게 될 때 그것은 명명백백하여 애매한 것이란 한 조각도 없어지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열반에 대해 밧차구타라는 제자와 나눈 대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좀 엉뚱한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부처님은 능숙한 유도로 바른 생각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정신을 차리게 된다. 정신을 차린 뒤 스승의 설법을 들어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뜻밖에도 단순하고 명쾌하여 이해하기가 쉬운 것이었다. 그는 그 감명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남전 중부경전 72 婆蹉衢多火喩經. 한역 잡아함경(34·24) 見)


[부처님이시여, 이를테면 커다란 사라나무가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떨어지고 나무껍질도 벗겨져 오직 심재(心材)만 남겨 놓고 서 있듯이, 모든 군더더기가 다 떨어지고 오직 심재만이 확립되어 있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바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예부터 해온 방법으로 표현하면 부처님은 제법의 실상을 다 깨달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이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한다면 부처님은 어디까지나 리얼리스트로 행동했던 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리얼리스트의 표백  ▲ 위로


부처님을 리얼리스트라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약간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오랜 불교의 역사 안에서 부처님에게 그와 같은 규정을 시도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초기의 불제자들은 부처님의 교법에 대해 표백(表白)한 귀의의 말은 분명히, 어디까지나 현실을 직시하는 분이었음을 인상 깊게 말하고 있다. 그 표백이란 다름 아닌 진리(法)에 대한 귀의의 표백이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유형적 표현으로 말해지고 있다.*(남전 상응부경전(55·1) 王. 한역 잡아함경 (30·7) 王)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진리(법)에 대해서 이렇게 무너지지 않는 믿음를 갖는다. ‘진리는 부처님에 의해 잘 설해졌다. 그것은 현실에서 증명되는 것*(visible, belonging to this life, sanditthika)이며 때를 두지 않고 과보가 있는것*(immediate, not belong to time, akālika)이며,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that which invites everyman to come to see for himself, ehipassika)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leading to Nibbāna, opanayika)이며, 또한 지자(智者)들 스스로가 깨달아야 하는 것*(to be known by learned wise by himself, paccattam veditabbo viññahī)이다.]


이러한 표백은 아함부의 여러 경전에 수없이 나타난다. 더욱이 이러한 삼보귀의의 표백과 사예류과(四預流果) 제 2항으로써 거의 정형을 가지고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 표백 내용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그것은 다름아닌 부처님 교법의 기본적인 성격을 조목조목 나열시킨 것이다. 부처님이 가르치는 교법의 기본적 성격을 정리해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현실에서 증명되는 것

2) 때를 어기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

3)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4) 능히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

5) 지혜있는 사람이 각자 스스로 아는 것


그러나 이러한 조항은 약간 생소한 표현이므로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첫째로 ‘현실에서 증명되는 것’이란 중국의 역경가들이 ‘현견(現見)’ 또는 ‘현생적(現生的)’이라고 번역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현재 볼 수 있는 것이고 현실에서 증명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이 가르치는 법이란 본래 인생의 현실문제이다. 조용히 눈을 뜨고 가만히 그 진상을 관찰하면 현재 그 허망함을 볼 수 있고 증명할 수가 있다.


만약 부처님이 설법하는 내용이 미래사에 속하는 것이거나 죽은 다음의 일에 속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현실에서 많은 종교가가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현재 보고, 현재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현견’이고 ‘현생적’이라는 생소한 표현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때를 어기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란 중국의 역경가들에 의해 ‘부대시절(不待時節)’로 번역되고 있다. 또는 ‘즉시적(卽時的)’이라든가 ‘불시(不時)’라는 용어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앞의 ‘현실에서 증명되는 것’이라는 표현의 각도를 바꾸어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 결과가 나타나는 시기의 문제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이를테면 부처님의 설법이 만일 신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즉시는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또는 그것이 내세의 왕생을 가르친 것이었다면 그 결과도 역시 유명을 달리하는 날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부처님이 가르치는 진리는 천상의 일이 아니라 지상의 일을 말하는 것이며, 내세의 운명을 만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일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부대시절’이라는 용어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란 중국에서 ‘내견적(來見的)’이라고 번역되고 있다. 이는 좀 특별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이 말이 갖는 의미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누구에게라도 열어 보일 수(開示)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바꾼다면 ‘만인에게 개방된 진리’라는 정도의 뜻일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성립된 ‘원죄(原罪)’의 사상과는 다르다. 그것은 누구든 와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만인에게 개방된 진리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것을 믿지 않으면 모른다든가, 그것은 이방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든가 하는 제약이 없다. 그냥 와서 조용히 눈을 뜨고 보면 누구도 지견(知見)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있는 그대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특별하거나 신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내견적’이라는 표현의 의미다.

 
네 번째, ‘능히 열반으로 인도한 것’, 다섯 번째 ‘지혜있는 사람이 각자 스스로 아는 것’이란 한꺼번에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참고로 중국 역경가들의 변역어를 보면 ‘통달친근(通達親近), 연자각지(緣自覺知)’ 또는 ‘친근열반 즉차신현 연자각지(親近涅槃 卽此身現 緣自覺知)’라고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또 ‘인도지자응자지(引導智者應自知)’라는 표현도 있다.


이것을 좀 더 평범한 말로 바꾸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아아 그렇구나 하고 지혜있는 사람은 스스로 깨닫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까. 이에 대해서는 일찍이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남전 상응부경전(12·14) 因緣法)


[비구들이여, 이것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든 하지 않든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법으로서 정해져 있고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의성(相依性)인 것이다.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이해했던 것이다. 이것을 교시하고 선포하고 상설(詳說)하고, 개현(開顯)하고, 분별하고, 밝혀서 그리하여 ‘너희들도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앞에서 말한 현실에서 증명하고, 때를 어기지 않고 증명되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고, 능히 열반으로 인도하고, 지혜있는 사람이 각자 스스로 알 수 있는 진리(法) 그것이다.

 


3) 허망 환상이 아니다  ▲ 위로


그러나 현생적이라든가 즉시적이라든가 또는 내견적이라는 말은 생소한 용어인 만큼 역시 그 의미를 확실하게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행히 이를 알게 하는 경*(남전 상응부경전(35·70) 優波婆那. 한역은 없음) 라는 한 비구가 찾아와 부처님께 예배하고 이렇게 물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매우 구체적인 예를 들어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우파바나라는 한 비구가 찾아와 부처님께 예배하고 이렇게 물었다.
“부처님이시여, 스승께서는 가끔 ‘현생적인 법’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어떤 것이 현생적인 법입니까? 또 즉시적이고, ‘와서 보라’고 말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며 또 지혜있는 사람은 각자 스스로 알 수 있는 법이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도대체 어떤 법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우파바나라는 비구는 원래 사밧티 출신의 바라문으로 기원정사 건립을 계기로 신심을 일으켜 출가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때 부처님의 시중을 들기도 했었다고 하니까, 결코 신참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런 그가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이 문제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자의 질문을 받은 부처님은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우파바나여, 여기 한 비구가 있다고 하자. 그는 눈으로 색(물체)을 보면 그것을 감지하고 또한 그것에 대한 탐욕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기(我) 안에 색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 ‘아아, 나는 내 속에 색에 대한 탐욕을 품고 있다’라고 스스로 느낄 것이다.


우파바나여, 이렇게 그 비구는 눈으로 색을 보면 그것을 감지하고 또 그에 대한 탐욕을 경험하고, 자기 속에 색에 대한 탐욕이 있으면 ‘아아, 나는 내 속에 색에 대한 탐욕을 품고 있다’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우파바나여, 그래서 나는 현생적인 법이란 이와 같이 즉시적인 것이며, 또한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열반으로 인도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어서 부처님은 다시 귀와 소리, 코와 향기, 혀와 맛, 몸과 감촉, 의식과 생강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설명한 뒤, 그것을 반대로 뒤집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파바나여, 여기 한 비구가 있다고 하자. 그는 눈으로 색을 보고 색을 감지하지만, 그것에 대해 탐욕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속에서 색에 대해 탐욕을 느끼지 않으므로 그는 ‘오오, 나는 내 안에 색에 대한 탐욕을 품고 있지 않다’라고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우파바나여, 이렇게 그 비구는 눈으로 색을 보면 색을 감지하지만 색에 대한 탐욕을 느끼지 않고 또한 자기 속에 색에 대한 탐욕이 없으므로 ‘아아, 오오, 나는 내 속에 색에 대한 탐욕을 품고 있지 않다’라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파바나여, 이 현생적인 법이란 이렇게 즉시적이며 ‘와서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능히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또한 지혜있는 사람은 각자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부처님은 다시 귀와 소리, 코와 향기 혀와 맛, 몸과 감촉, 의식과 생각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런 설법을 듣고 있노라면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관심이랄까 과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었음이 짐작된다. 또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전환이었다. 그것은 부처님이 가르친 교법을 차근차근 음미하고 이해하는 것이 전제된다.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그리고 그에 따라 실천할 때 탐욕과 집착에 빠진 인간이 넓은 포용력과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인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가르치고 있는 현생적인 법이란 켤코 이해못할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든 마음을 집중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자기가 품고 있는 집착이나 마음의 고뇌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또한 집착을 떠난 사람이라면 마음이 평안함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불타는 마음의 불꽃, 그리고 그것이 훅 꺼져가는 과정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또 이땅에 쫓기는 마음의 암울함이 교법을 이해함으로써 밝혀지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부처님에게 귀의한 제자들은 종종 '암흑 속에 등불을 가져다 주시고 눈 있는 자는 보라고 하시듯‘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현생적‘ ’즉시적‘ ’내견적‘이라고 하는 것들도 결국은 이러한 부처님 교법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현대적 표현으로 말한다면 부처님의 설법은 어디까지나 철저한 리얼리스트의 사상에 입각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태도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인용할 경전의 설문이 있다. 그것은 ≪여시어경(如是語經)≫)*(남전 소부경전 102)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알고 있는 것, 보이는 것, 유루(번뇌)의 멸진만을 설한다. 모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은 설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이러한 말씀은 그 분의 가르침이 결코 허망하고 환상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비하고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거나,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은 이 한 마디의 뜻이 무엇인지 새겨 둘 필요가 있다.

 


2. 지혜와 실천 사이

1) 지혜는 어떻게 실천과 연결되는가
 ▲ 위로


여기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지혜와 실천의 결부에 관한 것이다. 이미 우리는 지금까지 연기에 대해서 말했고, 무상과 고, 그리고 무아에 대해서 말했다. 그런 것들은 말하자면 불교에서의 지적 요소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결코 단순히 지적인 것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다음의 경*(남전 상응부경전(38·3) 法語者. 한역 잡아함경(18·1)難等)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주목해 보자.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장로 사리풋타가 마가다국의 나라카(那羅迦)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잠부카다카(閻浮車)라는 유행자가 장로 사리풋타에게로 와 인사를 나누고 옆에 앉았다. 그는 사리풋타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사리풋타여, 세상에서 법을 말하는 사람*(one who speaks the truth, dhammavādin. 法語者라고 한역)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또 세상에서 선행을 하는 사람*(one who going along well, suppaṭipannā. 善行者라고 한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또한 거기에 이르는 사람*(one who arrived at well, sugatā. 善逝 또는 善到者라고 한역)이란 누구일까요.”

 
“친구여, 아마 세상에는 탐욕을 버리기 위해 법을 논하고, 분노를 버리기 위해 법을 논하고, 또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법을 논하는 자, 그 모두를 세상에서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요. 친구여, 또 모두 탐욕을 버리고자 선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선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친구여, 만일 어떤 사람이 탐욕을 내버리고, 그 뿌리를 끊어 이를테면, 타라나무의 그루터기만 남게 되어 다시는 성장하거나 싹이 트는 일이 없게 한다고 합시다. 또 분노를 내버리고 그 뿌리를 끊고 또 어리석음까지도 내버려 그 뿌리를 끊어 이를테면 타라나무의 그루터기만 남게 해서 두 번 다시 성장하거나 싹을 틔우는 일을 없게 한다고 합시다. 이런 것은 모두 세상에서 말하는 그곳에 이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친구여, 과연 그렇게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내버릴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을까요.”


“친구여,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내버릴 수 있는 길이 있고 말고요.
물론 거기에 이르는 길도 있지요.”


“그러면 친구여, 그럴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해야 거기에 이를 수 있는지요.”


“친구여, 그 길이란 바로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正道)이지요. 그것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내버릴 수 있는 길이지요. 그것은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이지요. 친구여, 이것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는 길이고 거기에 이르는 길이지요”


“친구여,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를 버리는 길은 참으로 좋군요. 그곳에 이르는 길도 참으로 훌륭하군요. 친구 사리풋타여, 그것은 또한 부지런히 실천하기에 좋은 것이군요.”]


이 경에서 질문자인 잠부카다카란 유행자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가 있다. 그가 지금 이 경에서 사리풋타에게 질문하는 내용은 세상에서 말하는 ‘법을 논하는 사람’과 ‘선행하는 사람’ ‘거기에 이르는 사람’ 이 세 가지이다. 여기에 대한 장로 사리풋타의 대답은 언제나처럼 참으로 간단하고 명쾌한 것이었다.


사리풋타는 탐욕 · 분노 ·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법을 논하는 사람, 바로 그가 세상에서 말하는 ‘법을 논하는 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탐욕·분노·어리석음의 포기를 위해 실천하는 사람, 바로 그가 세상에서 말하는 ‘선행하는 자’라고 말했다. 또 이것(탐·진·치) 등을 모두 버리고 나서 두 번 다시 생기는 일이 없게 되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거기에 이른 자’라고 말했다. 사리풋타의 이같은 대답에 질문자는 다시 그것들을 버릴 수 있는 길이 있느냐, 그 길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이에 대해 사리풋타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 바른 길(八正道)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그 길이며 팔정도를 실천하면 탐·진·치 삼독을 버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 법을 논한다는 것은 바로 지혜의 단계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행하는 자가 있는데 그것은 실천의 문제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 법의 목적지에 이르는 자가 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선서*(善逝:부처님 10대명호 가운데 하나) 즉 부처님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도대체 어떻게 실천과 결부되는 것인가. 그 추상적인 이론은 어찌해서 우리들의 전인격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런 지혜가 어찌해서 우리의 종교일 수 있을까. 불교는 지금 이러한 과제에 대답해야 할 위치에 서 있다.

 


2) ‘성스러운 것’의 개념  ▲ 위로


그 과제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불교에서 말하는 ‘성(聖, ariya)'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부터 파악할 필요가 잇다. 불교에서 말하는 ’성‘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이론과 실천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용어에는 도처에 성스러운 것(ariya)에 관한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하나의 인격이나 관념, 또는 행사에는 자주 ‘성’이라는 형용사가 얹혀져 있다. 예를 들면 초전법륜에서 설법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의 근본체계로서의 사제설법은 ‘사성제'(四聖諦, the four holy asseverations, cattari ariyasaccāni) 즉 ‘네 가지 성스러운 명제’로 불린다. 또 이 가운데는 실천덕목으로 제시되는 여덟 가지의 길은 ‘팔지성도'(八支聖道, the eight fold holy ways, ariyo aṭṭhṅgiko maggo) 즉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길’로 불리운다.

 
삼보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성’이라는 형용사가 붙여져 있지 않으나 그 세 가지 내용에 있어서는 자주 ‘성사(聖書)’와 ‘성자(聖者)의 법(法)과 성제자(聖弟子)’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이 밖에도 지혜를 ‘성스러운 주거’로 표현한다. 이렇게 볼 때 불교에서의 ‘성’이란 교법과 실천, 그리고 공동사회 즉 승가의 모든 부분에 걸쳐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불교에서 말하는 '성‘이란 어떠한 것이며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옛부터 있어 온 주석에 따르면 ’성스러운 것이란 바른 것‘이라고 ≪승만보굴(勝鬘寶窟)≫ 하권(下卷)에서 말하고 있고 또 ≪대승의장(大乘義章)≫ 제 17권에도 비슷한 설명이 있다.

 
이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나름대로 모두 성스러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떤 종교를 신성한 것, 즉 신적인 것을 성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또 어떤 종교는 깨끗한 것을 성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교처럼 ‘바른 것(正)’을 가리켜 성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종교는 없다. 불교가 바른 것을 성스러운 것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의 입장은 지혜에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길을 가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어리석음 즉 미망 앞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전도된 것 앞에 귀의해서도 안 된다. 오직 진실불허(眞實不虛)한 것에 무릎을 꿇으면 바른 지혜(正智)에 귀의해야 한다. ‘성이란 정이다’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불교의 독특한 입장을 표시하는 것이며,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자랑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좀더 깊은 곳에 있다. '성이란 정‘이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 성스러움을 우리들의 단순한 객관적 지식 또는 추상적 이론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때 실천이 결부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성이란 한낱 추상개념이 될 뿐, 우리의 마음 밑바닥까지 흔들어 놓을 수는 없다. 그러면 불교가 지닌 진실하고 바른 지혜의 가르침이 진정한 성스러운 것으로서 우리의 전인격을 흔들어 놓을 수 없는 것일까. 불교에서의 지혜와 실천의 문제는 여기까지 더듬어 가게 되어야 비로소 참된 해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용어가 있다. 그것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말할 때 아미타불 앞에 나오는 ‘나무(南無)’라는 용어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불교인이 성스러운 것에 대한 태도는 예부터 ‘나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해 왔다. 불교인은 왜 성스러운 것을 대할 때 ‘나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이것을 알게 되면 지혜와 실천의 간격이 어떻게 좁혀지는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무’란 잘 알려져 있듯이 ‘namo' 또는 ’namas'를 소리대로 옮긴 용어로 그 뜻을 번역하면 ‘귀명(歸命)’이란 말이 된다. 귀명의 본뜻은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인다는 의미다. 후대의 주석가들은 이런 외면적인 태도를 내면적으로 더 깊숙이 파내려가 여러 가지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해석은 ‘귀투신명(歸投身命)’이라는 것이다. 귀투란 ‘돌아가 던진다’는 뜻이고 신명이란 전인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결국 전인격을 다해서 삼보에 귀투하겠다는 것이며 신명을 다해서 귀의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삼보에 귀의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주석을 조사해 보면 ‘나무’에는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해석이 있다. 그것은 ‘나무’에는 경포(驚怖)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반드시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그런 해석은 참으로 드물다. ‘나무’를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해석하는 것은 중국의 천태(天台)대사가 ≪법화문구(法華文句)≫에서 ≪오계경(五戒經)≫의 해석방법을 원용해서 이와 같은 해석을 하는 것이다. ≪법화문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무는 큰 의의가 있다. ≪오계경≫에서는 경포(驚怖)라 칭한다. 경포는 정녕 부처님이 가르쳐 주는 것이다. 생사는 험난한 것이다. 놀라고 두려워해야 한다.

 
≪오계경≫이란 ≪우바새오계상경(優婆塞五戒相經≫을 가리키는 것으로 거기에는 귀의불(歸依佛)에 대해서 ‘마음은 크게 놀라고 두렵게 생각해서 털마저 선다’*(心卽大驚 怖畏毛竪.≪대정신수대장경≫ 제24권 p.743)는 말이 나온다. 천태대사는 이 말을 인용해 ‘나무’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으나 반드시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이 성스러운 것을 대할 때 어쩌면 그같은 놀라움과 두려움(驚怖)을 속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지극한 존경이란 사실 가슴이 저리도록 떨리고 두려운 것이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런 측면도 전혀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3) 전율할 만한 진실  ▲ 위로


루돌프 오토가 쓴 ≪성스러운 것(Das Heilige, 1917)≫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성스러운 것’을 대할 때의 반응을 매우 흥미있게 분석하고 있다. 오토에 따르면 사람들은 성스러운 것을 대하면 먼저 자기 내면에 움직이는 의식을 세밀하게 검토해서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으로 나눈다. 합리적이란 사람이 그것을 사유하고 분석해서 판명해낸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말한다. 이것을 불교와 연관시켜 말한다면 부처님에 대한 귀의의 생각을 ‘당신은 참으로 여래(如來)·응공(應供)·정각자(正覺者)·명행족(命行足)·선서(善逝)·불(佛)·세존(世尊)이십니다’라고 표백하는 것이 된다. 정녕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토가 이 책에서 정말로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스러운 것이 지닌 합리적인 요소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잘 생각하고 분석해서 판명해 낸 개념으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오토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라틴어의 누멘*(numen: 신의 암묵적 절대명령)이란 말에서 새롭게 누미노제(numinose)라는 술어를 만들어 그 비합리적인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비합리적인 것, 누미노제란 것에 관해서 오토는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요소로서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전율할 만한 비의(秘義)’이고  또 하나는 ‘매료 되는 것)’ 이 그것이다.

 
‘전율할 만한 비의’라는 말은 오히려 ‘전율할 만한’이란 형용사에 더 무거운 중점이 있다. 즉 공포 그리고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스러운 것이 갖는 존엄 또는 세력은 심신을 저절로 떨리게 만든다. 이에 비해 ‘매료되는 것’이란 말은 전적으로 모순되는 것을 지칭하고 있다. 그것은 불유쾌한 것인 동시에 또한 마음을 잡아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몸서리치면서도 정체모를 환희에 넘치는 것이다. 그것은 경이인 동시에 또한 경탄스러운 것이라고 오토는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비합리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이 성스러운 것에서는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뒤집어서 불교에 적용한다면 ‘나무’의 의식 속에 작용하는 귀명과 경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부처님의 설법은 모두 정리(正理)에 맞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은 교법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교법에 수순하는 것이 어째서 우리의 전인격을 흔들어 놓고 그것의 실천에 나서도록 하는가. 사람들은 가끔 이 점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라. 일체는 무상이라고 가르치는 교법 앞에서 그 사실이 마음 속으로 납득될 때 우리는 과연 마음이 평연(平然)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서 있던 막연한 상식은 이때 밭밑에서부터 허물어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세상과 인생의 모습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함을 가지고 우리 앞에 전개됨을 알게 된다. 과연 아무런 놀라움이나 공포, 또는 몸서리치는 마음도 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부처님은 우리의 삶을 일컬어 그런 것은 모두 괴로움(苦)이라고 설법했다. 만일 그것이 진정으로 이해되었을 때 우리는 아직도 평연하게 그 일체개고의 교법 앞에 서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매일매일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그런 상식의 입장이 산산이 깨져버리고 경포한 인생의 진상이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에 조금의 전율도 느끼는 일이 없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일체개고의 가르침을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앞에서 ‘나무’에 공포의 의미가 있다고 한 것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이러한 의식의 움직임을 통찰하고 있는 것이라 이해된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의 움직임을 가지고 성스러운 교법과 상대했을 때 그것은 비로소 우리들 가슴 밑바닥부터 흔들어 놓고 전인격을 흔들어 놓는 것이 된다. 성스러운 교법이 진실로 성스러운 교법으로서 작용하고, 성스러운 지혜가 진정으로 성스러운 지혜로서 우리를 갱신하는 것은 이때이다.


그리고 그때 진실불허(眞實不虛)하고 바른 이치(正理)에 맞는 교법의 부정할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끌어준다. ‘이 가르침을 놔두고 의지할 것이란 없다’고 고백하고 부처님의 교법에 진실로 귀의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여기에서 생긴다. 귀투신명(歸投身命)하는 귀의자의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4) 예류의 구조  ▲ 위로


여기에 바로 불교인으로서의 믿음이 있다. 또 여기에 바로 불교인으로서의 귀의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예류(預流, sotāpanna)'라는 것의 구체적인 모습이 있다. 예류란 이미 어떤 흐름, 다시 말해 성스러움에 들어갈 수 있는 자라는 뜻의 말이다.

 
부처님을 따르는 성불자들의 무리, 그 흐름에 합류하기 위한 조건은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목숨을 던져 귀의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나무란 그런 뜻을 가진 말이다. 불교가 단순히 하나의 관념적 철학으로 남아 있지 않고 실천적 종교로 성립할 수 있는 바탕도 바로 이 귀투신명 즉 마음으로부터의 귀의에 있었던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예류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경전*(남전 상응부경전(55·2) 預流. 한역 잡아함경(41·7~8) 四法)이 있다. 이 경 역시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설해진 것으로 내용은 이렇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네 가지 일을 성취할 때 예류가 되어 지옥행의 운명을 모면하고 바른 깨달음(正覺)을 향하는 자가 된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성스러운 제자가 있어 부처님에 대한 절대적인 깨끗한 믿음(淨信)을 표했다고 하자. 즉 ‘부처님은 여래·응공·정등각자·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십니다’라고 했다. 또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法)에 대해 절대적인 깨끗한 믿음을 표시했다고 하자. 즉 ‘법은 부처님에 의해 잘 설해졌다. 그것은 현재 증명되는 것이며 시간을 두지 않고 과보가 나타나는 것이며, 와서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또한 지혜 있는 사람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승가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깨끗한 믿음을 표했다고 하자. 즉 ‘부처님의 제자들은 선행을 행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정직하며, 옳은 행동을 하며 공손함을 행하는 자들이다. 사쌍팔배(四雙八輩)가 곧 그들이며, 그래서 그들은 존경하고 공양할 만하고, 합장할 만하고 이 세상에서 위없는 복전(福田)이다’라고 했다. 그는 성스러운 사람들이 늘 사랑하고 즐겨하는 모든 계를 성취했다고 하자. 그것은 완전하고 순수하고 순결하며, 흐르지 않고 자유로우며, 지혜로운 사람이 칭찬하는 행동을 한다. 그는 이제 집착하는 것이 없으며 삼매에 이를 수 있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 네 가지 일을 성취할 때 예류가 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지옥행의 운명을 모면할 수 있고, 바른 깨달음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네 가지 일을 성취한다’는 것은 삼귀의(三歸依)에 의해 출가를 한 뒤 구족계를 받게 된 신참비구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예류, 즉 이제 겨우 흘러들어왔음에 불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하고, 성계(聖戒)를 지킴으로써 ‘타락하는 일 없이 바른 깨달음으로 향하게’ 될 것을 보증받고 있는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제 1권에 나오는 ‘불법(佛法)의 큰 바다는 믿음을 능입(能入)으로 한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때의 지혜는 실천과 딱 결부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끝을 맺고 있다.


어떤 사람이 만약 믿음을 가지고 계를 지키며

법을 보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안락이 넘치는

지복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3. 욕망에 대하여

1) 사제의 주제는 욕망
 ▲ 위로


그러면 여기서 잠시 근본불교에서의 실천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와 관련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처님이 바라나시의 교외에 있는 이시파타나 미가다야(仙人主處 綠野苑)의 숲에서 다섯명의 수행자를 만나 말문을 열었던 초전법륜(初轉法輪) 즉 부처님의 최초설법이다.


우리는 이미 그 최초설법이 어떠한 상황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내용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검토를 한 바 있다. 그리고 그때의 설법내용의 중핵을 이루는 것이 ‘사제설법(四諦說法)’으로 불리어진다는 것도 말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그 문제를 들춰내는 것은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사제설법이야말로 부처님의 실천철학인데 그것을 제외하고 근본불교에서의 실천문제를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사제설법이란 ‘네 가지 명제로 된 설법’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아마도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 계셨을 때 체계화하고 조직화한 논리라고 생각되는데 한 경전(남전 상응부경전 56.11 여래소설. 한역 잡아함경 15.17 전법륜)은 그 첫 번째 명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성제란 이것이다. 즉 태어남은 괴로움이다. 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괴로움이다. 탄식하고 슬퍼하며 근심하고 번민에 잠기는 것도 괴로움이다. 미워하는 것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 그리고 인간의 존재를 이루는 것 자체가 모두 괴로움이다.]


그 첫 번째 명제는 자주 ‘이것을 괴로움(고)이다’라는 말로 정리되고 있다. 즉 인생이란 한 마디로 괴로움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이 출가했던 이유이자 해결하고자 한 과제이기도 했다. 두 번째 명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생기의 성제는 이것이다. 즉 미혹의 삶을 가져오고 기쁨과 탐욕을 수반하고 여기저기 얽혀드는 갈애가 그것이다. 욕(欲)에의 갈애, 유(有)에의 갈애, 무유(無有)에의 갈애가 그것이다.]


이 두 번째 명제는 자주 ‘이것은 고의 생기(生起)’라는 말로 정리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괴로움이라고 할 때 그 원인을 추구하다 보면 갈애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이 괴로움을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갈애란 욕망의 물결이 격렬하게 파도치는 상태를 말한다. 세 번째 명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멸진(滅盡)의 성제는 이것이다. 즉 갈애를 남김없이 떨쳐버리고 여의고 해탈해서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 번째 명제는 자주 부처님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괴로움의 존재인 까닭이 갈애에 있다고 한다면, 그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갈애를 멸진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괴로움 또한 멸진하는 것이다. 네 번째 명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는 이것이다. 즉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길이다. 즉,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이다.]


이 네 번째 명제에서 말하는 길(道: way, magga.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이란 실천을 의미하는 말이다. 앞서 세 번째 명제에서 제시된 방침에 따라 괴로움이 멸진을 실현할 실천의 항목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성제는 이미 앞에서 자세하게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지금 거듭 설명하는 것은 사제의 체계야말로 부처님이 가르친 교설의 중핵이며 근본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당신의 전생애를 통해 가르쳤던 설법의 내용은 결국 이 사제의 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 28 象跡喩經. 한역 중아함경 30 象跡喩經)은 이 점을 장로 사리풋타의 입을 통해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테면 모든 짐승의 발자국은 그 크기에 있어 코끼리 발자국(足跡: footstep, way, pada.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 안에 들어간다. 코끼리의 발자국은 그 크기에서 첫째이다.


비구들이여, 마찬가지로 모든 선법(善法)은 다 사성제에 포섭된다. 이 사성제의 넷은 무엇인가. 고의 성제, 고의 생기의 성제, 고의 멸진의 성제,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가 그것이다.]


사성제가 이처럼 부처님이 가르친 모든 교법의 근본이라고 하는 데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디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 번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 사제설법의 주제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욕망’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근본불교의 실천문제를 더듬어 가는 데 있어 이러한 인식은 매우 중요한 핵심이 된다.

 


2) 불타고 있는 현실  ▲ 위로


사제설법의 주제는 ‘욕망’이라는 점을 자세히 설명하기 이전에 먼저 읽어 두어야 할 경전*(남전 상응부경전(35·28) 燃燒. 한역 잡아함경(8·13)燃燒)이 있다. 이 경은 부처님이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서 초전법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었다.
 

드디어 전도를 위해 유행의 길에 오른 부처님은 다시 한 번 그리운 땅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에 이르렀다. 그곳은 일찍이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곳이었다. 그 근방에는 네란자라강이 굽이굽이 흘러 땅을 적시고 있었으며 산으로 둘러싸인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王舍城)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부처님은 먼저 그곳을 출발하여 바라나시의 교외인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도착해 5명의 수행자들 앞에서 최초의 설법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얼마간 머물다가 이번에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와서 깨달음을 성취한 추억의 땅에 정법의 씨앗을 뿌리고자 하는 중이었다.


부처님의 전도는 그 성과가 대단했다. 부처님을 따르는 비구들은 이미 1천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 지방에 있던 3명의 카사파*(迦葉: 뒷날 부처님이 입멸한 뒤 결집을 주도했던 대가섭과는 다른 인물로 그들은 형제였음)를 교화한 부처님은 그들을 따르던 무리들까지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 새로운 제자들을 거느린 부처님은 가야시사(象頭山)에 올라갔던 듯하다. 이 경은 그때 그 산정에서 설법했던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가야의 가야시사에 머물고 계셨다. 1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였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비구들이여, 일체는 불타고 있다. 일체가 불타고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눈이 불타고 있다. 눈의 인식도 불타고 있다. 눈이 접촉하는 대상도 불타고 있다. 그리고 눈이 대상을 접촉하는 인연으로 생기는 즐거움(樂) 또는 괴로움(苦)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不苦不樂)도 불타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것들이 무엇으로 인해서 불타고 있는지 아는가. 그것은 탐욕의 불길로 인해 타고 있으며 분노의 불길로 인해 타고 있으며, 어리석음의 불길로 인해 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생·노·병·사에 의해 근심과 슬픔 고뇌와 번민에 의해 불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을 연상하게 하는 이 설법은 계속해서 귀(耳)·코(鼻)·혀(舌)·육신(身)·의식(意) 그리고 그 대상인 소리(聲)·향기(香)·맛(味)·감촉(觸)·관념(法), 또는 감각기관과 인식대상의 접촉을 인연해서 생기는 즐거움(樂)·괴로움(苦)·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것(不苦不樂)도 불타고 있음을 나열하고, 그것들은 방금 말한 대로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의해 불타고 있다고 그 원인을 설명한다. 부처님은 이 경(燃燒經)에서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원인이 탐·진·치에 있음을 설명한 뒤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도 이와 같이 보고 눈(眼)에 대해 염리하고 그 대상인 색을 염리하여 눈이 대상을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인식세계와 그 대상인 색을 염리하여 눈이 대상을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인식세계와 그로 인한 즐거움(樂)이나 괴로움(苦) 또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것(不苦不樂)을 염리하게 된다.


또 귀(耳)에 대해서도 혀(舌)에 대해서도 그 밖의 모든 감각기관과 인식대상과 또 그것들이 서로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인식세계와, 그로인한 괴로움·즐거움·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것을 염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탐욕을 떠나게 되고 해탈하게 된다. 해탈을 하면 해탈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나의 미혹한 삶은 이제 끝났다. 청정한 행(行)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했다. 더 이상 미혹의 삶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비구들의 마음은 모두 기쁨으로 가득찼으며 부처님이 가르친 교훈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1천 명의 비구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마음의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하게 되었다고 이 경은 쓰고 있다. 다소 길게 인용한 위의 경을 읽는 동안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 첫번 째는 설법의 장소문제이다. 그것은 이미 말했듯이 가야시사의 산정이다. 이 산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산정에는 코끼리 머리를 닮은 큰 바위가 있어 사람들이 이 산을 가야시사(象頭山)라고 불렀던 듯하다. 이 산의 정산에서 바라보면 동북의 기슭 쪽으로는 물 맑은 네란자라 강이 한가롭게 흐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남쪽으로는 멀리 대각성취의 추억의 땅도 바라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산꼭대기에 올라선 부처님의 가슴은 지금 새로 귀의한 1천 명의 제자들을 앞에 놓고 뭔가 솟구치는 것이 있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 부처님의 설법방법도 평상시와 약간 다른 것이 있었던 듯하다. 이것이 두 번째로 발견되는 주목해야 할 점이다. 부처님은 일찍이 깨달음을 얻고 설법을 시작한 뒤 전도의 길을 선택하면서 이렇게 당부한 적이 있다.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모든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설법을 하라.]


부처님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분은 참으로 논리가 정연하고 조용하게 듣는 사람의 이성에 호소하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부처님이 일상적으로 설법을 하는 모습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이 경에서 묘사되고 있는 부처님 설법의 모습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첫머리에서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에 새로 부처님의 제자가 된 1천여 명의 비구들은 무엇인가 섬뜩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며칠전까지만 하더라도 사화외도*(事火外道: 불을 섬기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즉 그때까지 그들은 불을 존중하고 불에 공양을 바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제 그들을 앞에 놓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 불로 인해 모든 것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더 적극적으로 부처님은 감각기관과 인식대상, 그것의 접촉으로 생기는 인식세계 자체가 불타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종래의 종교적 열정에 비하면 매우 상반되는 지적이었다.


중요한 대목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처님의 이같은 설법으로 그때 그들의 감정은 흔들렸고 이 세계는 그들 앞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주는 것이었다. 그때 ‘그 1천 명의 비구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마음은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하게 되었다’는 이 경의 결론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부처님이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역시 이 경에 대답이 들어 있다. 부처님이 이미 이 경에서 말씀한 대로 ‘탐욕의 불길, 분노의 불길, 어리석음의 불길’로 불타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우리들 중생이 번민하고 방황하고 윤회를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각각의 감각기관(六根)이 그 인식대상(六境)을 접촉하면서 탐욕하고 분노하며 어리석음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뿌리는 결국 욕망의 화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이다.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앞서 말한 최초의 부처님의 설법에서도 주제는 욕망의 문제였다. 부처님이 여기서 욕망이라는 화근을 가리켜서 사용했던 용어는 ‘갈애’*(渴愛: thirst, carving, taṇhā, 목마름을 비유해서 貪을 표현한 말)였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부처님은 욕망을 말하면서 색채나 연소를 의미하는 ‘라가’*(라가: colour, passion, rāga. 불이 타는 모습을 비유해서 욕망이 타는 모습을 표현. 貪이라고 한역)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역경가들은 이것을 번역하는 데 ‘탐(貪)’이란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탐이란 용어에는 연소(燃燒)한다는 뜻이 들어 있지 않다. 이것은 의도적 변조는 아니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3) 욕망을 부정하지 말라  ▲ 위로


욕망은 형색도 없고 그 모습도 볼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격렬한 작용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처님은 그것을 갈애하고 말하고 있으며 연소라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뜻에서이다. 부처님은 또 욕망을 격렬한 재앙을 불러오는 홍수에 비유해서 말한적도 있었다. 애욕에 빠져 쾌락에 몸을 맡기는 사람은 이윽고 그 물살에 빠져 흘러가버리게 되리라고 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처님은 또 욕망의 공포를 모닥불에 비유했던 적도 있었다. 탐욕을 품고 그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바람을 향해 모닥불을 드는 사람과 같아서 빨리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불길은 마침내 정신을 태워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부처님은 이런 비유로써 탐욕의 공포를 강조했다.

 
이밖에도 부처님은 많은 비유와 강조를 통해 욕망의 재앙, 그에 따른 탐욕을 떠나라는 권고를 해 제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도 경전을 펼쳐들면 부처님의 비유로써 강조했던 욕망의 재앙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것에 대한 가르침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인해 부처님의 설법이 모두 욕망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당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반증은 다음 세가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부처님이 욕망의 재앙을 설명하는 용어다. 자세히 살펴보면 부처님은 항상 욕망 그 자체를 표현하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대신 욕망도 과도함이 재앙을 가져오는 것임을 표현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부처님이 사용한 그 신중한 용어 사용법이 갖는 의미를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테면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는 ‘갈애’라든가 또는 ‘탐’이라든가 하는 용어가 그것이다. 부처님은 언제나 이욕(離欲)이 아니라 이탐(離貪)을 설명하고 있다. 욕망을 다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갈애를 다 없애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욕망: to desire, sense desire, kāma.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욕망의 여러 가지 활동을 표현하는 중요한 말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음. 충동(衝動, impulse, chanda), 탐(貪, carving, rāga), 희열(喜悅, enjoyment, nana), 갈애(渴愛, thirst, taṇhā)

 
둘째는 부처님의 고행에 대한 태도이다. 부처님의 전기를 자세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수행자였던 싯다르타가 수행의 과정에 있을 때 엄숙한 금욕고행을 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 금욕고행은 보통사람으로서는 행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금욕고행 그 자체가 성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부처님은 오랫동안의 엄숙한 고행을 실천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부처님은 문득 깨우친 바 있어 마침내 고행을 중지했다. 부처님은 뒷날 그때의 심경을 이런 시로 고백하고 있다.*(남전 상응부경전(4·1) 苦業. 한역 잡아함경 (38·14) 苦行)


[죽지 않는 것(不死)을 바라고 고행을 하지만

어떠한 고행도 이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마치 육지에 올려진 배의 노처럼

고행은 아무런 이익도 가져오지 않는다.]


여기서 고행이란 인간의 욕망을 금압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고행, 즉 금욕주의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부처님의 설명이다.

 
세 번째는 경전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설법이 자주 ‘소욕(小欲)’을 칭찬하고 ‘지족(知足)’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처님은 또 가끔은 ‘이양(易養)’을 말씀하기도 한다. 이러한 설법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뜻을 각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부처님이 욕망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무욕(無欲)’이 아니라 ‘소욕’을 칭찬하고 ‘지족’을 강조하겠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양(易養)’을 강조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욕망의 문제를 본다면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과도한 욕망의 작용이야말로 좋지 않은 인생의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욕망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갈애와 탐욕이 문제가 되는 것이며, 인생이 괴로움인 것도 바로 이 갈애와 탐욕 때문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 부처님은 도대체 인간의 욕망 그것을 어떻게 보고 계셨던 것일까.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기는 매우 미묘하고 곤란하다. 그것을 말하자면 역시 부처님 그분이 말씀했던 가르침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최상일 것이다.


그러면 한 마디로 말하면 ‘중도(中道)’이다. ‘여래는 이 두 가지의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현등각(現等覺)했도다.’ 이 한 마디는 욕망의 문제뿐만 아니라 실천의 문제까지도 관통하는 움직일 수 없는 원칙자이자 원리였다. 이 ‘중도’의 문제는 좀더 자세한 설명을 해야 할 부분이다.

 


4. 중도의 철학

1) 실천적 입장의 중도
 ▲ 위로


중도란 ‘majjhimā paṭipadā'의 한역이다. 나누어 설명하면 ’majjhimā'란 ‘중간의’ 또는 ‘적당한’이라는 뜻의 형용사고 ‘paṭipadā'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 또는 ’행도(行道)‘라는 명사이다. 즉 중도란 ’적당한 실천‘ 또는 ’적도(適度)한 행도‘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러한 원어가 가진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용어는 실천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발생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곧 생각나는 것이 부처님이 처음 중도라는 말을 설명한 대목이다.


[그것은 이시파타나 미가다야(仙人住處 鹿野苑)에서 처음으로 설법할 때의 일이었다. 그때 부처님은 5명의 수행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비구들이여, 출가한 사람은 두 가지 극단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애욕을 탐욕하는 일은 추악하고 천한 범부의 소행이다. 성스러운 행동이 아니며 따라서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또 고행을 섬기는 것은 다만 고행일 뿐이지 성스러운 행동이 아니며 따라서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다. 그것은 눈을 뜨고 지혜가 생기고 적정·증지·등각·열반에 이르게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래가 눈을 뜨고 지혜가 생기고 적정·증지·증각·열반에 이르게 하는 중도를 깨달았다 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것은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를 말하는데, 즉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깨달은 중도이며 이것이 눈을 뜨고, 지혜가 생기고 적정·증지·등각·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부처님은 초전법륜의 본론인 사제설법 즉 네 가지의 명제로 된 실천철학을 개진하고 있다. 즉 여기에서 인용한 구절은 초전법륜의 프롤로그인데 이 속에는 5명의 수행자들에 대한 자신의 변명도 포함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5명의 수행자들은 부처님이 고행수도를 포기한 데 실망해 떠났던 사람들이었다. 부처님은 그들에 대해 왜 고행이 쓸데없는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사정에 대해서는 율장(律藏) ≪대품≫(1·6)의 기록이 비교적 자세하다. 이에 따르면 부처님은 고행수도를 하고 있을 무렵 그들도 역시 가까이서 존경과 칭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그 고행수도를 포기하자 그들은 실망과 함께 경멸을 표시하면서 그 곁을 떠나고 말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부처님께서 사슴이 살고 있는 동산으로 찾아와 그들에게 설법하고자 했을 때, 그들은 완강하게 그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고행을 포기하고 쾌락이 떨어진 사문 고타마가 지금 위대한 깨달음을 성취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부처님은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자신이 성취한 깨달음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냉정하게 거부의 뜻을 나타냈다. 이토록 완강하게 거부하는 그들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내 얼굴 모습이 이처럼 빛났던 적을 본 일이 있는가.”]

 
이 말은 새로운 소득과 확신으로 빛나고 있던 부처님의 얼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들이 부처님을 바라보자 ‘그러면’ 하고 간신히 그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첫마디는 자연 고행을 포기한 변명과 자신의 실천적 입장인 중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던 것이다.

 


2) 고행을 버린 사람  ▲ 위로


5명의 수행자들의 부처님에 대한 비판은 오직 그가 중도에서 고행을 포기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율장≪대품≫(1·6)에 따르면 그들은 부처님에게 이렇게 비난했다고 기록해놓고 있다.


[“그대는 사치 때문에 정근을 버리고 사치 때문에 타락했다.”]


이런 비난에 대해 부처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한 경전*(남전 상응부경전(4·1) 苦業. 한역 잡아함경 (39·14)苦行)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고행에 관해 심사숙고했던 점을 기록해 놓고 있다.


[그때 부처님은 홀로 앉아 조용한 사색 속에 이렇게 생각을 했다. ‘아아 나는 그 고행의 길에서 벗어나기를 잘했다. 아아 나는 그 아무 이익도 없는 고행에서 벗어나길 잘했다. 정념에 머물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니 참 잘한 일이다.’


그때 악마 마라는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처님 곁으로 와서 이렇게 속삭였다.

“고행을 떠나면 사람들은 깨끗해질 수 없다. 그대는 깨끗한 길을 버리고 깨끗하지도 않으면서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부처님은 악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사(不死)을 바란다면 어떠한 고행도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없다. 물에 올려진 배의 노처럼 아무 쓸모없는 것이 고행이다. 나는 계(戒)와 정(定)과 혜(慧)로써 깨달음의 도를 수행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무상(無上)의 깨끗함에 이르렀다.”


그러자 마라는 ‘부처님은 나를 알고 있다’고 괴로워하면서 그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이 이야기는 부처임이 아직 네란자라 강변의 아자파라니구로다 나무 아래서 명상에 잠겨 있을 때의 일이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성취했다. 깨달음을 얻은 뒤 부처님은 자리를 이 아자파라니구로다 나무 아래로 옮겼다. 이것은 아마 정각을 얻은 지 며칠이 지난 뒤의 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무렵 부처님의 가슴에는 지나온 길을 회고하고 앞으로 갈 길을 내다보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던 듯하다. 이 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고행의 포기에 관한 것도 그 같은 상념의 하나였다.


이 경의 제목을 번역하면서 ‘고업(苦業)’ 또는 ‘고행(苦行)’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좀 더 정확하게는 ‘고행은 어떠했을까’이다. 경의 내용도 고행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 하고 있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있다. 무엇보다도 ‘아아 나는 저 고행에서 벗어나길 잘했다’고 하는 앞 부분의 구절이 그렇다. 이런 독백중에 악마가 나타나 부처님께 말을 건다고 하는 것은 이 경의 구성형식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와 같은 악마설화는 부처님의 내면적 갈등을 말해주는 문학형식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부처님의 내면적 갈등은 역시 어찌보면 ‘고행을 떠남으로써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육지에 올려진 배의 노와 같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결연하게 그것을 물리칠 수 있었다. 부처님이 저 사슴동산(鹿野苑)에 이르러 5명의 수행자들 앞에서 당신의 최초설법을 폈던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었다.

 


3) 양극단을 떠난 상태  ▲ 위로


초전법륜의 프롤로그는 지극히 명쾌하다. 출가해서 구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의 ‘두 가지 극단’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극단’이라고 번역한 말의 원어는 ‘anta'로서 매우 재미있는 말이다. 영어로 말하면 ’anta'는 ‘end'에 해당한다. 그래서 중국의 역경가들은 이 말을 ’변(邊)‘이라고 번역하거나 또는 ’단(端)‘으로 번역했다. 이를테면 여기 탁자가 하나 있다고 하자. 이 탁자는 우측으로 가면 우측 모서리가 있고 좌측으로 가면 좌측 모서리가 있다. 어느 쪽이든 계속 가다보며 결국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바로 ’이변‘이고 ’이단‘이다. 그것을 여기서는 ’두 개의 극단‘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부처님이 말하려는 것은 수행의 문제다. 출가자가 가는 길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출가자가 가까이 가서는 안 될 ‘두 가지의 극단’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하나는 쾌락주의다. 욕망 속에 몸을 빠뜨려 쾌락에 젖는 것은 천한 범부의 소행이다. 그것은 출가자가 하는 일이 아니며 또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금욕주의 즉 고행이다. 그것은 스스로 자학하며 고생을 일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만 고통스러울 뿐, 구도에는 아무런 도움도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래서 이 두 극단을 버린 중도를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정각을 실현시키고 열반으로 향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이변처중(離邊處中)으로서 실천의 항목으로 나열한다면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길이다. 이는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수없이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길이란 도대체 어떤 길인가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것일까. 이와 관련해 우선 생각나는 경전*(남전 증지부경전(6·55) 輸屢那. 한역 잡아함경 (9·30) 二十億耳)이 있다.


이 경의 무대는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기자쿠타(영축산)에 머물고 계시던 때이다. 이 무렵 라자가하 교외에 시타바나(寒林)라 불리는 쓸쓸한 숲 속에는 소나(輸屢那)라는 젊은 비구가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의 수행은 매우 치열하고 엄격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는 좀처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가 없었다.

 
시타바나란 중국의 역경가들이 번역한 대로 ‘추운 숲(寒林)’이라는 말인데 실은 묘지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래서 시타림(屍陀林)이라고 음역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곳은 음침하고 외로운 장소였다. 음산한 나무들 사이에서 젊은 소나의 마음은 우울과 갈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경전은 이런 소나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열심히 정진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집착을 떠나 해탈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집에는 재물이 많다. 나는 그 재물을 가지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수행을 포기하고 세속으로 들어가 행복한 생활을 꾸려가는 것이 어떨까.]


‘소나’란 황금을 의미하는 말이다. 옛 문헌의 주석에 따르면 그는 전신이 황금과 같았고 또 유연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필시 고대의 주석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해석 방법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의미하는 뜻을 살펴보면 그는 일찍이 부자의 아들로 부족함을 모르는 청년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지금의 그에게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치열한 수행으로 인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고 그의 얼굴은 실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발뒤꿈치에는 애처롭게도 피가 맺혀져 있었다. 피멍이 들도록 치열한 수도를 한 소나. 그러나 그는 그같은 수도로도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젊은 소나가 당황하고 방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처님은 이런 소나의 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어느 날 혼자 그를 찾아가 심경을 물어보았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스승 앞에 털어 놓았다. 그러자 스승은 문득 소나가 집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탔었다는 말이 생각나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소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소나여,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만일 너의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게 당겨져 있으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느냐?”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소나여, 너의 거문고가 너무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고 적당히 당겨져 있다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느냐.”

“스승이시여 그러하옵니다.”


“소나여, 바로 그와 같으니라. 정진도 너무 과하게 하면 마음이 격해져 가라앉히기 어렵고, 또 지나치게 느슨하게 하면 나태해지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소나여, 그대는 편안한 정진에서 육근의 평정을 지키고 그곳에 목표를 두도록 하여라.”

“스승이시여, 잘 알았습니다.”]


소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셨다. 그리고 그 교훈을 가슴에 간직하고 다시 수행을 계속하여 이윽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저 ≪테라가타(長老偈)≫*(테라가타(長老偈):hymns of senior bhikkhus, name of canonical book, Theragāthā. 장로 비구의 게를 집록한 경.小部經典에 속함)에 나오는 두 가지의 시는 그 사이의 소식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내가 과도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이 세상 최고의 스승인 부처님이 오셔서

거문고에 비유하시면서

나를 위해 설법하셨도다.(638)


그로부터 나는 교훈을 받들어

최고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오직 삼매의 경지에 노닐었더니

드디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되었다 (639)]


소나의 고백은 엄격한 수행의 이야기면서 또한 어딘가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경의 이야기는 예부터 ‘거문고의 비유’로 알려지고 있으며 ‘중도’를 말할 때마다 회자되고 한다.

 


4) 중도의 근거인 인간성  ▲ 위로


소나의 거문고 이야기는 멋진 비유이다. 이 비유는 사람들에게 중도를 쉽게 이해시켜 준다. 하지만 그러면 무엇이 중도의 기준이 되는 것일까. 도대체 참된 중도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하나의 암시를 주는 경전*(남전 상응부경전(3·12)五王. 한역 잡아함경(45·5) 諸王)이 있다. 좀 세속적인 내용이지만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때인가 코살라(拘薩羅)국의 도시 사밧티(舍衛城)에 파세나디(波斯匿)왕을 비롯해 5명의 왕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좋은 술과 음식을 먹으며 아름다운 미녀들을 거느리고 화락의 극치를 누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라는 화제를 꺼냈다.]
 

이에 대해 한 왕은 ‘색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색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하므로 이 왕은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어떤 왕은 ‘성(聲)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소리란 들리는 것이므로 아마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라는 뜻을 말했던 것 같다. 또 어느 왕은 향기(香), 또 어느 왕은 맛(味), 그리고 어느 왕은 감촉(觸)이라고 말했다. 향기란 좋은 냄새이다. 또 맛이란 좋은 음식을 말한다. 그리고 감촉이란 아마도 아름다운 여성을 말하는 것 같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자 좀처럼 가장 좋은 것,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통일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파세나디왕의 제안으로 그들은 부처님을 찾아가 같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대왕들이여, 나는 적절하게(適度) 유쾌한 것이 가장 즐겁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적절함을 지나치면 먹기가 싫어진다. 이런 한계점 때문에 마음에 드는 적절함이 가장 즐겁다는 것이 부처님의 대답이었다. 이런 훌륭한 판단 앞에 대왕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좀 소박하고 세속적인 화제 속에도 중도의 원리가 설명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즉 부처님은 필경 인간성을 근거로 해서 중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파스칼의 ≪팡세≫의 다음 구절을 연상케 한다.


중간에서 일탈하는 것은 인간성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이다. 인간 영혼의 위대함은 어떻게 해서 중간에서 몸을 유지하느냐를 깨닫는 점에 있다. 위대함은 중간에서 일탈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곳에서 일탈하지 않는 데에 있다.(378)


그렇다. 중도의 진정한 근거는 인간성인 것이다. 인간이 그 인간성에서 일탈했을 때 그것이 어째 위대할 수 있겠는가.

 


5. 승가는 어떤 단체인가

1) 좋은 친구의 모임
 ▲ 위로


불교에서 가장 훌륭한 실천의 마당은 무엇보다도 승가*(僧伽:multitude, sangha. 衆, 또는和合衆이라고 한역)이다. 그것은 오늘의 사람들에게 학문의 마당이 학교인 것과 마찬가지다. 말할 것도 없이 학문의 마당으로 학교보다 좋은 곳은 없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교리를 실천하는 마당으로 승가처럼 좋은 곳은 없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불교 교리가 실천되는 마당은 인생의 전부여야 한다.


그러나 그 실천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승가는 이 쉽지 않은 실천을 쉽게 하는 마당이며 울타리이다. 승가에서는 불교의 가르침이 다른 곳에서 보다 월등하게 잘 실천되고 성취된다. 부처님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45·49) 善友. 한역은 없음)에서 설하고 있는 부처님 말씀이다.


["비구들이여, 해가 뜨면 우선 동쪽 하늘이 밝아온다. 즉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 것은 아침 해가 솟는 징조이며 그 선구(先軀)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들이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를 닦으려고 할 때에도 그 징조가 있고 선구가 있다. 그것은 좋은 친구(善友)를 갖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좋은 친구를 갖고 있는 수행자는 마침내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八正道)를 닦고 다시 수없이 성스러운 수도를 계속할 것이 기대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좋은 친구를 가진 수행자들은 어떻게 해서 성스러운 팔정도를 수행하고, 또 수행을 거듭하게 되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욕망의 대상을 멀리 하고 탐욕을 떠나고 나아가 멸진시키는 것이다.


또한 번뇌를 버리고 올바른 견해(正見)를 닦는 것이다….

또한 번뇌를 버리고 올바른 사고방식(正思)을 닦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언어(正語)를 닦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행위(正業)를 닦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삶(正命)을 닦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노력(正精進)을 닦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생각(正念)을 닦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선정(正定)을 닦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좋은 친구를 가지는 수행자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를 닦고 다시 수행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 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가운데서 먼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선우(善友) 즉 ‘좋은 친구’이다. 선우라는 말의 원어는 칼루야나미타타*(kalyāṇamitta, 좋은 친구, a good companion)이다. 앞의 말은 보통명사이고 뒤의 말은 추상명사이다. 중국의 역경가들은 이 두 가지의 말을 모두 ‘선지식(善知識)’ 또는 ‘선친우(善親友)’ 또는 ‘승우(勝友)’라고 번역했다. 이 중에서 후대에 가장 널리 쓰인 말은 ‘선지식’이다.
 

그러나 후대불교에서 사용한 선지식이란 말은 약간 편향된 느낌이다. 이를테면 선가(禪家)에서 쓰는 이 말은 제자가 스승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또 일본의 정토진종(淨土眞宗)에서는 신도가 법주(法主)를 지칭할 때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훌륭한 고승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선지식이란 용어에 대한 이러한 용법들은 은연중에 지혜가 깊고 덕망이 높은 고승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선지식이란 말은 어디까지나 다만 ‘좋은 친구’를 뜻하는 말이다. 거기에는 스승이라든가 존경을 표시한다든가 하는 의미는 담겨있지 않다. 특히 선지식이라고 할 때 ‘지식(知識)’이란 다만 친구를 뜻할 뿐이지, 요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식’과는 별개의 언어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실 불교라는 길은 함께 걸어가는 데 있어서는 법주나 스승, 또는 고승대덕도, 나보다 나중에 불문에 귀의한 후배도 모두가 ‘선우’일 뿐이다. 그래서 초기경전들은 부처님 자신을 포함해 지혜제일이라 했던 사리풋타(舍利佛), 우둔하기 짝이 없던 주리반타카(周利槃特), 미천한 태생의 수니타(須尼多) 모두 ‘선우’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승가의 모든 구성원 즉 선우들은 완전히 평등한 원칙 아래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한 경전*(남전상응부경전(8·2·19) 波呵羅. 한역 증일아함경(42·4) 須倫)은 널리 알려진 이런 말씀을 기록해 놓고 있다.


[이를테면 많은 강이 있다. 강가강(恒河) 야무나강(耶符那河) 아치라바티강(阿致羅符底河) 사라브강(舍牢浮河) 마히강(摩企河) 이다. 그러나 이런 강물들은 큰바다(大海)에 이르면 과거의 이름을 버리고 그저 큰 바다라고만 불리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브라흐만 (司祭), 크샤트리아 (貫族), 바이샤(平民), 수드라(賤民)의 네가지 종성(種姓)이 있지만 그들이 여래가 가르친 법과 율에 의해 출가하면 다만 사문석자*(沙門釋子: samaṇā, Sakyaputtiyā. 석가족의 아들로서 사랑하는 사문의 뜻)라고 불리게 된다.]
 

여기서 네가지 종성이란 이른바 인도의 카스트(caste) 즉 계급제도를 말한다. 인도는 카스트의 나라다. 따라서 그들은 가문 또는 혈통을 매우 중시했다. 이 제도는 세습적이어서 누구도 이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출가해서 부처님의 교단(僧伽)에 들어가면 그런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모두가 ‘사문석자(沙門釋子)’로 불렸다. 그것은 완전 평등 바로 그것이었다. 부처님은 지금 이 경에서 왜 출가수행자는 평등한가에 대해서,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면 과거의 이름은 없어지고 그 대신 ‘큰 바다(大海)’로 불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 선우는 도(道)의 전부  ▲ 위로


불교 교단에서는 모든 사람이 완전히 평등하다. 교단 내에서는 계급도 없었으며, 또 통솔받는 사람도 없다. 이것이 승가 즉 교단의 모습이었다.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선우일 뿐이다. 이와 같은 선우 즉 좋은 친구를 가진 수행자는 그것만으로도 ‘마침내 그가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를 닦고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면 어째서 그들은 이 승가 안에 있기만 해도 성스러운 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그리 길지 않은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45·2) 半. 한역 잡아함경(27·15)善知識)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인가 부처님은 샤카족이 살고 있는 샤카라라는 마을에 계셨다. 그때 장로 아난다(阿難)가 부처님을 찾아 인사하고 그 곁에 앉았다.


아난다는 부처님께 이런 문제를 여쭈었다.

“부처님, 저는 우리가 좋은 우정을 갖고, 좋은 친구를 갖고, 좋은 교류를 갖는 일은 성스러운 수행의 절반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좋은 우정을 갖고 좋은 친구를 갖고 좋은 교류를 갖는다는 것은 성스러운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그 전부이다. 아난다여, 좋은 친구와 교류를 갖는 수행자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를 닦고 그 수행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그러면 좋은 친구와 교류를 갖는 수행자는 어떻게 해서 성스러운 도를 닦고 그같은 수행을 닦을 수 있겠는가. 아난다여, 그 수행자는 좋은 친구 때문에 욕망의 대상을 물리치고 탐욕을 떠나고 이윽고 번뇌를 버림으로써 올바른 견해(正見)를 닦는 것이다.

그리고…올바른 사고방식(正思)을 닦는 것이다….

올바른 말(正語)을 닦는 것이다….

올바른 행위(正業)를 닦는 것이다….

올바른 삶(正命)을 닦는 것이다….

올바른 노력(正精進)을 닦는 것이다….

올바른 생각(正念)에 전념하는 것이다….

올바른 선정(正定)을 닦는 것이다.

 
아난다여, 이처럼 수행자가 좋은 친구와 교류하는 것은 성스러운 도를 닦는 데 큰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친구와 교류하는 것은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라고 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사람들은 나를 좋은 친구로 사귐으로써 병든 몸으로부터 해탈하고 늙어가야 할 몸으로부터 해탈하고 죽어야 할 몸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 아난다여, 좋은 우정으로 좋은 친구와 좋은 교류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친구’에 대한 설법은 초기경전들의 여러 곳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아마도 부처님은 이러한 취지의 설법을 자주 하셨을 것이고, 늘상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던 아난다는 그런 설법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수행을 해나가는데 ‘좋은 친구’가 갖는 의미의 무게를 점점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이해하는 바를 부처님께 말하고 그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남전의 상응부경전에는 이 이야기를 담은 경의 제목을 ‘반(半)’이라 달고 있다. 매우 기묘한 제목이지만 이것은 아마 아난다의 선우(善友)설법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춰 붙인 제목인 것 같다. 그런데 이에 대한 스승의 반응은 달랐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좋은 우정을 갖고, 좋은 친구를 가지며 좋은 교류를 갖는다는 것은 성스러운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인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인용했듯이 좋은 친구를 가진 수행자는 그가 성스러운 팔정도를 닦고 드디어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던 아난다가 어떤 얼굴을 했을까를 상상해 본다. 아마 아난다는 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좋은 친구와 교류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도의 절반을 이룬 것과 같다고 하면서도 혹시 과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부처님은 오히려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것은 절반이 아니라 수행의 전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난다는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부처님은 왜 그런가에 대해 다시 설명을 했다.

 


3) 승가의 본질  ▲ 위로


경전에 기록된 부처님의 말씀은 이 대목에서 참으로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사람들은 나를 좋은 친구로 함으로써’라는 구절이다. 우리는 이 표현을 곰곰이 되씹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할 것도 없이 불교라는 진리의 길은 석가모니라 불리는 부처님에 의해 증지 되었고 부처님에 의해 가르쳐진 종교다. 만일 이분이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고 법을 설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끝내 이 법(진리)을 몰랐을 것이다. 아울러 진리를 찾아 수행하는 길로 들어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대로 이 법은 ‘여래가 세상에 나왔든지 나오지 않았든 법으로 확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부처님은 남보다 먼저 그 법을 깨닫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교시하면서 ‘너희들은 이리로 오라’고 부르고 계신 것이다. 부처님도 그분도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분 역시 사람들과 같이 함께 손을 맞잡고 똑같은 길을 가는 동행자인 것이다. 이 사실을 부처님은 ‘사람들은 나를 좋은 친구로 삼음으로써’라는 말로 확인해 주고 있다.

 
여기에는 승가라고 불리는 불교 교단의 기본적 성격이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승가란 정녕 이처럼 좋은 친구의 집단이다. 그 길은 준엄한 자기완성의 길이다. 거기에는 엎드려 은총을 구걸하는 아무런 대상도 없다. 다만 수많은 좋은 친구가 있고 그들은 오직 진리를 증지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외길을 열심히 걸어갈 뿐이다.


이 길의 선두에서 부처님은 한 사람의 선각자로서 ‘너희들도 이리로 오라’고 하면서 손짓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권유와 교시에 따라 수범(垂範)을 삼고 오직 자기완성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런 길을 가는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잡아주는 손길은 더 없는 위안이자 용기를 준다. 이것이 불교이며, 이것이 승가의 본질이다.

 
이렇게 승가의 모습을 가만히 마음 속에 그려볼 때, 우리는 부처님이 열심히 ‘좋은 친구’를 갖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의미를 비로소 명료하게 알 수 있다. 참으로 뜻밖의 일이지만 부처님 그분은 자신도 역시 그러한 좋은 친구의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옛날에 경전을 결집하던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승가 즉 부처님의 교단이 처음으로 이 지상에서 성립된 것은 초전법륜 직후였다. 그때 부처님은 5명의 비구들 앞에서 중도 · 사제 · 팔정도의 가르침을 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했다. 한 경*(남전 律藏 大品(6·47) 초전법륜)은 그 초전법륜의 소식을 자세히 설명한 뒤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자 5명의 비구들은 기뻐하며 그 가르침을 신수(信受)했다…. 이때 이 세상에는 6명의 아라한이 있었다.]


이 6명이란 누구인가. 그것은 방금 설법한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받은 5명의 비구들이다. 그리고 이 6명이 처음으로 이 지상에 승가를 세운 사람들이란 이야기이다. 이 율장≪대품≫에 나오는 ‘6명의 아라한’은 석가모니 부처님도 승가의 일원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자료이다. 아울러 5명의 비구도 스승과 같은 ‘아라한’ 즉 존경받을 만한 성자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만하다.

 


6. 출가수행자의 생활 - 탁발

1) 최하단 생활의 의미
 ▲ 위로


불도의 실천을 위해서는 승가야말로 무엇보다도 훌륭하고 좋은 곳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은 ‘성스러운 수행의 전부’라고 말했다.


그러면 비구들은 승가생활에서 어떻게 불국토를 실천했는가? 그 가장 구체적인 방법으로써 먼저 탁발이 있다. 탁발이란 다름 아닌 걸식이다. 승가에서의 비구들은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의복을 단정히 하고 거리로 나가 그것을 얻어 그것으로 하루를 살았다.


말할 것도 없이 걸식은 인간생활에서 가장 밑바닥의 삶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자진해서 이런 생활방법을 선택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한 경전은 (남전 상응부경전 22.80 걸식. 한역 잡아함경 10. 17 제상)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기록해 놓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이 샤카족이 살고 있는 카필라바스투에서 얼마 멀지 않은 아자파라니구로다 동산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그때 비구들 사이에 무엇인가 언쟁이 있었다. 때문에 부처님은 그들을 물리치고 혼자 의복을 갖추고 발우를 들고 성안으로 들어가 행걸(行乞)을 했다. 탁발을 끝낸 부처님은 문득 남겨 놓고 온 비구들의 일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해가 기울 무렵 일어나 아자파라니구로다 동산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비구들은 한사람 또 한사람 부처님 앞으로 모여들어 예배하고 곁에 앉았다.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부처님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탁발)은 이 세상 모든 생활 가운데서도 가장 바닥이다. 수행자는 모두 걸식을 하며 지낸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가끔 ‘너희들 비구들은 손에 발우를 들고 유행한다’고 험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행자들이여, 양가의 자식들이 굳이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어 여기에 온 것은 바로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왕에게 강요당했기 때문도 아니다. 또 빚이 있어서 도망쳤기 때문도 아니다. 물론 공포 때문도 아니고 단순히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생.노.병.사.수.비.우.뇌에 둘러싸여 있다. 고민 속에 빠져 있다. 그것은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우리는 그같은 고의 집적을 없애는 방법을 깨닫고자 여기에 온 것이다.”]
 

부처님은 여기서 수행자들의 출가이유와 걸식이라는 최하단의 생활을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렇게 해서 출가한 양가집 자식들이 어이없게도 엄청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탐욕을 일으키고, 마음에 분노를 품고, 나쁜 생각을 하고, 부주의하고, 마음이 산란하고, 제근(諸根. 감각기관)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어떻겠는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화장터에서 타다 남은 나무를 꺼내 똥칠을 한 것처럼 마을에 두어도 땔감으로 쓸모없고, 숲에 두어도 목재로도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출가해서 욕망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재가자로서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아울러 출가자로 출가의 의의(意義)마저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부처님의 설법하는 어조는 언제나 고요했다. 전도선언에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 차근차근 간절하게 말씀했다. 질타하는 듯한 감정의 솟구침 같은 것은 이분의 설법속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부처님의 설법은 어딘가 질타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배어 있다.


생각건대 출가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비구들에게 탁발의 생활이란 결코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걸식생활을 하는 어려움은 자칫하면 모처럼의 출가 의지를 좌절시킬 우려가 있다. 부처님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걸식 생활은 모든 생활방법 가운데 가장 밑바닥이다’라는 부처님의 말뜻 속에는 스승이 제자들에게 쏟는 만 가지 배려랄까 염려 같은 것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이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어째서 이런 생활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그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게 좋을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한다. 이쯤에서부터 부처님의 말씀은 점차 질타의 기색을 나타내고 있다.
 

부처님은 ‘왕에게 강요받은 것도 아니다. 빚 때문에 도피한 것도 아니고 공포 때문도 아니다. 또 생활이 궁핍했기 때문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양가의 자제들이 자진해서 ‘이러한 생활에 임하는 것은 바른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바른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코 ‘무엇을 마시며 무엇을 입느냐’ 하는 걱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것의 전부를 걸고서라도 인간으로서의 최고선을 향해 노력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부처님이 이 설법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이며 ‘성스러운 수행’이다. 인간의 하찮은 욕망과 싸워서 최고선을 실현하고자 정진하는 것이다. 그 가장 구체적인 모습이 바로 탁발 이었던 것이다.

 


2) 달의 비유-탁발의 모습  ▲ 위로


그러면 그 탁발의 본모습은 어떠했는가? 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은 무엇이라고 가르쳤는가? 이 문제는 아함부의 여러 경전을 보면 그 대요를 알 수 있다.


비구들은 새벽 일찍 일어난다. 해가 뜬 다음에 일어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부처님은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악마들은 그들에게 접근하는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가르친 적도 있었다. 새벽에 일어난 비구들은 이내 옷을 단정히 고쳐 입고 발우(밥그릇)를 들고 마을이나 인가로 향한다.
 

이를테면 기원정사에서 사밧티까지의 거리는 2~3km쯤 되는데 그 길을 질서 있게 걷는 것이다. 마을이나 촌락에 들어오면 묵묵히 집집의 문 앞에 선다. 무엇이라고 경을 읖조리는 일도 없었다. 오직 침묵 속에서 조용히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애조 띤 목소리를 내며 구걸을 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다. 밥그릇이 채워지면 마을에서 물러나 해가 중천에 머물 때까지 적당한 장소에서 음식을 먹었다. 오후에 식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이 탁발의 마음가짐을 부처님은 가끔 비구들을 위해 설명하곤 했다. 그 한 가지가 ‘월유(月喩)’라는 제목이 붙은 경(남전 상응부경전 16. 3 월유. 한역 잡아함경 41.18 월유)인데 월유란 달에 비유했다는 뜻이다.
 

[그 역시 기원정사에서의 일이었다. 어느 때인가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설법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재가에 가고자 할 때는 달처럼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가라. 그리고 재가에 도착해서는 항상 새로 들어온 비구처럼 겸손하여라. 비구들이여, 혹시 옛 우물을 들여다 보고 또는 산의 절벽이나 냇물 속을 들여다 보고자 할 때에는 그 몸과 마음을 단정히 가다듬고 다가가라.


비구들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재가에 가려고 할 때는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접근하도록 하여라. 재가에 이르러서는 겸손해지도록 하여라.
비구들이여, 저 카샤파(대가섭)는 달처럼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재가에 가고, 또 재가에 이르러서는 신참의 비구처럼 겸손하였다.”]
 

여기까지는 부처님의 말씀이 대충 비유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부처님은 손을 들어 허공에 흔들며 탁발의 구체적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 손은 허공에 주저하지 않고 사로잡히지 않고 속박되는 일이 없다. 비구들은 이와 같이 어떤 재가에 가서도 마음에 집착함이 없고 구속받는 일 없이 다만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과 공덕을 원하는 자가 공덕을 베풀기를’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라. 그리고 자기가 얻었을 때는 그것을 기꺼이 여겨 환희할 것이며 또 타인이 얻게 되었을 때도 역시 그것을 기꺼이 여겨 환희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한 비구여야 비구로서의 이름에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탁발의 자세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비구들이여, 저 카사파는 어떠한 재가에 가서도 마음에 집착함이 없고 마음을 뺏기는 일이 없으며 구속 받는 일이 없었다. 그는 다만 얻고자 하는 것을 얻도록 바라고 공덕을 원하는 자는 공덕을 베풀도록 바랐다.


그리고 자기가 얻게 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기꺼이 여기고 또 다른 사람이 얻게 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기꺼이 기뻐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비구가 재가에 걸식하러 가는데 적당한 마음가짐이다.]

 
이 경의 서술은 계속해서 카사파의 탁발하는 행위를 칭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카사파란 부처님의 10대제자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마하카사파(대가섭)를 가리킨다. 그는 ‘두타제일’의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두타란 지금에는 별로 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근본을 따지자면 범어 ‘dhuta'를 소리대로 옮긴 말이다.


두타란 ‘털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부처님의 제자들이 의.식.주에 탐착되는 마음을 털어버리기 위한 실천을 지칭하는 것이다. 두타에는 열 가지 실천항목이 있는데 그 요지는 일상생활에서 소욕지족(少欲知足)의 덕을 닦고 실천하는 것이다. 탁발은 그 가운데 하나로, 요컨대 불제자들은 그것을 실천해야하는 두타행의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경에서 탁발행의 모범을 보이는 카사파를 극구 칭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음 대목은 특히 기억할 만한 부분이다.
 

[비구들이여, 저 카사파는 달처럼 그의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재가로 간다. 재가에 가서는 신참의 비구처럼 겸손하다.]
 

부처님이 여기서 달의 비유를 든 것은 까닭이 있다. 달은 맑고 아름다운 빛으로써 소리없이 집집의 문전을 찾아간다. 비구들이 탁발하기 위해 재가를 찾아 가는데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 이 ‘달의 비유’를 든 부처님의 마음이며 바람이었다. 그리고 모범을 보인 것이 카사파였던 것이다. 뒷날 카사파가 ‘두타제일’이란 별명을 얻은 것도 이런 까닭이었다고 보아진다.

 


3) 설사 못 얻는다 해도  ▲ 위로


탁발이란 말할 것도 없이 다른 사람의 보시에 의해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얻고자 원하는 사람은 얻는 일을, 공덕을 원하는 사람은 공덕을 베풀 것을’ 담담하게 생각해도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즉 밥그릇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부처님 자신도 깨끗이 씻은 발우를 그냥 들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일도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때 부처님은 어떻게 처신했을까. 한 경(남전상응부경전 4. 18 단식. 한역잡아함경 39.15 걸식)은 이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이 마가다국 판차사라(五草)라는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은 마침 젊은 남녀가 선물을 교환하는 축제의 날이었다. 부처님은 그날 아침도 언제나 처럼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탁발을 하려고 마을 들어섰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축제로 들떠 있었던 탓으로 아무도 공양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의 표현대로 하면 부처님은 ‘깨끗이 씻은 발우를 그냥 들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에 악마를 만났다. 마라(악마)는 부처님에게 다가와 이렇게 속삭였다.


“사문이여 음식을 얻었는가. 못 얻었는가?”

“네가 음식을 얻지 못하도록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빈 발우다.”


“그럼 사문이여, 다시 한번 판차사라 마을로 들어가도록 하여라. 그러면 이번에는 내가 음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것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설령 내가 음식을 얻지 못했어도 보라, 우리는 즐겁게 살아간다. 저 광음천과 같이 우리는 기쁨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간다.” 이 말을 들은 악마는 풀이 죽어 모습을 감추었다.]
 

경전의 서술은 악마를 등장시켜 부처님의 내면적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 묘사가 의미하는 바는 식욕의 유혹이다. 아무리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매일 탁발에서 언제나 흡족한 음식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경전은 때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은근히 비치고 있다. 그런 때는 부처님도 공복인 채로 하루를 지낼 수밖에 없었다.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면 누구라도 문득 식욕에 마음이 동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경이 암시하는 것도 이러한 탁발의 불운과 그로 인해 부처님에게서 문득 일어났던 마음의 동요를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공양을 얻지 못한 것은 그날이 축제의 날이어서 모두가 들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물의 공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덕분에 부처님은 빈 발우를 들고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서 문득 생각했던 것은 지금쯤 모두 선물교환이 끝났을 테이니 다시 가면 공양을 얻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탁발에는 여러 가지 법식이 있고 금제(禁制)가 있다. 이를테면 ‘차제걸식’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차제란 순서란 뜻이다. 그러니까 걸식을 하되 건너뛰거나 하지 말고 순서대로 하라는 것이다. 걸식을 하다보면 공양을 잘 주는 집도 있고 그렇지 못한 집도 있을 것이다. 이때 수행자가 공양을 잘 주는 집만 찾아간다거나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또 같은 거리를 여러 번 찾아가는 일도 금지되어 있다. 이것이 ‘차제걸식’이다.


차제걸식은 ‘인간이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먹는 문제만을 해결키 위해서라면 걸식하기 편한 곳을 택하면 된다. 그러나 부처님이나 그 제자들은 비록 음식을 얻어먹는 처지였지만 누구보다 고고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읽은 경문에는 이런 긍지가 잘 나타나 있다. 광음천이란 아바사라데바를 번역한 말이다. 그것은 바라문교에서 말하는 신의 하나로 위없는 사랑을 상징하는 말이다. 광음천은 또 기쁨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며, 말을 하면 입에서 깨끗한 광채가 난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 광음천에 비유해 ‘우리도 기쁨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간다.’ 고 말한다. 탁발의 방법인 차제걸식을 하다가 공양을 받지 못해 하루 낮 하루 밤을 공복으로 보냈는데도 그 마음은 이렇듯 평온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드높은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탁발이란 출가한 비구들에게 매일같이 하는 진지한 승부였다 해도 좋을 것이다.
 

굶주림이라는 가장 본능적인 욕망 앞에서 어떻게 자기를 제어하고 극복해야할 것인가. 탐욕에 의한 소유만을 삶의 전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승부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출가비구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승자이기보다는 정신적이고 영원한 승자가 되고자 매일 아침 진지한 승부를 겨루어 나감으로써 완성과 해탈의 길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7. 승가의 생활 - 정사(精舍)의 오후

1) 최초의 정사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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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마당은 승가이다. 그러나 승가란 ‘회중(會衆)’ 또는 ‘집회’를 뜻하는 말로 어디까지나 추상명사이다. 승가의 생활 즉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매일 생활을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것에 관계되는 이미지는 당연히 정사(精舍)라 할 수 있다.
 

정사는 불교승가에 처음 있던 것은 아니다. 부처님과 다섯 제자가 처음으로 미가다야(녹야원)에서 불교의 승가를 형성했을 때, 그들을 위해 있었던 것은 무성한 숲과 나무, 그리고 부드러운 풀밭뿐이었다. 그러나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승가에 정사라고 부르는 거주지가 생기게 된 것은 그다지 먼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부처님이 최초의 설법을 마치고 다시 마가다국으로 돌아오고 나서의 일이었다.

 
마가다에서 부처님은 먼저 우르벨라(이곳은 부처님이 정각을 성취했던 땅이다) 근방에서 수많은 새로운 제자들을 얻고 얼마 후 그들을 이끌고 라자가하(왕사성)로 향했다. 한 경(남전 율장 <대품> 1. 한역사분율 32)은 이 때 부처님에 대한 세상의 평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사문 고타마는 샤카족의 아들이다. 출가해서 지금 이 도시 교외에 있다. 명성이 매우 높다. 그는 세상에서 존귀한 분(世尊) · 공양 받을 만 한 분(應供) · 바른 깨달음을 얻은 분 (正等覺者) · 지혜와 실천을 겸비한 분(明行足) · 하늘과 사람의 스승(天人師)으로 불리운다. 그분이 가르친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정연한 이론과 훌륭한 표현으로 원만하고 청정한 실천을 가르친다. 그 성자를 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는 이런 소문을 듣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얼마 후 성밖의 스타티타라는 사당 근처에 부처님이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찾아가 설법을 듣고 귀의자가 되었다. 그는 다음 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다. 그 공양이 끝나갈 무렵 빔비사라는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경은 쓰고 있다.
 

[부처님이 머물고 있는 장소는 어디가 적당할까. 그것은 마을에서 멀지 않고 가깝지도 않으며 왕래하기에 편리하고 법을 구하는 사람들이 찾아가기 쉬운 곳이어야 한다. 낮에는 번잡하지 않고 밤에는 소란하지 않으며, 조용히 머물며 고요히 생각하기에 적당한 곳이어야 한다.
이렇게 궁리하던 왕은 자신의 송인 벨루바나(죽림원)가 그런 조건을 갖춘 장소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왕은 몸소 물병을 들고 부처님을 찾아가 부처님 손에 물을 부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저는 벨루바나를 승가에 기증하고 싶습니다. 원컨대 그것을 받아주 십시오.”]
 

부처님은 잠자코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불교 승가에 대한 최초의 승원 기증의 인연이다. 그러나 이때에는 아직 방사(房舍)가 없었다. 방사는 그리고 나서 얼마 뒤 라자가하에 사는 한 장자가 그 곳에 방을 지어 헌납함으로써 온전한 의미의 정사가 성립되었다.
 

이 장자가 방사를 지어 기증한 것은 비구들이 방사가 없는 숲에서 조용하면서도 단란한 생활을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였다. 빔비사라왕이 대숲(죽림 竹林)을 기증한 지 얼마 안 되어 라자가하에 사는 한 장자는 아침 일찍 이곳으로 산책을 나왔다가 비구들을 만났다. 비구들의 평온한 모습은 그에게 무척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이곳에 방사를 지어준다면 여러분은 살아주겠는가?” 비구들은 그의 말을 부처님에게 전했다. 부처님은 그것이 검소한 형태라면 세워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기뻐하며 즉시 60개의 방사를 숲 속에 짓고 그것을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헌납했다. 이것이 불교 최초의 정사인 죽림정사가 세워진 경위이다.
 

여기서 비롯된 정사는 그 뒤 기원정사를 비롯해 많은 정사가 도시 교외에 세워져 비구들의 좋은 수행 장소가 되었다 그러면 비구들은 이런 정사에서 어떻게 생활했을까?

 


2) 법담(法談)과 성스런 침묵  ▲ 위로


정사(精舍)에서의 인간의 생활은 역시 먹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면 의발을 갖추고 탁발을 나섰다. 그것은 양식을 얻기 위한 것과 아울러 또한 그들에게는 훌륭한 수행의 기회였다. 이 탁발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상세하게 설명했으므로 이제부터는 정사에서의 오후 생활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 경(남전 소부경전 3. 9 기예 技藝)은 부처님이 기원 정사에 계셨을 때의 일을 쓰고 있다.
 

[탁발을 떠난 비구들은 오전 중으로 탁발을 마치고 식사도 끝냈던 모양이다. 비구들의 하루 한번의 식사는 해가 중간에 있을 때까지 끝내야하는 것이 규칙이다. 식사를 마치고 제타 숲의 정사로 돌아온 비구들은 칼레리나무 곁에 있는 둥그렇고 지붕 붙은 뾰족한 집회소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팽팽한 긴장에서 해방되는 아주 짧은 휴식이었다. 참고로 말하면 그곳에 있는 칼레리 나무는 사향향기가 나는 장미과 식물이다. 경전에는 제타숲 정사에는 그런 나무가 있었음이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그날 집회소에 모인 비구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화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상이야기니까 좀 풀어서 말한다면 ‘모두 출가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 기예를 배웠을 것이다. 각각 어떤 기예를 배웠는가, 또 어떤 기예에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지 어디 각자 생각하는 바를 말해보자’ 는 것이었다. 이런 화제가 나오자 모두가 갑자기 웅변가가 되어 한도 끝도 없이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맨 먼저 입을 연 비구가 말했다.


“나는 집에 있을 때 코끼리 다루는 기술을 배웠다. 코끼리 다루는 기술은 아주 멋지고 누가 뭐래도 이것이 그 어떤 기예보다도 제일일 것이다.”


그러자 또 한 비구가 나섰다.
“나는 승마에 능숙했다. 뭐니뭐니해도 역시 승마가 제일이다.”


다른 비구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는 차를 다루는 기술을 자랑했고 누구는 활쏘기의 명수였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수학을 잘 했다거나 글씨를 잘 썼다거나 시를 잘 지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하여 이야기꽃이 피고, 서로 주장하면서 저녁때가 다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그 때 다른 곳에서 혼자 명상하고 있던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좀 시끄러운 듯한데 무슨 일이냐’며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한 비구가 머쓱해하며 오후에 있었던 일을 부처님께 사뢰었다.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양가의 자제로서 믿음을 가지고 집을 나와 출가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수행자들이 모여 있을 때는 오직 두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법(진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법담과 침묵. 이것이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출가자가 해야 할 오직 두 가지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출가비구란 모든 것을 내버리고 오직 한 길에 전념하고자 하여 집을 떠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3) 정사의 오후 풍경  ▲ 위로


이 경의 중요한 대목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앞에서 말한 탁발에서 돌아와 순간적인 해방감을 즐기는 비구들의 화제는 그저 너절한 세상이야기에 불과하다. 이 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날 오후 정사에서 있었던 스승과 제자의 대화모습이다. 기원정사의 모습과 규모는 그 전모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아주 사소하지만 부처님과 비구들의 집회소의 상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머물 때면 칼레리 나무 밑에 있는 방(굴)에 계셨다. 그 앞뜰에는 칼레리 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칼레리쿠리카(칼레리굴)라고 불리었다. 부처님은 그 곳에 혼자 앉아 명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맞은편에는 비구들을 위한 집회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비구들은 저녁때가 되도록 이야기꽃을 피웠고 이를 본 부처님이 ‘법담이나 침묵’이야말로 비구가 할 일이라는 교훈을 했던 것이다.


물론 비구들이 언제나 하찮은 세상이야기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비구들은 역시 자주 홀로 앉아서 성스러운 침묵 속에서 진리를 생각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또 보시(?時, 오후 4~5시경)에는 문득 명상에서 일어나 선배나 혹은 도반인 비구를 찾아가, 진리에 관한 대화 즉 법담을 하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비구들의 정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해도 스승의 설법을 듣는 일이었다. 부처님은 자주 비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 설법을 했는데 그것은 대부분 정사의 오후시간이었던 같다. 부처님을 찾아오거나 귀의자가 내방하는 시간도 오후였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 3.13 대식(大食). 한역잡아함경 42. 6)에 따르면 어느 날 기원정사로 한 방문객이 왔는데 그는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이었다. 왕은 헐레벌떡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정사로 들어왔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왕은 본래 식사를 많이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도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고 바로 정사를 찾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은 파세나디왕을 위해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항상 스스로 알아서 양을 조절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괴롭지도 않고 늙는 것도 더디고 목숨도 오래 지킬 수 있을 것이다.]

 


4) 지계제일 우파리  ▲ 위로


그러나 모두가 숲 속의 방에서 명상에 잠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그 한 예가 지계제일(持戒第一)로 알려진 우파리에 대한 부처님의 훈계에 잘 나타나 잇다. 
 

한 경(남전증지부경전 10. 99 우파리)을 보면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지계제일이라는 칭송을 받는 우파리가 어느 날 스승 앞에 나와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부처님 저도 다른 비구들처럼 아란야에 들어가 수행할까 생각하는데 괜찮습니까.”
 

아란야란 본래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의미하는 말로 중국의 번역가들은 이것을 ‘공한처(空閑處)’라고 번역하고 있다. 마을이나 촌락에서 벗어난 숲이나 황야에서 오직 혼자서 명상하는 것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자주 쓰는 수행이었다. 우파리는 자신도 그러한 수행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부처님께 그 지도를 요청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스승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부처님은 우파리에게 그런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우파리여, 아란야의 수행은 매우 어렵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살기가 어려울뿐더러, 혼자 산다는 것은 견디기가 쉽지 않다. 특히 아직 마음의 고요함을 믿지 못한 비구가 혼자 숲 속에 있게 되면 오히려 그곳은 마음을 위축시키고 의지를 빼앗기기 쉽다. 그러니 그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부처님의 이런 말들은 우파리에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아란야에서의 수행은 다른 비구가 흔히 하는 일인데 어째서 자기에게만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그의 얼굴에 역력히 나타났다. 이를 눈치 챈 부처님은 다시 이런 비유를 들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우파리야, 여기 커다란 연못이 있다고 하자. 거기에 코끼리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들어가 등을 씻고 귀를 씻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시원하고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이것을 본 토끼와 고양이가 달려와서 그 기분 좋은 목욕을 부러워하며 자기들도 연못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토끼와 고양이는 한 발을 물에 넣어보았다가 갑자기 무서워서 발을 빼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체의 크기가 코끼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부처님이 우파리에게 아란야 수행을 말린 이유는 그의 근기를 능히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파리의 근기로는 아란야 수행이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자 우파리는 그럼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다.
 

“우파리야, 너는 그냥 승가 안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도록 해라. 승가 안에 머물고 있으면 너는 언제나 안온할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결론이다. 그러면 왜 부처님은 우파리에게 승가에 머물고 아란야 수행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것은 부처님의 자상한 배려 때문이었다.
 

잘 알다시피 우파리는 샤카족 가운데서도 하층민 출신이었다. 그가 속가에 있을 때 한 일은 사람들에게 충실히 봉사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지성이나 교양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았다. 그런 그가 남들처럼 사색한다거나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다시 말해 지혜제일 사리풋타나 다문 제일 아난다처럼 되려는 것은 마치 토끼나 고양이가 코끼리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뛰어난 점은 있었다. 승가의 계율에 순종하고 규칙을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순종하는 일, 그것은 그의 자랑이었고 장기였다. 부처님이 ‘너는 승가 안에 머물도록 하라’는 말 속에는 우파리의 그러한 근기에 대한 통찰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러한 지도를 받은 우파리는 다른 제자들을 제치고 ‘지계제일’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훌륭한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정사의 오후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대체로 생각외로 한가로운 것들이었다. 다만 ‘법담이 아니면 성스러운 침묵을 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에는 어딘가 찡하는 긴장감을 가지게 되지만 그 외에는 어디에도 놀랄만한 엄숙함은 없었다. 고행의 요구도 없고 난행에 대한 권고도 없다.


아니 그 중에는 자진해서 아란야에 들어가 홀로 앉아 명상수행을 하려는 우파리에게 오히려 말리는 장면도 보았다. 우파리가 자신도 아란야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부처님은 분명하게 그리고 알아듣기 쉬운 비유로 ‘너는 승가 안에 머물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대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도’를 원리로 하는 불교의 실천을 잘 이해하는 요령이 될 것이다.

 


5) 포살이라는 행사  ▲ 위로


승가의 행사에는 포살(布薩)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오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다 지고 나서부터 행하는 것이다. 포살이란 ‘uposatha'를 음역한 것으로 달의 ‘보름. 그믐’을 가리키는 말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초생달과 만월의 저녁을 택해서 ‘바라제목차’를 외우며 허물에 대해 참회의 기회를 부여하는 행사를 했으므로 포살이라면 곧 그것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바라제목차’란 ‘프라티모크사(pratimoksa)'를 소리대로 옮긴 말로 예부터 ‘계목(戒木)’이라 번역해왔다. 즉 나란히 계목을 적어 놓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것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장로들이 기억나는 것을 암송하는 것이었다. 부처님 당시에도 그랬다. 포살의 정경을 율장<대품>2. 포살건도에 의해 구성해 보면 이렇다.
 

어느 반월(포살을 위해 날 수를 헤아릴 때는 한 달 단위가 아니고 반월을 가지고 헤아림)의 15일, 해가 지고 등불이 밝혀지자 여러 곳에 흩어져 수행을 하던 비구들이 한 곳으로 모여든다. 대중이 다 모이자 이윽고 상좌의 장로가 목청을 돋구어 먼저 바라제목차의 서문을 낭독한다.
 

[“대중이여, 들으소서, 오늘은 15일, 포살의 날이오.”
이것은 일종의 개식사이다. 이어 상좌의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내가 바라제목차를 낭송하리라. 그러니 죄 있는 자는 발로(發露)하라.”]


발로란 잘못을 드러내 말(언어)로 참회하는 것을 뜻한다. 바라제목차는 각 계목마다 세 번씩 반복해서 낭송한다. 그 방법은 ‘비구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질문하듯이 해야 한다.’ 일대일로 마주보듯이 질문하는 것이므로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한 마음으로 세 번 낭송되는 계목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는데도 죄 있는 사람이 그 허물을 고백하지 않으면 그것은 ‘고망어(故妄語)’라는 죄가 된다. 고망어란 고의로 망어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수행자임을 포기하는 것이며, 그런 자세로는, 설사 수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만일 청정해 지기를 원한다면 지금 그것을 고백하도록 해라. 고백하고 참회하면 마음은 그것으로써 평안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충 포살건도의 서문을 구성하고 있는 가르침이다. 서문에 대한 낭송이 끝나면 계속해서 계목 하나하나가 세 번씩 낭송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어떤 비구라 할지라도 만일 마을이나 공한처에서 도심(盜心)으로 가져서는 안 될 것을 가졌다면 바라이죄(교단에서 추방에 처해지는 벌)를 범한 것이다. 결코 함께 지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계목은 대중을 향해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여러 대덕에게 묻는다. 이점에 대해 청정한가? 재차 묻노니 이 점에서 청정한가? 세 번 거푸 묻노니 이 점에서 청정한가?”
 

이에 대해 모드 대중이 아직 침묵하고 있으면 다시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여러 대덕은 이 계목에 대해서 청정하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알겠다.”]
 

이렇게 낭독과 참회의 권유가 여러 차례 반복되어야 이윽고 포살의 행사는 끝난다. 그리고 법문을 듣기 위해 모인 재가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설법이 베풀어진다. 이 무렵이면 밤도 어슥해지고 천지의 정적이 모인 사람들을 감싼다. 이런 정경을 조용히 상상하면 참으로 엄숙하기 그지없고 가슴이 뭉클해 지기까지 한다. 그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집회였을 것이다.


자자(自恣)라는 의식도 있었다. 여름안거의 마지막 포살일에 행하는 이 의식은 참석한 비구들이 자진해서 대중에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자자의식 절차도 율장 <대품>4 자자건도에 자세하게 나온다. 또 한 경(남전상응부경전 8.7 자자. 한역잡아함경 45. 15 자자)에는 어느 해 여름 부처님도 참석한 자자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장면은 그야말로 엄숙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후회없는 인생, 가치 있는 인생을 살려는 수행자들에게 이러한 행사는(포살과 자자)는 아무리 엄숙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나친 것이라 할 수 없다. 그 엄숙함을 진실로 심복(心服)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감동 바로 그것이다.

 


■ 제5장. 근본불교의 지향

 


1. 부처님의 가르침에 불만을 품은 제자들

1) 신통에 대한 견해
 ▲ 위로


좀 이상한 이야기지만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스승에 대해 불만을 품었던 사람, 비판적 언동을 했던 사람도 있었다. 경전은 이들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부처님에게 불만을 품었던 제자들과의 대화를 읽어보면 묘한 재미와 함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부처님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가르침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여기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기록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 시대의 사상가나 종교가들의 주장과 어떻게 다른가를 유감없이 표출하고 있기 때문에 주목된다.


그 한 예가 리차비족의 아들 스나카타(선성)라는 인물과의 대화이다. 그는 비사리의 리차비족 출신의 양가집 자제였는데 일찍이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곁에 와서 시중을 맡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부처님에 만족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가 옛날식 종교적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종교적 성자라면 신통기적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부처님은 그런 기적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불만스러웠던 모양이다. 한 경(남전 장부경전 24 파리경 波梨經. 한역 장아함경 11. 아누이경)은 그런 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이 말라국의 아누피아라는 마을 근처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 이었다. 그때 부처님은 언제나처럼 일찍 일어나 의복을 갖추고 발우를 들고 탁발을 위해 아누피아 마을로 들어섰다. 그런데 시간이 탁발하기에는 좀 이른 듯해서 평소에 알고 있던 밧가바 고타라는 유행자의 정원에 들러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스나카타가 부처님의 교단을 떠난 사정이 거론되고 있다. 먼저 밧가바가 이렇게 물었다.


[“부처님, 어제 아니면 엊그제 일인데 리차비족의 아들 스나카타가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밧가바여, 나는 이제 부처님과 절연했습니다. 더 이상 부처님 곁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라고요. 부처님 그의 말이 사실인지요?”]


그러자 부처님은 당신의 말대로 사실이라면서 그 경위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 대목이 이 경의 주요한 내용을 이루는 것인데, 부처님의 설명은 이렇다.


[밧가바여, 엊그제 리차비족의 아들 스나카타가 나에게로 와서 인사를 하고 난 뒤 곁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부처님, 나는 이제 당신을 하직하려합니다. 나는 이제 부처님 곁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스나카타여, 예전에 언제 내가 그대에게 내게 오라고 하고, 내 곁에 있도록 하라고 한 일이 있던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말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혹시 네가 내 곁에 있겠다고 한 적이 있는가.”
“아닙니다. 부처님 그런 말을 한 적도 없습니다.”


“바로 그렇다. 스나카타여, 나는 너보고 내게 오라거나 내 곁에 있으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너도 내 곁에 있겠다고 말한 적도 없다. 만일 그렇다면 스나카타여, 너는 누구이며 누구를 버리고자 하는가. 이 시점에서 책임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부처님, 부처님은 저를 위해 인간의 힘을 초월한 신통기적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나카타여, 내가 언제 너에게 오라한 일이 있고 인간의 힘을 초월한 신통기적을 보여주겠다고 한 적이 있느냐?“
“아닙니다. 부처님,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럼 혹시 네가 나에게 부처님 곁에 머물겠으니 나를 위해 신통기적을 보여 달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아닙니다. 그런 적이 없습니다.”


“바로 그렇다. 스나카타여, 나는 너에게 내 곁에 있으면 신통기적을 보여주겠다고 한 일이 없다. 너도 나에게 부처님 곁에 있을 테니 인간의 힘을 초월한 신통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자여, 너는 누구이며 누구를 버리려고 하는가.”


그리고 나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스나카타여, 너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인간의 힘을 초월한 신통기적을 보이든 보이지 않든 내가 설한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열반에 이르는 길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느냐?”
“부처님 그렇습니다. 신통기적을 보이든 보이지 않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한다면 열반에 이르는 길을 얻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다. 스나카타여, 신통기적이야 어찌 되었든 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정녕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는 길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스나카타여, 인간의 힘을 초월한 신통기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보라. 어리석은 자여, 이 문제의 책임은 너에게 있는 것이다.”]
 

사실 스나카타의 불만은 부처님이 왜 신통기적을 보여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신통기적에만 관심이 있는 스나카타를 위해 여러 가지로 설명하려 애썼다. 그러나 부처님도 끝내 그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부처님은 이 사실을 밧가바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밧가바여, 리차비족의 아들 스나카타는 나로부터 신통기적이란 열반을 얻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듣고서도 끝내는 나의 법과 율로부터 떠나갔다.”]
 

그러면 도대체 왜 스나카타는 왜 신통기적이란 일에 그렇게 연연했을까? 이 경의 후반부에 따르면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승가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경의 전반부에서 살펴보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가 부처님 곁을 떠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결국 그가 옛날식 종교적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의 후반부를 보면 언젠가 그는 견계행자(犬戒行者)인 코라카티아란 사람을 보고 ‘그것 정말 멋지다. 이것이 바로 아라한이고 사문이다.’ 라고 칭찬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여기서 견계행자는 벌거벗은 채 생활하는 나신행외도로써 개와 같이 네발로 기어 다니며 땅에 버린 음식을 주워서 먹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스나카타는 정상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수행방법이 멋져 보였고 바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참된 성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어떤 형태의 종교에 경도되어 있었는가를 엿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예다. 그런 스나카타였기 때문에 부처님을 향해 ‘나를 위해 인간의 힘을 초월한 신통기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던 것이다.
 

이 경을 보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그것은 부처님이 깨달은 뒤 설법을 주저할 때 범천이 권청하는 내용을 기록한 경의 결론부분에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한 뒤 이렇게 그 심정을 말하고 있다.
 

[“그대들에게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있는 자는 듣고 낡은 믿음에서 떠나라.”]
 

이를 약간 부연하면 이렇다. 지금부터 불사(不死)의 문은 열릴 것이다. 그러나 이 문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오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2) 형이상학에 대한 태도  ▲ 위로


또 하나의 경(남전 중부경전 63 마라가소경 摩羅迦小經. 한역 중아함경 221 전유경 箭喩經)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불만을 품었던 어떤 제자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제타숲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머물 때의 일이었다. 그때 말룽카푸타(摩羅迦子)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혼자 앉아 사색에 잠겨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부처님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고 물리친다. 즉 세계는 영원한 것인가 유한한 것인가. 세계는 끝이 있는가 없는가. 영혼과 육체가 동일한가 별개인가. 그리고 인간은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또 여래는 사후가 있는가 없는가...  . 부처님은 이러한 것들을 나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기쁘지 않다. 나는 궁금해 견딜 수 없다. 나는 지금 부처님에게로 가서 그것을 질문하려고 한다.


만약 부처님이 나에게 세계가 영원하다고 하든 유한하다고 하든, 또는 세계는 끝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영혼과 육체가 동일하다고하든 별개라고 하든, 인간은 사후에도 존재한다고 하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든, 또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궁금한 것에 대해 답변만 해주신다면 부처님 곁에서 수행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부처님께서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수행을 포기하고 세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말룽카푸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와서 자기가 생각한 바를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부처님은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말룽카푸타여, 예전에 내가 너에게 내게로 와서 수행을 해라, 그러면 그런 문제를 가르쳐 줄 것이니,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가.”
“부처님이시여,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러면 네가 나에게 와서 수행을 할 테니 그런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
“부처님이시여, 그런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자여, 너는 누구이며 누구를 비방하려 하느냐.”
그러자 그는 머리를 깊이 숙이고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가 이 경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그리고 경의 후반부에는 부처님의 말룽카푸타에게 아주 의미있는 가르침을 베푼다. 이것이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 라고 하는 가르침인데 그 내용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한역 경전에서 이 경을 ‘전유경’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어쨌거나 부처님은 말룽카푸타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신지 경전을 보기로 한다.
 

[“말룽카푸타여,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독 묻은 화살을 맞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의 친구나 동료 또는 친척들은 그를 위해 의사를 데려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화살을 맞은 사람이 ‘나를 쏜 사람은 누구인가. 바라문인가 귀족인가, 서민인가 노예인가, 그것을 알기 전에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그는 이름은 무엇이고 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또 ‘나를 쏜 그 활은 보통 활인가 아니면 큰활인가. 또 나를 쏜 그 화살의 깃털은 무슨 털인가. 독수리의 깃털인가 솔개의 깃털인가. 아니면 공작의 깃털인가. 그것을 알기 전에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말룽카푸타여, 만약 그가 그런 것을 알기 전에 화살을 뽑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도 그는 그 이전에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말룽카푸타여, 이와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 나를 위해 세계는 영원하다든가 유한하다든가, 또는 세계는 끝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또는 사람은 사후에도 존재 한다든가 존재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문제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부처님 곁에서 수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말했다고 하자.


그러면 말룽카푸타여, 세계는 영원하다 라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청정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세계는 끝이 있다는 견해를 가져도 범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룽카푸타여, 세계가 영원하다하여도, 또는 세계가 유한하다하여도 역시 태어남(생)은 있다. 늙음도 또한 불가피하다. 근심과 슬픔, 괴로움과 번민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따라서 나는 현세에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를 가르치는 것이다.
 

말룽카푸타여, 세계는 끝이 있다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계는 끝이 없다는 견해를 가져도 범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룽카푸타여 세계가 끝이 있든 끝이 없든 역시 태어남은 있고, 늙음과 죽음도 또한 불가피하다. 근심과 슬픔, 괴로움과 번민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따라서 나는 현세에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룽카푸타여, 내가 설명하지 않았던 것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또한 내가 이미 설명했던 것은 또한 그대로 받아들여라.
 

말룽카푸타여,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세계가 영원하다든가 유한하다든가 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세계가 유한하다든가 무한하다든가 또는 세계는 끝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문제를 설명하지 않았다. 말룽카푸타여, 왜 내가 그런 것들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겠는가.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범행의 근본도 되지 않고 염리(厭離), 이탐(離貪), 멸진(滅盡), 적정(寂靜), 예지(叡智,) 정각(正覺), 열반(涅槃)에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것들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말룽카푸타여,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생기게 하는 원인이다. 그리고 이것은 멸진의 상태다. 이것이 괴로움이 멸진에 이르는 방법이다’ 라는 것을 설명했다. 말룽카푸타여, 내가 왜 이런 것들을 설명했겠는가. 그것은 도리에 맞고 범행의 근본이고 염리, 이탐, 멸진, 적정, 예지, 정각, 열반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것을 설명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룽카푸타여, 내가 설명하지 않았던 것은 그냥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 내가 이미 설명했던 것은 그대로 받아들여라.”]
 

이 말씀으로 그동안 가르쳐온 방법에 불만을 품었던 말룽카푸타는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기쁨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비로소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갖지 않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그 하나는 말룽카푸타가 질문했던 몇 가지 논제 즉 ‘세계는 영원한가 유한한가, 세계는 끝이 있는가 없는가, 육체와 영혼은 동일한가 별개인가, 사람은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하는 것은 당시의 종교가 사상가들의 논쟁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전유경>에서는 이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 14가지를 나열해 놓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이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부처님의 관심이랄까 입장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부처님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처님의 일관된 관심은 그런 논쟁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괴로움의 해결에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무엇이 아닌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2. 내방자들의 질문

1) 여러나라로 부터 온 내방자
 ▲ 위로


여러 나라로부터 찾아와
나를 보고자 하는 사람
그들의 질문을 막지 말라.
이제 나의 시간이 왔도다.( 1037)


여러 나라로부터 찾아온
많은 사람들 모두들
부처님은 즐겁게 맞으셨다.
한 번도 그들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1038)


이 두개의 시는 <테라카다(장로게경)>에 나오는 것이다. 앞의 시는 아난다가 직접 들었던 부처님 말씀에 대한 기억이며 뒤의 것은 그 말씀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읊은 것이다. 이 두개의 시가 말하듯이 부처님 그 분에게는 여러 나라에서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설법을 듣고자 찾아왔다. 부자와 가난뱅이, 신분이 높은 자와 낮은 자, 남자와 여자 등 가리지 않고 왔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출가해서 제자가 되려는 사람도 있었고 질문을 던져 논쟁을 하거나 도전을 해보려는 자도 있었다.


이런 각양각색의 방문자에 대해 부처님은 그들 모두를 친절하게 맞았으며,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부처님이 내방객을 맞아 대화할 때의 방법은 그야말로 활달 자재한 것이었다. 질문자의 수준과 내용에 따라 적절한 답변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만족한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부처님이 내방자들을 만나 대화하는 방법은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였다.
 

첫째는 일향기(一向記)라는 것으로 이은 단정적인 대답을 말한다. 예를 들면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죽는다.’ 라고 단정해서 대답하는 것이다.
 

둘째는 분별기(分別記)라는 것으로 조건에 따라 대답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윤회하는 자는 모두 죽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번뇌가 있는 자는 윤회하고 없는 자는 재생하지 않는다.’ 라고 조건을 붙여 구분해 주는 것이다.
 

셋째는 반문기(反問記)로써 되물어서 대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은 월등 한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무엇과 비교해서 인가.’ 라고 다시 묻고 질문자가 ‘하늘과 비교해서,’ 라면 ‘열등하다.’  하고, ‘짐승과 비교해서,’ 라고 하면 ‘월등하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넷째는 사치기(捨置記)로서 질문 자체가 무익한 것이라면 어느 것에도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형이상학이나 신통력에 관한 질문은, 문제의 핵심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고 그것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아함경전들을 보면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 예에 해당하는 것이 숱하게 많이 나온다. 부처님을 찾아와 질문했던 사람이 수없이 많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이런 대답을 통해 무엇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 혼자만의 행복인가  ▲ 위로


한 경(남전 증지부경전 3. 60傷歌邏經. 한역 중아함경 143 상가라경)은 어떤 사람이 내방해 매우 당돌한 질문을 하고 있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제타숲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머물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때 그곳에 상가바라라는 바라문 청년이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사문 고타마여, 우리는 바라문으로서 자진해서 공물을 올리고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공물을 올리게 합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사문 고타마여, 당신의 제자들은 머리를 깍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나와 집 없는 수행자가 되어 자기 혼자 마음을 조어(調御)하고 번뇌를 끊고 자기만 괴로움을 멸진시키는 수행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과 제자들은 혼자만의 행복을 위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까?”]
 

이 젊은 바라문의 말에는 분명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가는 길에 대한 비난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부처님의 길을 ‘혼자만의 행복을 위한 길’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을 위한 행복의 길’과 비교할 때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니냐는 힐난의 뜻도 포함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어떻게 대답 했을까? 부처님은 즐겨 사용했던 반대 질문법으로 그 청년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바라문이여, 그럼 그것에 대해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당신의 생각대로 솔직하게 대답하여라. 바라문이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세상에 여래, 응공, 정각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이것은 길이다. 이것이 실천법이다. 나는 이 길을 가고 이 실천법을 수행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너희들도 또한 이 길을 가고 이 실천법을 수행해서 모든 번뇌를 멸진시키고 마음이 자유로워지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들도 함께 와서 그 길을 가고 그 실천법을 닦아서 모든 번뇌를 멸진시키고 마음의 자유로움을 얻었다고 하자. 이렇게 그 스승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펴고,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위해 가르침을 펴, 번뇌를 멸진시키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 사람이 수천, 수만에 이른다면 어떻겠느냐.


바라문이여, 나와 나의 제자들이 이와 같은 길을 간다면 혼자만의 행복의 길을 간다고 하겠느냐,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길을 간다고 하겠느냐.]
 

부처님의 반문을 받은 상가라바는 금방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부처님, 그렇다고 하면 당신의 제자들이 머리를 깍고 가사를 입고 집을 나와 수도 생활을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결코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 수행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바라문 청년의 질문에는 출가수행자들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반적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깊은 관심과 흥미를 느끼게 된다.

 


3) 혼자서는 못 산다  ▲ 위로


널리 알려져 있는 <담마파다(법구경)>의 한 게송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자기가 의지 할 곳은 자기뿐이고 그 밖의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자기가 잘 조어되어 있다면 사람은 가장 훌륭한 의지처를 얻은 것이다.(160)]
 

부처님이 가르친 길은 자기 형성의 길이다. 부처님이 상가라바라는 바라문 청년에게 했던 말씀 중에 ‘나는 이 길을 닦음으로써 번뇌를 끊고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너희들도 이 길을 닦음으로써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의 자유를 얻도록 하라.’는 것도 바로 자기 형성의 길에 다름 아니다.
 

이 같은 자기형성의 길이란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길이란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분명 혼자의 길이다. 다만 인간세계의 기묘한 구조는 그런 ‘혼자의 길’을 끝내 혼자의 길로써 끝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부처님이 설법을 결심하는 경전에 (남전 상응부경전 6.2 공경. 한역 장아함경 44.11 존중)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을 여기서 중복하고 싶지는 않지만 각도를 바꾸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부처님은 오랫동안 마음의 탐구 끝에 이윽고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했다. 그런지 얼마 안 되어 부처님은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커다란 아자파라니구로다 나무 아래에 단정히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부처님의 가슴에는 사유하는 인간의 기쁨이랄까, 깨달음을 성취한 기쁨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무렵, 부처님은 문득 어떤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던 것 같다. 경전은 그때의 심경을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존경할 곳도 없고, 공경할 것도 없는 삶은 두렵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가까이 살아야 하는가?’]
 

물론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기쁜 일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자기와 같은 깨달음을 이룬 사람이 아무도 없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물론 없다면 그것은 매우 외롭고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우리는 앞에서 ‘정각자(正覺者)의 고독‘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부처님이 바로 그랬다. 그래서 자기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고 존경할 만한 수행자나 바라문이 있다면 그 곁에 가서 제자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처님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누구라도 사람을 의지할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오히려 깨달은 진리야 말로 존중하고 숭경하여 의지할 곳으로 삼고, 그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바로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 그것이 곧 설법이었다. 부처님에게 있어 설법이라고 하는 새로운 과제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이 드디어 설법자로 일어서게 된 경위를 ‘권청’이라는 제목의 경은 참으로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범천권청’의 진상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약간 각도를 달리해서 문제를 생각해보자. 자기 혼자서 가슴 속에 새로운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어째서 불안하다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어째서 설법인가 하는 점이다.


문제를 여기까지 추궁하다 보면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인간은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는 유명한 ‘인간은 그 본성에서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옳다. 아니 그 증거를 멀리 그리스까지 가서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 흔히 사용하는 ‘인간(人間)’이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이란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자체가 복수명사이다. 사람과 사람사이 즉 사람 사회를  뜻하는 말이 ‘인간’이고 그것이 그대로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람이란 ‘사람들 사이’에서라야 살 수가 있다. 물질적으로도 그러하지만 정신적으로도 그러하다. 부처님이 깨닫고 얻은 것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해서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상이란, 그것이 표현되고 객관화되어야 비로소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 자신이 그 깨달음을 짊어지고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그것을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즉 설법하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부처님은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만민을 위하여 법을 설하게 되었다. 경전의 표현을 빌리면 ‘부처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 설법하고,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위해 설법하고, 그리하여 사람들이 이 길을 닦고 실천하면 번뇌를 멸진하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 자는 수천수만에 이르게 된다.’ 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들은 상가바라라는 바라문 청년이 ‘부처님 제자들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을 나와 비구가 되어 수행을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가는 것이며, 결코 혼자만의 행복을 위하여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라고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4) 자기형성의 길  ▲ 위로


또 한 경은(남전 상응부경전 42.6 서지인西地人. 한역중아함경 17 가미니경) 다음과 같은 방문자의 질문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이 날란다의 파바리칸바 숲에 머물 때의 일이었다. 그 무렵 아시반다카푸타라는 마을의 촌장이 부처님을 찾아와 예배하고 곁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서쪽에서 온 바라문들은 물병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백합의 화환을 달기도 하며, 물에 들어가 깨끗이 씻기도 합니다. 또 불길에 순종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이름을 불러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하기도 합니다. 부처님 당신은 세존이시고 응공이시며 정등각이십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도 사람들이 몸에 병이 들어 목숨이 끝난 후 천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도록 해 주실 수 있는지요?”]


그때 부처님이 있었던 날란다라는 마을은 라자가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그 당시 인도에서 동쪽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였다. 이 부근의 아시반다카푸타라는 마을의 촌장이 ‘서쪽에서 온 바라문들’이라고 한 것은 좀 더 서쪽에서 온 본 고장의 바라문이라는 의미로서였다.


그 바라문들은 수정행자이거나(修定行者) 배화교도들로서 그들은 정해진 의례를 행하고 사자를 불러일으켜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한다고 선전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이 마을의 촌장은 부처님에게도 ‘당신은 세존이시고 응공이며 정등각자이시니 과연 죽은 자를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던 것이다.

 
이러한 물음도 말할 것 없이 옛 사람들의 종교 관념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부처님에게도 그러한 것을 시험하려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어떠한 답변을 했던가, 이는 매우 흥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경전의 기록을 좀 더 인용해 보자.
 

[촌장이여, 거기에 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기 바란다.]
 

이러한 질문은 부처님이 즐겨 사용했던 반문법의 하나였다.
 

[“촌장이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자이며, 남이 주지 않는 것을 훔치는 자이며, 사악한 쾌락에 빠진 자이며, 거짓말, 이간질, 욕설, 불성실한 말을 하는 자이며, 욕심이 많고 심술 굿고 그릇된 생각을 하는 자였다고 하자. 그런데 그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이 사람의 몸에 병이 들고, 죽은 다음에는 부디 하늘나라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하고 기원을 했다고 하자. 그들은 또 합장을 하고 어떤 주문을 외우며 그 사람 주위를 빙빙 돌았다고 하자.


촌장이여, 이 경우 당신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합장기도와 예천의 힘으로 생명이 끝난 후 과연 하늘나라에 태어날 수 있겠는가?”


“부처님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그러면 여기에 어떤 사람이 커다란 바위를 깊은 호수에 던졌다고 하자. 그런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바위야, 어서 떠올라라. 어서 떠올라라.’ 하면서 그 바위가 떠오르기를 합장기도하고 예배하고 찬탄하며 그 주위를 돌았다고 하자.


촌장이여, 이 경우 당신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커다란 바위가 많은 사람들의 합장기도와 예배와 찬탄의 힘으로 과연 물위로 떠오르겠는가?”


“부처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촌장이여, 그와 마찬가지니라.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는 남의 목숨을 빼앗고 남의 물건을 훔치고, 사악한 생활을 하고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설사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를 위해 예배하고 기도하고 합장하고 예찬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병들어 죽은 다음 육도를 윤회하게 되고 악도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말씀을 한 부처님은 다시 촌장에게 물었다.
 

[그러나 촌장이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남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삼가고 훔치는 일을 삼가며 사악한 쾌락에 빠지는 일을 삼가며, 거짓말을 하거나 이간질, 욕설, 불성실한 말을 삼가며 욕심 부리지 않고 심술궂지 않으며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착한 사람이 죽은 뒤 사람들이 몰려와 그 주위를 돌며 ‘이 사람이 나쁜 곳에 떨어지게 해 달라.’고 합장하고 기도했다고 하자.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많은 사람의 기도대로 생명이 끝난 뒤 과연 나쁜 곳에 떨어지겠는가?”


“부처님, 그런 일은 없습니다.”


“촌장이여, 이를테면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는 기름을 넣은 병을 깊은 호수에 던져 깼다고 하자. 그러면 그 병 속에 있던 기름은 물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몰려와 ‘기름아 가라앉아라. 아래로 가라앉아라. 아래로 내려가라.’라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합장하고 그 주위를 돌았다고 하자. 그러면 촌장이여,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과연 기름은 사람들의 기원대로 가라앉겠느냐?”


“부처님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 어떤 사람이 남의 생명을 뺏는 일을 삼가고, 훔치지 않으며 사악한 쾌락에 빠지는 일이 없으며, 거짓말을 모르고 성실하며 욕심이 없고 심술궂지 않으며 바른 생각을 가졌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죽은 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합장하고 나쁜 곳에 떨어지기를 기도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그는 역시 천상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기름이 물위로 떠오르듯이.”]


여기까지 읽고나면 우리는 무엇인가 문득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다. 그리고 문득 그리스의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양육하는 것이 희망이다.’ 라는 말이다. 만일 인간이 죽은 뒤 그 이름을 불러 기도하여 하늘 나라에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처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서쪽에서 온 바라문은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이 질문자는 그러한 희망과 믿음을 전제로 부처님을 정등각자이고 세존이며 응공이니까 당연히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부처님은 좀 길기는 하지만 반대 질문을 통해 그의 생각이 어리석은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부처님은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는 문제지만, 그 희망과 믿음을 바른 길로 인도해서 이성에 의한 자기형성의 길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3. 여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

1) 순리를 따르는 도
 ▲ 위로


여기서 다시 한 번 부처님을 찾아온 어떤 내방자와 오고간 명쾌한 문답 한 가지 더 살펴본다. 다음 경(남전 중부경전 107산수가목건련경 算數家木犍連經. 한역중아함경 144 산수가목건련경)은 부처님이 사밧디의 동쪽 숲 미가라마스 파사나에 계실 때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어느 때, 가나카 목갈라나라는 바라문이부처님을 찾아와 인사하고 그 옆에 앉아 이런 질문을 던졌다.
“부처님, 제가 여기로 오는 데도 순서대로 걸어야 할 길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문으로 하는 산수에서는 순리를 따라 공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당신이 가르치는 진리와 계율에서도 순리를 공부하는 방법이라든가 그런 길이 마련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나카 목갈라나는 한역에서 번역하고 있는 그대로 산수를 잘 하는 목건련이었다. 그는 사리풋타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마하 목갈라나와는 또 다른 인물로써 대단한 산수의 전문가였던 듯하다. 그의 질문도 매우 전문가다운 측면이 보이고 있다. 방문자의 이런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은 긍정적인 것이었다.
 

[“바라문이여, 물론 내가 가르치는 진리와 계율도 순리를 쫒아 공부하는 방법과 그런 길이 마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능숙한 조마사가 좋은 말을 가지면 먼저 그 머리 부분을 단련하고 정확하게 붙들어 맨다. 그리고 나서 여러 가지 조절을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바라문이여, 나 또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면 먼저 그가 성스러운 종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 즉 비구에게는 먼저 계율을 구족할 것을 가르친다.”]

 
이렇게 말문을 연 부처님의 설명은 잠시 동안 계속된다. 이를테면 그들은 먼저 마땅히 계를 구족한 자가 되라고 교시한다. 그것이 되면 다음에는 육근(눈 귀 코 혀 몸 의식)의 문을 잘 지키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비구들에게 식사의 양을 조절해서 탐욕하지 않고 바른 생각으로 식사를 하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만약 수행자들의 아란야에 앉아서 탐욕을 잃고 분노를 잃고 혼침을 떨치고 불안을 떠나 의혹을 벗고 지혜로서 번뇌를 제거하게 한다. 나아가서는 모든 집착과 불선(不善)을 떠나 무상안온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가르친다.
 

이 대목을 읽으면 부처님이 어떤 과정과 방법으로 제자들이 가르쳤는가를 알 수 있다. 즉 먼저 계를 받아 지니도록 하고 육근을 단속하는 훈련을 하며, 식사에 탐욕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친다. 아울러 아란야에 혼자 머물 때는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하는가를 자세히 일러주셨다. 부처님이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한 순서를 말하는 것을 들은 가나카 목갈라나라는 바라문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럼 부처님, 이런 점은 어떻습니까. 부처님이 가르치는 대로 수행하는 제자들은 과연 모두가 다 궁극의 목표인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내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가르침을 잘 따르기 때문에 궁극의 목표인 열반에 이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자 바라문은 다시 물었다.
“부처님, 정녕 열반이라는 것이 있고,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고, 또 부처님께서 그곳으로 인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어떤 원인과 어떤 인연이 있기에 누구는 열반에 이를 수 있고, 또 누구는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그 문제에 대해서 내가 먼저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너의 생각을 솔직하게 대답해 주기 바란다. 바라문이여, 너는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부처님이 상대방과 토론을 하거나 설득을 시키고자 할 때 자주 사용하는 크로스퀘션, 즉 반문법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사밧티에서 라자가하에 이르는 길은 당시 중인도에서는 간선도로였다. 수학자인 바라문이 그 길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잘 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바라문이여,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어떤 사람이 너에게로 와서 그 길을 물었다고 하자, 그러면 길을 잘 아는 너는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라자가하로 가는 길이요. 얼마쯤 가다보면 이러 이러한 마을이 있을 것이요. 거기서 좀더 가면 이러이러한 거리가 있을 것이요... 그곳을 지나 잠시 더 걸어가면 마침내 아름다운 동산과 연못이 있는 라자가하라는 도시에 이를 것이요.’ 라고. 길을 묻는 사람이 당신의 말을 믿고 그 길로 간다면 그는 라가가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길을 잘못 알고 엉뚱한 곳으로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이처럼 정녕 라자가하라는 도시가 있고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고 또 친절하게 그 곳에 이르는 길을 가리켜 주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원인과 인연으로 누구는 그 곳에 안전하게 도착하고 누구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인가?”
 

“부처님,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길을 가리켜 줄 뿐이지요.”


“바라문이여, 그와 같은 것이다. 정녕 열반이라는 것이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고, 또 그곳으로 인도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바로 인도자이다. 내 제자 가운데는 나의 말을 믿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수행하여 마침내 궁극의 목표인 열반에 도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개중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바라문이여,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다만 길을 가리키는 사람일 뿐이니라.”]
 

‘나는 다만 길을 가리키는 사람일 뿐이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이 문답의 결론으로 한 말이다. 이 경을 처음 대할 때 우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그분은 왜 좀 더 자상하게, 어떤 종교가처럼 자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왜 ‘여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 경에서 부처님이 분명히 말씀한 어쩌면 냉정하기까지 한 그 말씀은 몇 번이고 음미하다보면 그 속에 참된 도리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사랑을 더듬으면서 또, 실천을 위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살펴오는 동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그것은 부처님이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이 매우 독특하다고나 할까 하여튼 기존의 종교가와는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방법’이란 영어로는 메서드(method)인데 그리스어인 ‘메토도스(methodos)'란 말은 원래 ‘메타(meta:after) +호도스(hodos:way)’ 즉 ‘길을 따라서’란 뜻이다. 우리는 지금 ‘부처님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부처님의 방법에 가장 적합한 표현이 바로 메토도스 즉 ‘길을 따라서’란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말에서 부처님은 열반이라는 목적에 이르는 방법은 길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공부하는 순서가 있느냐는 수학자 가나카 목갈라나라는 바라문의 질문에 부처님의 대답은 ‘나의 가르침에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의심을 풀기 위해 좀 더 자세하게 비유를 들어 설명 하고 있다. 사밧티에서 라자가하에 이르는 당시 인도의 간선도로를 예로 들면서 그 길로 가면 라자가하에 이를 수 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면 마침내 궁극의 목표인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부처님이란 분은 어떤 길을 가셨던 분일까?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사유하여 그와 같은 사상체계에 도달하신 것일까? 우리는 지금 그러한 길, 그러한 사유, 그러한 사상과 실천방법을 물어볼 수는 없는 것일까?

 


2) 불교는 ‘지혜의 길’  ▲ 위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우리가 더듬어 온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생각해 보면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 35.23 일체. 한역잡아함경 13-17 생문일체 生聞一切)이 있다. 이 경은 이미 우리가 앞에서 한 번 읽어 본 적이 있는 경이다.
 

[어느 때 부처님은 언제나처럼 사밧티성의 교외인 제타 숲에 있는 정사에 계셨는데 비구들에게 이렇게 설법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일체라고 하는가. 그것은 눈(眼)과 물질(色)이다. 귀(耳)와 촉(觸)이다. 생각(意)과 관념(法)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컬어 일체라고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사람이 ‘나는 이런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말하였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다만 하나의 빈 말일뿐, 다른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곤란에 빠지게 된다.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있지 않은 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은 이상의 이야기만 기록된 짧은 경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실로 중대한 말이다. 왜냐하면 방금 부처님이 말한 것을 떠나 다른 무엇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에서 부처님이 말한 눈, 귀, 코, 혀, 몸, 생각 등 여섯 가지는 이른바 육근 즉 인간에게 구비되어 있는 감각기관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감각과 오성의 총체다. 이에 비해 물질, 소리, 향기, 맛, 감촉, 관념 등 여섯 가지는 이른바 육경으로, 인간이 가진 육근에 대응하는 인식의 객체 즉 대상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일체’ 란 그러한 인식의 주체와 객체의 상관관계에서만 존재한다.
 

그밖에는 설사 그 존재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언어를 희롱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이 경에서 부처님이 강조하고자 하는 취지다. 이 설법은 지극히 짧고 소박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세계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다만 ‘인간에 의해 존재하는 세계’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밖에 어떤 세계를 말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모순에 빠져 다른 사람의 질문을 받으면 적절히 대답할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처님의 세계 이해가 자각적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부처님의 불교는 예부터 ‘법(法)의 종교’로 이해되어 왔던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라는 종교는 옛부터 ‘불법’이라 칭해져 왔다. 여기서 불교는 ‘법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불교는 곧 인간의 입장에서는 종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란 세계의 자기법칙성으로서의 법이며, 또는 거기에 근거해서 설립된 부처님의 교법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세계의 자기법칙성 으로서의 법은 따지고 보면 인간에 의해 파악되고 인간에 의해 사유된 것이다.
 

인간이 세계에 대해 생각할 경우 근원적으로 오직 두 가지 형이 있다. 하나는 그것을 ‘만들어진 세계’로 보는 사고방식이다. 조물주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존재를 만들었다는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그것을 ‘존재하는 세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여기서는 조물주란 애당초 없기 때문에 다만 그 존재의 방법이 문제의 중심이 된다.


세계의 자기법칙성이란 이런 것이라고 할 때 그렇게 파악된 세계의 자기법칙성으로서의 법도 따지고 보면 인간에 의해 파악된 것이고, 인간에 의해 사유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부처님에 의해 전래가 시작된 불교라는 종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에 머무르면서 인간에 의해 사유된, 인간문제의 해결방법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서는 먼저 인간이 관찰하는 눈을 밝게 해서 존재를 관찰하고 자기법칙성을 분명히 한다. ‘연기의 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 마찬가지로 투철한 관찰안으로서 인간 그 자체를 관찰하고 분석해서 그것을 여러 요소로 나눈다. 오온이라고 하거나 육처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분석의 결과이다. 나아가서 다시 그러한 결과에 근거해서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또한 어떻게 하면 그런 이상적 인간상을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실천적 체계를 세우게 된다.


중도, 사제, 팔정도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이 불교의 전구조이다. 근본불교, 다시 말해 본래의 불교는 이 밖에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단순한 것 같은 그 속에 사실은 모든 불교의 진실이 담길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만년에 불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남전 상응부경전 47. 13 순타 純陀. 한역 잡아함경 24. 39 순타)
 

[자신을 섬(洲)으로 하고, 자신을 의처(依處)로 하되 타인을 의처로 하지 말라. 법을 섬으로 하고 법을 의처로 하되 다른 것을 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부처님은 필경 당신이 열반에 든 후의 일을 염려하여 비구들을 위해 이 같은 교계(敎誡)를 내렸음이 틀림없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비구들의 자세와 함께 수행자들이 걸어야 할 길의 기본적 성격이 무엇보다 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후세의 불교인들도 역시 이것을 ‘자신에 귀의하고 법에 귀의 하라(自歸依 法歸依)’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교가 이러한 성격의 종교라는 것은 옛날부터 ‘지혜의 도(道)’라는 말로 표현되어져 왔다.
 

불교가 성장했던 인도의 사상계에서는 예부터 종교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서 생각해왔다. 그 세 가지 유형이란 첫째 제사(제사)의 도, 둘째 지혜의 도, 셋째 신애(信愛)의 도이다. 이 가운데 불교는 두 번째인 지혜의 도에 속하는 가장 전형적인 종교였다.
 

‘제사의 도’에 속하는 종교는 제사의례에 최고의 중점을 둔다. 여기서는 의례집행이 바르게 이루어지면 신들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제자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신애의 도’에 속하는 종교에는 헌신과 사랑의 속성인 의지할 만한 인격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신을 믿고 사랑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가 있다고 기대했다. 힌두교가 그 같은 종교 였다.


이에 비해 ‘지혜의 도’에 속하는 종교는 인간의 지혜에 최고의 중점이 놓여 있다. 세계와 인생을 지혜로써 바르게 파악한다. 인간의 당위와 이상을 지혜로써 바르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실현을 위한 길 역시 지혜로써 바르게 이끌어 간다. 불교가 바로 이와 같은 종교였던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그 지혜로서 어떻게 해서 세계와 인생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감성의 표상능력과 오성의 사유능력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직관과 분석에 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식으로 또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관찰과 분별에 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인생을 파악하는 방법은 이밖에 다른 것이 없다고 해도 좋다. 즉 투철한 관찰자로서 여실하게 지견(知見)할 것, 주도면밀한 분별로서 여러 가지 요소를 분석하라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관찰과 분석에 있어 불교를 하는 사람들의 그것은 매우 정교하고 세밀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옛날의 불교학자들도 ‘불교는 분별의 가르침이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면 부처님은 이런 인간의 현실을 어떻게 관찰하고 분석했는가?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거니와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불교의 술어 가운데 ‘오온(五蘊)’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부처님에 의해 파악된 인간분석의 결과를 함축한 말이다. 여기서 ‘온(縕)’이란 ‘어떤 부분’ 또는 ‘요소’라는 의미의 말이다. 부처님은 인간을 육체(색)와 감각(수)과 표상(상)과 의지(행)와 의식(식)의 다섯 가지로 분석한다. 이런 분석방법은 인간을 의식성립의 흐름에 따라 여러 단계를 배열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중요한 것은 부처님은 이 다섯 가지 요소 외에는 항상 하는 존재로서의 영혼이라든가 자아라든가 하는 것을 전혀 설정한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불교의 술어 가운데는 또 ‘육처’라는 것이 있다. 이것 또한 부처님에 의해 파악되었던 인간분석의 결과를 나타낸 말이다. ‘처(處)’란 ‘접촉하는 곳’이란 정도의 뜻이다. 이것은 이미 언급한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그 객체인 대상에 관여하는 방법과 관계가 있다. 즉 인간 쪽에서는 육근, 대상 쪽에선 육경이 서로 상응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앞에서 ‘일체’라고 제목이 붙은 경에서 부처님이 내린 결론 가운데 ‘비구들이 이것을 일러 일체라고 한다.’ 라고 한 말은 그냥 가볍게 흘려버릴 말이 아니다.
 

이 밖에도 불교하면 십이연기, 사제 그리고 팔정도와 같은 용어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용어들은 세계와 인생을 여실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파악해낸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옛날의 불교학자들이 불교를 분별의 가르침이라고 말했던 것은 수긍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 제6장. 결 언

 


1. 설법의 기본태도  ▲ 위로


부처님은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는 여행과 설법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부처님이 성도하던 때의 나이가 35세, 열반에 들었을 때의 나이가 80세이니까 무려 45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낸 셈이 된다. 그것은 젊은 예수가 신의 계시를 받고 겨우 3년 동안 사람들을 위해 가르쳤던 것과 비교할 때 매우 긴 세월이었다. 예수가 홀연히 나타나서 홀연히 떠나갔다면 부처님 그분은 오랜 세월 동안 쉬지 않고 광막한 인도의 곳곳을 누비며 지혜의 가르침을 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거의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부처님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상의 근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설법을 폈다. 이를 소위 ‘대기설법’이라 한다. 이 설법에는 실로 많은 비유가 동원되고 있다 알아듣기 쉬운 비유의 설법이야말로 부처님의 설법에 한 특징을 이룬다. 이 설법에는 실로 많은 비유가 동원 되고 있다. 알아듣기 쉬운 비유의 설법이야말로 부처님의 설법에 한 특징을 이룬다.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 몇 가지는 아예 비유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도 있다. 이미 앞에서 예로 든 바 있듯이 독화살에 비유한 <전유경>을 비롯해 헝겊을 비유한 <포유경>, 밧자를 위해 불의 비유로 설법한<밧자향다화유경>등은 비유 설법의 대표적 경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들은 아무리 여러 가지라 하더라도 그 바탕은 언제나 정연한 것이었으며 혼란스럽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전을 읽더라도 그것이 언제쯤의 설법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이는 예수의 설교가 짧은 기간임에도 그 전반과 후반이 현격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물론 부처님의 설법도 쉽게 그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전은 젊은 시절의 부처님을 연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성도를 한 부처님이 설법을 주저하는 모습을 묘사한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 12 사자 獅子. 한역 잡아함경 39.21 사자)이다. 이 경은 부처님이 설법자로 나서기 전의 두려움이랄까 주저함이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연대기적으로 보면 분명히 젊은 정각자의 모습이 분명하다. 장년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 4.20 통치 統治. 한역 잡아함경 39.19 作主)은 부처님이 잠시 권세와 재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부처님은 이상의 정치형태에 대해 생각했던 모양이다. 살생 없는 통치, 누구에게나 억울함을 주지 않는 통치, 그러한 정치는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부처님에게 악마가 나타나  ‘당신이 스스로 통치에 나서보라.’ 고 속삭였다.
"부처님은 지금 무엇이든지 뜻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결심만 한다면 저 설산을 변하게 해 황금이 되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시로 악마의 유혹에 대답했다.


저 설산을 황금이 되게 하고
다시 또 그 두 배가 되게 한다 하여도
능히 한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는 없다.
이것을 안다면 사람들이여 바르게 행동하라.]


이것은 세속적 권력에 대한 욕망을 암시한다. 부처님의 이러한 생각은 아마도 장년 이후 정신적 가르침만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데 한계를 느낀 나머지 한 번 떠올려 본 생각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경전에서는 이미 늙어서 쇠약해진 애처로운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어떤 경전에서는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리풋타와 대화하는 장면도 있다. 이 경은 부처님이 아직 만년에는 이르지 않은 것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경전의 배경을 통해 설법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에서 사상의 변화나 또는 태도의 변화를 찾아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사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미일관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부처님 만년의 설법에서 약간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입멸을 앞둔 마지막 수개월 동안의 여행과 죽음을 기록한 한 경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설법에는 역시 다른 경전에서 볼 수 없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다. 물론 여기에도 부처님의 설법 바탕은 역시 불변적인 것이다. 그런 뜻에서는 새로운 변화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은 이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그 사랑하는 제자들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되었다. 이러한 것이 예상되었을 때 당연히 부처님의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당신이 없는 교단의 장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루어진 부처님의 설법에는 역시 다른 경전에서는 보기 어려운 긴장의 빛이 나타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부처님은 듣는 사람의 근기에 알맞은 설법을 하기 위해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해야 할 일도 우회적으로 말하거나 양보해서 말한 적이 많다. 예컨대 최초의 재가신자가 된 야사의 부모에 대한 설법은 출가자들에 했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차제설법이라 한다. 이 설법은 죽은 후 하늘 나라에 태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부인하려고 하기보다는 널리 베풀고 선행을 닦음으로서 생천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 <육방예경>에서 보듯이 여섯 방향으로 예배하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습관을 그대로 지키도록 했다. 다만 예배의 뜻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냉철한 이성으로 파악한 진리를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본래의 정연한 논리체계를 흩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어느 정도 양보를 하면서 설득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정은 이제 좀 달라졌다. 부처님 당신이 열반에 든 후 지혜의 가르침을 어떻게 확대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부처님이 생존해 있을 때는 직접 찾아보고 의문 나는 일이 있으면 물어보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만 부처님이 안 계신 세상에서는 무엇인가 의지할 대상, 또는 표준이 필요하다는 요구이기도 했다. 부처님의 입장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면 직접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입멸 후에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어떤 표준을 제시해 두어야 했다. 이런 상황이 <유행경>에 나타난 과제이다.

 
부처님의 마지막 여행은 오랜 전도의 거점이었던 라자가하를 출발해 북쪽으로 향하여 비사리를 지나 쿠시나가라의 말라족의 땅인 사라나무 숲에 이른다. 여기서 임종을 맞이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그 기간 중에 비사리에 이르렀을 때 우기가 시작되어 그 곳에서 안거에 들어갔다.

 
인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무서운 습도와 숨 막히는 기온이 그것이다. 부처님이 비사리에서 여름 안거를 보낼 때도 그랬다. 늙고 쇠약한 부처님이 이 마지막 안거를 보내면서 무서운 병에 걸렸다. 그 병은 너무나도 무서운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어서 노쇠한 부처님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있는 힘을 다해 그 고통을 참으면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였다. 그 때 부처님은 고통을 참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 경(남전대반열반경 2. 23. 한역유행경 2.)은 기록하고 있다.

 
[지금 내가 제자들에게 말하지 않고 최후의 말을 남기지 않고 죽는다면 그것은 내가 평생 해온 일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 하든 노력해서 이 병을 참고 수명을 보존해야 한다.]

 
어떤 비장함까지 엿보게 하는 이 기록에는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광명의 불꽃으로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베풀고자 하는 늙은 스승의 의지가 역력히 보인다. 그러면 과연 이때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비와 지혜의 길’을 걸어가려면 사람이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할 곳이 (의지처) 어디인가에 관한 것이며, 또 그 길을 함께 가려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단의 존재형태에 관한 타협 없는 원칙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부처님이 평생 동안 가르쳐 온 모든 불법을 압축적으로 규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2. 진리 앞에서의 평등  ▲ 위로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끝까지 제자들을 위한 가르침으로 연소시켜야 겠다는 부처님의 의지는 혹심한 병고를 참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때 부처님의 시봉이었던 아난다는 스승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이제 다시 원기를 회복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병이 심하셨을 때 저는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지고 사방이 캄캄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부처님께서 교단에 관해 말씀하는 유훈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정도 마음의 안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난다가 부처님에게 했던 말뜻을 헤아려보자. 그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부처님은 지금까지 교단의 지도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반드시 교단의 다음 지도자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부처님이 그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으므로 아직 최후의 시간은 다가온 곳  아니다. 이것이 아난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문제에 대해 좀 생각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부처님 자신이 건강했을 때 제자들에게 했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부처님은 당신 자신을 조금도 교단의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승가라는 화합집단의 일원이자 지혜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좋은 벗(善友 , 善知識)’ 이라는 것이 부처님 자신이 생각한 교단 내에서의 위치였다.

 
부처님이 자신을 승가의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진리(法)를 독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가르친 진리란 만인에게 평등하고 공개된 것이었다. 누구든지 법을 깨닫고 그렇게 산다면 그가 곧 성자다. 이는 다른 종교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예이다.

 
예수의 경우, 그는 신의 독생자로 자처했다. 아무리 뛰어난 예수의 제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처럼 신의 독생자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앞에서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복종관계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만인에게 공개하고 누구라도 그것을 바로 알고 실천하면 그는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르침의 핵심이다. 다만 부처님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며, 또 다른 사람에게 그 모범을 보이고 그것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분은 ‘스승’의 위치를 누릴 뿐이다. 이 점은 세계의 어떤 종교 개창자와도 다른 독특한 일면이다. 이는 임종을 앞둔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했던 말에서도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남전 대반열반경(2·24)


[그러면 아난다여, 비구들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안도 없고 바깥도 없이 모든 법을 다 가르쳤다. 나의 법에는 어떤 것을 제자에게 숨기는 것 같은, 스승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란 없다.

 
진실로 아난다여, 만일 내가 승가의 지도자라든가, 승가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든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임종을 맞이해서 승가에 대해 무엇인가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여, 나는 이 승가의 지도자도 아니며, 승가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나는 이 승가에 대해 더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앞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불교승가에 있어서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서로 착한 벗(善知識)이고 평등하고 화합하는 단체가 되어 서로 도우며 격려하는 것을 그 근본정신으로 한다. 따라서 거기에는 지배하는 자도 없고, 지배받는 자도 없다. 모든 사람이 법 안에 있으며 평등하다. 부처님 또한 이러한 평등화합의 승가의 한 사람 구성원 일 뿐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후계자로 어떤 사람이 지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잘못된 것이고 불필요한 일이다. 적어도 진리가 공개되고 그것을 누구나 볼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진리를 어떤 사람이 비밀스럽게 전수받거나 그런 이유로 해서 승가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교승가에 있어서 부처님의 지위는 역시 어떤 특별한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불교의 부처님이란 뛰어난 스승에 의해 깨달아진 진리이고, 그분의 가르침에 의해 제시된 해탈의 길이며, 그래서 많은 비구들이 출가수행의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출가한 이후에도 줄곧 스승인 부처님을 우러러 보며 법을 근본으로 하고 국법으로 삼고 의지처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처님은 분명히 불교승가의 구성윈의 한 사람이지만, 또한 뛰어난 지도자이자 스승인 것도 제자들 입장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이 걸어가는 지혜의 길에는 역시 분명히 지도자가 있고 그 지도자란 다름 아닌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도리에 어긋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하며 부처님이 가르친 진리의 본래 모습을 더듬어 보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법을 근본으로 하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앞세우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지금 이 점을 아난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 인생의 주인은 곧 나 자신  ▲ 위로


교단에 관한 문제는 그렇다치고, 두 번째로 부처님이 강조한 것은 이 법 앞세서는 모든 사람이 자주(自主)이어야 한다는 발언이다. 부처님은 계속해서 아난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그대들은 이제 스스로를 섬으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아야 한다. 또한 진리를 섬으로 삼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아야 한다. 결코 다른 사람을 섬으로 삼거나 의지처로 삼지 말아야 한다.


아난다여, 진실로 거듭 말하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도 스스로를 섬으로 삼고 의지처로 삼으며 다른 사람을 섬으로 삼거나 의지처로 삼지 말라. 그리고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불교승가에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자신을 섬(洲)으로 삼으라는 표현을 다른 경전에서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고 삼으라. 스스로에게 귀의하라’고 표현 하기도 한다. 표현상의 차이는 번역상의 차이일 뿐 같은 내용이다. 어쨌거나 자신을 의지처  하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가르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이 않은 말하자면 불교에 있어서는 매우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란 어떤 신에게 의지하고 매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앙이란 인간이 종교를 통해 신이 존재를 절대적으로 신빙하고 그에게 구원을 바라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이같은 종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기독교를 들 수 있다. 기독교는 창조주로서 신의 존재를 전제로 출발한 종교다. 신에 의해 피조된 인간은 신의 존재를 신빙하고 그에 의지하여 기도를 바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교한다. 부처님 이전 인도를 지배했던 바라문교도 이와 비슷한 종교이다.

 
이에 비해 부처님에 의해 시작된 불교에 있어서 인간은 다른 종교에서처럼 절대적으로 의지할 곳이란 없다. 신의 존재는 처음부터 부정되었으므로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이 가장 먼저 인식했던 것도 어떤 초월적인 절대자가 아니며 또 다른 종교적 귀의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뜻에서 불교의 길은 기본적으로 무엇에도 의지할 것이 없는 자주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초기경전의 하나인 ≪담마파다≫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신이 의지할 곳은 자신뿐이다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할 곳도 없다.

그러므로 자기가 잘 조어(調御) 되었을 때

그는 얻기 어려운 의지처를 얻은 것이다.

 


4. 불교의 종교성 문제  ▲ 위로

 
근본불교의 이같은 성격에 대해 현대의 종교학자들은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절대신이나 또 다른 어떤 의지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종교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교란 어떤 절대자의 자비에 의한 구제를 전제로 시작되는데 근본불교에는 그런 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여 어떤 학자는 ‘근본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다. 그리고 다른 어떤 학자는 ‘불교는 처음에는 기도가 없는 도덕적 조직으로 출발하여 나중에 종교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이 불교 특히 근본불교의 종교성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종교관이 기독교적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蟹)란 그 껍질에 맞도록 구멍을 판다고 한다. 기독교의 강한 영향 밑에 있었던 그들은 당연히 기독교적 종교관을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종교관이란 ‘신과 사람의 관계’라는 틀 안에 모든 종교를 묶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 앞에 전모를 드러낸 동양의 위대한 가르침은 그들의 종료란 틀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당황했고 그래서 앞서와 같은 주장을 했던 것이다.

 
사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종교관은 기독교적인 틀 안에서 규정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아가서는 무엇인가 초자연적 능력이나 기적·기도·주술적 의식 속에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불교의 본래 모습이 포장되지 않은 채, 또 왜곡되거나 변용되지 않은 채 나타날 때, 불교의 종교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하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를 하나의 학문의 영역에서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 개념은 이제 크게 변하였다. 기독교 이외에는 종교로 인정하려 하지 않던 사람들도 세계의 많은 종교에 관한 지식이 모아지자 그 같은 테두리에 들어가지 않는 종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적 대상은 반드시 신비하고 초월적 대상이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결코 모든 종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종교인가. 사람들은 이제 다시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종교에서 무엇인가 공통적이고 본질젓인 것을 찾아내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찾아낸 것은 ‘성스러운 것(das Heilige)'이라는 그것이다. 동양의 위대한 가르침인 불교도 이점에 있어서는 분명히 종교에 포함될 수 있다. 프랑스의 학자 뒤르켐은 ’성스러운 것에 관한 신념과 행사, 그리고 이에 기초한 공동사회가 종교의 본질적 요소‘라고 규정하면서 ’불교에는 신은 없지만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와 그로 인한 행사와 공동사회가 있기 때문에 위대한 종교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여간 이렇게 하여 불교의 종교성문제는 ’성스러운 것‘이라는 관념이 등장하면서 객관적 학문의 문제로서는 일단 지금까지의 애매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이 있다. 도대체 불교에 있어서 성스러움은 무엇이고 그것이 과연 사람들의 귀의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종교관념에 의하면 종교에 있어서 ‘성스러운 것’이란 절대자에게 바쳐지는 신성관념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근본불교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석연치 않는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불교에는 절대적 신과 같은 신성한 존재는 없다. 부처님도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조차 인격적이고 절대적인 신성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면 도대체 불교의 무엇이 성스러운 것인가.

 
불교에 있어서 ‘성스러운 것’이란 특정한 인격관념 혹은 행사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사성제’에서 볼 수 있듯이 진리만이 성스러운 것이다. 불교에서 ‘성스러운 것’은 진리이다. 모두 성스러운 진리(法)에서 비롯된다. 불교도의 귀의 대상인 삼보(三寶)는 그 자체로서는 성스러운 것이 아니다. 삼보가 성스러운 것이기 위해서는 법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부처님(佛寶)이 성스러운 것은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우리 앞에 제시했기 때문이다. 가르침(法寶)이 성스러운 것은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우리 앞에 제시했기 때문이다. 가르침(法寶)이 성스러운 것은 그것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僧伽)가 성스러운 것은 진리를 향하기 때문이다. 만약 부처님이 진리를 깨닫지 않았다거나 승가가 진리를 향하는 집단이 아니거나, 가르침(法)의 내용의 진리와는 무관한 헛된 것(邪法)이라면 결코 성스러움을 획득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성스러운 것’은 독특한 입장이 명백히 나타난다. 불교의 길을 가는 사람은 결코 미망(迷妄)의 허위 앞에 무릎을 끊지 않는다. 환상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전도(顚倒)된 현실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다만 진실하고 허황되지 않은 것(眞實不處)에 무릎을 꿇고, 이치에 합당한 것에 고개를 숙인다. ‘성(聖)은 곧 정(正)이다’라는 명제만이 불교의 입장에 일치하는 것이다.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전인격을 다 바쳐 진실불허한 경지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서 감동이 우러나고 ‘성스러운 것이’ 생기는 것이다. 불교의 종교성은 여기에서 비로소 해답이 찾아진다.

 
이것을 오늘날의 이해에 알맞도록 설명한다면 불교란 철두철미 인간의 자기형성의 가르침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신 앞에 머리 숙이며 죄를 용서받으며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신의 은총에 의해 천국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또 노력하지 않으면서 재물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공로도 없이 영예를 기다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종교철학의 용어를 빌면 운명론적이랄까 아니면 우연론적인 태도이다. 신의 뜻에 의해 예정된 운명, 아니면 그야말로 우연히 그렇게 되어질 거라는 생각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이와는 달리 불교에서 간곡히 추구하는 길은 앞에서 인용한 부처님의 말씀처럼 잘 조어된 자기를 확립하는 길이다. 이것을 현대용어로 말한다면 ‘훌륭한 자기형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떠한 것이 훌륭한 자기형성인가. 그 이상상(理想像)은 다름아닌 부처님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이같은 이상적인 모습을 확립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부처님이 이미 생존해 있을 때 그 이론과 실천방법이 여러 가지의 방편으로 설명되어졌다. 부처님은 그 이상의 모습을 먼저 자신을 통해 구현하고 제자들에게 ‘그대들도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그곳에 이르는 이론이나 실천에 대해 누구라도 의혹이 있으면 부처님은 언제나 간곡하면서도 명쾌한 대답을 해 주었다. 이것이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맺어온 관계였다.

 
그런데 그런 스승이 얼마 뒤에 임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생각한 아난다는 슬픔과 함께 당황함을 금치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 처소에 가서 문빗장을 잡고 서럽게 울었다.


[“아,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는데 우리 부처님은 우리를 남겨 놓고 떠나시는 것인가.”]

 
그때 아난다를 찾고 있는 황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처님이 찾으시니 어서 그리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가 급히 부처님 곁에 다가가자 늙은 스승은 그를 바라보고 오랫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이렇게 마지막 말씀을 했다.

 
[“아난다여. 혹시 너희들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자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즉 ‘우리는 스승의 말씀은 이제 끝났다. 이제 우리에게는 스승이 없다’고 그러나 아난다여. 내가 가르친 교법(敎法)과 계율(戒律)은 내가 죽은 후에도 너희들의 영원한 스승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무상한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는데 힘써야 한다.”]

 
부처님이 최후로 남긴 이 말씀은, 불교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부처님도 일찍이 ‘진리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든 하지 않든 항상 있어온 것이며, 있을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부처님은 또 옛 성(古城)의 비유를 들어 당신은 옛 성터로 가는 길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고 좋은 안내자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의사(大醫王)의 비유를 들어 사람들의 병을 진단하고 처방전을 내려주었다. 그 말을 믿고 약을 지어먹는 사람은 치료가 되지만 아무리 정확한 약방문이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효험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야속하기까지 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속에는 참으로 속 깊은 자비가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착각이나 거짓말로 속이지 않고 진실을 밝힘으로써 진정한 해탈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야말로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탁월한 면모인 것이다. 《終》 ▲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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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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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마조(摩造) | 작성시간 15.03.12 훌륭한 법문입니다

    감사합니다.
    _()_
  • 작성자무각향보선 | 작성시간 15.03.14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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