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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화) 무명 야유회 영월오지마을 매운길

작성자동강(쉬리)|작성시간14.07.18|조회수113 목록 댓글 9

무명산악회. 7월 22일(화) 야유회안내.

 

 

산행지 : 영월 한반도면 매운길

 

차타는곳 : 용인(구)거농마트08:00시출발~ 둔전08:10 출발

산행준비물: 시원한물,방풍자켓.장갑,여벌옷,손수건 ,슬리퍼 및 개인 안전 장비,

                   

 - 교통비: 25,000 원

연락처 ; 산악대장 : 010-8368-9863 / 임채웅:010-9495-1558

                         신현철:010-8887-2112 / 이용대:010-3714-4568

                   여성대장 유승애:010-5413-5929

사무장 (총무) ; 010-5336-5471

홍보이사 : 010-3262-2719

카페운영자: 010-2292-1321

 

★ 멍멍 꼬꼬  맛있는 음식 제공  ㅎㅎ

 

 

 

 

 

 

광전리(廣錢里)

광전리는 일제 시대인 1914년에 '광운리(廣雲里)'에서 '광'자를 '전동리(錢洞里)'에서 '전'자를 취하여 '광전리'라 했는데 남면 광천리와 혼동하는 일이 많다.

광전리는 평창강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마을로 여촌을 중심으로 배일치, 뱃말, 광탄, 동골, 쇠목, 매운 등의 자연 부락을 중심으로 3개 행정리에 134가구 459명의(1992년 기준) 주민들이 콩, 옥수수, 고추, 담배를 재배하고 약간의 논농사도 짓고 있다. 특히, 광전리는 석회석이 풍부한 곳으로 배거리산에는 현대시멘트 채석광이 있다.


배일치(拜日峙)

광전리 중심 마을인 여촌(麗村) 동남쪽에 있다. 단종(端宗)이 영월로 귀양올 때 서선에 기우는 해를 보고 절을 했다고 하여 '배일치'라 하였다.

이때 단종은 배일치를 넘고 북쌍리(北雙里)의 점말과 분뇨처리장이 있는 갈골, 옥녀봉, 선돌을 지나 유배지인 청령포로 갔다. 배일치재를 중심으로 남면 배일치와 서면 배일치 마을이 있는데, 원래의 배일치제는 표지석이 서 있는 지금의 위치에서 좌측으로 약간 떨어진 곳으로 점말의 북골로 질러가는 길이었다.


날그랭이

서면 배일치 밑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다. 배일치산의 높은 등날 밑에 있으므로 '등날 구댕이→날구댕이'라 하였다.


돌티미

여촌 동쪽인 마지라오(馬岩洞) 서낭당(成皇堂)앞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돌탑을 쌓아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고 재앙을 막기를 원하였다. 돌탑은 풍수학적으로 동네의 허(虛)한 지역이나 서낭당 주위에 축조하였다.


풍덕골(風德谷)

마지라오(馬岩洞) 동쪽으로 덕상리(德上里)의 고전동(高田洞)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지대가 높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므로 '풍덕골'이라 한다.지금은 지일사라는 절이 있는데, 일설에는 허풍을 잘 떠는 장풍덕이라는 사람이 살던 곳이라 '풍덕골'이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마지라오(馬岩洞)

배일치를 지나 여촌 어구에 있다. 서낭당의 당목(堂木)이 울창하고 말 형상의 큰 바위가 있으므로 '마지라오', 또는 '마암동(馬岩洞)'이라고 하는데 풍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다.


여촌(麗村), 골말

서면 광전리(廣錢里)의 중심이 되는 402번 지방도 옆으로 여촌초등학교와 쌍다리, 상점, 매운탕집 등이 있다.

원래의 지명은 마을의 경관이 아름다워서 '고운마을(麗村)'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고운마을이→고운말→골말'이 되었다. 이 마을은 진부면 우통수를 발원지로 한 평창강(平昌江)과 여러 지류의 물줄기가 돌부리와 부딪치고 뒤섞이며, 산기슭을 굽어 돌아 힘찬 여울을 이루며 흐르다가 이곳 고은마을(麗村)앞 쌍다리 근처에 와서는 푸른 소(沼)를 이루며 물결도 잔잔해진다. 또한 마을 앞 당나루산의 소나무와 넓은 돌밭광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확 트이게 하는데, 여름 한철 이곳에는 많은 관광객들과 천렵꾼들이 모여든다.


청령골(淸令谷)

여촌초등학교 앞으로 골말과 뱃말 사이에 있다. 마을 앞에는 사시사철 푸르고 맑은 평창강이 흐르기 때문에 '청령골'이라고 한다. 청령골 밑에 있는 보를 '아래보' 또는 '지랄보'라고 부른다.


괴정(槐亭)

뱃말(舟村)의 응고개 밑에 있다. 402번 지방도가 없었을 때의 옛길은, 마지라오에서 골말을 지나 응고개의 괴정에서 쉬었다가 당마루를 넘어 신천리로 왕래하였다. 예전의 이곳은 여름 한철 그늘이 드리워진 큰 느티나무 정자(槐亭)가 있어서 많은 행인들이 쉬었다 갔으므로 '괴정(槐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뱃말(舟村, 뱃마을)

골말(고은마을)앞에 있는 마을로 순조 임금 때는 광운리(廣雲里)라 불렀다. 402번 지방도가 개통되기 전에는 영월에서 신천, 주천으로 가는 모든 사람들이 뱃말을의 나룻배를 이용하여 건너 다녔다. 즉, 배를 건너는 나루터가 있었던 마을이므로 '뱃마을→뱃말'이라 한다.


황새바우

뱃말 건너편인 당마루 밑에 있는 큰 너럭바위이다. 가뭄 때 평창 강물이 줄어들면 이곳에 큰 웅덩이가 생기고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황새들이 모여들었다. 즉, 황새가 많이 모여드는 바위이므로 '황새바우'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에 황새가 모여들면 가뭄이 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당(堂)마루

뱃말 앞 평창강 건너에 있다. 옛날 신작로가 나기 전에는 나룻배를 건너는 사람들이 이곳 당마루를 넘어 다녔다. 이곳의 당목(堂木)으로는 큰 느릅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에 서낭당과 돌무더기가 있어서 사람들은 돌을 던지고 침을 뱉어 여행의 무사를 기원하였다. 서낭당이 있는 산마루이므로 '당마루'라고 했으며 당마루를 지나면 신천리(新川里)의 방울재가 된다. 여촌의 쌍다리 건너에는 당마루 휴게소가 있는데 원래의 당마루는 뱃말 앞쪽이었다.


광탄(廣灘)

쇠실 서쪽으로 광전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이다. 교통이 불편하여 신천리(新川里)의 상명라로 돌아 병창 사이로 차가 다닐 수 있다. 마을 앞으로는 평창강이 휘어져 흐르면서 넓은 여울을 만들었으므로 '넓을 광(廣)'자와 '여울 탄(灘)'자를 써서 '광탄'이라고 불렀다. 그 위에는 짧은 여울인 '단여울(短灘)'이 있다. '너븐'은 '넓은'의 옛말로 '너분여울'이란 순수한 땅이름이 '광탄'이라는 한자어로 변하였다.


절골

통두둑 서쪽 골짜기로 암자가 있었으므로 '절골'이라고 한다.


절구지

광탄 남족에 위치하며 곡식을 찧는 절구처럼 움푹하게 생긴 마을이므로 '절구지'라 한다. 이곳에서 신천리의 하명라로 넘어가는 고개를 '절구지재'라 부른다.


돈골(錢谷)

쇠목 서쪽인 평창강 건너에 있다. 지금은 대여섯 가구가 10리 정도나 뻗은 다래산 기슭의 논과 밭을 가꾸면서 생활하고 있다.

옛날 돈골에는 자린고비로 소문이 난 송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돈을 모으는 재미로 세상을 살았다. 그는 주천, 신천, 골말 등지의 모든 논밭을 사들여 천석꾼이 되자 더욱 교만해져 밥 한 그릇 주는 것까지도 아까워하였다. 송부자는 자기 집을 찾아오는 손님을 막기 위해서 판운 쪽에서 오는 손님을 장취 서낭님께, 배일치 쪽 손님은 마지라오 서낭님께, 주천 쪽 손님은 아침치 서낭님께, 사정리 쪽 손님은 당마루 서낭님이 막아달라고 빌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큰 폭우가 쏟아져 송부자가 사는 집이 물에 떠내려가자 벽장 속에 고이 간직해 둔 돈궤도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집안 식구와 하인들도 독촉하여 엽전을 줍다가 그만 물살에 휘말려 죽고 말았다.

그후 지금까지도 이 골짜기는 땅을 파면 엽전(돈)이 쏟아져 나오므로 그 지명을 '돈골'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돈골에는 예전 보릿고개 때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전단토가 많았다.


단여울

배거리산 서남쪽으로 마을 앞을 흐르는 평창강을 건너면 광탄과 돈골로 갈 수 있다. 예전에 교통 수단이 좋지 않을 때는 소 등에다 지르메를 지우고 짐을 실은 소몰이꾼들이 이 마을 앞의 여울살을 건너 다녔으므로 '소가 다니는 목시(길)'라는 뜻에서 '쇠목' 또는 '소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때 20여 가구가 살았으나 배거리산이(石船山) 시멘트의 채석장이 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주하였다.


배거리산

현대시멘트의 원석광이 있는 해발 852.5m의 높은 산이다. 옛날 천지 개벽으로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뱃마을에 살던 마음 착한 부부는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피난을 했는데, 물이 점차 늘어나며 배가 이 산 꼭대기에 걸렸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때부터 이곳을 '배거리산'이라고 하였다. 1991년부터 현대시멘트의 원석채취장이 되어 그 원형을 잃어가고 있는데 「영월부읍지」에는 이 산을 석선산(石船山)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쇠실(金谷)

배거리산 남족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쇠를 캐내는 철광이 있었으므로 '쇠실'또는 '금곡(金谷)'이라고 한다. 그 앞에 있는 넓은 들을 '쇠실벌'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배거리산 채석장 인부들이 이용하는 식당이 있으며, 덕상리(德上里)와 경계가 된다.


소목의 용마 전설

소목의 임씨 집안에서 애기를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작은 날개가 있었고 사흘만에 실겅 위에 올라가 놀았다. 역적이 될 것을 두려워한 아버지는 아기장수가 잠이 들자 날개를 끊어 내고 인두로 그 자리를 지진 후, 연자방아로 눌러서 죽여 버렸다. 아기 장수가 죽은지 사흘 후에 소목 앞에 있는 용소에서는 용마가 나와서 울부짖다가 소목강변에서 죽었다고 한다.

소목 북쪽 산기슭에는 아기장수묘와 용마 무덤이 나란히 있으며 지금도 임씨 문중에서는 이 무덤에 매년 벌초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 매운길 25|(우)230-841

 

★무명산악회 에서는 개인부주위로인한 사고는 민,형사상

책임을지지않으니 안전산행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무명산악회 회장 ☎ 010-876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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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앙아 | 작성시간 14.07.18 만세~!만세~!만세~!
  • 작성자앙아 | 작성시간 14.07.18 편갈라~족구도해요~!
    짱짱짱~!
  • 작성자동강(쉬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7.18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작성자낮달 | 작성시간 14.07.21 에이구 부러버라~~~~!!
  • 작성자앙아 | 작성시간 14.07.21 낮달님도 동행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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