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오름
전종호
다랑쉬를 오르려면 새벽이어야 하리라
성산포 앞바다를 밟고 저벅저벅 다가오는
아침노을 그날인 듯 핏빛으로 물들며
저 아래 깊은 바다에서 어허라 둥둥
해가 떠오르네 어제의 슬픔이 타오르네
보름날이면 달맞이 놀이나 하던 마을이
까닭 없이 삽시간에 죽임과 죽음이 갇힌
동굴 속 검은 연기로 흩어진 비명과 울음
잊은 듯 숨긴 듯 지나간 숱한 날들이
무겁게 땅속으로 꺼지고 잦아든 세월에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마다 들판에 채소들은 얌전히 자라고
울음이 고요히 살 속으로 스며드는 아침
저만치 뒤에서 허리에 손잡고 서 있는
한라산은 이마에 구름띠 길게 두르고
섬의 지난 일들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혼자 웃음을 흘리고 서 있네 그날의 슬픔
뼛속을 파고드는 통곡을 이기고 돌아오는
귤빛 아침 희망을 마주 잡기 위해서는
숨을 몰아쉬더라도 미명의 땅을 밟고
다랑쉬는 마땅히 새벽에 올라야 하리라
전종호|1979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꽃들의 수작』, 『임진강』, 『어머니는 이제 국수를 먹지 않는다』, 『꽃 핀 자리에 햇살 같은 탄성이』, 시산문집으로 『히말라야 팡세』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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