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을 오래 붙잡는 시간
김병숙
마음 한편에 비어있는 자리가 쉽게 채워지지 않던 시절, 바쁜 일상 가운데 무언가 빠져 있는 듯한 공허함, 그때 우연히 펼쳐 본 신문 한 장에 시선이 머물렀고, 문학회 소식에 동요된 마음은 용인문학회로 이끌었다. 그것이 바로 용인신문이었다.
마음은 오래도록 설레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문학회의 문을 두드린 나는, 그저 잠시 책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참여해 보니 문학회의 시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진지했다. 매주 한 권의 시집을 읽어 와야 했고, 수업 시간에는 시를 한 편 한 편 짚어 가며 그 의미를 나누었다. 지도해 주시는 김윤배 교수님께서는 작가가 시 속에 담아 놓은 의중과 표현의 결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니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시어 하나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을 품고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며, 마음속에 잔잔한 설렘이 피어났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회원들은 매주 창작시 한 편을 써 와야 했고, 교수님께서는 그 작품을 놓고 정성껏 합평해 주셨다. 시를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던 나에게 ‘창작시’라는 말은 큰 부담이었다. 한 단어를 고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한 줄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어져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문학회를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때 따뜻하게 붙잡아 준 사람이 총무님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 수준에서 시작했어요. 부담 갖지 말고 함께 해요.” 그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 덕분에 나는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문학회에 남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시간이 어느덧 일곱 해가 되었다.
시를 쓰면 쓸수록 느끼는 것은 시가 결코 쉬운 문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짧은 몇 줄 속에 마음을 담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떤 날은 한 줄을 몇 시간 동안 붙잡고 고민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단어 하나가 마음에 들어야 겨우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써지지 않는 시 앞에서 마음이 조급해질 때도 있었다. 생활이라는 핑계를 내세우며 글쓰기를 미루고 스스로 게으름을 허락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문학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가 나를 다시 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특히 맛있는 김밥을 나누며 “괜찮아요, 조금씩 하면 돼요”라고 말해 주던 회원님, 문자를 통해서 수업에 빠지지 않도록 힘을 준 회장님, 회원들의 작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시는 편집주간님의 다정한 격려가 큰 힘이 되어, 그 덕분에 나는 다시 펜을 들 수 있었고, 그렇게 오늘까지 이 길을 이어오고 있다.
문학회의 즐거움은 글쓰기만이 아니다. 수업이 끝난 뒤 둘러앉아 나누던 시간도 내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 날은 매운 닭발을 앞에 두고 눈물이 날 만큼 매워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식사를 함께 나누며 깔깔 웃던 시간은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함께 떠났던 문학기행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서로를 배려하며 걸었던 길 위에서 우리는 시를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했다. 길가의 작은 꽃과 나무, 흙냄새와 바람 속에서, 시를 읽고 쓰는 것 이상의 풍경과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회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은 마치 청잣빛을 닮아 맑고 따뜻했다. 문학회를 이끌어 주시는 김윤배 교수님은 많은 시집을 출간하신 시인이지만, 무엇보다 맑은 영혼과 따뜻한 정을 지닌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리가 있고 정이 많으셔서 자신이 알고 계신 것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 주고 싶어 하신다. 때로는 학생들보다 더 큰 열정으로 시를 설명하시고 작품을 읽어 주신다.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문학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배움의 자세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문학회는 또 다른 의미 있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매년 정성과 마음을 모아 열리는 남구만문학제는 새로운 시인을 세상에 알리는 소중한 무대가 되고, 용인의 문학적 흔적을 따라 걷는 용인 문학 순례길 탐방 또한 많은 사람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문학이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의 풍경과 역사 속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뜻깊은 시간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시를 전혀 모르던 사람에서 한 줄의 문장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 변화의 시간 속에는 늘 용인문학회가 있었다. 시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고, 사람들과 따뜻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모두 용인문학회의 덕분이다.
서른 해의 역사를 이어 온 용인문학회는 앞으로도 더욱 많은 사람에게 문학의 기쁨을 전해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새로운 시인을 길러내는 이 공간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란다.
시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통해 시를 배우며 걸어온 시간. 나는 앞으로도 시와 사람 사이에서 그 따뜻한 길을 오래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