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퇴계종택(진성이씨) 한평생 전통통과의례 ‘일생의례(一生儀禮)
진성이씨 종택
통과 의례(通過儀禮는 임신, 출생, 백일, 돌, 생일잔치, 성인례(관례), 혼인례(혼례)와 회갑례와 수연례, 상장례와 제의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은 일생에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 까지 반드시 통과하여야하는 통과의례를 거치게 되는데 일생을 통하여 적절한 시기에 행하는 의례를 말한다.
■출생의례: 임신, 출산, 산후의례
■백일과 돌 책례
■성인식: 관례(冠禮),계례(禮)
■혼인례(婚姻禮):
■회갑례(回甲禮)(수연례(壽宴禮))
■상장례
■제의례
▣출생 의례
●기자의례(祈子儀禮):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는 의례로 부처님 코갉아먹기, 영험한 바위에 치성드리기, 절에서 불공드리기 등등이 있다.
●임신, 출산, 산후의례
임신후 금기와 태교: 토끼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눈이 빨간 애를 낳는다.) 불상스런운 언행을 삼가하고, 그와 같은 물건이나 행위를 보거나 행하지 말라 등등이 있다.
■임신
임신(姙娠)과 출산은 가계의 계승이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초기에만 하더라도 출가한 딸이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재산분배 과정에서 동일한 대우를 받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남자가 제사를 승계하고 재산의 차등적인 분배가 이루어지면서 가계를 계승하기 위해 아들을 낳아야 후손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어지고 그에 따른 많은 습속이 생겼다.
그래서 신부를 고를 때에는 성품이나 외모 외에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미리 알아보았다. 이것의 기준이 되는 것이 ‘십삼구(十三俱)’로서 영조 42년(1766)에 나온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보면, ①눈매가 길고 눈 끝이 젖지 않아야 하고, ②눈썹이 길고 이마가 펑퍼짐하며, ③콧날이 오똑하고 봉눈 같으며, ④목소리가 고르고 기가 족하며, ⑤피부가 광택이 나고 향취가 있으며, ⑥살결이 부드럽고 메마르지 않으며, ⑦얼굴은 거위나 벼룩을 닮고, ⑧어깨가 모나지 않고 등이 두툼하며, ⑨손이 봄에 돋아난 죽순 같고, ⑩손바닥이 붉으며, ⑪젖꼭지가 검고 굵으며, ⑫배꼽이 깊고 배가 두툼하며, ⑬엉덩이가 평평하고 배가 커야 한다고 되어 있다.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합방하는 날짜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간지를 따져 봄에는 갑(甲)·을(乙), 여름에는 병(丙)·정(丁), 가을에는 경(庚)·신(辛), 겨울에는 임(壬)·계(癸)가 들어있는 날이 좋다고 여겼다. 주술적인 방법으로 ‘달힘마시기(吸月精)’를 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우주의 음기를 낳는 달의 기운을 마시면 출산력이 강해져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음력 초열흘부터 보름까지 닷새 동안 달이 점점 커질 때 갓 떠오르는 달을 보고 서서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다. 이밖에도 고추·달걀·수탉이나 황소의 생식기 같은 특정음식을 먹거나, 비고산(卑高散)이라고 하여 석불·망부석·제주도의 돌하르방 등의 코를 문질러 가루를 마시기도 하고, 남자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의 속옷을 사서 입기도 하였다. 또한 덕을 쌓거나 선을 베풀어 신을 감동시키려는 방법으로 겨울에 찬 냇물을 건너다니는 사람을 위하여 다리를 놓는 ‘노두놓기’를 하거나 동네 길을 고쳐주기도 한다.
■태교와 태몽-태교신기
아이를 가지게 되면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언행을 조심하는데 이것을 태교(胎敎)라고 한다. 태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말 정몽주의 어머니 이씨가 남긴 『태중훈문(胎中訓文)』이고, 조선 중엽의 명의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태교에 관해 부분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태교에 관한 본격적인 지침서는 1801년 사주당(師朱堂) 이씨가 펴낸 『태교신기(胎敎新記)』로 아버지의 태교를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태교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음식을 가려먹는 것으로, 예로부터 임산부가 오리를 먹으면 아기의 손이 오리처럼 되고 토끼를 먹으면 눈이 붉어진다고 하여 금기하였다. 또한 행동하는 데 말고삐·체·부삽·도마 등을 넘지 말고 독이나 시루를 들지 말고 빗자루를 깔고 앉지 말라는 등의 제약도 많았다. 이러한 방법들은 임산부의 건강을 유지시키려는 목적 외에 유감주술적인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태몽(胎夢)이 아이의 성별뿐만 아니라 운명까지 좌우한다고 믿었다. 태몽 중에 유명한 것으로 조선의 대학자였던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일화가 있다. 신사임당은 검은 용꿈을 꾸고 이이를 낳아 이이의 아명을 현룡(見龍)이라고 짓고, 산실을 몽룡실(夢龍室)이라고 하였다. 일반에서는 해나 달을 삼키거나 몸에 지니는 꿈, 용·범·구렁이·소·돼지·장닭·장끼 등의 동물과 호박·가지·무·고추·호두·송이버섯·밤 등이 나오는 꿈은 아들을, 암소·고양이·말·암탉·뱀 등의 동물과 감·참외·수박·애호박·꽃 등이 나오는 꿈은 딸을 낳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태몽은 아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가져온 심리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태몽과 더불어 임산부의 상태를 보고 태아의 성을 점쳐 보는 태점(胎占)도 널리 행했다. 임산부의 배가 뾰족하게 부르거나 입덧이 심하면 딸이고, 배가 높지 않고 펑퍼짐하고 입덧이 거의 없으면 아들이며, 임산부를 남쪽으로 걷게 하고 뒤에서 불렀을 때 왼쪽으로 돌아보면 남자로 여겼다. 또한 『동의보감』, 『규합총서(閨閤叢書)』, 『조선박물지(朝鮮博物志)』같은 책에는 태아가 여아로 판단될 경우 남아로 바꾸는 비법이 소개되어 있다. 『동의보감』에는 임신 3개월까지 남녀가 확정되지 않아 복약과 방술을 베풀어 여아를 남아로 바꿀 수 있다고 했고, 민간에서는 남아의 태가 대개 왼쪽에 있으므로 임신에서 출산까지 임산부가 왼쪽으로 누워 자거나 생활하면 사내아이를 낳는다고 여겼다.
■출산의례(出産儀禮): 출산전의례와 출산후 의례가 있다. 출산 전 의례에는 기자의례와 산전의례가 있고, 출산 후 의례에는 산후의례와 육아의례가 있는데 이를 각각 살펴보고 이런 출산의례에 담긴 음양사상에 대해 발표하고자한다.
●출산. 해산 상차림. 삼신상
삼신상
출산(出産)을 앞둔 집에서는 창호지를 새로 바르는 등의 방 치장을 하고, 아기용품을 준비해둔다. 아기물품을 구입할 때는 복이 깎인다고 하여 값을 깎지 않았고,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입는 배내옷은 단추를 달지 않고 긴 끈을 붙여 만들었으며, 포대기는 아기가 부정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출산 전에 만들어두었다. 해산일이 가까워지면 해산경험이 많고 아이를 모두 무사히 키운 노인을 골라 출산을 돕는 산바라지로 정했다. 산실 윗목에는 깨끗한 짚을 깔고, 삼신상을 준비한다. 삼신은 아이를 배고 낳게 하며 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돕는 신으로, 한 집에 한 분뿐이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산달이 같으면 며느리를 친정으로 가게 하여 아이를 낳게 한다. 한편 남편은 삼으로 왼새끼를 꼬아 두고, 산실에 ‘삼신끈’이라고 하는 밧줄을 매어놓아 해산할 때 힘을 쓰게 하였다.
아들을 낳았을 때 잡았던 삼신끈은 아이를 못 낳거나 아들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기도 하였다. 왕실이나 양반가의 임산부는 문고리에 걸어둔 은으로 만든 말밥굽쇠를 잡고 힘을 썼는데, 이것은 아이가 돌이 되면 녹여서 말굽모양의 노리개를 만들어 아이에게 채워주었다고 한다. 출산에 관한 기이한 풍속으로 ‘상투 빌기’라는 것이 있다. 이는 임산부가 삼신끈 대신 남편의 상투를 잡는 풍속으로, 임산부가 남편이 창호지를 뚫고 들이민 상투를 잡고 해산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산 과정을 통해 아기가 태어나면, 산바라지는 집안사람에게 아기의 태어난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고, 아기가 첫 울음이 울기 전에 좁쌀알갱이라는 입속의 더러운 물질을 닦아낸 후에 따뜻한 물을 부드러운 천에 적셔서 온 몸을 닦았다. 이때 감초를 달인 물이나 들기름·미나리 즙·삼 달인 물을 숟가락으로 세 번 떠서 아기의 입 안에 흘려준다. 동시에 밥과 국을 따로 한 그릇씩 마련하여 삼신상(三神床)을 차려 산신(産神)에게 올리고 영아의 명복과 산모의 건강회복을 기원하였다. 아기의 탯줄은 배꼽에서 한 뼘쯤 되는 부분을 자르고, 그 끝부분을 실로 잡아매어 깨끗한 솜이나 종이에 싸서 삼신상 아래나 장태방(藏胎方)이라 하여 일진이 좋은 방 위에 놓아두었다가 사흘이 지나기 전이나 사흘째 되는 날 처리하였다.
아기가 출생하면 집 밖의 대문에 금줄을 쳐서 아기의 출생을 알리고, 산모의 건강회복과 아기의 보호를 위하여 외인의 출입을 금하였다. 금줄은 출산과 동시에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양끝을 자르지 않고 대문에 친다. 이때 기둥에 못을 박으면 아기가 장님이 된다고 믿었다. 금줄은 남·녀의 성별에 따라 남자는 고추와 숯, 여자는 숯과 솔잎 또는 소나무 가지를 끼워 구별하였다. 한편 아기의 성별을 사람들에게 속이면 아기에게 무병장수하고 좋다고 하여 반대로 금줄을 치기도 하였다. 기간이 지나서 금줄을 거둘 때에도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고 문 안쪽 기둥의 높은 곳에 감아두었다가 태운다.
집안에 출산이 있을 때에는 살생을 하지 않고 상가에 가지 않으며, 비린내 나는 음식, 상가 음식, 자극성이 있는 음식, 딱딱한 음식, 무른 음식은 먹지 않는다. 아기와 입을 맞추지 않도록 하며, 부정한 사람은 친척이라도 출입을 금하고, 아궁이 수리를 하지 않으며, 못도 박지 않고 빨래도 하지 않는다. 만약 빨래를 하는 경우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고, 특히 빨래를 삶지 않는 금기 습속이 있다. 대체로 출산 후 3일이 되면 산모의 젖을 먹이기 시작하고, 그 전에는 밥물, 꿀물, 설탕물 또는 타인의 젖으로 대용하였다. 젖을 많이 나게 하기 위해 돼지족 또는 쇠족, 미역국, 상추쌈, 붕어나 상추 줄기 삶은 물, 곶감과 대추 등을 고아 먹고, 쌍둥이를 낳은 여자가 젖을 만져주는 습속이 있다. 또한 태어난 아기의 무병장수를 위해 삼신(三神)에게 치성을 드리고, 유아를 천하게 대우하고, 부모가 많은 공덕을 쌓고 여러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습속이 있다.
●산후의례
아기기 태어난 뒤 7일째를 첫이레, 14일째를 두이레, 21일째를 세이레라고 하여 그때마다 의례를 치렀다. ‘7’은 우리 조상들이 하나의 단위로 삼아 특별한 뜻을 부여한 숫자로,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세이레 동안 굴에서 지내 사람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첫이레는 아기가 가족들과 처음 대면하는 날로, 삼신상을 차려놓고 감사하며 아기의 명을 빈다. 이날 아기의 쌀깃1)을 벗기고 옷깃이 없는 옷을 입히며, 동여매었던 소매 끝도 풀어준다. 두이레는 보통 상을 차리지 않고 옷깃이 달린 웃옷에 두렁이2)를 입히고, 나머지 소매 끝마저 풀어주어 아기가 마음대로 활개친다.
세이레, 곧 삼칠일에는 삼신상을 차려 삼신에게 마지막 감사를 드리고 금줄을 걷으며, 가족들이 지켜야 했던 모든 금기가 풀어진다. 이날에는 친지와 이웃에게 특별한 음식을 대접하고, 수수떡과 소를 넣지 않은 만두를 빚어 문 앞에 놓아서 오가는 사람에게 먹인다. 이는 수수떡의 붉은 빛깔이 잡귀를 물리치고, 속이 빈 만두는 아이의 도량이 넓어지라는 뜻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첫 아기인 경우에는 외가에서 포대기·아기 옷·띠·미역·실·복돈 등을 준비해가지고 와서 첫 대면을 한다. 이로써 출산에 대한 모든 의례가 마감된다.
●해산 의례: 예전에는 3-7일(보통21일동안 아이를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라해서 면역체가 약한 아기를 보호하였지만,
임산부의 행위 및 음식금기부터 시작하여, 치성 드리는 방법, 태를 처리하는 방법, 그리고 해산 시의 주의사항 외에도 출산 이후의 칠일, 백일, 돌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백일과 돌 책례백일
●백일-백일상 차림
아기가 태어나 100일째 되는 날도 특별한 의미를 붙여서 ‘백일(百日)잔치’를 베풀어 아기가 100일 동안 탈없음을 축복해주며 성장과정의 시발점으로 중요하게 여긴다. 백일이 되면 아기의 발육이 눈에 띄게 달라져 고개를 가누고 소리 내어 웃으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보내는 등의 행동을 한다. 백일 전까지는 흰 옷만 입히다가 이때부터 색깔이 있는 옷을 입히고, 아기가 자유롭게 움직여도 되기 때문에 업기 시작한다.
백일잔치에 앞서 삼신상을 차리며 백설기, 수수팥떡, 인절미, 송편 등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대접한다. 특히 100호가 넘는 집에 떡을 돌리면 아기가 무병장수한다고 하여 주위사람들에게 ‘떡돌리기’란 행사를 하였고, 100조각의 헝겊으로 지은 옷을 아기에게 입히기도 하였다.
●돌-돌상 차림(돌잡이. 돌 상)
돌이란 회(回) 또는 주(周)의 의미를 가진 말로, 생후 첫 탄생일을 가리킨다. 이날에는 아기에게 돌잔치를 베풀어 처음 맞는 생일을 축하해준다. 돌잔치에 앞서 출산·삼칠일·백일에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신상에 흰밥과 미역국과 정화수를 준비하여 삼신에 대한 치성을 드리고, 아기시루 또는 삼신시루라고 하여 시루떡을 쪄서 삼신상 옆에 놓는다. 아기시루의 떡은 밖으로 나가면 아기의 복이 줄어든다는 미신이 있어서 가족끼리만 먹는다.
아기가 돌이 되면 여러 가지 옷을 화려하게 만들어서 입히는데 이 옷을 돌복이라 한다. 남아의 경우에는 보라색 또는 회색 바지에다 분홍색 또는 색동 저고리에 색동 두루마기를 입히고, 금박 또는 은박을 찍은 남색 조끼에다 색동 마고자1)를 달고 금·은박의 전복(戰服)과 그 위에 홍사대(紅絲帶)를 두르고 폭건(幅巾)에 타래버선과 염낭 등으로 차려 입힌다. 여아의 경우에는 색동저고리에다 빨강색의 긴 치마를 입히고 금·은박을 찍은 조바위에 타래버선과 염낭 등으로 차려 입힌다. 타래버선은 아동용으로 버선을 편하게 만들어 수놓은 것을 말한다.
돌상의 떡은 주로 백설기, 붉은 팥고물을 묻힌 수수경단, 찹쌀떡, 송편, 무지개떡, 인절미, 계피떡 등을 준비한다. 백설기는 아기의 신성함과 정결을 기원하고 장수하라는 의미에서, 수수경단은 덕을 쌓으라는 뜻과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색으로 사귀(邪鬼)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백설기와 수수경단은 꼭 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과, 배 등의 과일과 대추를 그릇에 담아 전면 양쪽에 놓는다. 여기서 대추는 자손의 번창을 바라는 뜻을 지닌다. 돌날에는 친척과 이웃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돌떡은 동네 여러 집에 돌린다. 돌떡을 받은 집에서는 반드시 돌떡을 담아온 그릇을 씻지 아니하고, 그 그릇에 적으나마 물품이나 돈을 답례로 보내준다. 그 돈은 집에서 쓰지 않고 돌쟁이를 위하여 늘리는 방법을 마련하기도 하고 밑전이라고 해서 귀중하게 여긴다.
‘돌잡히기’란 시쉬[試晬]·시주(試周)·시아(試兒)라고도 하며, 돌상 앞에 무명 한 필을 접어서 깔아놓거나 포대기를 접어서 깔고 그 위에 아이를 앉혀 놓고 아이로 하여금 앞에 놓인 물건을 집게 하여, 첫 번째 집는 것과 두 번째 집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남자인 경우에는 쌀·활·책·붓·먹·실·대추·국수·돈 등을 올려놓고, 여자인 경우에는 쌀·무명·붓·먹·종이·실·대추·국수·자·바늘·책 등을 올려놓는다.
●생일- 생일상 차림
●책례- 책례 음식
책례음식
▣성년례(관례.계례)
과거에 흔히 관례라 하고, 남녀 12세에서 18세 사이에 행해지며 그 의미는 하나의 성인으로 비로소 한 사회(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그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지워준다는 것이죠, 대부분 양반가문에서 치뤄지는 중요한 절차입니다. 남자는 갓을 씌워주는 의례 여자는 머리를 땋아 올려주는 계례. 서민들 사이에서는 의례가 중요치 않았겠죠
현대는 20세가 되면 성년식을 가진다.
성년식 음식상
●전통관례의 의미
관례(冠禮)란 유교적 전통사회에서 행해진 성인(成人)의식이다. 대개 15세에서 20세 사이의 남자에게 상투를 틀어 관(冠)을 씌우고,1) 자(字)를 지어주어 성인의 상징으로 삼고 더불어 성인으로서의 책무(責務)를 지게 하였다.2) 그래서 관례를 다른 말로 책성인례(責成人禮)라고 한다. 한편 성년이 된 여자에게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주는 의식으로 계례(笄禮)를 행하여 같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예서(禮書)에서는 계례를 관례편(冠禮篇)에 관례와 함께 수록하였고, 왕실에서는 세자빈의 계례를 관례로 칭하기도 하였다.3)
관례의 필요성과 의의에 대해 『예기(禮記)』의 관의(冠義)에서는 “대개 사람이 사람다운 까닭은 예의가 있기 때문이다. 예의의 시작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얼굴색을 평온하게 가지며 응대하는 말을 순하게 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관이 있은 뒤에 의복이 갖추어지고, 의복이 갖추어진 뒤에 몸가짐이 바르게 되고 안색은 평정하게 되며 응대하는 말이 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관이란 것은 예의 시작이라고 말해진다”라고 하였다.
관례를 행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사마온공4)이 “나이 15세 이상부터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라는 글을 통하여 예의의 방도를 대강 안 연후에 관례를 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관례가 시행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高麗史)』에 “2월에 왕자에게 원복(元服)의 의식을 거쳐 태자로 삼았다”고 나타난다.5) 여기서 원복이란 남자가 스무 살에 어른의 의관을 갖추어 예를 행하는 의식 때 입는 옷을 말한다.
관례는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祠堂)에서 행하였다. 이는 관례를 중대사로 인식하여 함부로 행하지 않고 자기를 낮추고 선조를 높이는 뜻이 담겨져 있다. 관례는 구조상 크게 가례(加禮)·초례(醮禮)·자관자례(字冠者禮)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관례의식을 집행하는 데는 관자(冠者), 주인(主人), 빈(賓), 빈상(儐相), 찬자(贊者), 집사(執事), 집례(執禮) 등의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
관자는 관을 행하는 당사자이고, 주인은 관례 당사자의 친권자로서 아버지나 조부가 되고, 두 분이 없으면 큰형이 된다. 친권자가 없으면 문중어른이 되지만 당사자가 종손이면 자신이 된다. 빈은 관례를 주관하는 주례자로 주인의 친구나 관자의 스승 가운데 학문과 덕망이 있고 예를 아는 사람이 맡는다. 빈상은 빈을 인도하는 안내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집사는 관례 절차의 진행을 도와주는 사람이며, 집례는 관례의 순서를 적은 홀기(笏記)를 읽는 사람이다.
전통관례의 절차
관례 및 계례 모습
●관례고정
관례를 치르기 전에 먼저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에 행사일 3일 전에 술·과일·포를 사당에 올리고 고한다. 사당에 고하는 의식이 끝나면 의례를 주관할 빈을 모신다. 이날 주인은 심의를 입고 주례로 모실 빈의 집을 방문하여 관례를 행해줄 것을 정중히 청하고, 승낙을 받는다. 빈이 승낙을 하면 주인은 두 번 절하고 빈도 답례로 두 번 절한다. 빈이 결정되면 주인은 하루 전에 빈을 모셔다가 집에서 자게 한다. 이를 계빈(戒賓)이라 한다.
관례를 치르는 날이 되면 주인은 가까운 친척들을 초청하여 모신다. 먼저 음식을 법도에 맞게 차려놓고, 다음 의식에 사용될 물건들을 준비해놓는다. 먼저 마당의 동쪽에 세숫대야와 수건을 준비하고, 마당의 서쪽에는 관·모자·복두(유건)를 벌여놓을 상을 놓는다. 대청의 동쪽에는 관례를 행할 장소를, 서쪽에는 초례를 행할 장소를 설치한다. 서쪽 계단 아래에는 자를 지어줄 장소를 설치한다. 방의 동쪽에는 관자의 대기장소를 설치하고, 머리 모양을 바꿀 기구를 준비하며, 서쪽에는 관자가 입을 어른의 평상복, 출입복, 예복을 놓을 장소를 설치한다. 이렇게 진설이 끝나면 직전행사로 들어간다.
관례의 직전행사는 서립의(序立儀)와 빈을 맞이하는 영빈의식(迎賓儀式)부터 시작한다. 서립의는 주인과 관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관례에 임하는 의식으로 먼저 관례를 치를 복식을 갖추어 진설한 관례장소에서 주인과 온 식구가 성복(盛服)을 하고 차례로 서 있으면 빈이 관례에 임하기 위하여 정해진 자리에 선다. 주인은 조계(동녘 섬돌) 아래에서 동쪽에 서고, 자식들과 친척은 그 뒤에 두 줄로 선다. 빈은 대문 밖에서 서쪽을 향해 선다. 관례자는 쌍곡1)을 틀고, 사규삼[童子服]을 입고 행전을 치고 신을 신고 방안에서 남쪽을 향해 선다.
서립의가 끝나면 시가(始加)·재가(再加)·삼가(三加)로 이루어진 가례(加禮)가 이어진다. 이 행사를 통해 두발(頭髮)의 모양을 청소년의 것에서 어른의 형으로 바꾸어주고, 의복 또한 성인의 의복으로 교체하여 성인화를 꾀하는 것이다. 시가란 관례의 첫 번째 절로 어른의 평상복을 입히고 관을 씌우는 과정이다. 먼저 빈이 관례자에게 읍(揖)을 하고 자리에 앉으면, 찬자가 빗과 약(掠)을 가지고 와서 자리의 왼편에 놓고, 관례자의 오른쪽에 서쪽을 향하여 꿇어앉은 후에 찬자가 빗으로 관례자의 머리를 빗기고 약을 씌운다. 집사가 관건을 서계의 1층에서 올려주면 빈이 한 계단을 내려가 관건을 받아가지고 와서 관례자에게 씌우고 축사를 읽는다. 축사를 읽고 관례자에게 관을 씌워주면 찬자가 띠를 매어준다.
관례자는 사규삼(四揆衫)을 벗고 심의(深衣 : 높은 선비의 웃옷)를 입고 큰 띠를 두른 다음 신을 신고 방 밖으로 나와 단정히 선다. 맏아들이 관례자이면, 빈이 읍하고 자리에 앉게 한 다음 세수한다. 재가는 성년으로 전환하는 데 따르는 전이의식(轉移儀式)으로 복식의 교체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빈이 관례자에게 읍하고 관례자를 자리 위에 꿇어앉힌 후에 세수하고 올라오면, 주인은 읍하고 제자리에 선다. 집사가 모자를 올리면 빈이 서계 2층에서 받아 관례자에게 씌우고 재가 축문을 읽는다.
찬자가 모자의 끈을 매어주면 관례자는 신을 벗고 들어가 심의를 벗은 후에 조삼을 입고 혁대를 두르고 신을 신고 문 밖으로 나가 시가 때에 섰던 자리에 가서 선다. 삼가는 관례의 핵심적인 절차로서 이 과정을 통하여 성인으로 전환한다. 집사가 복두를 올리면 빈이 서계로 내려가 받아서 관례자에게 씌우고, 축문을 읽으면 집사는 모자와 옷을 걷어가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관례자는 방에 들어가 조삼을 벗어놓고 난삼을 입고 띠를 두른 다음, 신을 신고 밖에 나가 선다.
위의 삼가 의식이 끝나면 제사인 초례와 자를 지어주는 의식이 이어진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내초(乃醮)라 하여 하늘의 신명(神明)에게 관자가 성인이 되었음을 알리고 살펴주기를 기원하는 행위이며, 관자에게 술을 마시는 예법을 가르치는 절차이다. 먼저 빈이 당(堂) 중앙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남향으로 따로 자리를 편다.
찬자는 손을 씻고 방 안에 들어가 잔을 닦아 거기에 술을 따른 다음 사(柶)2)를 나란히 해서 방 밖으로 나가 서향하고 술잔을 빈에게 올린다. 빈은 술잔을 받아 자리 앞에서 북향하고 초례 축문을 읽는다. 관례자는 왼손은 잔을 들고 오른손으로 포혜를 들어 자리 앞 빈자리에 놓는다. 그 다음 자리 끝으로 나가 꿇어 앉아서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물러난다.
관례자가 남쪽을 향해서 빈과 찬자에게 두 번 절하면 빈과 찬자도 동쪽을 향하여 답배한다. 내초를 마치면 빈이 관자에게 자를 지어주는데 이것을 자관자(字冠者)라고 한다. 자는 어른의 이름으로 이때부터 아명(兒名)을 버리고 자를 부르게 된다. 관례가 끝나면 주인은 관례자에게 사당현알(祠堂見謁)을 시키고, 사당에서 돌아온 관례자는 부모와 친척 어른들을 뵙고 나서 손님들을 접대한다.
●계례
여자 나이 15세가 되면 혼인을 정하지 않았더라도 계례를 행하였다. 계례의 절차는 관례와 거의 비슷하였으나, 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전통 혼례식에 흡수되었다. 계례의 절차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계례일 3일 전에 주례를 청하고, 계례일에 채비를 차리고 의복을 준비하여 차례대로 서서 기다린다. 손님이 오면 맞아들이고 주례가 계례자의 머리를 올려 비녀를 꽂아주는 가관계(可冠笄)를 실시한다. 이것이 끝나면 방에 가서 배자를 입고 제사를 지내고 자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사당에 가서 참배시키고 손님들을 접대한다.
▣혼인례:
관례나 장례처럼 유교를 바탕으로한 의례여서 참으로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그 절차는 사주보내기, 함보내기, 합례, 견구례,대례, 신함, 재행,근친 등 다 설명할순 없고요 넘 복잡해서요..현대에서의 변화만을 간략히 적어볼게요
전통혼례-의혼(議婚).납채(納采).연길(涓吉).교배례
전통혼례는 서로 결혼의사를 타진하는 의혼(議婚), 혼인날짜를 정하는 납채(納采), 예물을 보내는 납폐(納幣), 혼례를 올리는 친영(親迎)의 네 가지 의례로 이루어진다.
●의혼(議婚)은 신랑집과 신부집이 서로 혼사를 의논하는 절차이다. 가문과 가풍을 중시한 한국의 전통 혼례식에서는 양가에서 중매인을 세워 상대방의 가문·학식·인품 등을 조사하고, 두 사람의 궁합을 본 다음에 허혼(許婚) 여부를 결정했다. 대개 신랑집의 청혼 편지에 신부집이 허혼 편지를 보냄으로써 의혼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양가 부모들만이 신랑·신부의 선을 보고 당사자들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다.
●납채(納采)는 혼약이 이루어져 사주를 보내고 연길(涓吉)을 청하는 절차이다. 신부집에서 허혼 편지나 전갈이 오면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사주와 정식으로 결혼을 신청하는 서장(書狀)인 납채문(納采文)을 써서 홍색 보자기에 싸 보내고,
●연길(涓吉)은 신부집에서는 사주를 받으면 신랑·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결혼식 날짜를 택하여 허혼서와 전안(奠雁)연월일과 납폐 시일을 기입한 택일(擇日)을 신랑측에 통지하는데 이것을 연길이라 한다. 사주단자는 길이 1자 3치(40cm), 너비 9치 2푼(28cm) 정도의 백지를 다섯칸으로 접어 그 한가운데에 육십갑자에 따른 생년월일과 출생시간을 쓴다. 이것을 흰 봉투에 넣은 다음 풀로 봉하지 않은 채 뚜껑을 접는다.
사주 봉투는 봉투 길이보다 아래위로 각각 1cm 정도 길게 잘라 중앙을 쪼갠 싸리나무 가지 사이에 끼우고 청실·홍실의 둥근 타래실을 위쪽으로부터 매듭지지 않게 옭아 묶는다. 이것을 사주보에 싼 뒤 ‘근봉(謹封)’이라 쓴 띠를 두른다. 사주보는 겉은 홍색, 안은 청색인 네모난 비단 겹보자기로 네 귀퉁이에는 금전지를 단다. 연길 편지를 받은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을 적은 의제장(衣製狀)을 보낸다. 의제장은 편지를 동봉하며, 겉봉은 사주단자의 피봉과 같이 하고 앞면에는 ‘의양동봉(衣樣同封)’이라 쓴다. 이 절차를 장제회시(章製回市)라고 한다.
납폐는 연길과 의제장을 보내는 절차가 끝난 뒤, 신랑집에서 보통 결혼식 전날 신부용 혼수(婚需)와 혼서(婚書=禮狀) 및 물품목록을 넣은 혼수함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혼서는 신부에게는 무척 소중한 것으로 일부종사의 의미로 일생 동안 간직하였다가 죽을 때 관 속에 넣어가지고 간다고 한다. 신랑집이 가난한 경우 혼서와 함께 채단(采緞)만을 보낸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다른 옷감을 더 넣어 보내기도 하는데 이를 봉채라 한다.
혼수함은 바닥에 고운 종이를 여러 겹 깔고 우선 혼서를 넣는다. 옷감을 함 크기에 맞게 접어서 홍단, 청단의 순으로 넣는다. 위에 종이를 덮고 싸리나무 가지 등으로 살짝 눌러 준다. 함은 홍색 겹보자기로 싸되, 네 귀퉁이를 맞추어 묶지 않고 ‘근봉’이라 쓴 종이로 감는다. 함진아비가 함을 매고 갈 수 있도록 무명필로 어깨끈을 만든다. 혼수함을 보낼 때 신랑집에서는 봉치떡1)을 정성껏 찐 다음, 시루째 마루 위에 있는 소반에 갖다놓고 그 위에 혼수함을 올려놓았다가 지고 가게 한다.
아들을 낳고 내외간의 금실이 좋은 사람으로 함진아비를 정하여 홍단령을 입혀 함을 지고 가게 하고 서너 사람이 횃불을 들고 길을 인도한다. 신부집에서는 대청마루에 상을 놓고 그 위에 홍색 보자기를 깐 뒤 봉치떡 시루를 올려놓는다. 함진아비로부터 혼수함을 정중하게 받아 떡시루 위에 얹어놓는다. 신부집에서는 함진아비 일행에게 옷감이나 돈을 주고 음식을 후하게 대접한다. 함을 옆에 내려놓고, 함을 싼 홍색 겹보자기를 벗긴 후에 함 뚜껑을 열어 함 속에서 채단을 꺼낸다. 이때 청색 종이에 쌓인 홍단을 먼저 꺼내면 첫아들을 낳는다는 옛말이 있다.
●초례(醮禮)
친영은 전안례(奠雁禮)·교배례(交拜禮)·합근례(合巹禮)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을 합쳐서 초례(醮禮)라 한다. 이 예식은 신랑·신부가 처음으로 대면하여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의식으로,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신부를 맞아오는 예로 요즘의 결혼식이다. 주례자가 홀기(笏記)에 따라 식을 진행한다. 전안례는 신랑이 기럭아비와 함께 신부집에 도착하여, 신부의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리는 예이다. 기러기는 정절의 상징으로 한번 짝을 지으면 평생 동안 짝의 연분을 지키고 다른 짝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여 백년해로의 징표로서 신랑이 신부의 어머니에게 드린다.
●전안례(奠雁禮)는 홍색 보자기에 쌓인 나무 기러기를 안은 기럭아비가 앞에 서고 신랑이 그 뒤를 따라 신부집에 도착하면, 신랑은 기러기의 머리가 왼쪽으로 가게 하여 기럭아비로부터 기러기를 건네 받아 문밖의 소반 위에 올려놓는다. 신랑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신부의 어머니에게 절을 두 번 하면 신부의 어머니가 기러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간다. 전안례가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초례청에서 처음으로 상대방을 상견하게 된다. 상견이 끝나면 신랑과 신부가 서로 상대방에게 절을 하는 교배례를 행한다.
●교배례는 서로에게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것으로 식장은 신부집의 대청이나 마당에 동서로 자리를 마련하고 병풍을 친 다음 초례상을 한가운데에 놓는다. 상 위에는 촛불 한 쌍을 켜놓고 송죽(松竹) 화병 한 쌍과 백미(白米) 두 그릇과 닭 한 쌍을 남북으로 갈라놓는다. 술상 두 개를 마련해두며, 세숫대야에 물 두 그릇을 준비하고 수건을 걸어놓는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신랑이 초례청 동쪽 자리에 들어서고, 신부는 수모(手母 : 시중 드는 사람)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바닥에 깔린 백포(白布)를 밟고 초례청 서쪽 자리에 들어선다. 신부의 수모가 신랑쪽 자리를 펴고 신랑의 시반(侍伴)이 신부쪽 자리를 펴면 신랑·신부가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는데 처음으로 상견하는 순간이다.
●합근례(合巹禮)는 상견이 끝나면 성스러운 혼례식에 임하면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로 신랑은 시반, 신부는 수모의 도움을 받아 세숫대야에 담긴 물에 손을 씻는다. 신부는 손을 씻는 흉내만 내고, 소맷자락 밖으로 손을 내놓지 않는다. 신부가 수모의 도움을 받으며 신랑에게 두 번 절을 하고 신랑은 답례로서 한 번 절을 한다. 신부가 신랑에게 다시 두 번 절하고 신랑이 다시 한 번 절한다. 신랑이 신부에게 읍하고 신랑과 신부가 각각 꿇어앉는다. 합근례는 술잔과 표주박에 각각 술을 부어 마시는 의례로 근배례(巹拜禮)라고도 한다.
처음 술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는 것을 의미하며, 표주박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의 화합을 의미한다. 반으로 쪼개진 표주박은 짝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으며 둘이 합쳐짐으로써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신랑 왼쪽의 시반이 잔을 들고, 오른쪽의 시반이 술을 따르면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고 나서 시반이 들어준 잔을 집어 술을 마신다. 이어서 신부 오른쪽의 수모가 왼쪽 수모가 들고 있는 술잔에 술을 따르면 신부 왼쪽의 수모가 잔을 들어 신부의 입에 살짝 갖다 댄다.
신부 왼쪽의 수모가 표주박을 들면 신부 오른쪽의 수모가 술을 따르고 신부의 수모가 신랑에게 표주박을 갖다 주면,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고 나서 표주박을 들어 술을 마신다. 신랑 왼쪽의 시반이 표주박을 들면 신랑 오른쪽의 시반이 술을 따른 후 신랑의 시반이 신부의 입에 표주박을 갖다 대고 신부는 마시는 흉내만 낸다. 이것으로 합근례가 끝나고 혼례식의 절차가 모두 끝난다. 신랑과 신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가의 친척과 여러 하객들에게 큰절을 한다.
방합례는 초례가 끝난 후에 신랑과 신부가 ‘신방’에 함께 들어가는 의식이다. 이때 신랑이 벗은 옷은 신부의 하녀가 받고, 신부가 벗은 옷은 신랑의 하녀가 받는다. 또 신랑 자리는 신부의 하녀가 펴고, 신부 자리는 신랑의 하녀가 편다. 이것은 두 사람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신방 엿보기’라 하여, 창호지문을 침 묻은 손가락으로 뚫고 신방을 엿보는 풍속이 있다.
- 혼례의 절차 - 혼례 음식
폐백음식
▣회혼례 회갑 회갑기념 사진
회갑이란 사람이 출생하여 60주년이 되는 생일을 말한다. 60간지(干支)가 한바퀴 돌았다 하여 회갑이라 하며, 환갑(還甲)·주갑(周甲)·화갑(華甲)이라고도 한다. 회갑이 되어 베푸는 잔치를 수연(壽宴)이라 하고, 잔치를 마련하는 것은 부모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리며, 더욱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기원함에 있다. 헌수(獻壽)란 자녀들이 큰상을 차려놓고 회갑을 맞이한 사람에게 술을 올리고 절하면서 축수(祝壽)하는 것을 말한다. 회갑을 맞이한 부모님을 접대하고 경축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가정 형편에 따라 정성껏 준비한다.
차리는 음식의 종류는 지방 혹은 가풍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앞쪽에 실과류·옆줄에 편류·뒤쪽에 적을 놓는 방법은 거의 공통적이다. 전통적인 큰상을 차릴 때 여러 가지 음식을 원통형으로 높이 괴어올리는 굄새는 조형 기능의 결정체로서,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숙달된 솜씨가 필요하여 옛날에는 큰상을 괼 때 숙수(熟手)라 불리는 전문가를 청하는 일이 많았다. 음식을 위로 높이 괴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괴는 높이에 비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다섯 치에서 한 자 정도의 높이로 올린다.
그런데 회갑을 맞은 사람의 부모가 아직 살아 있다면, 헌수 전에 그 부모 앞에 큰상을 차려놓고 회갑을 맞이한 부부가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그리고 나서 자기의 자리에 앉아서 자녀들로부터 헌수를 받는다. 헌수는 큰아들 부부부터 시작하여 큰아들이 잔을 잡으면 큰며느리가 술을 따르고 부모에게 올린다. 이어서 “아버님, 어머님 오복을 두루 갖추어 받으시와 만수무강 하시옵소서”라고 축수를 하고 부부가 함께 큰절을 올린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차남, 삼남, 출가한 딸의 내외, 친척, 손님 등의 순서로 헌수를 진행한다. 회갑잔치의 좌석배치는 병풍을 치고 병풍 앞에 당사자가 앉고 그 앞에 상을 차린 다음 자손들이 당사자를 향해 선다. 아버지는 자기들의 오른쪽인 동쪽, 어머니는 자기들의 왼쪽인 서쪽에 모신다.
●수연례와 회혼례 - 수연의 종류 회갑연 이외의 장수잔치
우리나라 나이로 60세가 되는 생일에 가까운 친척·친지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고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비는 육순(六旬) 잔치가 있다. 회갑 이듬해, 즉 62세가 되는 생일에 육순 잔치 때처럼 간단한 음식을 차려 손님을 접대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진갑(進甲) 잔치가 있다. 옛날에는 70세가 되도록 사는 사람이 드물어 부모님이 70세가 되면, 자손들이 고희연(古稀宴)을 베풀어 장수를 축하하였다.
칠순잔치를 다른 말로 희연(稀筵), 또는 망팔(望八)이라고도 한다. 70세를 칠순(七旬), 또는 고희(古稀)라고 부르는 것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문구에서 유래된 것이다. 77세가 되는 생일에 간단한 잔치를 하는데 이를 희수연(喜壽筵)이라 한다. 77세를 희수라 하는 까닭은 ‘희(喜)’자를 초서(草書)로 쓴 것을 파자(破字)할 경우 ‘칠십칠(七十七)’이 되기 때문이다. 88세가 되는 생일에는 미수연(米壽筵)을 차리고 축수한다. ‘미(米)’자를 파자할 경우 ‘팔십팔(八十八)’이 되기 때문이다. 99세가 되는 생일에는 백수연(白壽筵)을 차린다. 일백 ‘백(百)’자에서 ‘일(一)’을 제거하면 ‘백(白)’자가 되는 까닭이다.
결혼 60주년을 맞은 부부는 해로(偕老) 60년을 기념하는 ‘회혼례(回婚禮)’라는 의례를 치른다. 자녀들은 친척·친지들을 초대하여 부모님들에게 60년 전과 같은 혼례식을 올려드리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부모님의 회혼례을 축하한다.
- 큰상 차림
▣상장례 전통상장례. 성복한 상주들. 발인.사자상(使者床)
전통상례(喪禮)는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고 땅에 묻힌 다음 담제(禫祭)·길제(吉祭)를 지내는 것으로 탈상(脫喪)하게 되는 3년 동안의 모든 의식을 말한다. 상례는 관혼상제의 의례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정중하며 그 절차가 까다롭고 이론(異論)이 구구하다. 상례는 예기(禮記)에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옛날부터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거하여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준수되어왔다.
전통상례는 임종(臨終)-수시(收屍)-고복(皐復)-발상(發喪)-전(奠)-습(襲)-소렴(小殮)-대렴(大殮)-성복(成服)-치장(治葬)-천구(遷柩)-발인(發靷)-운구(運柩)-하관(下棺)-성분(成墳)-반곡(反哭)-초우제(初虞祭)-재우제(再虞祭)-삼우제(三虞祭)-졸곡(卒哭)-부제(祔祭)-소상(小祥)-대상(大祥)-담제(禫祭)-길제(吉祭)-개장(改葬) 등의 절차를 거치는데 매우 복잡하다.
초종은 임종(臨終)에서 전(奠)까지의 상례절차를 말한다. 임종은 운명(殞命)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죽을 때를 말한다. 평상시에 거처하던 방을 깨끗이 치우고 환자를 눕힌 다음 이불을 새것으로 바꾸고 옷도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힌다. 그리고 집 안팎을 모두 깨끗이 청소한 다음 조용히 앉아서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린다. 이때 환자의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북쪽에 눕힌다. 숨이 끊어지면 먼저 눈을 감기고 깨끗한 솜으로 입과 귀와 코를 먼저 막고 머리를 높고 반듯하게 괸다. 시체가 굳기 전에 손발을 고루 주물러 편 다음 남자는 왼손을 위로,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하여 두 손을 한데 모아 백지로 묶고, 발도 가지런히 하여 백지로 묶는다. 백지로 얼굴을 덮은 후 칠성판(七星板) 위에 눕히고 홑이불을 덮는다.
이 절차는 아주 정성껏 해야 하고, 소홀히 하면 수족이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아 염습(殮襲)할 때 문제가 된다. 이것이 끝나면 곡(哭)을 하는 집도 있으나, 대체로 고복이 끝난 뒤에 곡을 한다. 뜰아래나 대문 밖에는 사잣밥을 차려놓는데, 밥상에 밥 세 그릇, 술 석 잔, 백지 한 권, 명태 세 마리, 짚신 세 켤레, 동전 몇 닢을 얹어놓고 촛불을 켜놓는다. 이 사잣밥은 임종한 사람을 데리러 온다는 저승사자를 대접함으로써 고인을 편하게 모셔가 달라는 뜻에서 차리는 것이다.
고복은 남자의 초상에는 남자가, 여자의 초상에는 여자가 죽은 사람의 상의를 가지고 동쪽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를 잡고서 북쪽을 향해 옷을 휘두르면서 먼저 죽은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왼 다음 “복(復)! 복! 복!”하고 세 번 부르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 초혼(招魂)이라고도 한다. 이는 죽은 사람의 혼이 북쪽 하늘로 가고 있다고 하여 혼이 다시 돌아오도록 부르는 것으로,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아야 비로소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곡을 하는 것이다. 이때 죽은 사람의 벼슬이 있으면 모관모공(某官某公)이라고 벼슬·이름을 부르고, 벼슬이 없으면 학생모공(學生某公)이라 한다. 안상[內喪]에는 유인모관모씨(儒人某官某氏)라 부르고, 만약 남편이 벼슬이 있으면 모부인 모관모공(某婦人 某官某公)이라 부른다.
발상이란 초상난 것을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상주(喪主)와 주부(主婦)를 세우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큰아들이 상주가 되지만 큰아들이 없을 때는 장손(長孫)이 상주가 된다. 또 아버지가 없고 형제만 있을 때는 큰형이 상주가 된다. 주부는 원래 죽은 사람의 아내이지만 아내가 없으면 상주의 아내가 주부가 된다.
다음으로 호상(護喪)은 자제들 중에 예법을 하는 사람으로 정해서 초상일을 모두 그에게 물어서 하게 한다. 다음 문서를 맡는 사서(司書)나 재물을 맡아 처리하는 사화(司貨)는 자제들이나 이복(吏僕)들 중에서 정한다. 전이란 고인을 생시와 똑같이 섬긴다는 의미에서 제물을 시신 동쪽에 놓인 제상 위에 집사자가 포와 젓갈을 올려놓는다. 다음으로 축관(祝官)이 손을 씻고 잔에 술을 부어 제상 위에 올린다. 이런 일들을 집사가가 대신하는 것은 모든 초상 범절에 주인이 슬퍼해서 일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호상이 목수를 시켜서 관(棺)을 만들게 한다. 관을 만드는 재료로는 유삼(油衫)이 제일 좋고 그 다음이 잣나무이다. 천판(天板) 하나 지판(地板) 하나에 사방판(四方板)이 각각 하나씩 필요하며 높이나 길이는 시신에 따라 약간 여유 있게 하고, 두께는 세 치 혹은 두 치 반으로 한다. 그 후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부고(訃告)를 보내는데 임종에서부터 이 절차까지를 초종(初終)이라 한다.
●습(襲)은 시체를 닦고 수의(壽衣)를 입힌 뒤 염포(殮布)로 묶는 절차인데 다른 말로 염습(殮襲) 또는 습렴(襲殮)이라 한다. 먼저 향나무 삶은 물이나 쑥을 삶은 물로 시신을 깨끗하게 씻기고 수건으로 닦은 후에 머리를 빗질하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머니에 넣는다. 이것은 대렴(大殮)을 할 때 관 속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시신을 침상에 눕히고 수의를 입히는데, 옷은 모두 오른쪽으로 여민다. 수의는 비단·마직·베 등 자연소재로 윤년이나 윤달을 택해 준비해두고, 수의를 바느질할 때에는 가시는 길에 막힘이 없으시도록 실의 매듭을 짓지 않는다. 다음으로 습전(襲奠)이라 하여 제물을 올리고 주인 이하 모두가 자리에서 곡한다. 이어 반함(飯含)이라 하여 시신의 입속에 구슬과 쌀을 물려주고 염습의 절차가 끝나면 이불로 시신을 덮는다. 이를 졸습(卒襲)이라 한다. 이때 화롯불을 피우고 영위(靈位)를 모시는 자리인 영좌(靈座)를 꾸민다. 영좌는 먼저 교의를 놓고 위에는 혼백(魂帛)을 만들어 얹고 명정(銘旌)도 만들어 세워놓는다. 교의 앞에 자리를 깐 다음 제상을 놓는다.
제상 앞에는 향탁을 놓고 그 위에는 향합과 향로를 놓고, 향탁 앞에는 모사 그릇을 놓는다. 이 의식이 끝나면 친족·친지들이 들어가서 곡한다. 혼백은 너비 한 폭에 길이 1자 3치(약 40cm)인 흰색 비단·마포·백지 등을 접은 뒤 오색실로 만든 동심결(同心結)을 끼워 만들어 혼백함에 넣어 교의 위에 모시는데, 밤에는 덮어서 눕혀두고 낮이면 열어 세워둔다. 혼백은 장례 후 2년 동안 빈소에 모셨다가 대상을 치른 뒤 묘소에 묻는다. 명정은 길이 2m 정도의 홍색 비단에 흰색 글씨로 남자는 ‘모관모공지구(某官某公之柩)’, 여자는 ‘모봉모관모씨지구(某封某貫某氏之柩)’라고 쓴다. 명정은 긴 장대에 달아 출상(出喪) 전에는 여좌의 오른쪽에 세워두었다가 출상 때에는 영구 앞에서 들고 간다. 소렴이란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말한다.
●소렴은 고인이 죽은 다음 날 아침에 날이 밝으면 집사자가 소렴상과 시신을 묶을 베·이불·옷 등을 준비하고 제물을 올린 후에 시작한다. 시신을 소렴상에 눕히고 옷을 입힐 때는 왼편으로부터 여미되 고름은 매지 않으며, 손은 악수(握手)로 싸매고 멱목(幎目)으로 눈을 가리고 폭건과 두건을 씌운다. 다음 이불로 고르게 싼 다음, 장포 두 끝을 찢어 각각 매고 속포(束布)로 묶는다. 이때 속포 한쪽 끝을 세 갈래로 찢어서 아래로부터 차례로 묶어 올라간다. 소렴을 한 후에 상주는 서쪽을 향해, 주부는 동쪽을 향해 통곡한다. 영좌 앞에 나가 습전을 치우고 새 전을 펴고, 전 앞에 분향하고 잔을 씻어 술을 부어올린다. 이때 상주는 절하지 않으며, 대곡(代哭)하도록 한다.
●대렴이란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入棺)하는 의식으로 소렴을 한 이튿날에 한다.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탁자를 가져다가 방 동쪽에 놓고, 옷 한 벌과 이불 둘을 준비한다. 시신을 맬 베는 세로는 한 폭을 셋으로 쪼개서 소렴 때와 같이 하고 가로는 두 폭을 쓴다. 다음으로 관을 들여다가 방 서쪽에 놓고 입관하는데, 이때 자손과 부녀자들은 손을 씻는다. 제물을 올리는 것은 소렴 때와 같다. 대렴금으로 시신을 싸되 먼저 발을 가린 다음 머리를 가리고 또 왼쪽을 가린 뒤에 오른쪽을 가린다. 장포와 횡포순으로 맨 다음 시신을 들어서 관속에 넣는다. 생시에 빠진 이나 먼저 깎은 손·발톱을 담은 주머니를 관 귀퉁이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병풍이나 포장으로 관을 가린 뒤 관 동쪽에 영상을 마련하고 제물을 올린다. 영상 위에 고인이 사용하던 침구·의복·지팡이·신·수건·붓·벼루 등을 올려놓는다. 대렴이 끝나면 대곡(代哭)을 그친다.
●성복은 상복을 입는 절차로 대렴이 끝난 이튿날,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 하는 의식이다. 날이 밝으면 오복(五服)의 사람들이 각각 복을 입고 차례대로 조곡(朝哭)을 하고 서로 조상(弔喪)한다. 오복이란 상복을 참최·재최·대공·소공·시마로 구분한 것을 통칭한 것이다. 참최(斬衰)는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가 안 계실 때 조부나 증조, 고조를 위해서 승중(承重)하는 자, 아버지가 적자(嫡子)를 위해 3년 동안 입는 복이다. 반면에 승중은 했어도 폐질(廢疾)이 있어 종묘(宗廟)의 일을 맡아 다스리거나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자가 그 뒤를 이었을 때, 서손(庶孫)이 그 뒤를 계승할 때, 서자(庶子)를 세워 대를 잇게 했을 때는 참최를 입지 못한다. 재최(齋衰)는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3년 동안 입는 복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우와 출가한 딸이 어머니를 위해서는 3년을 입지 못한다. 대공(大功)은 종형제(從兄弟)와 종자매(從姉妹)를 위해 9개월 동안 입는 복이다. 이미 시집간 손녀와 적자가 있을 때 장손(長孫)을 위해서도 같다. 소공(小功)은 종조부모(從祖父母), 형제의 손자, 종형제의 아들, 재종형제를 위해서 5개월 동안 입는 복이다. 외조부모(外祖父母)와 외숙(外叔), 생질(甥姪)에게도 같다. 시마(緦麻)는 종증조부모(從曾祖父母), 증조(曾祖)의 형제나 자매, 형제의 증손(曾孫)과 증조부모를 위해 3개월 동안 입는 복이다.
●치장은 택지(擇地)에서 성분(成墳)까지의 절차를 말한다. 택지는 상주 이외의 자식 중 한 사람이 내정된 곳에 가서 시신을 평안히 모실 수 있는 곳인가를 살피는 것이다. 묏자리를 볼 때는 옛날부터 길이 날 곳이 아닌가, 건물이 설 자리가 아닌가, 묘가 파일 염려는 없는가, 세력 있는 자에게 빼앗길 자리가 아닌가, 농토로 변할 자리가 아닌가 등의 다섯 가지 사항을 주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항을 잘 검토하여 묘지가 결정되면, 장사 지낼 날짜를 정하여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알리고 조전 때 영연(靈筵)에 고한다. 장지에 공사를 시작하면 사토제(祠土祭)를 지낸다. 이날 상주가 조곡을 마치면 사토제를 지낼 사람을 선정하여 집사와 같이 묫자리에 가서 네 귀퉁이에 각각 표목을 세우고 중간에 신위를 남향으로 설치하고 주과포혜를 진설하고 사토제를 지낸다. 이때 상주는 참석하지 않는다. 무덤 구덩이인 광중(壙中)을 팔 때는 나무 네 개를 가지고 정(井)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관의 척수를 헤아려 반듯하게 놓아 그 모양대로 땅을 판다. 광중을 다 파고 나면 석회에 모래를 섞어 관에 들어갈 만큼 발라 곽(槨)과 같이 만든다.
부부를 같이 합장할 때는 남자는 서쪽, 여자는 동쪽으로 한다. 선영에 묘를 쓸 때는 먼저 선영의 묘에 제사를 지낸다. 천구는 영구(靈柩)를 상여로 옮기는 의식으로 발인(發靷) 전날 행한다. 이때 상복을 입은 친척들이 모두 와서 참례하고 조전을 올린다.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앞서 가서 사당 앞에 뵈면 집사는 제물을 진설한다. 다음에 명정이 따르고 복인(服人)들이 영구를 들어 모시면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면서 그 뒤를 따른다. 사당 앞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향해 혼백을 자리 위에 모신다.
영구를 다시 마루로 옮길 때는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영구를 안내하면 주인 이하 모두가 곡하면서 뒤따른다. 마루에 도착하면 영구를 자리 위에 놓고 축관은 영구 앞에 제상을 마련한다. 이것이 끝나면 모두 제자리에 앉아 곡을 한다. 해가 지면 조전을 올리고 이튿날 날이 밝으면 영구를 상여로 옮긴다. 발인이란 영구가 장지를 향해 떠나는 것을 말한다. 축관이 술을 따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축문을 읽고 나면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고 절한다.
영구가 떠나면 방상(方相)1)이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한다. 명정, 공포, 만장, 요여(腰輿), 요여 배행, 영구, 영구 시종, 상주, 복인, 조객의 순서로 출발한다. 요여 배행은 복인이 아닌 친척이 하는 것이 예이며, 영구의 시종은 조카나 사위가 하는 것이 예이다. 만장(輓章)은 고인을 애도하여 지은 글로서 비단이나 종이에 싸서 기를 만들어 상여를 따르도록 한다. 만장의 첫머리에는 ‘근조(謹弔)’라 쓰고, 만장의 본문을 쓴 다음, 맨 끝에 쓴 사람의 성명을 쓰되 ‘○○(본관) 후인 ○○○(성명) 곡(哭) 재배(再拜)’라 쓴다. 운구란 영구를 운반하여 장지까지 가는 것을 말한다. 운구하는 도중에는 상주 이하 모두가 곡을 하면서 따른다. 상여로 운구할 때 묘소로 가는 도중에 노제(路祭)를 지내기도 한다. 이는 고인과 친한 조객이나 친척 중에서 뜻있는 사람이 스스로 음식을 준비했다가 지낸다.
만일 묘소가 멀 때는 매 30리마다 영구 앞에 영좌를 만들고 조석으로 곡하며 제사를 올리고 식사 때가 되면 상식을 올리고 밤이면 상주 형제는 모두 영구 곁에서 잔다. 하관할 때 상주들은 곡을 그치고 하관하는 것을 살펴본다. 혹 다른 물건이 광중으로 떨어지거나 영구가 비뚤어지지 않는가를 살핀다. 하관이 끝나면 풀솜으로 관을 깨끗이 닦고 나서 구의(柩衣)와 명정을 정돈해서 관 한복판에 덮는다. 집사자가 현훈(玄纁)2)를 가져다가 상주에게 주면 상주는 이것을 받아서 축관에게 주고 축관은 이것을 받들고 광중에 들어가 관의 동쪽, 즉 죽은 사람의 왼편에 바친다. 이때 상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슬피 곡한다.
광중에 흙을 채우고 봉토를 만드는 것을 성분이라 한다. 축관으로 하여금 산신제를 지내도록 하고, 산신제가 끝나면 나무로 깎아 만든 신주에 글씨를 쓴다. 신주는 벼슬이 1품에 이른 사람은 주목(朱木), 3품 이상은 비자나무, 그 이하는 밤나무로 만든다. 신주에는 아버지인 경우 ‘현고학생부군 신주(顯考學生府君 神主)’, 어머니인 경우 ‘현비유인 ○○○씨 신주(顯孺人 ○○○氏 神主)’, 아내는 ‘망실(亡室)’, 서자의 어머니는 ‘망모(亡母)’라고 쓴다. 신주가 완성되면 평토제(平土祭)를 지낸다. 지석(誌石) 두 개를 준비하여 윗돌에는 ‘모관모공지묘(某官某公之墓)’라 새기고, 아랫돌에는 성명과 자·출생일·사망일·출생지·가족관계·관직 약력 등을 적어 묘 근처에 포개어 묻는다.
반곡은 장례가 끝난 뒤 상주 이하가 요여3)를 모시고 귀가하면서 곡하는 것을 말한다. 집사는 영좌를 미리 만들어놓았다가 상주가 집에 도착하면 축관으로 하여금 신주를 모시게 하고 신주 뒤에 혼백함을 모신다. 그러면 상주 이하가 그 앞에 나가 곡을 한다. 장지에서 혼백을 다시 집으로 모셔오는 것을 반혼(反魂)이라 한다.
●초우제는 장례를 모신 당일에 지내며, 묘지가 멀어서 당일에 집에 도착하지 못하면 도중 숙소에서 지낸다. 초우제를 지내려면 목욕을 깨끗이 해야 하고, 상황이 안 되면 세수라도 정결히 한다. 집사가 제상에 제수를 진설하고 축관이 신주를 영좌에 모시면, 촛불을 켜고 남자들은 동쪽에서 서쪽을 보고, 여자들은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상장을 짚고 서열대로 서서 곡을 한다. 초우제는 강신(降神)-초헌(初獻)-아헌(亞獻)-종헌(終獻)-첨작(添酌)-합문(閤門)-계문사신(啓門辭神)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재우제는 초우를 지낸 뒤 십간(十干) 중에 을(乙)·정(丁)·기(己)·신(辛)·계(癸)가 든 날인 유일(柔日)에 지내고, 재우제를 지낸 후 돌아오는 갑(甲)·병(丙)·무(戊)·경(庚)·임(壬)이 든 첫 강일(剛日)에 ●삼우제를 지낸다.
●졸곡은 삼우가 끝난 후 3개월이 지나서 강일을 당하면 지낸다. 제사 지내는 절차는 삼우제 때와 다를 것이 없고, 다만 이로부터는 비록 슬픈 마음이 들어도 무시로 곡하지 않고 조석곡(朝夕哭)만 한다. 졸곡이 지난 후부터는 밥을 먹고 물도 마시며 잠 잘 때는 목침을 벤다. 부제는 졸곡을 지낸 다음 날 새 신주를 조상의 신주 곁에 모실 때 지낸다.
●소상은 돌아가신 지 만 1년이 되는 날 지내는 제사로서 윤달에 상관없이 13개월 만에 지낸다. 제사 하루 전에 상주 이하 모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이때 모든 복인들은 연복(練服 : 빨아서 다듬은 옷)으로 갈아입고, 기년복을 입었던 사람은 평상복인 길복(吉服)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나 소상 달이 가기 전에는 비단이나 유색 옷은 입지 않는다. 소상이 지난 후에는 아직 복을 벗지 않은 사람에 한해서 삭망(朔望)에만 제사 지내며 곡을 한다.
●대상은 돌아가신 지 만 2년이 지난 기일에 올리는 제사이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한 상은 만 1년이 되는 기일이 대상이 된다. 대상이 지나면 3년상을 벗는데, 상복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상장과 요대는 태운다. 이날부터 포·젓갈은 먹으나 다른 고기나 술은 먹지 않는다. 담제는 초상으로부터 27개월 만에, 즉 대상으로부터 두 달째에 지내는 제사로서 복을 다 벗는 제사이다. 그래서 담제를 탈상(脫喪)이라 한다. 담제의 일자는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 가운데 택일한다. 그러나 초상이 겹쳤을 때는 먼저 초상의 담제는 지내지 않으며, 아버지가 생존한 모상이나 처상의 담제는 15개월 만에 지낸다. 담제를 지낼 때는 한달 전 하순경에 미리 날을 정하여 사당에 고한다.
담제가 끝난 후 다음달의 정일이나 해일에 사당의 신주를 고쳐쓰기 위해 지내는 제사이다. 신주는 제사를 주관하는 주제자를 중심으로 하여 대(代)를 쓰는 것이므로 대가 바뀌면 고쳐 써야 하고, 오대조 고비(考妣)는 사당에 모실 수 없어 그 신주를 묘소 옆에 묻는데, 이를 매안(埋安)이라 한다. 이에 따라 오대조 고비는 기제에서 묘제로 옮겨지게 된다. 개장은 묘를 옮겨 다시 장사 지내는 것을 말하며, 이장(移葬)이라고도 한다. 의식은 초상 때와 같고, 이장하려면 먼저 새 묘소를 정하여 날을 받은 다음 옛 묘지에 가서 토지신에게 고하고 사당에도 하루 전에 고한다. 장사 후 3년 내에 개장할 때는 초상 때의 상복을 그대로 입고, 3년이 지난 후면 시마복(緦麻服)을 새로 지어 입는다.
- 설 전- 사잣밥- 조석 상식- 조문객 접대 상차림
▣제의례
제사(祭祀)는 유교사상에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애모를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수백년 동안 4대봉사(四代奉祀)로 조상의 제사를 지내왔다. 우리나라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인 기일(忌日)에 해마다 한 번씩 지내는 기제(忌祭), 명절이나 조상의 생일에 간단하게 지내는 차례(茶禮), 철에 따라 1년에 네 번 드리는 사시제(四時祭), 산소를 찾아가서 드리는 묘제(墓祭), 한식(寒食)에 찾아가서 드리는 성묘 등의 제사가 있다.
- 제례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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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
영신(迎神)-강신(降神)-참신(參神)-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첨작(添酌)-삽시정저(揷匙正箸)-합문(閤門)-계문(啓門)-헌다(獻茶)-철시복반(撤匙覆飯)-사신(辭神)-철상(撤床)-음복(飮福)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기제(忌祭)는 하루 전에 위(位)를 설치하고, 기일의 새벽 자시(子時)에 행하는 것이 관례이다. 제주는 죽은 사람의 맏아들이나 맏손자가 하며, 제사에 참례할 사람은 직계 자손으로 하며,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도 참석할 수 있다.
먼저 대문을 열어놓아 조상을 맞이한다. 이를 영신이라 한다. 제상의 뒤쪽(북쪽)에 병풍을 치고 제상 위에 제수를 진설하고 지방(紙榜)을 써붙이면 제사의 준비가 끝난다. 고례에는 출주(出主)라 하여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 내오는 의식이 있었다. 지방은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정성 들여 쓰며 길이는 22cm, 넓이는 6cm 정도로 하며, 생전에 관직이 없으면 ‘학생(學生)’이라 쓰고 관직이 지냈으면 관직을 그대로 쓴다. 강신은 영혼의 강림을 청하는 의식이다.
제주(祭主)가 신위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앉아 향로에 향을 피운다. 술을 따라 향불 위에서 세 번 돌린 다음, 모사(茅沙)1) 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고 일어나 두 번 절한다. 여기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에 계신 신에게 알리기 위함이고, 모사에 술을 따르는 것은 땅 아래 신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참신은 고인의 신위에 인사하는 절차로 모든 참사자가 일제히 두 번 절한다. 신주인 경우 참신을 먼저하고 지방인 경우 강신을 먼저 한다.
초헌은 제주가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아 분향한다. 술을 따라 향불 위에서 세 번 돌린 다음 모사 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고, 잔을 메2)그릇과 갱3)그릇 사이의 앞쪽에 놓고 제물 위에 젓가락을 올려놓는다. 초헌이 끝나고 참사자가 모두 꿇어앉으면 축관이 옆에 앉아서 축문을 읽고, 이것이 끝나면 모두 일어나 두 번 절한다. 축문은 신명 앞에 고하는 글로 그 내용은 제위분께 간소한 제수나마 흠향하시라는 뜻을 고하는 글이다. 요즘은 한글로 쉽게 쓰기도 하며, 크기는 폭 25cm, 길이 36cm 정도로 한다.
아헌은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원래는 주부가 올린다. 절차는 초헌 때와 같으나 모사에 술을 따르지 않는다. 주부는 네 번 절한다. 종헌은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아헌자 다음의 근친자가 아헌 때와 같이 하고, 잔은 7부쯤 부어서 올린다. 종헌이 끝나고 조금 있다가 제주가 다시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으면 종헌 때 7부쯤 따라올렸던 술잔에 세 번 첨작하여 술잔을 가득 채운다. 이를 첨작이라 한다. 첨작이 끝나면 주부가 메그릇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중앙에 꽂고, 젓가락을 어적이나 육적 위에 가지런히 옮겨놓는다. 이것을 삽시정저라 하며, 이것이 끝나면 제주는 두 번, 주부는 네 번 절한다.
첨작과 삽시정저의 두 절차를 합쳐 유식(侑食)이라 하는데, 이것은 진지를 권하는 의식이다. 삽시정저의 절차가 끝나면 참사자가 모두 잠시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기다린다. 이것을 합문이라 한다. 대청마루에 제상을 차렸으면 뜰 아래로 내려가 읍(揖)하고 잠시 기다린 후에 조금 있다가 축관이 헛기침을 세 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참사자가 모두 뒤따라 들어간다. 이를 계문이라 한다. 갱을 내리고 숭늉을 올린 뒤 메 세 술을 떠서 물에 말아놓고 저를 고른다. 이를 헌사라 한다. 이때 참사자는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잠시 동안 조용히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든다.
다음으로 숭늉 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두어 제자리에 놓고 메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이를 철시복반이라 한다. 사신은 고인의 영혼을 전송하는 절차로 참사자가 신위 앞에 일제히 두 번 절한 뒤, 축관이 지방을 내오고, 지방과 축문을 불사른다. 이어 철상이라고 하여 제상 위의 모든 제수를 집사가 뒤쪽에서부터 차례로 물리고, 참사자가 한자리에 앉아 제수를 나누어 먹는데 이를 음복이라 한다.
●묘제
5대조 이상의 선조에 대해 1년에 한 번 3월이나 10월에 날을 잡아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로 묘사(墓祀)·시향(時享)·시사(時祀)·시제(時祭)라고도 한다. 한편 불천지위(不遷之位)라 하여 큰 공이 있어 신주를 영원히 모시라는 나라의 명이 있는 선조는 별도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모시기 때문에 여기에서 제외된다. 묘제를 지내기에 앞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낸다.
산신제는 강신·모사가 없고 향을 피우지 않는데, 이는 불과 땅이 상극이기 때문이다. 산신제는 보통 집사가 대리해서 지내는데, 제수를 진설하고 참신한 다음 술 한 잔만 올리고 독축한 후 재배하고 사신(辭神)하면 끝난다. 묘제의 제주는 종손이 된다. 제수는 상석에 진설하고, 상석이 없으면 제상으로 대신하고, 진찬의 의식이 없으므로 한 번에 진설한다.
또한 신주나 지방이 없으므로 먼저 강신하고 나서 참신을 한다. 참신에 이어 초헌을 하고 축문을 읽는다. 독축이 끝나면 아헌·종헌·참작을 한 다음 갱을 내리고 물을 올린다. 물에 메를 조금씩 세 번 떠서 말아놓았다가, 잠시 후 철시복반하고 사신한다. 그리고 음복한다.
●사시제
사시제는 고조부모까지의 조상이 대상이 되고, 5대조 이상은 세일제(歲一祭)로 1년에 한 번 제사를 올린다. 사시제는 중월(仲月 : 2·5·8·11월)에 하고 그 전달 하순에 택일한다. 먼저 주인이 성복을 입고 사당의 중문 밖에 서쪽을 향해 서며, 형제들은 주인 남쪽에서 조금 물러 북쪽 위에 서고 자손들은 주인 뒤에 선다. 주인은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하고 엎드리면, 축이 동쪽을 향해 주인 왼쪽에 꿇어 엎드려 고사(告辭)를 읽는다.
하루 전날 집사자를 시켜 정침(正寢)을 청소하고 북쪽 벽 밑에 남쪽을 향해 신위를 마련한다. 고위(考位 : 할아버지·아버지의 신위)는 서쪽, 비위(妣位 : 할머니·어머니의 신위)는 남쪽으로 서쪽을 향해 놓고, 방 한가운데 탁자를 놓고 위에 향로·향합·촛대를 놓는다. 실과와 접시는 탁자 남쪽 끝에 놓고, 나물과 포혜는 서로 사이를 두되 그 다음 줄에 놓는다. 잔반과 초접시는 북쪽 끝에 진설하고, 잔은 서쪽에 놓는다.
- 제의 음식
▣맺음말
출생의례에도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는 기자의례. 임신한 후의 지켜야하는 금기해야하는 것과, 태교가 있고 출생후에도 돍잔치 등의 행사가 있어요.
기자의례-부처님 코갉아먹기, 영험한 바위에 치성드리기, 절에서 불공드리기 등등
임신후 금기와 태교-토끼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눈이 빨간 애를 낳는다.) 불상스런운 언행을 삼가하고, 그와 같은 물건이나 행위를 보거나 행하지 말라 등등
현대에서는 아들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과거에 비해 많이 사그라들었죠, 그러한 아직도 아들을 얻기위해 노력하는 어머님들이 많습니다. 그 형식도 많이 변했죠, 가령 요즘은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간단하게 미역국을 먹는 것으로 행위가 단축되었죠, 예전에는 3-7일(보통21일동안 아이를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라해서 면역체가 약한 아기를 보호하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죠, 의학의 발달 덕분입니다.돍잔치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풍습입니다.영아사망률이 높았던 과거에는 1년을 아기가 살았다는 것은 굉장히 축복해야한 큰 경사였죠,,하지만 요즘은 약식으로 많이 치르죠,
성인의례는 과거에 흔히 관례라 하고, 남녀 12세에서 18세 사이에 행해지며 그 의미는 하나의 성인으로 비로소 한 사회(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그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지워준다는 것이죠, 대부분 양반가문에서 치뤄지는 중요한 절차입니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의례가 중요치 않았겠죠
현대에서는 정부가 정한 성인의 날이 따로 있지만 유명무실하죠, 제 생각인데 혹시 과거의 관례 대신 고등학생이 치르는 대입시험이나 고교 졸업식 등이 이 관례를 대치하고 있질 않나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통 성인으로 간주하니깐요,,대학 입시는 정말 하나의 풍습으로 자리잡았읍니다.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성인으로의 첫 출발을 대학에서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청소년에게도 중요한 문제죠, 그렇기 때문에 100일주니 뭐니하는 학생들간에도 신풍속이 생기질 않습니까?
결혼은 관례나 장례처럼 유교를 바탕으로한 의례여서 참으로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그 절차는 사주보내기, 함보내기, 합례, 견구례,대례, 신함, 재행,근친 등 다 설명할순 없고요 넘 복잡해서요..현대에서의 변화만을 간략히 적어볼게요
현대헤서는 연애 결혼이 많죠,과거에는 중매가 대부분이었기에 사주와궁합은 중요했읍니다. 현대에서 찾아볼수 있는 과거의 흔적은 함보내기(사주와 한복과 금품 등선물)와 폐백, 신혼여행 뒤에 있는 신부 집 찾아뵙기 정도네요. 페백이란 결혼식을 마치고 부부가 된 신랑신부가 정식으로 시댁식구들과 인사하는 자리이죠,식장에서 간소하게 치뤄지죠, 현대의 결혼 절차는 주위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나옵니다.
장례 역시 많이 간소화 됐죠, 요즘은 병원에서 장례식을 하거나 집에서 하거나 둘 중하나죠,어디서 하든 대개 3일장으로 기일이 단축되었읍니다.부고에서 발인까지 그래도 많이 다른 의례에 비해 과거의 모습을 갖추고 있죠 화장이 늘어난 것도 빼놓을수 있는 변화입니다.
아 이거치면서도 몬가 석연치 않군요,,,현대가정을 회복할수 있는 방안 이것이 문제군요,,,꼭 대학의 리포트 같네요, 전통 가정의 붕괴는 서구문화의 패턴으로 전환에서 어쩔수 없이 따르는 문제인것 같네요,, 가정을 회복하는 방안,,,
과거의 통과의례를 통해서 현대의 가정을 회복할수 잇는 방안? 이건 무지 어려운 문제네요...생활패턴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뀐 요즘에 과거의 형태를 모델로 하라는건 좀 어렵고, 억지스럽네요, 현대의 문제점은 현대에서 찾는것이 좀 나을듯 합니다.
과거나 현대에서나 중요한 것은 구성원간의 유대관계를 끊임없이 지속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기본입니다. 사회가 발전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구성원으로서 헤어날수 없는 존재입니다. 과거가 문중이라는 거대한 집단에서 그 기능을 수행햇죠, 현대에서는 그 문중이라는 집단은 과거처럼 영향력과 기능이 많이 축소되었읍니다.
그렇다면 그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요,, 요즘 일간에서 나오는 말들이 공동체라는 겁니다. 피를 나눈 사람들과 아니라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생각이나 추구하는 바가 갖다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또 다른 가족의 형태로 새로운 작은 사회가 형성된다는 것이죠, 실버타운이 그 한예라 하겠지요,,사회봉사 단체들도 공동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어떤 이들은 생식의 중요성을 알고 생식하는 사람들끼리 주기적으로 모이면서 생활한다죠..인터네의 동호회나 각종 모임에 충실해서 자신의 생활을 윤택할ㅅ수 있다면 자신의 인격이나 정신세계 또한 향상되지 않을까요,? 가정이라는 단어에 얽매이지 말고 가정 외의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모임이라는 것에 가족이 충실하다보면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당연히 가정의 화목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이런식으로 가정이라는 틀에 벗어나서 고민하면 답이 될 듯한데요...
굳이 과거의 전통을 통해 가정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사랑, 단결, 가정의례(제사, 명절등) 참석, 결혼, 회갑연 등 참석 뭐~이런것들인데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문제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때로는 어절수 없이 참석하기기 힘든 경우도 있잖아요. 친한 친구 결혼식도 때에 따라선 못가는 경우도 생기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나라에서 이를 어긴다고 벌 줄수도 없구요,,,
요지는 온고지신처럼 옛것을 배워서 현대의 문제해결에 적용하라는 것 같네요. 알아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