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는 여행, 솥바위와 이병철 회장은 의령, 구인회 회장은 진주, 조홍제 회장

작성자학천/우병구|작성시간26.06.18|조회수16 목록 댓글 0

◆부자 되는 여행① 솥바위와 이병철 생가

설 명절이 코앞입니다. 여행도 명절을 탄답니다. 이왕이면 좋은 기운 받는

여행을 궁리하게 되지요. 신년 운세가 궁금한 계절, 일타강사가 ‘부자 되는 여행’

특강을 준비했습니다. ‘부자 되세요’가 덕담인 세상이니 부자 되는 여행이 있다면

만류할 이유가 없겠지요.

경남 의령에 가면 신비한 전설이 깃든 바위가 있습니다. 남강 강물에 섬처럼 떠 있는 바위인데, 다리가 세 개라 하여 솥바위라 불립니다. 한자로는 솥 정(鼎) 자를 써 ‘정암(鼎巖)’이라 합니다. 이 바위에 허무맹랑한 전설 하나가 내려옵니다. 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20리 안에서 국부(國富)

세 명이 태어난다는 예언입니다. 다리가 세 개니까 국부도 세 명이 나온다는 얘기인데, 당최 뜬금없어 보이는 이 전설은 놀랍게도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솥바위 반경 20리 언저리에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 효성 창업주 조홍제 회장이 태어났습니다.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입니다.

솥바위 기운을 받았다지만, 부자들의 고향은 다 다릅니다. 이병철 회장은 의령, 구인회 회장은 진주, 조홍제 회장은 함안. 행정구역은 달라도 모두 솥바위를 기준으로 20리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희한한 일입니다. 이 세 부자의 고향 이야기를 설 선물 삼아 전합니다. 이미 소문 난 곳은 하루 1000명이 넘는 인파가 찾아온다지요. ‘부자 되는 여행’ 특강은 2회로 나뉘어

진행합니다. 첫 회는 전설의 진원지 의령 솥바위와 이병철 생가가 있는 장내마을을 다루고, 2회는 LG가와 GS가의 인연이 비롯된 진주 승산마을과 함안 신창마을의 조홍제 생가를 소개합니다. 설날 아침 복조리 거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솥바위 전설

정암루 옆에 있는 솥바위 - 이 바위의 전설로 부자 3대가 나온다고 해서  LG가, 삼성가, 효성가의 창업자들이 이 고장 출신이라고 한다.

정암철교에서 내려다본 솥바위와 남강 물줄기. 이 바위를 기준으로 반경 20리 안에서 국부 세 명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내려왔고, 그 전설 그대로 굴지의 대기업 창업주 세 명이 출생했다.

손민호 기자

의령의 관문에는 지리산의 정기를 품은 남강이 역사의 숨결이 되어 흐르고 있다. 이 남강의 물속에는 솥을 닮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를 솥바위(정암)라 칭하고 마을을 정암이라 했다.

여기에 나루터가 있었는데 이를 정암진이라 한다.  이 솥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8㎞ 안에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솥바위 앞 안내판의 설명을 옮겨 적었다. 전설에 관한 설명이 너무 두루뭉실하다.

살짝 다른 버전의 전설을 보자. 조선 후기 어느 도인이 솥바위를 보고 남겼다는 예언이다.

“이 바위를 기준으로 반경 20리 안에서 나라를 일으키는 큰 부자 세 명이 나올 것이니라.”

안내판에서 굳이 8㎞라고 못 박은 건, 도사님의 20리 예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0리(里)가 4㎞니까 20리가 딱 8㎞다. 부자 숫자를 세 명이라고 특정한 것도 도사님 전설에 더 솔깃하게 한다. 그러나 안내판 설명이든, 도사님 전설이든 전혀 근거가 없다.

보통 이런 유의 전설은 팔도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긴 최치원이나 원효 또는 김삿갓 같은 인물을 인용하는데, 솥바위 도인의 신원은 일절 알려진 바가 없다. 아니, 솥바위 전설에 관한 기록은 어느 역사서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냥 의령에서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 기다리듯이 오랜 세월 그렇게 믿고 살았다는 게 전설의 정체다. 혹시 후세에 끼워 맞춘 허구는 아닐까?

의령군청 강선아 관광진흥팀장이 펄쩍 뛰었다.

 

▲호암 이병철 회장 생가.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장내마을 

고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허만정 GS그룹 회장 등 국내 대기업 창업주 태어난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사진 진주시]

“정암이란 지명이 워낙 오래됐습니다. 조선 전기 기록에도 나옵니다. 부귀를 누린다는 대목은 없어도 정암의 기운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여러 기록에서 전해 옵니다.

 

정암이 있는 의령의 마을 이름이 정암마을이고 남강 건너편 함안의 마을 이름도 정암마을입니다.

정암은 정말 특별한 곳입니다. 의령 사람은 한 번도 전설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최대한 남강 가까이로 내려와 수면 높이에서 촬영한 솥바위. 잔잔한 남강 물결에 비친 반영이 아름답다. 강물 아래로 다리 세 개가 있다고 하는데 직접 본 사람은 없다. 

손민호 기자이미지크게보기

사실 정암이라는 이름부터 특별하다. 솥은 예로부터 고귀한 존재였다. 솥 정(鼎) 자를 쓴 정식(鼎食)이라는 단어가 있다. 귀한 사람의 식사 또는 진수성찬을 뜻한다.

밥이 만들어지는 곳이니 솥은 부귀와 영화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솥 정(鼎) 자는 고상한 무언가에게 바쳐졌다. 조선 시대 삼정승의 다른 표현이 정보(鼎輔)였고, 과거 시험에서 최우등으로 급제한 세 사람을 정갑(鼎甲)이라 불렀다. 숫자 ‘3’의 뜻을 담은 단어가 여럿인데도 상대를 높일 때는 굳이 솥에 비유했다.

그럼, 솥바위에 다리가 세 개 있다는 건 사실일까. 이 대목도 분명하지 않다.

봤다는 사람은커녕 기록도 없다. 강명희 의령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지금은 모래가 많이 쌓여 바위 밑을 확인할 수 없지만, 옛날부터 바위 밑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에 이무기가 산다는 이야기가 전해 왔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솥바위 전설은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허투루 넘기기가 어렵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 그대로 현실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남 내륙 지역 외딴 바위 주변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창업주 세 명이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세상에는 아직도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이른바 솥바위 3대 부자가 기업가로서 명성을 날린 건 한국전쟁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의령에서는 팔순 할머니도 솥바위 전설을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의령 정암진에서 바라본 솥바위. 바위에서 언뜻 남성의 옆얼굴이 보인다.

솥바위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모습을 달리한다. 손민호 기자

그래도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식의 옛날이야기를 무작정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전설의 정확도를 측정했다. 의령군청에 관련 자료가 없어 네이버 지도를 열어 솥바위와 세 명 창업주 생가의 거리를 하나씩 쟀다. 흥미롭게도 삼성 이병철 생가는 7.9㎞, 효성 조홍제 생가는 8.2㎞, LG 구인회 생가는 9.2㎞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똑 부러지게 20리 안쪽은 아니어도 20리 언저리라고 하면 맞았다.

무엇보다 솥바위는 예사롭지 않게 생겼다. 해 뜬 직후, 강물에 뜬 솥바위에선 신성한 기운마저 감돈다. 팔도강산의 어지간한 명승을 두루 유람했지만, 솥바위처럼 인상적이었던 곳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솥바위는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강변에 내려와 바라보면 강물에 띄운 배 같고, 특정한 각도에서는 남성의 옆얼굴이 보인다. 가장 솥뚜껑 같은 모습을 보려면

솥바위 오른쪽 정암철교 중간까지 나아가 내려다봐야 한다.

의령 의병광장에 서 있는 곽재우 장군 동상. 솥바위가 있는 정암진 일대는 곽재우 장군이 처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친 전승지다. 정암철교 뒤로 보이는 기와지붕이 정암루고, 정암루 뒤에 솥바위가 있다. 손민호 기자이미지크게보기 의령 의병광장에 서 있는 곽재우 장군 동상. 솥바위가 있는 정암진 일대는 곽재우 장군이 처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친 전승지다. 정암철교 뒤로

보이는 기와지붕이 정암루고, 정암루 뒤에 솥바위가 있다. 손민호 기자

사실 솥바위 주변 정암진은 의령이 자랑하는 유적지다.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가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친 곳이 여기 솥바위 나루터다.

그 전승(戰勝)의 역사를 기리고자 솥바위 옆에 백마 탄 곽재우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의령군이 솥바위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2022년부터다.

그해 10월 부자 축제 콘셉트의 ‘리치리치 페스티벌’을 처음 개최했다. 솥바위는 강물 속에 잠겨 있어 만질 수 없지만, 축제 때는 바위 옆으로 뜬다리를 부설해 바위를 만질 수 있게 했다. 2023년 나흘간 열린 축제엔 16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천하 명당 장내마을 호암 생가 정문 옆 흙벽에 설치된 금속 명패. 글자를 새긴 명패 주변이 색이 바랬고 반질반질하다. 생가를 방문한 관광객이 너도나도 손으로 만져서 생긴 자국이다. 손민호 기자

이제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1910∼87)의 생가로 갈 차례다. 호암 생가는 솥바위 동쪽에 있다.

주소는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조선 시대 진주와 대구를 잇는 다리가 있던 마을이라 하여 ‘중다리’로 불리다가 중교리(中橋里)가 됐다고 한다. 의령 사람들은 장내마을이라고 부른다.

마을 전체가 담 안쪽에 있어 담안마을이라고 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장내(墻內)마을이 됐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호암 생가 마을을 느낄 수 있었다. 고깃집이고, 라면집이고 가게 이름에 죄 ‘부자’를 붙였다. 길 이름도 다르다. ‘부자길’도 있고 ‘호암길’도 있다.

1월 25일 오후에 방문했는데, 평일인데도 마을 어귀 주차장에 관광버스 3대가 주차해 있었다.

최해자 의령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주말에는 1500명이 넘게 방문한 날도 많다”고 말했다.

솥바위 기운을 받았다는 창업주 생가 마을 세 곳 중 호암 생가 마을이 가장 방문객이 많았고, 가장 번듯한 관광지 같았다.

경의사상과 부자정신을 계승한 4대 창업주의 기업가정신 이 같은 토양 위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바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4대 창업주입니다.

 

●이병철(삼성):: 사업보국, 인재제일, 도전정신, 품질제일주의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 "나라가 잘 돼야 기업도 잘되고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가치를 실천하셨습니다.

● 구인회(LG):  인화경영, 정도경영, 기술혁신, 사회적 공헌

연암 구인회 (LG 창업주): "남이 미처 안 하는 것을 선택하라." 인화경영과 정도경영을 바탕으로 기술과 과학을 중요시하셨습니다.

● 허만정(GS): 우국애민, 협업정신, 사회환원, 인본주의

효주 허만정 (GS 창업주): "재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잠시 보관하는 것이다." 민족 교육과 독립운동에 힘쓰며 부자정신의 정신적 뿌리가 되어주신 분입니다.

● 조홍제(효성): 기술자립, 도전과 위험감수, 인재경영, 국리민복

만우 조홍제 (효성 창업주):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유학의 핵심인 '경(敬)'을 실천하며 의로운 이웃 추구를 중시하셨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라,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사업보국), 사람을 중시하며(인재경영),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는 책임 있는 기업가였습니다.

자식에게만 부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나누고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이분들의 고결한 철학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그들이 나고 자란 이곳 진주 승산마을에서 직접 느껴보세요.

https://youtu.be/K7DdtY7d4C0?si=S6BX_hchR6o-jbz6 

기업인 35명배출

호암 생가 가는 길. 장내마을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호암과 관련한 이정표를 볼 수 있다.

담 안쪽 마을이라는 뜻의 장내마을. 마을은 조용한데 골목마다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손민호 기자

호암 생가 마을은 언뜻 평범한 시골 마을처럼 보인다. 높은 건물이 안 보이는 대신, 마을 중간에 옹기종기 모인 기와집 여러 채가 눈에 들어온다. 그 기와집 중에 호암 생가가 있다.

흙담 늘어선 골목을 돌아 호암 생가 앞에 다다랐다. 대문 왼쪽 흙벽에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라고 새긴 금속 명패가 걸렸다. 돋을새김한 글자 부분이 손때가 묻어 색이 바랬고 반질반질하다.

진주 승산마을에 있는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의 생가는 대문 문고리가 반질반질하다.

호암 생가는 명패가 바랬고 연암 생가는 문고리가 바랜 건, 호암 생가는 문을 열었고 연암 생가는 문을 닫아놓고 있어서다. 호암 생가는 2007년 11월 개방했다.

호암 생가 곳간 안 모습. 

농기구 대부분이 실제 호암 일가가 쓰던 것이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호암 생가 곳간 안 모습. 농기구 대부분이 실제 호암 일가가 쓰던 것이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호암 생가 부엌. 솥단지부터 주걱까지 부엌 살림 대부분도

실제 호암 일가가 쓰던 것이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정문으로 들어서면 남자들의 공간인 사랑채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가 나온다. 안채 오른쪽 방에서 호암이 태어났다.

호암생가관리소 이무형 소장에 따르면 호암 생가는 대부분이 원형 그대로 복원돼 있다.

부엌의 식기,곳간의 농기구, 안채의 살림살이 대부분이 호암 일가가 쓰던 물건들이다.

생가는 호암의 조부가 1851년 지은 집으로, 이후 수차례 증·개축을 거쳤다.

호암 생가. 정문에서 사랑채를 바라보고 촬영했다. 사랑채 뒤에 안채 건물이 있다.

사진에서 살짝 보이는 안채 오른쪽 방에서 호암이 태어났다. 생가 뒤편으로 낮은

산이 담처럼 둘러져 있다. 재물이 알아서 모이는 명당 중 명당이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氣)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재물이 쌓일 수밖에 없는 명당 중 명당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호암 생가 안내판의 문장을 받아 적었다.

일부 풍수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호암재단이 밝힌 생가의 내력이다.

호암 생가는 호암재단이 관리·운영한다(오전 10시∼오후 5시개방. 월요일 휴관).

안내판의 설명처럼 호암 생가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재물이

쌓일 수밖에 없는 터라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생가에 들어서면 야트막하고

완만한 산이 생가를 빙 두른 형세가 느껴진다.

마을의 옛 이름 담안마을은,

담이 마을을 에두른 게 아니라 주변 산이 담처럼 마을을 감싸안은 지세를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호암 생가 오른쪽 산자락에 선 암벽. 쌀가마니를 차곡차곡 쌓은 모습이다. 손민호 기자

호암 생가 오른쪽 암벽에 있는 두꺼비 바위. 특정 각도에 따라 울퉁불퉁한 바위가

두꺼비 머리로 보인다. 보이시는가? 일단 두꺼비가 보여야 재물이 모인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호암 생가 오른쪽 암벽에 있는 두꺼비 바위. 특정 각도에 따라 울퉁불퉁한 바위가 두꺼비 머리로 보인다. 보이시는가? 일단 두꺼비가 보여야 재물이 모인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최해자 해설사에 따르면 “호암 생가는 우리나라에서 풍수 한다는 사람 중에 안 와

본 사람이 없는 천하 명당”이다. 집이 들어선 터도 기운이 좋지만, 안채 오른편에

벽처럼 선 바위 또한 심상치 않다. 암석층이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인 모습은

쌀가마니를 쌓은 것처럼 보이고, 특정 각도에서 바라보면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위 중 하나가 두꺼비 머리의 형상을 띈다. 두꺼비 바위는 볼수록 두꺼비처럼 보인다.

소년 이병철

문산정. 어린 호암이 다녔던 서당으로 호암의 할아버지가 세웠다. 호암 생가에서

약 1.5㎞ 떨어져 있는데 산을 넘어야 한다. 서당 뒤편으로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손민호 기자이

경주 이씨 집안이 장내마을에 정착한 건 조선 중기 연산군 시대였다.

호암은 선친 이찬우(1874∼1957)의 네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

권씨가 36세에 막내아들을 봤으니 늦둥이였다. 호암의 집안은 천석꾼이었다.

호암의 조부 이홍석(1838∼97)이 집안을 일으켰다고 한다.

나는 어릴 때 출중하다는 말을 별로 듣지 못하였다.

다만 유별나게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한문 공부는 『천자문』부터 시작했는데,

흔히 두서너 달이면 뗀다는 『천자문』에 나는 1년 남짓 걸렸다.

그래도 5년 가까운 서당 공부에 보람이 있어 『통감』이나 『논어』도 통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부는 시원치 못했던 것 같다.

“문산 선생의 손자가 이래서야…” 하는 훈장의 훈계를 듣는 일도 가끔 있었다.

호암 자서전인『호암자전』에서 인용했다. 호암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호암은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셈에는 자신이 있었다. 서울 수성보통학교

유학 시절, 전체 50명 가운데 35등에서 40등을 했던 호암은 조선어와 일본어는

100점 만점에 60∼70점을 받았지만 산술(수학) 성적만은 상위권을 유지했다.

인용문에서 ‘문산 선생’은 호암의 조부 이홍석이다. 이홍석은 장내마을에서

1.5㎞ 떨어진 산자락에 문산정(文山亭)이라는 서당을 지었고, 손자 호암이

다섯 살부터 서당을 다녔다. 직접 가본 문산정은 산중 별장 같았다. 서당 뒤편

산자락에서 오솔길 흔적이 보였다.

호암의 청소년 시절. 1927년 촬영했으니 17세 때 모습이다. 왼쪽 팔짱 낀

청년이 호암이다. 사진 호암재단

어린 호암이 『논어』를 통독했다는 사실은 훗날 삼성의 경영이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호암은 『논어』 말씀 중에서 특히 ‘언필신 행필과(言必信 行必果)’를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말에는 반드시 신용이 있어야 하고 행동은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뜻.

신의를 중시하는 삼성의 경영이념은 댕기 머리 소년 호암의 서당 시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의령 호암 생가 마을 부자광장 바닥에 새겨진 호암의 문장.

여행을 해야 큰 사람이 되나 보다. 손민호 기자

장내마을 한쪽에 조성된 부자광장에 호암 말씀을 새긴 바닥돌이 있다.

‘여행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쫓겨서 자기를 잃기 쉽다.’

여행기자로서는 반갑고 고마운 문장이지만,

호암이 남긴 하고 많은 문장 중에서 하필이면 이 문장을 새겨 넣은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알아보니 사연이 있었다.

호암이 평생 성공 가도를 달린 것 같지만, 20대 청년 호암은 요즘 말로 ‘루저’였다.

부모를 겨우 설득해 떠난 일본 유학 생활은 건강 때문에 1년여 만에 중단해야 했고,

4년 넘는 방황 끝에 시작한 사업은 줄줄이 망했다.

정미소, 운수업 그리고 부동산 사업까지 호암은 다 말아먹었다.

시쳇말로 ‘영혼까지 털린’ 호암의 다음 행동이 뜻밖에도 여행이었다.

호암은 1937년 약 6개월간 서울·평양·대구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심신을 추스르고 새 사업을 구상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호암은 열두 살이 되던 2012년 3월 진주의 지수보통학교에 들어간다.

서당에서의 한학 공부로는 한계를 느껴서였다.

진주에서 호암은 LG 창업자 구인회와 같은 학년이 된다.

인연은 이렇게 이어진다.

옮긴글 [출처] 의령 부자마을|작성자 미루

 

◆경남 진수지 지수면 승산마을 지수승산부자마을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지수로 506  우리나라 대기업 창업주들이 태어나고 자란 한옥마을

 

600년 역사가 흐르는 풍수지리 명당, 지수승산부자마을의 이야기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위치한 승산마을은 600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아름다운 한옥마을입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은 학이 둥지를 틀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인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명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과 같아 '아이가 자라기 좋은 명당'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강의 물이 휘감아 도는 지형 덕분에 부의 기운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유출은 적은 곳으로 해석되곤 하지않죠.

대기업 창업자들의 생가 문고리를 잡으면 부자의 기운을 받아갈 수 있다는 따뜻한 이야기가 전해지며, 지금도 많은 분이 이 골목을 찾고 계십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정겨운 돌담길을 걸어보세요.

흙과 돌이 빚어낸 고요한 길을 걷다 보면, 마음속 복잡한 상념들은 사라지고 대가들의 창의정신과 도전정신이 잔잔한 영감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마을의 정취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지음정이 여러분의 여정을 함께 기다립니다.

풍수적으로도 지수승산마을은 흥미로운 입지에 자리합니다.

삼방산을 등지고, 앞에는 방어산이 펼쳐지며, 남강이 마을을 감싸듯 흐르는 형국입니다.

특히 물길이 일반적인 방향과 반대로 흐르는 '역수국' 지형으로, 예로부터 부를 불러오는 길지로 평가받아 풍수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지수승산마을의 역사는 1400년대, 김해 허씨 11세손 허문손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며 재산이 늘어나 마을에는 만석꾼과 부호가 끊이지 않았고, 조선 숙종 36년(1710)에는 능성 구씨 구반이 이곳으로 이거해 함께 삶의 터전을 일구었습니다.

옛 기록에 따르면 구한말, 이 마을 허씨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삼만 석이 넘었다고 전해질 만큼 번성했던 곳입니다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

과거 한양에서도 이 말이 통할 정도로 승산마을은 조선 시대부터 손꼽히는 부자 동네였어요

당시 마을 전체 재산이 5만 석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죠.

단순히 운이 좋아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남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습지를 개간하여 농지를 만드는 등 혁신적인 노력을 통해 부를 축적한 '준비된 부자들'의 마들이었던 셈이에요.

담장 너머 나눔의 미덕, '청백리 부자'

승산마을 부자들에게는 특별한 가르침이 있었어요. 마을 입구 과수원은 지나가는 배고픈 이들이 인제든 과일을 따 먹을 수 있도록 개방해 두었고, 대문 바로 옆 우물은 마을 사람 누구나 이용하게 했죠

주변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나눔의 정신이 있었기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이곳의 생가들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답니다.

풍수적으로도 지수승산마을은 흥미로운 입지에 자리합니다. 삼방산을 등지고, 앞에는 방어산이 펼쳐지며, 남강이 마을을 감싸듯 흐르는 형국입니다.  특히 물길이 일반적인 방향과 반대로 흐르는 '역수국' 지형으로, 예로부터 부를 불러오는 길지로 평가받아 풍수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부자 마을'이자 명당으로 불리게 된 데는 지리적(풍수지리적) 요인, 역사적 내력, 그리고 독특한 교육적·문화적 환경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삼성, LG, GS, 효성 등 대한민국을 움직인 글로벌 기업의 창업주들이 무더기로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뭘까?

 

1. '재물이 쌓이는' 풍수지리적 명당

승산마을을 흐르는 남강은 풍수지리적으로 재물을 뜻하는 물의 기운이 완벽하게 모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궁수(弓水) 지형 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이 마치 활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으며 돌아나갑니다.

물이 마을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안아주는 형세로 풍수에서는 이를 재물이 빠져나가지 않고 대대손손 쌓이는

최고의 길지로 봅니다.

솥바위(정암, 鼎岩)의 전설 승산마을 인근 남강 의령 구간에는 가마솥 모양을 닮은 '솥바위'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 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20(8km) 이내에 세 명의 큰 부자가 나온다"라는 전설이 내려왔는데, 실제로 이 바위 주변에서 삼성(이병철), LG(구인회), 효성(조홍제) 창업주가 태어나거나 자라나며 전설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2.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능성

구씨와 허씨의 상생 승산마을은 본래 능성 구씨(具氏)와 김해 허씨(許氏) 두 가문이 수백 년간 함께 모여 살던 집성촌입니다이 두 가문은 단순히 부를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 전체의 상생을 이끌었습니다.

베풂의 철학 구씨와 허씨 가문은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어 이웃을 구제하고 소작인들에게 무리한 소작료를 거두지 않는 등 '부의 대물림'보다 '()의 쌓음'을 중시했습니다.

동업의 모태 이러한 가문 간의 신뢰와 상생 정신은 훗날 LG 구인회 창업주와 GS 허만정 창업주가 동업하여 오늘날의 LG그룹(구씨·허씨 공동 창업)을 일구는 역사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3. 대한민국 재계의 산실 지수초등학교

승산마을이 '부자 동네'로 쐐기를 박은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1921년 개교한 옛 지수초등학교(현 진주 K-기업가정신센터)입니다. 이 작은 시골 학교는 한국 경제를 일으킨 거목들이 함께 공부했던 놀라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회 졸업생 및 동문들 LG 구인회 창업주, 삼성 이병철 창업주, 효성 조홍제 창업주가 비슷한 시기에 이 학교를 다녔습니다특히 구인회 창업주와 이병철 창업주는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한 단짝이기도 했습니다.

재벌가 인맥의 요람: 이들 외에도 구자경 LG 2대 회장, 허준구 전 GS건설 명예회장 등 범LG·GS가의 기업인 수십 명이 이 학교 출신입니다어릴 때부터 한 마을에서 자라며 형성된 신뢰와 기업가 정신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과 시너지를 준 것입니다

 

지수 승산마을은 재물이 모이는 남강의 기운을 바탕으로 이웃과 상생할 줄 알았던 명문가들의 가풍이 확립되어 있었고 그 속에서 자란 청년들이 서로 교류하며 거대한 기업가 정신을 꽃피웠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 동네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수승산부자마을 명소 관광안내소 055-762-7449

지수승산부자마을의 정겨운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소중한 문화재와 명소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넓고 평탄한 길로 이루어져 있어, 어린아이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기에 참 좋은 코스입니다.

​●지신고가 & 지신정: 승산마을 정신적 뿌리인 지신정 허준 선생의 생가와 말년에 기거하던 곳으로, 빈민을 돕고 의연기구인 허씨의장을 만들어 상생을 실천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구인회 생가 & 허만정 본가: LG그룹의 공동 창업주인 두 거인의 뿌리가 되는 곳으로, 한옥의 단아하고 깊은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허순구 생가 & 승산마을 금강산: 춘공기에 이웃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곡식을 지급하기 위해 바위들을 집 앞마당에 쌓아두었다는 '승산마을 금강산'은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효주원: GS그룹 창업주 허만정 선생의 호를 딴 아름다운 공원으로, 바닥에 설치된 네모난 돌판에 부자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허준 선생님 지신정

 

진주 지수 승산마을 부자마을- 600년의 터전, 허씨와 구씨의 아름다운 동행

승산마을은 조선 초기인 약 600년 전 김해 허씨가 자리를 잡으며 시작되었어요. 이후 300년 전 능성 구씨가 허씨 집안의 사위가 되어 이곳에 들어오면서 두 가문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독특한 집성촌이 형성되었죠. 두 가문은 오랜 세월 서로 돕고 끌어주는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것이 훗날 LG와 GS라는 두 대기업이 수십 년간 파트너십을 유지한 뿌리가 되었답니다.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

과거 한양에서도 이 말이 통할 정도로 승산마을은 조선 시대부터 손꼽히는 부자 동네였어요. 당시 마을 전체 재산이 5만 석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죠. 단순히 운이 좋아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남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습지를 개간하여 농지를 만드는 등 혁신적인 노력을 통해 부를 축적한 '준비된 부자들'의 마을이었던 셈이에요.

진주 지수 술마을 부자마을 담장 너머 나눔의 미덕, '청백리 부자'

승산마을 부자들에게는 특별한 가르침이 있었어요. 마을 입구 과수원은 지나가는 배고픈 이들이 언제든 과일을 따 먹을 수 있도록 개방해 두었고, 대문 바로 옆 우물은 마을 사람 누구나 이용하게 했죠. "주변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나눔의 정신이 있었기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이곳의 생가들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답니다.

오늘날의 승산마을: K-기업가정신 센터

현재 폐교된 지수초등학교는 '진주 K-기업가정신 센터'로 재탄생했어요. 이곳에서는 창업주들의 경영 철학과 에피소드를 전시하며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을 전하고 있죠. 마을 곳곳의 한옥 돌담길을 걷다 보면 연암 구인회 생가, 허만정 본가 등 역사의 숨결이 깃든 고택들을 마주할 수 있어 부자의 기운을 느끼며 산책하기에 정말 좋답니다.

경남 진주시는 지수면 승산마을이 유엔관광청 주관 '제6회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공모에서 대한민국 후보지로 선정됐다고 12일 밝혔다.(2026.4.12)

 

지수는 남강이 굽이쳐 흐르는 경관이 수려한 고장이다. 산 넘으면 함안, 남강 건너면 의령으로 두 개의 군이 접해있다.
지수면 승산리는 수많은 기업가를 배출한 마을로  구인회 LG 그룹, 허만정 GS그룹 공둥창업주등 대한민국을 빛낸 글로벌기업가들이 나고 자람 유서깊은 마을로 300이 넘는 세월 동안  대대로 만석꾼을 배출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위치한 지수승산마을은 600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마을이다.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의 집성촌으로 많은 기업인들이 배출되어 부자마을이라고도 불린다. LG (구인회) 와 GS(허만정)의 창업주 및 회장들의 생가 총 12채가 위치해 있고, 허선구 고가, 창애정 등 마을 내 일부 고가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마을 내에 GS그룹 창업주인 허만정의 호를 따서 만든 효주원(공원)이 있다. 아름다운 돌담길을 걸으며 한옥마을의 정취와 기업가의 도전, 창의정신을 느낄 수 있다. 마을에는 숙소 시설인 지수남명진취가가 있어 고즈넉한 휴식 공간으로 이용 가능하다.

뿌리가 엉킨 '부자 소나무(재벌송)'

지수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이병철, 구인회, 조홈제 회장이 어린 시절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는 소나무가 우뚝 서 있어요.

흥미롭게도 두 그루의 소나무 뿌리가 서로 엉켜 미치 한 그루처럼 자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를 '부자 스나무 또는 재벌승'이라 부르며 그 기운을 받기 위해 찾아오곤 하죠

마을 중심에 자리했던 지수초등학교는 1921년 개교해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으나, 2009년 통폐합되며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이 학교가 지닌 의미는 여전히 큽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LG GS의 뿌리인 금성의 구인회, 효성 창업주 조홍제 등 대한민국 경제사를 이끈 기업가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꿈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자경 명예회장, 구태회 창업주, 허정구·허준구·허완구 등 한국 산업 발전을 이끈 주요 인물들 역시 이 학교를 거쳐 갔습니다.

대한민국 재계의 별들이 자란 '지수초등학교'

마를 입구에 위치한 (구)지수초등학교는 1980년대 한국 100대 재벌 중 30여 명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거든요. 

삼성 이병철 회장: 의령 출생이지만, 지수면에 시집은 누나 집에 머물며 이곳에서 공부했죠.

LG 구인회 회장: 지수면 출신으로 이병철 회장과 동기동창으로 지냈어요

효성 조용제 회장: 공안 출신이지만 신상 교육을 위해 이곳으로 유학을 왔답니다..

대한민국 재계의 별들이 자란 '지수초등학교' 마을 입구에 위치한 (구)지수초등학교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장소죠.

1980년대 한국 100대 재벌 중 30여 명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거든요. 삼성 이병철 회장: 의령 출생이지만, 지수면에 시집온 누나 집에 머물며 이곳에서 공부했죠. LG 구인회 회장: 지수면 출신으로 이병철 회장과 동기동창으로 지냈어요.

효성 조홍제 회장: 함안 출신이지만 신식 교육을 위해 이곳으로 유학을 왔답니다.

뿌리가 엉킨 '부자 소나무(재벌송)' 지수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이병철, 구인회, 조홍제 회장이 어린 시절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는 소나무가 우뚝 서 있어요. 흥미롭게도 두 그루의 소나무 뿌리가 서로 엉켜 마치 한 그루처럼 자라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를 '부자 소나무' 또는 '재벌송'이라 부르며 그 기운을 받기 위해 찾아오곤 하죠.

 

옛 지수초등학교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효성의 조흥제 창업주가 함께 심고 가꾸었다는 소나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지수초등학교

 

마을 중심에 자리했던 지수초등학교는 1921년 개교해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으나, 2009년 통폐합되며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이 학교가 지닌 의미는 여전히 큽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LG·GS의 뿌리인 금성의 구인회, 효성 창업주 조홍제 등 대한민국 경제사를 이끈 기업가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꿈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자경 명예회장, 구태회 창업주, 허정구·허준구·허완구 등 한국 산업 발전을 이끈 주요 인물들 역시 이 학교를 거쳐 갔습니다.

옛 지수초등학교 자리는 현재 민주 K-기업가정신센터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한국경영학회가 진주를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수도'로 선포한 배경에도 이곳의 상징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우국애민, 사업보국, 인본주의적 인재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진주형 기업가정신'을 계승·확산하는 거점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진주 K-기업가정신센터 개요: 폐교에서 피어난 기적, 진주 K-기업가정신센터의 푸른 여름

이곳은 2018년 한국경영학회에서 진주를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수도」로 선포한 것을 계기로, LG, GS, 삼성, 효성 등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주역인 글로벌 기업의 창업주들을 대거 배출한 '옛 지수초등학교'를 새단장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수많은 기업가가 이 작은 시골 학교의 같은 교실에서 꿈을 키웠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과 승산마을의 화합·나눔의 부자정신을 토대로 구축된 이곳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업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 옛 교정을 거닐며, 나만의 가치관과 기업가정신을 정립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져보세요. 머리가 복잡할 때 방문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 주요 시설 안내

1F 제1전시실 (기업가정신의 뿌리): 승산마을의 역사와 인물, 진주 K-기업가정신과의 관계를 실감형 영상으로 감상하는 공간입니다.

1F 제2전시실 (기업가정신의 숲): 대한민국 경제 발전 120년의 연대기와 글로벌 기업의 혁신 과정, 그리고 차세대 스타트업의 미래 비전을 만납니다.

상남관 (2F & 체험공간): 대강의실, 세미나실과 함께 기업가정신 전문 도서관, 창의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특히 '옛 지수초등학교 교실 재현 공간'이 있어 아늑한 추억 여행을 선물합니다.

 

◆지수승산부자마을 

승산마을 속 작은 금강산

호주 허만정 생가

허만정선생의 호를 따서 만든 효주원 공원

마을 안에는 숙박시설인 '승산에부자한옥'도 마련돼 있어, 한옥에서 하룻밤 머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낮에는 돌담길을 거닐고, 밤에는 고요한 공간 속에서 내일을 준비했던 기업가들의 마음가짐을 떠올려보는 시간. 지수승산마을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의미 있는 여행지입니다.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 1 

viewus 성장곰 2026.06.18.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학벌집안재산말솜씨를 먼저 보게 된다처음에는 그것들이 사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하지만 오래 살아본 사람들과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특히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사람을 볼 때 능력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기준이 있다고 말했다결국 사람의 가치는 화려한 조건보다 평소의 태도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1. 작은 약속을 대하는 태도

 

시간 약속사소한 부탁작은 책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큰일은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큰일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결국 신뢰는 거창한 행동보다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사람의 됨됨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2. 어려운 상황에서 보이는 책임감

 

잘될 때는 누구나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하지만 실패하거나 손해를 봤을 때 남 탓을 하는지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변명만 하는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결국 사람의 수준은 성공보다 위기 속에서 드러난다.

 

3. 신용과 성실함

 

이병철 회장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결국 이것이다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나도 신용을 잃은 사람은 크게 될 수 없다고 보았다한 번 한 약속을 지키고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눈앞의 이익보다 신뢰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기회도 따라온다반대로 아무리 똑똑해도 성실함과 신용이 부족하면 결국 오래 가지 못한다결국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사람의 기준은 화려한 스펙이나 재산이 아니었다작은 약속을 지키는 태도어려움 속에서 책임지는 자세그리고 무엇보다 신용과 성실함이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은 돈보다 사람이고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성공보다 더 중요하다사람은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신뢰로 오래 기억된다그리고 끝까지 곁에 남는 사람은 결국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병철 회장이 평생 강조했다…곁에 무조건 둬야 하는 인간 유형 1

위키트리 유민재 2026.6.11.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생전에 "내 생애의 80%는 사람을 뽑고 관리하는 데 보냈다"고 밝혔다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일군 그가 돈도전략도 아닌 사람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는 고백이다.

통계청 202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응답자의 73.1%는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소로 '인간관계'를 꼽았다노년으로 접어들수록 재산이나 지위보다 곁에 남은 사람의 질이 삶 전체를 결정한다는 사실이 수치로도 드러나는 셈이다.

 

그렇다면 평생 옆에 둬야 할 사람은 어떤 유형인가이병철 회장의 철학을 들여다보면 공통된 키워드가 하나 나온다능력보다 신뢰다그는 '호암자전'에서 "의심이 가거든 쓰지 말고일단 쓰면 의심하지 마라"고 적었다한 번 믿기로 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맡겼다좋은 사람 한 명이 수십 년을 지탱하고잘못된 사람 한 명이 쌓아온 것을 하루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원칙이었다.

 

1위 힘들 때도 곁을 지키는 사람

 

형편이 좋을 때는 주변에 사람이 넘친다일이 잘 풀리고 자리가 있을 때연락이 끊겼던 얼굴들까지 나타난다하지만 사업이 꺾이거나 건강이 무너지거나 집안에 탈이 났을 때도 같은 온도로 옆에 있어주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그 차이가 친구의 진짜 얼굴을 가른다.

이병철 회장은 인재를 고를 때도 비슷한 기준을 적용했다잘나갈 때만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기에도 버티는 사람을 곁에 뒀다개인 관계도 다르지 않다내가 아무것도 못 해줄 상황에서도 떠나지 않는 사람딱히 득이 없어도 안부를 묻는 사람이 진짜다재미있는 사람능력 있는 사람은 많다그러나 힘든 시간을 함께 통과해준 사람은 평생 몇이 되지 않는다.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의 '3의 장소'에서는 "인간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공간 외에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세 번째 장소를 필요로 한다"고 쓰여 있다나이가 들수록 그 공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된다아무 조건 없이 맞아주는 단 한 명의 존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50대 이후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힘들 때 곁에 있어준 사람에게 충분히 고마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 사람을 알아봤을 때 제대로 붙잡아야 한다.

 

2위 솔직한 말을 해주는 사람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언뜻 좋은 친구처럼 보인다하지만 내가 틀렸을 때도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도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진짜 곁에 둬야 할 사람은 말이 듣기 불편해도 필요한 순간에 솔직하게 꺼내는 사람이다.

이병철 회장은 "신뢰는 말이 아니라 실행에서 생긴다"고 강조했다달콤한 말만 늘어놓는 사람보다 행동과 말이 일치하는 사람때로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더 큰 신뢰를 줬다가장 좋은 관계는 서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진심을 숨기지 않는 관계다성공했을 때 자만하지 않게 붙잡아주고 실패했을 때 이유를 같이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심리학자 킴 스콧의 '완전한 솔직함'에서는 "진짜 좋은 관계는 상대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고 적혀 있다그 용기를 가진 사람이 오래 곁에 두어야 할 사람이다.

나이가 들수록 쓴소리를 해줄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다들 조심하고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그래서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 한 명은 어떤 자산보다 소중해진다.

 

3위 만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

 

오랜 인연이라고 해서 다 좋은 관계인 것은 아니다만나고 돌아오면 괜히 피곤하거나비교당한 기분이 드는 사람이 있다반대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마음이 가라앉고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 50대 이후 관계에서는 이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

젊을 때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에게 끌리기 쉽다하지만 나이가 쌓일수록 사람을 만나고 난 뒤 어떤 기분이 남느냐가 관계의 가치를 결정한다함께 있는 것만으로 숨이 트이는 사람침묵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진짜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관계는 재미를 주는 것을 넘어 회복의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정신과 의사 에스더 페렐의 '관계의 재발견'에서는 "좋은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그 사람 앞에서는 지치지 않아도 되고 무너져도 된다는 감각이 진짜 친밀감이다"라고 적혀 있다.

에너지를 빼앗는 관계는 아무리 오래됐어도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반대로 만나고 나면 더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사람은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

 

4위 상황이 바뀌어도 태도가 같은 사람

 

세월이 흐르면 형편도 달라지고 자리도 바뀐다누구는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고누구는 평범하게 살아간다관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걸러진다성공했다고 거리를 두거나힘들어졌다고 슬그머니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과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똑같이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

이병철 회장은 사람의 됨됨이를 볼 때 '변하지 않는 태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잘될 때 배울 것이 있을 때만 가까이하고쓸모가 없어 보일 때 멀어지는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곁에 오래 둘 수 없는 인물이라고 봤다상황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사람은 내가 어디에 있든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는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그러나 진짜 안정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같은 눈으로 봐주는 단 한 사람에게서 온다"고 말했다형편이 좋을 때도나빠졌을 때도 변하지 않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 평생 곁에 둬야 할 사람이다.

 

마무리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을 만나려 한다혼자 있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반대로 어떤 사람은 관계를 줄여나가면서 진짜 몇 명을 깊이 품는 쪽을 택한다그리고 후자가 대부분 더 편안한 노년을 보낸다.

이병철 회장이 평생 강조한 것도 결국 그 한 명이었다신뢰할 수 있고 솔직하고 상황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그런 사람 한 명이 곁에 있는 것이 어떤 재산보다 오래 가는 자산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