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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박기헌의 운강석굴 순례 <19> 운강 제13굴 ② ­ 오화동

작성자도문3|작성시간26.06.09|조회수1 목록 댓글 0

박기헌의  운강석굴 순례 <19>  운강 제13굴 ② ­ 오화동

보살상과 공양천 조각, 부처님 찬탄하는 불자들 마음 대변

제13굴 내부 상단. 석굴 중앙에는 거대한 교각미륵보살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천장에는 구름과 용이, 각 벽면에는 수많은 중소형 불감이 조각되어 있어 장엄한 도솔천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도솔천을 장엄한 성수와 용왕


운강 제13굴에는 마치 이곳이 곧 도솔천임을 말해 주듯, 거대한 교각미륵보살상이 석굴 내부 공간을 가득 채우며 자리하고 있다. 석굴에 들어서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미륵보살의 광배가 천장까지 치솟아 올라 비천이 노니는 구름, 그리고 서로 몸을 뒤튼 두 마리의 용과 맞닿으며 하나의 천상 세계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광배의 최상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동문으로 이루어진 문양 띠가 광배와 용 사이에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머리 위를 장엄하는 성스러운 나무의 형상을 도상화하여 화개(華蓋)의 형태로 구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에는 도솔천궁의 오백만억 천자가 一生補處 보살을 위해 寶冠을 공양구로 변화시켜 바치는 장면과 함께 칠보로 장엄한 行樹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그 나무에는 파리(頗梨) 빛깔 같은 과일이 맺혀 일체의 여러 빛이 그 속에 깃들고, 그 광명은 오른쪽으로 돌며 흘러나와 大慈大悲의 법을 설한다.……오백억의 용왕이 담을 둘러싸고 각각 오백억의 칠보로 이루어진 행수에 비를 내려 장엄하게 한다”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본존불 오른팔 아래에 자리한 역사상. 토비력사라 불리며, 거대한 미륵보살상의 구조적 안정성을 보완하고 있다.

 

이처럼 聖樹를 화개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전통은 일찍이 키질석굴과 돈황 막고굴, 병령사석굴 등에서도 확인된다. 이들 석굴의 화개 역시 꽃과 가지, 잎이 복잡하게 얽힌 화려한 장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운강 제13굴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당시 중국 북방 지역에서 유행하던 인동문 장식과 결합하여 나타난다. 인동문 덩굴에 맺힌 열매는 경전에서 말하는 파리 빛깔의 과일과 닮아 있으며 그 위에서 서로 몸을 얽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은 행수에 비를 내리는 용왕의 모습과 일치한다. 이처럼 성수와 용의 결합은 경전에 설해진 도솔천의 경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미륵보살의 팔을 받드는 헌신


석굴 중앙에 자리한 미륵보살상의 오른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施無畏印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그 오른팔 아래를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특별한 조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팔의 하중을 견디고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 아래에 力士像을 조각해 무게를 떠받치도록 한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미륵보살상의 압도적인 규모에 가려 작게 느껴지지만 이 역사상의 실제 크기는 약 1.8m에 이르러 건장한 성인의 신체와 맞먹는다.

제13굴 남벽 상부. 명창 양옆에는 불감이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포의박대식 가사를 착용한 칠불이 자리하고 있다.

 

이 역사상은 미륵보살의 팔을 받치고 있어 ‘토비력사(托臂力士)’라 불린다. 네 개의 팔을 지닌 토비력사는 두 팔로 미륵보살의 오른팔을 힘껏 떠받치고 있으며 나머지 두 팔은 허리를 짚은 채 온몸으로 무게를 견디고 있다.

이러한 설계는 거대한 불상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고요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중생을 굽어보는 미륵보살과 그 아래에서 온몸으로 팔을 떠받치는 역사의 역동적인 모습을 강하게 대비시켜 뛰어난 조형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 미륵보살의 위엄은 더욱 강조되며 역사상 또한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는 존재로서의 헌신과 긴장감을 함께 드러내어 보는 이에게 숙연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칠불과 미륵보살이 마주한 석굴


제13굴은 제11·12굴과 함께 하나의 조영 계획에 따라 조성이 시작되었으나 제12굴과는 달리 한 번에 완성되지 못한 채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이후 다시 조성이 이어져 완성된 석굴이다. 이러한 사실은 석굴 내부 벽면에 조성된 중소형 불감들의 불규칙한 배치와, 서로 다른 시기의 조형 양식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13굴 명창 동·서 벽면. 두 보살상은 각각 박산로와 마니보주를 들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해와 달, 그리고 산악이 표현되어 있다. 

 

특히 불상의 복식 표현에서는 운강석굴 조성 초기(460~465년경)에 유행한 편단우견(偏袒右肩) 형식과 孝文帝 시기 한화 정책의 영향 아래 중국 사대부의 의복 양식을 반영한 포의박대(褒衣博帶) 형식이 함께 나타난다. 이는 제13굴이 단일 시기에 완성된 석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를 거치며 단계적으로 조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이러한 후대 조성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남벽에 자리한 대형 불감을 들 수 있다. 높이 약 3m, 너비 약 9m에 이르는 이 불감은 동방 목조건축을 모방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신장 약 2.5m에 달하는 일곱 분의 불입상이 연화좌 위에 나란히 서 있다. 이들 불상은 모두 포의박대식 가사를 착용하고 있어 한화 이후 나타난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편 제11굴 서벽 상부에는 과거의 여섯 부처님과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그리고 미래불인 미륵불을 포함한 여덟 부처님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반면 제13굴에서는 과거불과 현재불에 해당하는 일곱 부처님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여덟 번째 부처님에 해당하는 미래불 미륵이 이미 석굴 중앙의 본존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남벽의 칠불과 중앙의 교각미륵보살상이 서로 호응하며,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삼세불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이는 간다라 미술에서 하나의 불감 안에 여덟 부처를 함께 배치하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석굴 전체 공간을 활용해 불교의 시공 개념을 더 입체적이고 명확하게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을 향한 빛과 향의 예경


제13굴 명창의 동·서 벽에는 각각 높이 약 2.3m에 이르는 보살입상이 조성되어 있다. 이 보살상들은 頭光과 身光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화려한 보관을 쓰고 어깨 위로는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져 있다. 상반신은 나신으로 표현되었고, 목걸이와 영락(瓔珞), 龍形 장식, 팔찌 등으로 화려하게 장엄되어 있다. 하반신에는 몸에 밀착되는 얇은 치마를 입고 있으며 음각으로 새겨진 유려한 옷 주름은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보살은 각각 고개를 돌려 석굴 내부의 본존불을 향하고 있으며 발 아래에는 산악이, 머리 양옆에는 해와 달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이 두 보살이 우주적 질서와 연결된 초월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제13굴 동벽 하단. 본존불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손에는 다양한 공양물을 든 채 예를 올리는 공양천들이 조각되어 있다.

 

특히 동벽의 보살은 오른손에 摩尼寶珠를 받들고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으며, 서벽의 보살은 왼손에 박산로(博山爐)를 들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대지도론>에는 “네 모퉁이에 마니보주를 걸어 등불을 삼고, 네 개의 보배 향로에는 늘 향을 피운다”라는 구절이 전한다. 이처럼 제13굴 보살상에 표현된 마니보주는 부처님의 세계를 밝히는 燈明을, 박산로는 부처님께 향을 올리는 명향(名香)의 공양을 상징한다. 곧 두 보살은 빛과 향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양하는 존재로서 미륵보살을 향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부처님을 향한 공양과 예경의 모습은 석굴 내부 동벽 하층에 조성된 供養天 행렬에서도 확인된다. 공양천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본존불을 향해 예를 올리는 자세로 일렬 배치되어 있다. 높게 틀어 올린 머리와 낙액(絡腋)·영락 장식, 단아한 자태와 잔잔한 미소는 정제된 아름다움과 경건한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낸다. 이들은 손에 연꽃 봉오리를 받들거나 합장하고, 공양물을 바치거나 박산로를 들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 불자들이 품었던 부처님에 대한 깊은 경외와 공경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교신문 3925호/2026년6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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