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方便品(16), 목표는 오로지 하나, 보살
2-31.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이르셨습니다.
"모든 부처는 오로지 보살이 되도록 가르침을 펼치고 있습니다.
부처가 자나 깨나 행하는 모든 불사(佛事)는 오로지 이 한 가지
때문입니다. 부처의 지견을 중생들에게 가르쳐 깨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리불이여,
여래는 오직 이 한 가지 가르침을 펼치고자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습니다. 다른 가르침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두 가지나 세 가지 가르침이겠습니까.
사리불이여,
시방(十方)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전부가 또한 이러합니다.
佛告舍利弗
"諸佛如來 但敎化菩薩 諸有所作 常爲一事 唯以佛之知見 示悟衆生
舍利弗 如來 但以一佛乘故 爲衆生說法 無有餘乘 若二若三
舍利弗 一切十方諸佛法 亦如是
【풀 이】
●一佛乘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 또한 일체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펼치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오로지 보살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오직 이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즉 一佛乘이다.
●但敎化菩薩
<오로지(但)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펼쳐(敎) 보살이 되게 한다(化菩薩)>
다시 말해,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펼쳐 성문이나 연각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성문이나 연각이 되라고 한 것은 방편에 불과하다.
그러면 무엇이냐?
오로지(모름지기) 보살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라는 뜻이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불자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명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但敎化菩薩>, 다섯 글자다.
법화경 전체를 통해 <一佛乘>이라는 글자가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바로 이 다섯 글자, <但敎化菩薩>와 동의어라는 점도 기억해 두시기 바란다.
필자가 서품, 「1-6」에서
<爲諸菩薩 說大乘經 名無量義 敎菩薩法 佛所護念>의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공을 들인 까닭도 바로 이 다섯 글자, <但敎化菩薩>의 의미와
직결된다는 점 또한 상기하시기 바란다.
*<諸佛如來 但敎化菩薩>를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The Buddhas teach sattvas only to transform them
into bodhisattvas>정도가 될 것이다.
●敎化587 (불교)진리를 가르쳐 善으로 인도하다.
이 단어는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①(동사)~을 가르친다, ~을 교화한다.
②(명사)교화
③~을 가르쳐서(敎) ~로 만든다(化).
*대단한 착각
이 단어, <敎化>는 법화경 전편을 통해 두루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의미
또한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법화경 한글판과 일본영문판 모두 ①이나 ②의 의미로만
번역하고 있다. 대단한 착각이다.
필자가 본 바로는 ①이나 ②의 의미보다 오히려 ③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법화경에는 훨씬 더 많다.
이 글을 써나가면서 그때마다 설명을 붙이겠지만, 이러한 착각으로 인하여
생기는 혼란 또한 대단하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불자들은 <敎化>라는 단어가
등장할 적마다 그것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우리말 법화경(일본어, 영어 포함)은 아래와
같이 <但敎化菩薩>을 <오로지 보살만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는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착각이다.
첫째는 글자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고,
둘째는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불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고 계신지 몰랐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라 본다.
그 보다 더 큰 착각은 대승불교에서 <보살>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는 데서 오는 것 같다.
또 이러한 번역이 착각임은 이어지는 경문을 봐도 금방 드러난다.
한글번역자들은 일본의 착각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베껴 쓰는데 전념했기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착각인 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이렇게 보는 근거는 이 글의 뒷부분, 「21-5」에서 밝힌다.)
●若二若三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若1047 및 약(그 밖에 또)
●諸有所作 常爲一事
<(부처님들께서) 하고 계신 모든 작업은 항상 한 가지 일, 즉 한 가지 佛事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다>
여기서 <一事>는 <但敎化菩薩>이고 <一佛乘>이다.
●但以一佛乘故
<오로지 한 가지 부처님의 가르침 때문에>
여기서 <但以一佛乘故>를 <但以敎化菩薩故>로 바꿔 표기해도 뜻은 변함없다.
*乘42 탈 승(승차, 승마), 태울 승(타게 하다), 오를 승(상승), 곱할 승(곱하다),
탈 것 승(타는 물건), 법 승, (불교)중생을 싣고 生死의 苦海를 지나
涅槃의 彼岸에 이르게 하는 敎法.
● 후지이 쿄오코오(藤井敎公) 번역:
諸佛如來 但敎化菩薩 諸有所作 常爲一事 唯以佛之知見 示悟衆生
<수많은 부처, 여래는 다만 (부처를 목표로 하는) 보살만을 교화하고 있다.
부처님이 하시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으나 그것 또한 항시 오직 한 가지
때문이다. 즉, 오로지 부처의 지견을 중생들에게 드러내 보여주고, 깨달음이라
일컫는 경지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다.>
이 번역문은 <『現代語譯 妙法蓮華經』, 후지이 쿄오코오(藤井敎公) 번역,
주식회사 아루히후 출판, 2010년 11월 25일 초판, 48 쪽>에서 따온 것이다.
(참고: 필자의 어줍잖은 일본어 해독 능력이지만 우리말로 옮기는데 최대한
정확성을 기하려 노력했다. 큰 착오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어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고 싶지만 필자의 컴퓨터에 설치된 프로그람의 한계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 번역자는 상기 경문을 번역하면서 <敎化>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무척 많이 한 모양이다. 그 흔적이 바로 그의 상기 번역문 중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부처를 목표로 하는”이라는 문구다. 이것은 당연히 법화경에 없는
문구다.
이 분은 법화경에 기술된 글자를 곡해하여, 또 현재 모든 일본어번역본에 기술된
그대로, <다만 보살만을 敎化한다>고 번역하게 되면 법화경의 앞뒤가 맞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궁리하고 고민하던 끝에 괄호를
사용하여 “부처를 목표로 하는”이라는 문구를 만들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번역문을 읽는 독자들이 법화경을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얼핏 번역문을 읽으면, <아, 그런 뜻이구나>하고 지나칠 수 있다.
필자도 이 번역문을 읽고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그래? 그런 뜻인가?>하고
머뭇거렸다.
그러나, 어렵사리 만들어 붙인 이 문구는 법화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더욱 더 큰 혼란만 주고 있다.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菩薩>은 어떤 존재인가?
보살법을 마스터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듯 금강산에 들어가 수십 년을 수도했다며
명동 한 복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언제 로또가 당첨될 것인가를 용하게
알아 맞추는 <금강산 족집게보살>을 두고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또, 아들딸들이 출세하여 떡 벌어지게 권세를 잡고 떵떵거리며 살게 해 주십사고
보시함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넣고는 온 정성을 다해 불상을 향하여 허리가
두 동강이 나도록 절을 올리는 <할아주머니보살>을 지칭하는 이름도 아니다.
대승경에 등장하는 <菩薩>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치고, 고통에 시달리는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극락이나 열반으로 이끌겠다고
작심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上求菩提>하여 <下化衆生>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는 자기의 작심을 관철하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열반행 특급열차의
일등석 티켓을 스스로 찢어버린 사람이다.
관세음보살이 그러하고, 문수보살이 그러하고, 보현보살이 그러하고, 지장보살이
그러하다. 그 외에도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무수한 보살들 모두가 바로 그러하다.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菩薩>은 바로 부처다. <佛菩薩>이라는 용어는 그래서
생겨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승경의 <菩薩>이 이러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후지이 쿄오코오(藤井敎公)는 <諸佛如來 但敎化菩薩>이라는 법화경의 문구를
<수많은 부처, 여래는 다만 (부처를 목표로 하는) 보살만을 교화하고 있다>라고
번역하여 불자들을 헤매게 만들고 있다.
엄격하게 말해서, 대승경에 등장하는 보살은 부처님이 교화 대상에서 제외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그런 보살들 가운데 <부처를 목표로 하는> 보살들만 선별해서
특별과외수업을 시킨다는 이런 번역. 大家의 妄發이고 착각이다.
註: 후지이 쿄오코오(藤井敎公, 1948~ )는 그의 화려한 경력과 더불어 법화경에
관한 다수의 서적을 저술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분은 불교, 특히 법화경에
조예가 깊은 대가 내지 전문가로 보인다. 이건 필자의 착각이지만.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