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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화엄경산림 대법회 185강 – 1 – h

작성자도문3|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화엄경산림 대법회 185강 – 1 – h

 

 

 

            18. 修行圓滿

 

示現種種色하고      亦現心及語하야

入諸想網中호대      而恒無所着하며

或現初發心하야      利益於世間하며

或現久修行의         廣大無邊際하니

施戒忍精進과         禪定及智慧와

四梵四攝等의         一切最勝法이로다

 

  18. 修行圓滿(수행원만)

열 여덟 번째. 수행이 원만하다

 

  示現種種色하고, 갖가지 색을 나타내고,

亦現心及語하야, 또한 마음과 말까지 나타내고,

몸도 나타내고, 말도 나타내고, 마음도 나타내고,
신ㆍ구ㆍ의 3업을 다 나타내네요. 그렇지요?

 

入諸想網中호대, 그러나 모든 생각은 그물속에 들어가되,

而恒無所着하며, 언제나 집착함이 없다.

희로애락에 아무리 휘말려 살아도 파도에 휩쓸리는 법이 없다.

*]

그러니까 ‘거슬리는 것하고,

내 마음에 드는 것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것하고,

남이 나를 칭찬해 주는 것하고 헐뜯는 것하고,

괴로움과 즐거운  이익과 손해에 대해서 마음의 흔들림이 없다.’

이런 뜻이네요. 순경계ㆍ역경계에 대해서 그냥 恒無所着이로다.

 

흔히 그러지요?

“기뻐도 너무 엎어지게 기뻐하지 말고,

슬퍼도 너무 자빠져서 몸까지 마음까지 상하지 말라.” 하거든요.

 

  或現初發心하야, 처음 발심한 모습을 나타내어,

利益於世間하며, 세간을 이익 되게 하고,

或現久修行의, 혹은 오래 수행을 하여서

廣大無邊際하니, 광대하여 끝이 없음을 보이도다.

 

  施戒忍精進과,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禪定及智慧와, 선정과 지혜와

四梵四攝等의, 4무량심과 4섭법 등

一切最勝法이로다. 모든 것이 가장 수승한 법을 행하도다.

 

 

      19. 示現諸相

 

或現行成滿에        得忍無分別하고

或現一生繫에        諸佛與灌頂하며

或現聲聞相하고     或復現緣覺하야

處處般涅槃호대     不捨菩提行하며

或現爲帝釋하고     或現爲梵王하며

或天女圍遶하고     或時獨宴黙하며

或現爲比丘하야     寂靜調其心하고

或現自在王하야     統理世間法하며

或現巧術女하고     或現修善行하며

或現受五欲하고     或現入諸禪하며

或現初始生하고     或少或老死하나니

若有思議者면        心疑發狂亂이로다

或現在天宮하고     或現始降神하며

或入或住胎하야     或佛轉法輪하며

或生或涅槃하고     或現入學堂하며

或在采女中하고     或離俗修禪하며

或坐菩提樹하야     自然成正覺하며

或現轉法輪하고     或現始求道하며

或現爲佛身하야     宴坐無量刹하며

或修不退道하야     積集菩提具로다

 

   19. 示現諸相(시현제상)

 

  或現行成滿에, 혹은 수행 원만히 성취되어,
성만선지식은 누구지요?

미륵ㆍ보현ㆍ문수 ←이 세분을 “성만선지식” 이라고 합니다.

成滿善知識!!! 일을 원만히 완성한 成滿!!!

       “圓滿  成就之大願(원만성취지대원)!!!”

또 잘못 읽어서 “圓滿成就之  大願”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得忍無分別하고, 분별 없는 인을 얻은 모습을 나타내고,

得忍 ←이 인은, 중생忍ㆍ법忍ㆍ무생忍. ←이와 같은 것을 확실히 나타

내는 것입니다. 무생법忍을 제일 잘 나타내는 게송이 무생忍에 대해서

현수품에 나오지요? 10인품에도 잘 나오고요.

그것 나오는 것이 여덟 번째인가요?

 

或現一生繫(혹현일생계)에, 혹은 일생보처의 경계를 나타내어

諸佛與灌頂하며, 모든 부처님께 관정을 받기도 하도다.

스무 번째 까지하고 좀 쉬겠습니다. 얼마나 떠들어 놨는지 땀이 막 나네

요.

 

  或現聲聞相하고, 혹은 성문상을 나타내고,

或復現緣覺하야, 혹은 연각의 모습을 나타내어,

이런 것을 기신론 같은 데서는 마음의 “용대”라고 합니다. 用大.

 

體大(체대)에서는 불생불멸인데요.

相大(상대)에서는 항하사 무량공덕이 있고, 자비로운 것이고요.

用大로 넘어가 버리고 나면, 그 근기에 응용이 돼서 이렇게 나오는 것을

用大라고 하거든요.

 

혹은 성문상을 나타내고,

혹은 연각의 모습을 나타내어,

處處般涅槃호대, 곳곳에서 열반에 드는 모습을 보이되,

不捨菩提行하며, 보리의 행을 절대 버리지 아니하도다.

 

  或現爲帝釋하고, 혹은 제석천이 되고

或現爲梵王하며, 혹은 범천왕이 되고

或天女圍遶(혹천녀위요)하고, 혹은 천녀에 둘러싸이기도 하고,

或時獨宴黙(혹시독연묵)하며, 혹은 홀로 고요히 머물기도 하고,

 

  或現爲比丘하야 寂靜調其心하고,
혹은 비구가 되어 고요히 그 마음을 조복하고,

或現自在王하야 統理世間法하며,

혹은 자재한 왕이 되어 세간의 법을 통치하고,

 

  或現巧術女(혹현교술여)하고,

혹은 교묘한 술법을 쓰는 여인도 되고,

남녀노소 빈부귀천 다 따라가지만, 그 어디에도 빠진 바가 없다.

남자도 아니요ㆍ여자도 아니다. 본무 동서남북이라.

 

或現修善行하며, 혹은 선행을 닦는 모습이 되어

或現受五欲하고, 혹은 오욕을 받는 모습도 보이고,

잘난 모습ㆍ못난 모습. 감옥에도 갔다가,

或現入諸禪하며, 혹은 여러 선정에 드는 듯하도다.

 

  或現初始生하고, 혹은 처음 태어남을 나타내고,

或少或老死하나니, 혹은 젊음ㆍ혹은 늙은 죽음을 나타내니,

若有思議者면, 만일 이런 사유로 헤아리리라 하면,

머리를 짜서 思議하게, 논리라든지ㆍ말로써ㆍ생각으로 아무리 뇌기름

짜봤자...

 

心疑發狂亂(심의발광난)이로다. 그 마음이 의혹하여 어지로워 지리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겁니다.


  或現在天宮하고, 혹은 천궁에 머물고,

或現始降神하며, 혹은 처음에 신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이고,

或入或住胎하야, 혹은 태에 들어 머물으기도 하고,

或佛轉法輪하며, 혹은 부처가 법륜을 굴리기도 하고,

 

  或生或涅槃하고, 혹은 태어나거나 열반에 들기도 하고,

우리 “8상도”라고 하잖아요. 그렇지요?

8상도 마저도 그림자처럼ㆍ메아리처럼 봅니다.

或現入學堂하며, 혹은 학문을 비우는 곳에 있으며,

或在采女中(혹재채녀중)하고, 혹은 采女 가운데 있거나,
或離俗修禪하며, 혹은 출가하여 선정에 머물기도 하고,

 

  或坐菩提樹하야 自然成正覺하며,

혹은 보리수 아래 앉아 자연히 정각을 이루고,

或現轉法輪하고, 혹은 법륜을 굴리는 모습을 보이고,

       “樹下降魔相(수하항마상)

         鹿園轉法相(녹원전법상)”

或現始求道하며, 혹은 도를 구하는 모습을 나타내도다.

 

  或現爲佛身하야, 혹은 부처의 몸을 나타내

宴坐無量刹(연좌무량찰)하며, 무량 국토에 안좌하고

或修不退道하야, 혹은 불퇴의 도를 닦아

積集菩提具(적집보리구)로다. 보리의 공덕을 차곡차곡 모으도다.

 

 

        20. 時處圓融

 

深入無數劫하야       皆悉到彼岸하니

無量劫一念이요       一念無量劫이로다

一切劫非劫이로대    爲世示現劫하니

無來無積集이나       成就諸劫事로다

於一微塵中에          普見一切佛이

十方一切處에          無處而不有로다

國土衆生法을          次第悉皆見하야

經無量劫數토록       究竟不可盡이로다

 

   20. 時處圓融(시처원융)

시간과 장소가 圓融을 나타내다.
이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글이지요?

한 번 본문 읽고 같이 하겠습니다.

 

  深入無數劫하야 皆悉到彼岸하니,

한량없는 겁속에 깊이 들어가 모두 다 피안에 이르니

無量劫一念이요 一念無量劫이로다.

       “無量遠劫卽一念이요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일념즉시무량겁)이로다.

       무량한 겁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곧 무량한 겁이로다.

 

얘기하자면,

“시간과 공간이 원융한 우리 수행 자체가ㆍ우리 삶 자체가 원융한 삶이다.” 모난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그냥 중생들하고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 방울의 물이라고 바다에서 분리될 수 있는 입장이, 비록 거품이라도 분리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잖아요.

 

  圓融이 뭡니까? 색즉시공!!! 공즉시색!!!

원융에 대해서 제일 잘 설명해놓은 것을 저는 선어록에서 지공화상의

十四科頌(14과송)!!! 내지는 대승찬도 괜찮습니다.

그 분의 두 가지 선어록 중에서 항상 첫 구절이 그 겁니다.

 

       “대도는 바로 눈앞에 있다. 항상 눈앞에 있다.
         大道常在目前(대도상재목전)이라.

           大道는 항상 눈앞에, 멀리 있지 않다.”

눈앞에 있다는 것은, 내가 말하는 자리ㆍ숟가락 드는 자리ㆍ생각 일으키는

그 자리. ‘늘 멀리 있지 않다.’ 이 겁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흔히 뭐라고 합니까?

“照顧脚下(조고각하)”라고 그럽니다. 그렇게 법이 “內法”이라고 그러지

요? 10지품에서는 내법이라고 그럽니다.

안 쪽에 있는 법을, “마음을 관찰하는 힘이 생겨진다.”고 그럽니다.

지식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요. 內法ㆍ내법.

 

  一切劫非劫이로대, 일체 겁은 겁이 아니로되,

일체 시간이 없는 것인데요.

爲世示現劫하니, 세간을 위해 겁을 나타내 보이니

無來無積集(무래무적집)이나, 옴도 없고 쌓임도 없으니,
成就諸劫事로다. 모든 겁의 일을 성취하도다.


  於一微塵中에, 한 티끌 가운데,

       “一微塵中含十方(1미진중함시방)이라.

한 티끌 가운데서,

普見一切佛이, 일체 모든 부처님을 두루 보고,

十方一切處에, 시방의 모든 곳에서

無處而不有로다. 있지 않은 곳이 없도다.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

      (1미진중함시방일체진중역여시무량원겁즉일념일념즉시)...

이것이 왜? 이세간품에 나오는 겁니까? ㅎㅎㅎ

 

  國土衆生法을, 국토와 중생과 법을, 이것이

       국토 라고 하는 것은, “世界起始(세계기시)”요.

       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衆生起始(중생기시)”요.

       그 중생의 일으키는 바는 “業果起始(업과기시)”요.

능엄경에, ↑저렇게 나오지요?

우리 화엄경에서는 세주묘엄품에 그렇게 자세히,

器世間ㆍ衆生世間ㆍ智正覺世間(기세간중생세간지정각세간) 같은 것으로

비유해서 3세간 원융을 통해서 나옵니다.

 

3세간 원융을 보니까 우리가 예불할 때마다,

“시방3세” 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일념즉시ㆍ일체즉시” 이렇게 나오잖아

요. 그렇지요? 이런 것입니다.

 

次第悉皆見하야, 차례ㆍ차례 모두 보되,

“차례ㆍ차례” 차례가 있다는 것은 차별인데요.

원래는 허공에 무슨 차례차례가 있겠습니까? 허공은 차례차례가 없지요.

 

經無量劫數토록, 한량없는 겁을 지나도록

究竟不可盡이로다. 궁극에 다함이 없도다.

 

이래서 제가 잘 인용하는 구절중의 한 구절이 그 겁니다.

해인사 일주문에 가면 뭡니까?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이요.

       1000년ㆍ10000년 지나도 長~~~ 현전일념이요.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로다.
      1000겁ㆍ10000겁 지나더라도 중고품이 되지...옛스럽지 않도다.”


  자~~ 20번까지 했고요.

21번 부터해서 마지막까지 마쳐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잠시 쉬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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