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示衆)
14-42 주리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잔다
大德아 莫錯하라.
我且不取儞解經論하며 我亦不取儞國王大臣하며
我亦不取儞辯似懸河하며 我亦不取儞聰明智慧하고
唯要儞眞正見解니라.
《해석》
“큰스님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나는 그대들이 경과 논을 잘 알고 있는 것을 높이 사지 않는다.
나는 또 그대들이 국왕이나 대신이라 하더라도 높이 사지 않는다.
나는 또 그대들이 폭포수처럼 유창한 말솜씨를 가졌더라도 높이 사지 않는다.
나는 또 그대들이 총명하고 지혜롭다 하더라도 높이 사지 않는다.
오직 그대들이 진정한 안목을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강설》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무엇보다 안목이 제일이다.
진정견해(眞正見解)야 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제일 우선하는 일이다.
‘그대의 행동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의 견해를 나는 소중하게 생각할 뿐이다.’라는
옛 선지식의 말씀이 있다.
올바른 안목이 없으면 팔만대장경을 다 외운다하더라도
아무런 쓸데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동서고금의 모든 학설을 다 꿰뚫고 있다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설법을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총명 영리하여 하루에 백 권의 책을 외운다 하더라도
참되고 바른 안목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평생을 일종식하고 장좌불와로 살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25시간을 좌선으로 살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종정을 열 번 백 번 지내고 대통령을 또 그렇게 지냈다 하더라도
인생에 대한 안목이 없으면 그 인생 헛산 것이다.
본산 주지를 백 번 했다 하더라도
인생에 대한 안목이 없으면 헛산 것이다.
오직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은 진정견해다.
바른 안목이다.
道流야 設解得百本經論하여도 不如一箇無事底阿師니
儞解得하면 卽輕懱他人하야 勝負修羅와 人我無明이 長地獄業이니라.
如善星比丘가 解十二分敎호되
生身陷地獄하야 大地不容하니 不如無事休歇去니라.
飢來喫飯이요 睡來合眼이라 愚人笑我나 智乃知焉이로다.
道流야 莫向文字中求니 心動疲勞하고 吸冷氣無益하니
不如一念緣起無生하야 超出三乘權學菩薩이니라.
《해석》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설사 백 권의 경과 논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일개 일 없는 스님만 같지 못하다.
그대들이 그런 것들을 안다고 하더라도
곧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여 승부를 다투는 아수라가 될 뿐이고
나와 남을 분별하는 무명 번뇌로 지옥의 업을 기를 뿐이다.
예컨대 선성 비구가 십이분교를 잘 알면서도
산 채로 지옥에 떨어져서 대지도 용납하지 않았다.
차라리 아무 일없이 쉬고 쉬느니만 같지 못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눈을 감으면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보고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알 것이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문자 속에서 찾지 말라.
마음이 움직이면 피곤하고 찬 기운을 마시면 좋을 것이 없다.
차라리 한 생각 인연으로 일어난 법이 본래 생멸이 없음을 깨달아
삼승의 방편 학설을 공부하는 보살들을 뛰어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강설》
대개의 사람들은 많이 알면 교만하기 마련이다.
지위가 높아도 그렇고 재산이 많아도 그렇다.
나이가 많아도 그렇다.
아는 것이 많고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아도
마음을 비우고 아무 것도 없는 양
소박하고 순수하면 한없이 아름다우련만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불교공부란 다른 말로 하면 마음 비우는 일이다.
한없이 겸손하고 하심(下心)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다.
나주 다보사의 우화(雨華)스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는 분이었다.
해인사에서 온 객승이라고 여쭈니
당신이 해인사에 가거든 방부를 꼭 받아달라고 진심으로 간청을 하셨다.
그것도 3, 40년 어린 사람에게.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를 한없이 존경하였다.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도를 문자 속에서 찾지 말라.
문자와 도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글이란 이름자만 쓸 줄 알면 넉넉하다.
더 배워야 이미 죽은 사람들의 말이나 글로 공연히 머리만 썩일 뿐이다.’
하물며 정치에 야욕을 품은 유비도 이런 말을 했다.
스승 조식이 써준 추천서를 찢어 버리고 더 이상 학문을 하지 않았다.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고 도를 이루려는 출세 대장부야 말해 무엇 하랴.
《문수경전연구회 강좌》
14-42 주리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잔다
大徳(대덕)아 莫錯(막착)하라.
我且不取儞解經論(아차불취이해경논)하며
我亦不取儞國王大臣(아역불취이국왕대신)하며
我亦不取儞辯似懸河(아역불취이변사현하)하며
我亦不取儞聰明智慧(아역불취이총명지혜)하며
唯要儞眞正見解(유요이진정견해)니라.
道流(도류)야 設解得百本經論(설해득백본경론)하야도
不如一箇無事底阿師(불여일개무사저아사)니
爾解得(이해득)하면 即輕蔑他人(즉경멸타인)하야
勝負修羅(승부수라)와 人我無明(인아무명)이 長地獄業(장지옥업)이니라.
如善星比丘(여선성비구)가 解十二分教(해십이분교)호되
生身陷地獄(생신함지옥)하야 大地不容(대지불용)하니
不如無事休歇去(불여무사휴헐거)니라.
飢來喫飯(기래긱반)이요 睡來合眼(수래합안)이라
愚人笑我(우인소아)나 智乃知焉(지내지언)이로다.
道流(도류)야 莫向文字中求(막향문자중구)니
心動疲勞(심동피로)하고 吸冷氣無益(흡냉기무익)하니
不如一念縁起無生(불여일념연기무생)하야
超出三乘權學菩薩(초출삼승권학보살)이니라.
그 다음에 주리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잔다,
드디어 이런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大徳(대덕)아 莫錯(막착)’, 착각하지 말아라
‘我且不取儞解經論(아차불취이해경논)’,
나는 또한 그대들이 경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취하지 않는다.
‘我亦不取儞國王大臣(아역불취이국왕대신)’,
나는 또한 국왕 대신, 그대가 국왕이다 대신이다 하는 것도 취하지 않는다,
그것 뭐 나는 관심 없다 이 말이여.
‘我亦不取儞辯似懸河(아역불취이변사현하)’,
또한 나는 변사현하여, 설법이 하늘에서 내려붓는 폭포수같이
그렇게 법문을 한다 하더라도 내 또한 그걸 취하지 않는다 이 말이여.
‘我亦不取儞聰明智慧(아역불취이총명지혜)’,
나는 또한 그대가 아주 총명하고 지혜롭다 머리가 영리하다하더라도
나 그거 취하지 않는다 이 말이여.
‘唯要儞眞正見解(유요이진정견해)니라’,
오직 중요시 여기는 것은 그대가 진정견해,
참되고 바른 소견 갖는 것, 바른 안목 갖는 것.
모든 존재에 대해서, 특히 사람에 대해서 바른 이해를 갖는 것,
이걸 나는 중요하게 여길 뿐이다.
唯要(유요), 오직 그것만을 중요하게 여길 뿐이다.
당신이 국왕이라 하든지 대신이라든지
대통령이라 하든지 장관이라든지 그거 난 관심없다 이 말이여.
그리고 경과 논에 대해서 박사 학위를 열 개 스무 개 받았다 해도
나 그것도 관심 없다.
강의를 잘하고, 설법을 천하에서 제일 잘한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관심 없다 이 말이여.
오직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대들의 진정견해다,
모든 존재에 대한 바른 이해, 바른 소견,
특히 사람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바른 소견이 중요하다.
참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그런 내용이죠.
‘道流(도류)야 設解得百本經論(설해득백본경론)하야도’,
그대들이 설사 백본경론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不如一箇無事底阿師(불여일개무사저아사)니’,
일개 아무 일 없는 보통 스님만 같지 못하다.
‘儞解得(이해득)’, 그대가 해득, 아는 게 있을 것 같으면,
‘即輕蔑他人(즉경멸타인)하야’, 그 아는 것 때문에 남을 업신여기죠.
그리고 ‘勝負修羅(승부수라)’,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이 꼭 아수라와 같아.
‘人我無明(인아무명)이 長地獄業(장지옥업)이니라’,
人相, 我相, 그걸 다투는 번뇌 무명이
결국은 지옥의 업을 키우는 일이다.
‘如善星比丘(여선성비구)가’, 열반경에 있는 말이죠.
세존이 과거에 보살이 됐을 때 부처님 아들이었어요.
출가해서 십이부경을 이리 꿰고 저리 꿰고 했었어요.
그런데 일천재로서 불성을 부정했다 인불사상을 부정했다,
부처인간 인간부처, 그걸 부정했다고 하는 그런 이야깁니다.
선성비구가 ‘解十二分教(해십이분교)호되’, 십이부경을 다 이해를 했으되,
‘生身陷地獄(생신함지옥)하야’, 살아있는 몸으로 그대로 지옥에 빠졌다.
‘大地不容(대지불용)하니’, 대지도 용납하지 아니했으니
‘不如無事休歇去(불여무사휴헐거)니라’,
차라리 십이부 경문 공부하지 말고
아무 일 없이 그냥 가만히 빈둥빈둥 노는 것만 같지 못하다.
‘飢來喫飯(기래긱반)이요 睡來合眼(수래합안)이라’,
배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눈을 붙여.
‘愚人(우인)은 笑我(소아)나’,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지만
‘智乃知焉(지내지언)이로다’,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이 말이여.
그 이치를 알아준다 이거지.
‘道流(도류)야 莫向文字中求(막향문자중구)니’,
문자에서 구하지 말지니,
‘心動疲勞(심동피로)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피로해져.
‘吸冷氣無益(흡냉기무익)하니’, 이것저것 보고 읊조리고 외워 대느라고
냉기만 자꾸 들여 마시게 돼.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말이여, 아무 이익이 없다.
‘不如一念縁起無生(불여일념연기무생)’,
일념에 연기의 생멸이 없는 이치를 알아가지고서
‘超出三乘權學菩薩(초출삼승권학보살)이니라’,
삼승권학보살에서 뛰어나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랬습니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딱 좋게 됐죠, 뭐.
아주 시원하죠.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한 마디는 앞에 있었던 眞正見解,
아무리 많이 안다 하더라도 그 소견이 바르지 못할 거 같으면,
참되고 바른 소견이 들어서 있지 못하면
이건 참 문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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