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변(勘辨)
18-2 혀를 내두르다
師來日에 又同普化赴齋하야
問, 今日供養이 何似昨日고 普化依前踏倒飯牀한대
師云, 得卽得이나 太麤生이로다.
普化云, 瞎漢아 佛法說什麽麤細오 師乃吐舌하니라.
《해석》
임제스님이 다음날 또 보화스님과 함께 재에 참석하여 물었다.
“오늘 공양이 왜 어제하고 같은가?”
보화스님이 전날과 마찬가지로 공양 상을 발로 차 엎어버렸다.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옳다면 옳은 일지만 너무 과격하다.” 하였다.
보화스님이
“이 눈 먼 사람아!
불법에 대해 무슨 과격하다 점잖다 하는가?” 하였다.
임제스님이 혀를 내둘렸다.
《강설》
천하의 임제도 혀를 내두른 사건이다.
보화스님이 아니면 인류역사상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대지가 찢어지는 광경이다.
태평양이 천길 만길 솟고 히말라야가 땅 속으로 꺼져버린 일이다.
임제가 처음 황벽스님에게
세 번이나 불법의 대의를 물으러 갔다가
세 번이나 신나게 얻어맞고
엉뚱하게도 대우스님의 옆구리를 세 번 쥐어박은 사실이다.
이렇게 해도 불법을 모를까?
이와 같이 천지가 뒤집히고도 도를 못 통한단 말인가?
불법에 무슨 과격하다 점잖다가 있는가?
이 사건은 억만의 불조들이 보여준 기경(機境) 중에서
최고로 멋진 모습이다.
이 단락은 팔만장경 가운데서 가장 빼어난 장면이다.
《문수경전연구회 강좌》
18-2 혀를 내두르다
師來日(사래일)에 又同普化赴齋(우동보화부재)하야
問(문), 今日供養(금일공양)이 何似昨日(하사작일)고
普化依前踏倒飯床(보화의전답도반상)한대
師云(사운) 得即得(득즉득)이나 太麁生(태추생)이로다.
普化云(보화운) 瞎漢(할한)아 佛法説什麼麁細(불법설십마추세)오
師乃吐舌(사내토설)하니라.
’師來日(사래일)에’,
來日(내일) 했는데 그 다음날이에요.
‘又同普化赴齋(우동보화부재)하야’,
그 다음날 또 보화스님하고 같이 그 집 재에 갔어요.
‘問(문), 今日供養(금일공양)이 何似昨日(하사작일)고’,
오늘 공양이 왜 어제하고 똑 같애?
반찬이 그렇게도 없나? 이런 식으로.
오늘은 어제보다 다르게 좀 거하게 차리지 않고,
‘普化(보화)가 依前踏倒飯床(의전답도반상)’,
今日供養(금일공양)이 何似昨日(하사작일)고 하는 말은 일종의 법문이죠.
그러니까 보화가 있다가 어제 한 대로
제사 지내려고 차려놓은 제상을 냅다 차서 엎어버린 거지.
‘師云(사운) 得即得(득즉득)이나 太麁生(대추생)이로다’,
되기는 됐어, 그거 옳기는 옳지마는,
득즉득이나 대추생이다, 너무 거칠다.
‘普化云(보화운) 瞎漢(할한)아’
그러니까 보화가 있다가 ‘야! 이 눈먼 놈아’,
‘佛法説什麼麁細(불법설십마추세)오’,
佛法(불법)에 무슨 추하다 거칠다 얌전하다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가.
아까 그랬죠, 궁극적 차원, 불법 도리,
거기에 무슨 거칠고 얌전한 것을 이야기하느냐, 하니까
‘師乃吐舌(사내토설)하니라’, 임제스님이 있다가 그만 혀를 내둘렀다.
야, 저거 못 말릴 사람이다.
분명히 안목은 확철대오한 사람의 안목이 맞는데
그 표현이 아무리 전체작용을 보인다 하더라도 너무 거칠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길이 없다.
임제스님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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