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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 이슬람

이슬람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72

작성자알리|작성시간26.06.10|조회수5 목록 댓글 0
이슬람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절망의 끝에서 이슬람의 영광 속으로 (미국 오리건 주 출신 아이샤 로렌츠 알-싸이드 1977년에 이슬람으로 개종)



제가 여섯 살이었을 때 저의 부모님은 일요일마다 항상 저에게 반짝거리는 동전을 주시면서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 감사하며 헌금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교회에서 집으로 왔을 때 그 동전은 여전히 저의 호주머니에 있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헌금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제가 미래에 저희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대를 이어 교회목사가 되시기를 바라면서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감독교회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세계종교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의 신비주의적인 믿음에 관한 논문을 읽으면서 스베덴보리(스웨덴의 종교적 신비 철학자 (1688-1772) 의 신봉자)적임 믿음에 한때 호기심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삼위일체 사상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아버지(위대한 영혼)와 그의 아들(예수)과 성령(지금은 가브리엘 천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이 하나로 합해져서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성적인 사고로 결정하면서 자랐던 저였기 때문에 이 사상은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삼위일체 사상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일요일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성경책을 읽으며 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시대에 따른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지만 무언가 만족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의문을 가지지 말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중동에서 온 무슬림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제 내면의 불만족을 알아차린 한 무슬림 친구가 이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며 이슬람에 관한 정보를 알기 위해 학교 도서관을 이용해보는 것이 어떤지 제의하였습니다. 저는 학교 도서관에 꾸란 복사본을 대출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제가 이슬람에 관한 서적들을 집에 가져갔을 때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이슬람을 배워보도록 북돋아주셨으며 가족들에게 이슬람은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도덕적인 교훈들을 배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홍해의 터키옆의 러시아 지역에서 태어나 1913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셨습니다. 그는 아잔(예배시간을 알림)소리를 기억하고 계셨고, 제 친척분들 중에는 마리암이나 소피아 같은 무슬림이름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슬람을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 이해가 되었으며 열정은 커져만 갔습니다. 저는 이슬람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의문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꾸란을 읽었고 진리를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이슬람은 명학하고 논리적인 종교이며, 숭배와 인간간의 관계에 관한 모든 부분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인도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17살에 무슬림이 되어 규칙적으로 예배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라마단의 단식을 완수하였습니다. 제가 공원이나 친구들과 외출시에는 가방속에 물병이나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들을 가지고 다니며 이프타르(단식을 깨뜨리고 먹는 저녁 식사)를 하곤 하였습니다. 저의 친절한 비무슬림 친구들도 해가질 때면 제가 단식을 깰 수 있도록 알려주곤 하였습니다.

그 해 여름 저는 제 믿음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하여 이틀 동안 기차를 타고 불루밍턴 인디아나의 무슬림 학생 협회에서 개최하는 강의와 세미나에 침석하였습니다. 캠퍼스에서 다른 무슬림들과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저의 믿음은 더욱 커져갔고 제가 집에 돌아올 때는 예배 드리는 깔개, 기도염주, 이슬람 관련 서적들과 스카프 몇 개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히잡을 쓸 용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포틀랜드 주립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주전공으로, 중동지역 연구학과를 부전공으로 다녔습니다. 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성지순례를 수행하고 싶었고 그곳에 취업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저는 너무 무리하게 급하게 서둘렀습니다. 미래에 저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자신감도 상실했고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조기졸업하기 위하여 학교친구들과 경쟁하고 과외수업을 따로 들으면서 제 자신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어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저녁, 저는 고층빌딩에서 아름다운 도시의 광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들어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에서 자살은 대죄이고(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쉽게 모든 것을 끝내버리면 저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줄 것인지 떠올렸습니다. 게다가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저를 언젠가는 메카로 보내주실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생각을 하였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때에도 모든 것은 계획되어 있습니다.

새 출발을 하기 위하여 저는 공부를 접고 휴스턴 택사스로 일자리를 구하러 이사했습니다. 제 힘으로는 낯선 도시에서 새출발을 한다면 분명히 나중에는 중동지역으로 갈 수 있는 용기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3년 동안 아랍어 관련 수업을 들었던 것이 ARAMCO(아라비안아메리칸 석유공사) 나 다른 대기업들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길 바랐습니다. 휴스턴으로 이사하면서 저는 히잡을 썼고 전화번호안내센터에 이슬람 성원 전화번호를 문의하였고, 결국 룸메이트로 함께 있을 무슬림 여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애로우심으로 한 자매가 저를 무슬림공동체로 초대해주었습니다.

저는 곧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저의 자신감도 되살아났습니다. 국제의상파티가 열리던 어느날 저녁 저는 정중한 신사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총명한 사우디 학생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결혼을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제 남편을 통하여 저의 꿈을 실현시켜주셨습니다. 저희는 지금 사랑스런 세 아이들이 있으며 저의 남편은 저를 성지순례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 만족한 삶을 살고 있고 진실한 두아(기도)에 분명히 답해주시는 전지전능하신 알라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저희들을 새로운 길로 안내하주시며 도와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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