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우키요에 큰 공적을 남긴 일등 공신 오쿠무라 마사노부

작성자남십자성|작성시간09.09.17|조회수619 목록 댓글 3

우키요에 큰 공적을 남긴 일등 공신 오쿠무라 마사노부


간에이寬永 시대(1624~44)부터 시작된 쇄국정책 이래 약 1세기가 경과하면서 지난 날 모모야마挑山 시대에 쌓아올린 서양화에 대한 학습 성과가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된 교호亨保 연간(1716~36)에 일본인은 다시 새롭게 서양화의 선원근법 혹은 투시화법을 자각하게 되었다.
중국 판화를 매개로 간접적으로 알게 된 이 합리적인 공간 파악법은 우키요에 화가들에 의해 가장 먼저 시도되면서 일본의 제2기 양풍화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물론 마사노부를 비롯한 우키요에 화가들이 과학적인 이론의 본질까지 추구한 것은 아니었으며 상당히 조잡한 해석에 그쳤지만,
가까이 있는 대상은 크게, 먼 데 있는 대상은 작게 그리고 실내에서는 좌우의 기둥이나 맹장지, 위 아래에 있는 대들보, 문지방, 다다미, 옥외에서는 좌우에 늘어선 가옥들의 선을 이용하여 원근감이 느껴지는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어내 당대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가까이 있는 사물이 떠올라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서 우키에라는 명칭이 붙은 이 새로운 장르는 마사노부가 자칭한 대로 그 자신이 솔선해서 직접 관여하여 겐분元文에서 엔쿄延亨 무렵(1736~48)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마사노부의 가장 초기의 작품은 1740년에 그린 극장 내부의 장면으로 마사노부는 연극장면에는 관심이 없고 관객들의 다양한 몸짓을 묘사했다.
당시 극장 내부의 장면이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역사화와도 같은 그림이다.
마사노부는 원근법을 사용하여 소실점이 화면 중앙에 모아지게 했다.
이 작품은 원근법이 일본에서 처음 사용된 예이다.
원근법이 사용된 작품을 1740년대 마사노부의 작품에서 더러 발견하는데 실내와 실외를 함께 모티프로 삼은 그림에서 실내 장면은 원근법을 적용하여 그리고 실외 장면은 전통적인 부감시俯瞰視로 그린 것도 있다.
실내는 소실점을 중앙으로 모아지게 할 수 있지만 실외는 그렇게 할 수 없어 나타난 현상이다.
원근법이 처음 도입된 것이 우키요에라는 서민적 풍속화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서민 화가들이 전통에 매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오쿠무라 마사노부

히시카와와 도리이, 가이게츠도 같은 여러 화파의 특징을 익힌 후 그 화법들을 절충하여 독자적인 양식을 이룩한 오쿠무라 마사노부(1686~1764)는 18세기 중엽의 우키요에 큰 공적을 남긴 일등 공신이다.
오쿠무라야라는 출판사를 직접 운영한 그는 판화의 채색을 개량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목판화에 아름다운 효과를 부여하기 위해 서양화의 원근법을 응용한 우키에를 창시하고 화면이 세로로 긴 하시라에柱繪를 창안하며 풍속화에 시적 서정을 도입했다.


경제적 번영과 세련된 인문주의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일본의 18세기에 또 다른 회화 경향이 대두되었는데, 마루야마-시죠円山-四條 파의 사실주의와 문인화가들의 이상주의였다.
두 파 모두 외래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서로 관련이 있다.
두 파 가운데 사실주의의 최초 대변자가 바로 마루야마파의 창시자로 교토京都 화단의 대가 마루야마 오쿄圓山柄擧(1733~95)이다.
마루야마는 카노파의 이시다 유테이에게 배운 뒤 그 무렵 새롭게 소개된 사실주의 화법의 영향을 받아 정밀한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화풍을 창시했으며 이는 마루야마파로 불리었다.
오쿠무라 마사노부와 도리이烏居 가문 출신 화가들이 주로 그린 초기 우키요에에 나타난 원근법의 효과는 오쿄의 메가네에眼鏡繪(Vue d’Optique)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볼록렌즈가 부착된 정치를 통해 들여다보는 그림이라고 해서 메가네에를 일본에서는 안경화라고 한다. 이중희는 『한·중·일의 초기 서양화 도입 비교론』(2003)에서 이를 요지경화로 명명한다.


오쿄는 탄바丹波 현의 촌락 아나오무라穴太村 출신으로 추정된다.
열일곱 살 때 쿄토 카노파인 이시다 유테이石田幽汀(1721~86)의 문하에 들어가 필법을 숙련했으며 우연한 기회에 서양화에서 새롭게 보는 방법에 눈뜨게 되었다.
쿄토의 골동품상에 의해 처음 수입된 ‘들여다보는 상자’인 노조키 카라쿠리虜機械는 관중의 상상력에 불을 붙였다.
관중을 놀라게 하고 매혹시킨 그 안의 그림은 서양의 음영법과 투시법에 의해 그려지고 실물처럼 보이도록 렌즈로 확대시킨 이국적인 풍경화였다.
어린 오쿄는 이 장치에 상당히 높은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골동품상은 그로 하여금 수입품 그림과 같은 원칙하에 이것들을 모사하게 하고 또한 일본 풍경을 그려 그 숫자를 늘였다.
이런 그림을 메가네에라고 불렀다.


오쿄가 메가네에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인 1759년경으로 추정되며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많은 작품이 현존한다.
그는 교토의 실경을 새로운 양식으로 그리기 전 중국에서 박재舶載된 소주판화蘇州版畵와 중국 민간 목판화를 모사했는데 1760년작 <고소만년교도姑蘇萬年橋圖>는 소주판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카노파의 진부한 구도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그는 투시법과 갖가지 사실주의 요소를 1765년에 쿄토와 오사카 요도가와淀川 양안兩岸의 풍경을 그린 에마키繪卷에 적용했다.
그는 자연을 직접적인 방법으로 연구하여 자신의 독특한 양식을 수립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자연주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어느 정도까지만 추구되었으며 그 이상 진보하지는 못했다.
사물의 실제 형태는 음영 효과를 내는 먹과 담채의 미묘한 조화와 섬세한 필선에 의해 조심스럽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서양 양식, 즉 가시적 공간과 사물에 대한 입체적 표현은 18세기 일본 화가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으므로 그들은 동양화 특유의 무한한 공간 표현을 고수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아름다운 미술관★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멍텅구리 | 작성시간 10.05.05 감사합니다
  • 작성자청실 홍실 | 작성시간 10.06.05 많이 공부하고 있읍니다....고맙습니다..
  • 작성자오우션 | 작성시간 20.11.03 감사합니다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