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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방

[스크랩] 검은 천사들! Paul Gauguin

작성자남십자성|작성시간12.02.18|조회수212 목록 댓글 1

 

 

 

 

 

 

 

 

 

 Paul Gauguin

French Painter    Post Impressionism

1848. 6. 7. ~ 1903 .5. 8.

 

 

 

Ia Orana Maria (Hail Mary)

Oil on canvas 1891

113.7 x 87.7 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로 처음 여행 갔을 때 그 기간 동안 그린 것으로

Ia Orana Maria는 <마리아여, 당신께 예배드린다.>라는 타히티 말이다.

마리아를 경배하는 종교적 의미의 그림으로서

고갱이 스스로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들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칭하는 작품이다.

마리아와 예수를 타히티 사람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경배하는 두 명의 타히티 여인 뒤에

꽃나무 사이로 노란 날개의 천사 가브리엘도 보인다.

화면 가득히 정열적인 원색들이 춤을 추며

남태평양의 뜨거운 작은 섬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뜨거운 정열의 섬, 아름다운 타히티!

 

‘그림을 한 점 그렸는데

노란 날개를 가진 천사가 두 사람의 타히티 여인에게,

타히티 사람인 마리아와 예수를 나타내고 있는 그림이야.

그것은 파레오를 걸친 나체화이지.

파레오라고 하는 것은 꽃모양이 있는 일종의 면포(綿布)인데 말이야,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는지 허리에 감는 거야.

배경은 지극히 어두운 산과 꽃이 피어 있는 나무들,

길은 짙은 보라색으로 전경은 에메랄드그린, 왼편에는 바나나가 있다.

 

손을 뻗어 과일 하나를 집어 든다.

아삭, 한 입 깨물어 먹으니 달콤함이 온몸 구석구석 퍼진다.

태양처럼 빠알간 옷을 입은 여인이 아름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저 뒤에 선 두 여인이 그녀를 보고 손을 모아 절을 한다.

여인의 맨발을 본다.

나도 신발을 벗는다.

햇빛을 머금은 나무 내음을 맡는다.

맨발로 온 들을 거닐고 오니 다시 여인이 그리워진다. ’

 

- 1892년 3월 11일 몽프레에게 -

 

 

 

 

 

Aha oe feii (Are You Jealous)

Oil on canvas 1892

68 x 92 cm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이 그림은 그가 모델도 없이 그려낸 작품이라고 한다.

물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쉬고 있는 두 아가씨가 잠시 대화라도 하는 듯한....

건강한 타히티 처녀들의 모습과, 햇살로 눈이 부신 연 분홍빛의 따뜻한 모래,

푸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출렁이는 오색의 물결들.....

원시의 순수함이 그대로 살아있는 아름다움이다.

 

 

 

 

Barbarous Tales

Oil on canvas 1902

Folkwang Museum Essen Germany

 

만년의 고갱은 이 섬의 여러 가지 전설에 귀를 기울이고 흥미를 느꼈다.

또 그것을 자기 나름의, 때로는 신비하게,

때로는 상징적인 이야기로 화면을 이루어 나간 것이 많다.

이 작품에서도 불상(佛象)과 같은 모습의 젊은 남자와,

그 한쪽에 가까이 붙어 앉은 젊은 여인, 그들을 둘러싼 나무들과 꽃들...

고갱이 히바오아 섬에서 느낀 일상적인 이야기의 한 장면일 것이다.

그 배후의 기이한 인물은 고갱의 뽕따방 시절의 야코브 마이 에르 데 항이다.

곱사등이며 조그맣게 생긴 사내로서, 항상 20파운드나 되는 성서를 들고 다니는 이 남자를

여기에 그림으로써 고갱은 스스로의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그리려 했던 것 같다.

그의 과거에 힘들고 괴로웠던 나날이 만년의 그가 본 섬의 일상성에 결합되었다.

 

 

 

 

 

Still Life with Mangoes

Oil on canvas 1896

Private collection

 

 

 

 

Ta Matete (We Shall Not Go to Market Today)

Oil on canvas 1892

73 x 91.5 cm

Kunstmuseum Basel, Basel Switzerland

 

서구 문화에 의해 파괴된 타히티의 문화와 원주민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오늘은 시장에 가지 않을 거야.>라는 은유적인 제목으로 발표되었지만

실제로는 ‘오늘은 매춘을 하지 않겠다.’는

원주민 여인들의 한이 어린 마음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고갱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으로서,

중앙에 일렬로 앉아 있는 원주민의 여인들이

'이집트 벽화' 에서보이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매우 이채로운 작품이다.

 

 

 

 

 

Nafea Faa ipoipo (When Will You Marry)

Oil on canvas 1892

105 x 77 cm

Kunstmuseum Basel Basel Switzerland

 

갱이 타히티에서 생활하면서 그린 초기작에 해당한다.

1892년 7월에 그는 부인 메떼에게

 

'나는 많은 일을 하고 있소. 지금에 와서야 이 토지와 그 향기를 알게 되었소,

나는 타히티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수수께끼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긴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마오리족 (族), 바로 그것이오.

이런 것을 알기 위하여 나는 일 년이 걸려 버렸소.' 라고 쓰고 있다.

 

영원한 여름의 하늘 아래 비옥한 토양이 넘쳐나는 타히티는

고갱에게 오직 삶의 달콤함만이 존재하는 미지의 낙원이었다.

그가 보기엔 타히티 인들의 삶이란 끊임없는 노동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유럽과는 달리

일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오직 노래하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옷을 입은 검은 피부의 두 여인과 녹색 들판,

푸른색 배경들의 강렬하지만 단순한 구성,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원시적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Fatata te miti (Near the Sea)

Oil on canvas 1892

68 x 92 cm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문명을 거부하고 원시 사회에서

인간 본연의 감성과 충동을 추구한 화가 고갱.

그는 원시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하여 오늘 날 원주민의 건강한 인간성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가

그의 예술을 완성시켰다고 평가 받는 화가 고갱이다.

 

 

 

 

 

Caricature Self-Portrait

Oil on wood 1889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Horsemen on the Beach

Oil on canvas 1902

Folkwang Museum Essen Germany

 

 

 

 

 

Eü haere ia oe (Woman Holding a Fruit)

 

Oil on canvas 1893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화려한 원색의 색감과

멀리서 그를 흘끗 보고 있는 여인마저 놓치지 않고 있는 구도까지

모두 밝은 표정으로 싱싱하게 살아 있다.

삶의 생기를 찾은 듯 고갱의 붓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여인의 원시적 아름다움을 차분하게 그려내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고갱은 많이 행복했었나 보다.

 

 

 

      

 

Manao tupapau (The Spirit of the Dead Keep Watch)

Oil on canvas 1892

72.4 x 92.4 cm

Albright-Nox Art Gallery Buffalo NY USA

 

타히티에서 1892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서구 문화에 염증을 느끼며 단절을 꿈꾸던 고갱의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타히티의 원주민 여성이 등을 돌리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엎드려 있다.

아마도 제목이 시사하듯,

왼쪽에 검은 망토 같은 것을 두르고 있는 앉아 있는 것이 죽음의 정령일 테다.

 

고갱이 직접 체험에 의한 것을 화폭에 담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여행을 하다 새벽에 귀가한 고갱이 방문을 열었을 때의 전경이다.

테후라는 갑자기 유령 같은 침입자에 공포에 질린 듯

날카로운 눈길로 벗은 채 꼼짝 않고 엎드려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그녀를 난 처음 보았다.’

그녀의 공포심을 느낀 고갱은 자신마저 불안해져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 할까봐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하며

‘어쩜 그녀의 눈길로 보아서는 유령쯤으로 생각했었을 것 같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고갱은 테후라와 연인 사이로, 고갱이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다

파리로 돌아갈 때까지 동거생활을 했다.

2년 후, 고갱이 다시 타히티로 돌아와서 테후라를 찾으니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Bouquet of Flowers

Oil on canvas 1896

National Gallery London UK

 

 

 

 

 

Parau Api (What's New)

Oil on canvas 1892

Gemaldegalerie Neue Meister Dresden Germany

 

 

 

 

 

Ondine<물의 정령>

Oil on canvas 1889

The Cleveland Museum of Art Cleveland USA

 

후기 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

 

대개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은 때로는 안일한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때로는 그 만족이 발전에 저해가 되기도 한다.

 

19세기 아카데미즘 미술을 잠재우며. 새로운 미술역사를 만들었던 인상주의.

하지만 그 인상주의에도 만족하지 않았던 화가들이 있었다.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등이 그들이다.

그 후 그들은 인상주의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또 다른 새로운 미술을 탄생시켰으며,

그것은 20세기 큐비즘과 포비즘 등을 비롯한 현대미술의 기반이 되었다.

미술사에서는 그 때를 후기인상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인상주의는 보이는 것 그대로 그린 것으로 깊은 마음이나 느낌이 실려 있지 않아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서로 비슷한 면이 많다.

후기 인상주의는 그릴 때의 감정과 마음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듯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으로

뚜렷한 개성이 넘쳐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해

가난으로 자살에 이르는 화가도 있다.

후기 인상파의 그림들은 우리가 보아도 한 눈에 그 작품의 작가를 알아 볼 수 있다.

그래서 작가들의 공통점이 그다지 없는 것이 특징이지만

굳이 찾자면 개성이 넘쳤다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지금 우리가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볼 때,

과연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 좋을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과연 어떤 선택에서 해답을 찾을 것인가, 고민해 봐야겠다.

 

 

 

 

 

Taperaa Mahana

Oil on canvas 1892

Collection of Otto Krebs Holzdorf

Now in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Self-Portrait with Yellow Christ

Oil on canvas 1889

Private collection

 

고갱이 1891년 4월 타히티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고갱은 이 작품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거울 맞은편에 서서 고전적인 방식으로 작업하였다고 하며,

평행한 붓터치와 고르게 분포된 빛 효과 덕분에

그의 모습은 자신 있게 그려졌고, 야성적인 표정도 강조되었다.

 

고갱의 배경 주위에는 그가 1889년 완성한 두 점의 작품이 그려져 있는데,

좌측으로는 '황색 그리스도' 의 일부분이 거울에 반사되어 좌우가 뒤바뀐 채 보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두 번째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얼굴 형태의 자화상 항아리' 로,

1890년에 에밀 베르나르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후 슈페네커에게 선물한 것이다.

 

 

 

 

The Yellow Christ

Oil on canvas 1889

92.1 x 73.4 cm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Y USA

 

고갱이 타히티 섬으로 건너가기 이전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상징주의 미술의 개화를 알리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1886년부터 1890년까지 5년 동안을

프랑스의 브르타뉴 뽕따방에서 보낸 고갱은

이곳에서 신앙심이 두텁고 순박한 농부들의 삶에 매료되어

그들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 상' 은 뽕따방에 가까운 트레마로의 교회당에 있었던 것이고,

멀리 보이는 것은 뽕따방 마을과 생트 마르그리트 언덕으로 추측된다.

노란 예수상과 갈색 십자가, 세 사람의 브르타뉴 여인과 붉은색의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어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는데 즉, 영적 세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현실 세계에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을 한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의 종합을 이룬다.

 

 

 

 

Haystacks in Brittany

 Oil on canvas    1890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고갱이 타히티로 떠나기 이전의 그림이다.

단순하고 원색으로 처리된 건초더미가 있는 농촌 풍경이

원시성을 나타내진 않더라도

그 푸르른 신선함이 붉은 색의 토양과 어우러져 풍요롭고 아름답게 살아있다.

고갱에의 이끌림을 한껏 발산 시킨다.

 

 

 

 

 

Two Tahitian Women with Mango Blossoms

Oil on canvas 1899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고갱은 작곡가가 소리를 만들듯 색채를 진동시키며 그림을 그렸다.

그의 영혼을 불어 넣으며 열정을 불태우던 순수의 원시,

그대로 살아있는 아름다운 천사들이 여기에 있다.

착한 눈빛, 검은 피부...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천사들!

 

 

 

 

 

The White Horse

Oil on canvas 1898

140 x 91.5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시정에 넘치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지닌 작품이다.

평평하게 칠해진 색면(色面)들이 깊숙한 환상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색다른 작품으로

짙은 프루샨 블루의 웅덩이, 거기에서 물을 마시는 하얀 말,

또한 푸르게 칠해진 뻗어 나는 나무 가지, 늪가에 피어있는 하얀 꽃,

새빨간 말 잔등에 올라앉아 사라져 가는 섬의 여인도, 모두 고요 속에 잠겨 있다.

화면의 색을 빨강에서 노랑, 연두, 초록, 파랑, 보라로 다양한 색조의 변화를 주어

결코 단조로운 배색은 아니지만, 서로 대립적으로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가 통일된 느낌으로 조용한 목가적(牧歌的)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작품은 그가 자살을 시도했던 다음의 작품으로 늪의 수면이나 나무의 검푸른 가지는

어둡고 침잠된 죽음의 그림자가 스며있는 듯하다.

 

 

 

 

 

Nevermore, O Taiti

Oil on canvas 1897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London UK

 

원시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있던 고갱은

이 그림에서는 색의 톤을 낮추어서 그렸지만,

화려한 문양과 탄력 있는 미개인의 나체는 얼굴 표정마저 그 원시성의 생기가 한껏 넘친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고갱은 종종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그림 속 그의 붓 터치는 여전히 열정과 힘이 넘치고 있다. 

 

 

 

 

 

Tahitian Women (On the Beach)

Oil on canvas 1891

69 x 91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전체적으로 우울한 느낌이 든다.

수년 간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타히티.

두 여인이 입고 있는 의상에서

서구 문화의 강제 침범 같은, 새로운 풍습과 전통의 충돌이 느껴진다.

흰 티아레 꽃무늬가 그려진 전통의상 ‘파레오’를 입고

똑 같은 꽃을 머리에 꽂은 전형적인 타이티 여인,

향기가 나는 듯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에 구리 빛의 건강한 피부가 돋보이지만

기력 없이 내려 깔은 폐쇄적인 눈길이 안쓰럽다.

종려나무 잎으로 모자를 짜다가 ‘이걸 짜봤자...’ 하는 듯 생기 없는 표정의 여인은

서구문화의 옷으로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목까지 감싸고 꽁꽁 옷에 가려져 있다.

배경의 바다는 검은 색으로 어둡고....

 

 

 

 

 

Fatata te mouà (At the Foot of a Mountain)

Oil on canvas 1892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Joyeuseté (Arearea) <기쁨>

Oil on canvas 1892

Musée d'Orsay, Paris, France

 

고갱은 열대 지방에 정착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두 명의 여인이 풀밭 위에 앉아 있는데, 그녀들 중 한 명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으며 화면의 뒤쪽에는 우상 앞에서 춤을 추고,

앞 쪽에는 붉은 개 한 마리가 있다.

열대의 자연 속에 인간, 음악, 춤 등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타이티 원주민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반한 그의 기쁨을 보는듯하다.

강렬한 색상들의 대비로 더욱 강한 효과를 드러낸다.

 

 

 

 

 

Motherhood (Women on the Shore)

Oil on canvas 1899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초록의 대지 위에 한 여인은 과일을 들고, 한 여인은 꽃을 들고 서 있다.

두 여인의 보호 아래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는

타히티의 성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의 뒤쪽에는 노란색 하늘, 그 속엔 분홍빛 구름이 걸려 있고,

오른편 하늘로 내려온 나뭇가지에는 꽃들이 피어있다.

대담한 색 배치와 건실한 구도로써 힘찬 교향악을 이루고 있다.

 

고갱의 어머니는 고갱이 하급 선원으로 항해 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머니의 눈길은 부드럽고도 위엄이 있으며 맑고 애정이 넘쳤다.'고 말했었다.

그는 그의 딸 알리느를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마음까지 다하며 사랑했었는데,

1896년 딸이 급사하여 그는 심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이 작품은 항상 그에게 깊게 깔려 있던 슬픈 마음에서 우러난 행복한 모성에의 찬가이다.

 

 

 

 

 

Tahitians on the Beach

Oil on canvas 1892

89.5 x 109.9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Y USA

 

원색의 강열함과 대담한 구성, 단순함이 주는 그 싱싱하고 건강한 원시성.

그대로 날 것 인 채 살아서 시선을 끌어들인다.

 

 

 

 

Te Tamari No Atua (Nativity)

Oil on canvas 1896

Neue Pinakothek, Munich, Germany

 

오랜 세월을 같이 동거하던 파우라가 낳아준 딸이 태어나자마자 죽게 되자,

고갱은 그 상황과 슬픔을 화폭에 담았다.

침대 위에 지친 아내가 누워 있고, 그 옆에 있는 아기에게는 후광을 그려 넣어

이제는 자신들의 곁을 떠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그 아이를 신의 아이로 다시 탄생하기를 믿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그려내었다.

 

 

 

 

 

Tahitian Landscape

Oil on canvas 1893

The Minneapolis Institute of Arts Minneapolis MN USA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떠나 살면서

원주민의 건강한 순수,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가 그의 예술의 근원이자 완성이다.

그의 상징성과 내면성, 그리고 비(非)자연주의적 경향은

20세기 회화가 출현하는 데 근원적인 역할을 했다.

단순한 구성, 현란한 색들의 축제가 눈부시다!

 

 

 

 

 

Vahine no te vi (Woman with a Mango)

Oil on canvas 1892

72.4 x 44.5 ㎝

Baltimore Museum of Art Baltimore MD USA

 

찬란한 원색의 대비!

빨간 망고를 들고 있는 검은 처녀가 화면 가득 싱싱한 아름다움으로 넘친다.

건강하게 뛰고 있는 맥박이 느껴지는 듯...

 

 

 

 

 

Te arii vahine (The King's Wife)

Oil on canvas 1896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망고의 여인” 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화려한 색깔의 하늘과 바다, 잔디와 나무 그리고 망고와 여인들...

모두가 풍요롭고 생기 넘친다.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고갱의 마음이 그러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세로 1미터, 가로 1미터 30센티의 그림을 막 끝 낸 찰나다.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초록의 바닥에 나체인 여왕이 비스듬히 기대이고, 시녀가 과일을 따고,

두 노인이 굵은 나무 곁에서

지혜의 나무에 대하여 말을 주고받고 있다. 배경은 해안이다.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색채의 점에 있어

이렇게도 무게 있고 장대한 울림을 가진 것을 그려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개는 당번을 서고, 오른쪽에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울고 있다."

 

-1896년 4월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

 

 

 

 

 

Matamoe (Landscape with Peacocks)

Oil on canvas 1892

115 x 86 cm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Three Tahitians

Oil on canvas 1899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UK

 

대담한 구도의 이 그림은

섬사람들의 일상적인 단면을 단순하지만 현실과 환상이 미묘하게 교차한 느낌이다.

과일을 한 손에 들고 돌아선 여인의 초록의 과일에서, 또 어깨로 움직이는 선이,

몸을 둘러싸는 빨간색의 파레오와 서로 응답하며 만드는 부드럽고도 풍요로운 색감이다.

건실하고 착한 얼굴의 정감이나, 어깨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살붙임,

세 인물의 검은 피부색은 초록과 노랑, 밝은 분홍 등의 흐르듯 깔린

무정형적(無定形的)인 배경의 색과 함께

원시의 아름다운 조화가 그대로 살아있다.

 

 

 

 

 

Aita Tamari vahina Judith te Parari (Annah the Javanese)

Oil on canvas 1893

Private collection

 

안나는 고갱이 잠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 어느 한 화상의 소개로 만난 여인이다.

자바 태생의 키가 작은 혼혈 여인이던 그녀는

1년 정도 고갱의 애인으로, 모델로 그의 곁에 있어 주었다.

아마도 타히티를 향한 고갱의 그리움이 다소 검은 피부의 그녀를 곁에 있게 한 모양이지만

그녀는 그의 그리움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떠났다.

 

 

 

 

 

Tahitian Idyll

Oil on canvas 1901

E. G. Buhrle collection Zurich Switzerland

 

 

 

 

 

Parau na te varua ino (Words of the devil)

Oil on canvas 1892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악령의 주술에 걸려든 두려운 표정의 아가씨,

그 뒤의 검은 배경에 공포스러운 거대한 악령의 새가 거칠게 푸득이며 나래치고,

악령의 화신일까, 도사린 듯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고 있다.

천천히 부드럽게 아가씨를 휘감으며 피어오르는

그 주술의 환상적인 색감에 나까지 몽롱해 지는 것 같다!

그래서 고갱이다.

 

 

 

 

 

Ford (Running Away)

Oil on canvas 1901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세차게 몰아치는 푸른 파도와 붉은빛의 모래 밭,

짙고 투명한 보랏빛의 나무그림자, 이슥한 깊은 숲길로의 도망일까....!

강열한 색감들의 풍요로운 제전이다.

 

 

 

 

 

The Call

Oil on canvas 1902

The Cleveland Museum of Art Cleveland USA

고갱이 열대의 자연에 묻혀 행복했던 시절을 보는 것 같다.

전경의 풀밭 빛깔은 화려한 꽃밭과도 같은

빨강, 분홍, 노란 색들의 해조(諧調) 뒤쪽의 잔디밭을 앞에 하고

여기 저기 선명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듯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부르는 소리, 이 여인들은 과연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까?

 

 

 

 

 

Vaïraumati tei oa (Her Name is Vairaumati)

Oil on canvas 1892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수줍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은 앳된 소녀 같다.

소녀가 앉은 바위 뒤에 그녀의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고,

더 멀리 뒤에는 타히티의 보호자 같은 석신 상이 보이고 있다.

그대로 원시적 아름다움이 짙게 베여나는 그림이다.

 

 

 

 

 

Alone

Oil on canvas 1893

73 x 50 cm

Private Collection

 

샛노랗고 빨간 강열한 원색에

대담하고 단순하게 화면을 가득 메운 다갈색의 검은 피부.

햇살이 내려 쪼이는 모래사장일까,

붉은 파레오마저 바짝 끌어 올린 채

아무렇게나 들짐승처럼 웅크린 듯 엎드려 있는 자세.

원시의 투박하고 건강한 관능이다!

 

 

 

 

 

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Oil on canvas 1897

137 x 374.7 cm

The Museum of Fine Arts Boston MA USA

 

고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그려진 대작이다.

당시 그는 악화된 건강과 생활고, 그리고 사랑하는 딸 알리느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살을 결심했고 죽기 전 마지막 유언으로 이 작품을 그리고자 마음먹는다.

단 한 달간의 짧은 기간에 자신에게 남은 모든 정력을 이 작품에 쏟아 붓듯이

열정 적으로 작품에 몰두하였다.

 

원제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것인가?>는

고갱의 가장 크고 야심적으로 모든 것을 종합해 넣은 작품으로

자신의 무의식과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 작품이

고갱이 이전의 작품들을 능가하는 역작이라고 생각했듯

장편의 신비스런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의 3과정을 그린 것으로 해석되는데

고갱은 이에 대해 세부적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명상적으로 감상되고 경험되기를 원했다.

그가 헛된 것이라 여기는 말로서

작품을 정의 내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미술사상 가장 철학적인 작품 제목으로

지금도 우리 자신이 물어야 할 질문임에 틀림없다.

과연 우리는.....!

 

 

 

 

 

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Detail from The Left Part

 

그림 왼쪽 윗부분에는 타히티 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속의 여신 히나의 상이 있고

여신 곁에는 고갱의 딸 알리느가 그려져 있다.

분신처럼 아끼던 딸 알리느를 여신의 힘을 빌려 되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Detail from The Right Part

 

그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세 여인과 누워 있는 어린 아기를 통해

순결한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며 우리의 과거를 묻게 되고,

그림 중앙에 서서 익은 과일을 따는 젊은이는

인생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로서, 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보게 된다.

 

또 상단 그림의 왼쪽 화면에서 웅크리고 귀를 막아

닥쳐올 고통을 괴로워하는 늙은 여인의 모습에서는

우리의 미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새들과 배경은 인생의 풍요를 의미한다.

그는 지상의 낙원 속에서의 그 인물들의 모습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심오한 질문들을 던진 것이다.

 

 

 

 

고갱의 삶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혼란기에 페루로 이민을 가다 아버지를 잃고

페루에서 가난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선원생활을 하며 세계 곳곳을 떠돌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증권거래소 점원으로 가난한 생활을 연면하다, 1873년 결혼을 하면서 삶이 윤택해 졌다.

운택한 삶으로 인해 미술품 수집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주식시장의 붕괴로 일자리를 잃게 되자 전업 작가로 들어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갱은 1886년 6월 도시생활에 지쳐 브르타뉴의 뽕따방으로 이사하였는데,

거기에서 종래의 인상파풍 외광묘사를 버리고

차차 고갱 특유의 장식적인 화법을 지향하여

P.세뤼지에, M.드니, P.보나르 등후일 '나비파(Nabis 派)'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해 11월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고흐' 를 알게 되면서

절친한 사이로 이어져 고흐와 함께 남프랑스의 아를르에서 살았다.

그러나 두 거장인 고갱과 고흐는 그림의 화풍도 다를뿐더러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성격이어서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을 계기로

비극적인 '작별' 로 끝났다.

 

그 후, 고갱은 다시 뽕따방으로 가서'황색의 그리스도,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등을 그렸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고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만 더하여 마침내 1891년 4월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떠난다.

 

약 2개월간의 항해 끝에 타이티 섬의 파페아떼 항구에 도착한다.

산업혁명으로 오염된 서양의 문명의 벗어나

소박하고 순수한 자연의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서 였으며

그는 원시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하지만 파페아떼는 고갱의 이상과는 달리

식민지 지배자들과 술주정뱅이 백인들이 득실거리는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이에 마타이에아 섬으로 옮긴 고갱은 그곳에서

안정을 되찾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원주민의 건강하고 순수한 인간성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로

그만의 예술적 완성이 있었지만 점차 가난과 빈곤, 고독에 시달리면서

파리로 돌아가 가족들과 재회하기를 갈망했다.

마침내 2년 남짓의 타이티 생활을 청산하고

1893년 6월 4일 그는 타히티를 떠나 그토록 그리워하던 프랑스로 돌아왔다.

 

파리에서 타이티 섬에서 그린 작품들로 개인전을 열었지만

세인의 관심만 끌었을 뿐 상업적으로는 실패하였다.

그가 프랑스로 돌아온 1년 동안 깊은 좌절감만 쌓여갔는데

코펜하겐의 그의 가족들마저 냉담하여 고갱은

1895년 6월 말 2년간의 고통스러운 파리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타히티 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파리에서 열렸던 그의 작품은

피카소 등 젊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개성이 별로 없는 인상파 그림에 만족하지 않던 고갱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소박한 원시적인 원주민들의 모습에 빠지면서

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며 그들의 모습을 화려한 색채로 화폭에 담아내었다.

대담하고 투박하며 단순한 형태로, 선명한 색의 작품들로

피카소 등 후배 화가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고갱.

그는 20세기 회화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지만

고독과 가난함, 원시의 섬에서 얻은 지병으로 인해 힘들게 살다

히바오아 섬의 한 오두막에서 심장마비로 55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한쪽 구석에 조그마한 잠잘 곳을 둔 커다란 아틀리에,

이것저것 모두 선반에 정리하여 손이 닿는 곳에 있다.

그늘진 곳에 달아맨 그네에서 낮잠을 자고 있으면, 3백미터 앞의 바다에서

푸른 야자수의 숲을 넘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기서는 시(詩)가 저절로 생겨난다.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것은 그림을 그리면서 몽상에 잠겨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1901년 11월, 고갱이 몽프레에게 띄운 펀지의 한 구절이다.

 

고갱의 심장에는 그 깊은 원시림이 안겨 주는 자연의 맥박이 뛰고 있었다.

 

원시의 이상향!

 

고갱은 순수함을 동경했다.

원시 열대의 순수함 속에 그의 꿈이 어리어 있다.

아름다운 순수의 시(詩)가 여기에 살아 있다.

자연의 영원한 숨소리.

 

두툼한 입술.... 순한 맑은 눈길

꾸밈없는 순박한 표정

생긴 그대로의 태생적인....그 투박한...

원시가 싱그럽게 살아서 숨 쉬는

건강한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다.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의 순수한 그 모습이

그대로 천사이다.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검은 천사들이다!

 

현대라는 문명 속에

허식과 가식의 허세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오늘,

흐르는 세월과 함께

순수의 빛이 바래가는 내 자신을 말없이 굽어본다.

그래서 그리운,

슬프도록 그리운...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동경의 세상!

순수의 세상!

 

 

 

2012. 1.20. Danang의 어느 호반에서

 

      

 

        2012. 2. 11.     편집   하늘 새

 

 

너무나 잘 알려지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갱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우선은 내가 좋아서였지만,

무언지 모를

고갱이 꿈꾸던 ‘인간 순수의 본능’ 같은 욕구가 나를 부추겼다.

고갱의 ‘고갱다운 그림’이라 할 수 있는 1891년 이후,

거의 고갱이 타히티 섬에서 그린 작품들로 편집했다.

 

고갱의 심장에서 뛰던 뜨거웠던 원시림의 맥박,

나 또한 그 열정의 맥박으로 임했다.

훌륭한 그림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움은 행복이었다.

신비스럽고 꿈같은 주제...원시의 땅, 그 순수!

고갱의 흔적을 찾아 원시림을 헤매면서

그 순수의 낙원에서 행복했다.

뿌듯한...희열에 찾던 순간들!

 

어느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상향이 있다.

내 영혼의 안식처,

영원한 마음의 고향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의 그 곳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나를 포근히 품어 줄...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드높은 겨울하늘이

이토록 짙푸르고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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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태양. | 작성시간 12.11.20 싸늘한 날이라도 뜨거운 사랑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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