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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選 詩모음

종로5가 -신동엽

작성자瑞村|작성시간10.10.05|조회수53 목록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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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5가

                               -신 동 엽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群像)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漁村)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
  종묘(宗廟)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부은 한쪽 눈의 창녀(娼女)가 양지 쪽 기대 앉아
  속내의 바람으로, 때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었지.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半島)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李朝)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北間島)라도 갔지.
  기껏해야 버스길 삼백 리 서울로 왔지.
  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광고만 뿌리는 그머리 마을,
  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
  도시락 차고 왔지.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

 

 

 

 

 

신동엽(1930-1969)시인은 조선일보 신춘문예(1959)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가 입선(가작)되면서 본격적인 활동 시작.  아사녀(阿斯女)의 사랑을 그린 첫 시집 [아사녀(阿斯女)]에 <진달래 산천(山川)>, <그 가을>, <내 고향은 아니었었네> 등을 발표하였는데, 민족의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역사의 격변으로 붕괴되고 있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점이 주목되고 있읍니다. 그의 언어는 역사와 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민중적 이념을 구현하는 데에 모아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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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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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범부 | 작성시간 10.10.06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소망 | 작성시간 10.10.18 가슴아푸네요 그현실이 눈앞에보이네요 ..내가 충신동에 살었서요..근무지는 한은행였지요
    매일 아침,저녁 동대문을 지났지요 그시절이 누에보이네요..그래도 그추억이
    그립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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