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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選 詩모음

장날 -노천명

작성자瑞村|작성시간10.12.13|조회수144 목록 댓글 2

 

 

 

 

 

 

장날

                                -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       

 

첫 연은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의 정경이고 두 번째 연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저녁'의 정경으로 되어 있다. 나귀 등에 짐을 싣고 새벽에 집을 떠나 20리나 걸어야 열하룻장을 볼 수 있는 시골. 살림이 넉넉할 리가 없다. 울안에 한 두 그루 심어 놓은 대추나무, 밤나무의 열매를 쓸 만큼 남겨 놓고 몇 됫박이라도 내다 팔아야 추석을 쇤다. 일 년 중 가장 풍성해야 할 농촌이지만 우리네 살림이 다 그렇지만은 못하다. 요리조리 재며 한 푼이라도 쪼개 써야 하는 현실을 어린 아이가 알 턱이 없다. 철모르는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장보러 가는 아버지의 가난함을 여지없이 드러나게 하지만 우리는 그 아버지의 비참함보다는 어린 딸의 천진스러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끝 연에서는 그것이 더 재미있게 전환된다.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울던 딸의 모습을 생각하며 아버지는 내내 언짢은 기분이었으리라. 그러나 울다가 잠이 든 것일까? 딸 대신 삽살개가 먼저 나와 꼬리를 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삽살개가 주인을 반기는 정경이 이 시의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며 읽는 이의 입가에 엷은 웃음을 번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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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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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석근 | 작성시간 11.03.03 경음악 좋와 잠시머물러 잘듣고 쉬여갑니다
  • 작성자임곡 | 작성시간 11.09.29 멋진 글에 푸짐한 해설을 겯드린 안성마춤을 한 아름 안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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