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할 수 없습니다.” 의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순간, 환자와 보호자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을 경험한다. 암 치료법이 발달하고 완치율도 높아졌지만 여전히 암은 치료가 힘들고 사망률도 높은 무서운 질병이다. 완치하지 못한다는 판정은 드물지 않다. 몸 속에서 암을 몰아낼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들 중에서는 의사가 권하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완치되지 않는 암, 이제 남은 것은 죽음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과연 ‘완치 못함’과 ‘죽음’이 등호를 이루는 것일까? 감기도 방치해서 악화되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악독한 질병이다. 그러나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증상의 정도다.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완치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 당뇨나, 고혈압 같은 질병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런 질환을 만성질환이라고 한다. 이들은 완치를 바랄 수 없는 질병이지만, 환자들은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면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계속 감기약을 먹으면서 아주 오랫동안 감기를 앓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만성질환의 치료 목적은 완치가 아니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없애고 합병증 없이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질병과의 평화로운 공존’이 목적이다. 완치되지 않는 암 역시 만성질환이 될 수 있다. 최근 의학기술의 발달은 실제로 암을 만성질환의 하나로 만들고 있다. 암과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만성 암’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그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것이 바로 ‘표적항암제’의 발전이다.
◆ 암세포만 쏘옥쏘옥 골라 공격하는 마법의 탄환?
표적항암제는 암세포를 죽이지는 못한다. 대신 암세포가 자라는데 필요한 요소를 억눌러서 암세포의 증식과 성장을 방해하는 약물이다. 때문에 암을 완전히 뿌리뽑기 어려운 환자라 할지라도 표적항암제를 통해 암의 진행을 늦추면서 생존기간을 늘릴 수 있다. 이론적으론 정상세포에 작용하는 독성이 없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부작용도 적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질 면에서도 기존 항암제보다 뛰어나다.
표적항암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항암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일반 항암제는 대체로 강한 독성을 띄고 있다. 독성으로 암세포를 공격, 파괴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른 정상세포도 다칠 수 밖에 없다. 항암치료 중에 일어나는 오심, 구토, 탈모 등의 부작용은 그 때문에 생긴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독성이 적은 항암제들이 다양하게 나왔지만, 독으로 암세포를 치료한다는 치료 원리는 동일하다.
표적항암제는 이와는 전혀 다른 개념에서 발전한 약품이다. 표적항암제의 개발자들은 암세포는 정상세포가 유전자 이상과정을 거쳐서 발생하게 된다는 점을 주목했다. 세포가 변하는 이상 과정과 관련된 표적인자가 만들어지는데, 이와 반응하는 물질을 투여해 암세포의 변화를 방해하는 것이다. 정상세포들은 거의 공격받지 않기 때문에 기존 항암제에 비해 부적용이 훨씬 적다. 이런 차이 때문에 의사들은 과거 항암제를 ‘세포독성항암제’라고 하고, 표적치료제를 ‘분자표적치료제’로 구분해서 부른다.
1980년 이후 눈부시게 발달한 유전공학 덕에 과학자들은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밝혀낼 수 있었다. 그때 과학자들은 암세포가 증식을 할 때 돌연변이 수용체나 혈관 내피 성장 촉진인자, 상피 세포 성장 인자 등과 같은 특정한 생체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과학자들은 이 생체물질에만 반응하는 성분을 몸 속에 투여하면, 정상세포를 다치지 않게 하고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바로 표적항암제이다. 암 생성 때 생기는 생체물질의 활동을 억제해서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 것이 표적항암제의 원리다. 이때 표적항암제의 목표가 되는 생체물질을 ‘표적인자’라고 한다.
표적항암제는 소분자 표적항암제와 단클론항체 표적항암제로 구분할 수 있다. 분자량이 작은 소분자 치료제는 먹어서 투약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항체 성분으로 구성된 단클론항체는 분자량이 크기 때문에 정맥주사를 통해서만 투약할 수 있다. 표적이 되는 생체물질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나뉘기도 한다. 암세포로 이어지는 신호전달경로를 억제하는가 혹은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신경혈관을 억제하느냐에 따라 ‘신호전달억제제’와 ‘신생혈관억제제’로 갈린다.
암세포는 매우 영악해서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 주변의 정상조직에서 영양분을 끌어다 쓰기 위해 미세한 혈관을 새로 만들어낸다. 많은 표적항암제들은 바로 이런 과정에 관여하는 생체물질을 찾아내서 억제한다. 암으로 가는 영양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암을 굶겨 죽이는 원리이다. 이런 표적항암제로는 ‘베바시주맙(상품명 : 아바스틴)’, ‘아플리버셉트(상품명 : 잘트랩)’ 등이 있다. 표적항암제가 미사일처럼 정조준해서 공격하는 대상은 신생혈관이 아니라 신호전달체계가 될 수도 있다. 암세포의 분열과 증가에 관여하는 신호전달체계의 이상징후를 포착해서 그 과정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 대표적인 표적항암제는 간암에 사용되는 ‘소라페닙(상품명 : 넥사바)’ 등이 있다.
◆ 미개척 신세계 표적항암제, 풀어야 할 과제 많아
표적항암치료제,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암세포만을 공격하는 항암치료제다. 우리 정상세포는 그냥 두고 나쁜 암세포만 쏙쏙 골라내 공격하다니, 이렇게 신통방통한 마법의 탄환이 또 있을까? 그러나 표적항암제가 암을 정복할 기적의 치료제쯤으로 인정받기엔 가야 할 길이 멀다
현재의 표적항암제는 몇 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는데, 먼저 표적인자의 역할에 따라 효과가 크게 차이 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표적항암제는 암이 생기는 과정 전체가 아니라 특정한 과정을 선택적으로만 방해한다. 표적항암제가 영향을 미치는 표적인자가 암세포 생성에 큰 역할을 하는 요소라면 효과가 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별 의미 없는 노력에 그치고 만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시험에 나오지 않을 부분만 죽어라 외우고 있는 격이다.
표적인자가 환자 열이면 열 모두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위험요소다. 같은 암을 앓고 있는 환자라고 하더라도 모두 표적인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표적인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표적항암제의 암치료 효과는 거의 없는 것이나 같다. 하지만 표적치료가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치료를 실시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비소세포폐암의 표적항암제인 ‘제피티닙(상품명 : 이레사)’의 해프닝이 그 대표적인 예다. 초기에 ‘제피티닙’은 모든 비소세포폐암에 효과를 보이는 일반항암제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일부 환자들에게만 효과를 보였을 뿐이다. 후에 ‘제피티닙’은 비소세포폐암의 수용성 돌연변이를 표적인자로 하는 표적항암제임이 밝혀졌다.
약물을 오랫동안 복용하는 것도 환자에겐 부담이 된다. 개발에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표적항암제는 대부분 가격이 매우 비싸다. 또한 복용 초기에는 좋은 효과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 암세포가 돌연변이라도 일으키면 이후의 치료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도 쉼없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표적인자를 찾고, 보다 다양한 표적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연구는 지금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내성이 생긴 기존 표적항암제를 대처할 2차 표적항암제는 물론, 여러 표적인자에 두루 작용할 수 있는 다중표적항암제 등도 연구 중이다.
표적치료법도 발전하고 있어서, 두 개 이상의 표적항암제를 함께 사용하거나, 일반항암제와 표적항암제를 함께 사용하는 등의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일례로 악성림프종은 일반항암제와 표적치료제인 ‘리툭시맙’을 함께 사용하는 것인 보편적 치료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표적치료제는 이제 일어나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단계이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표적인자들이 존재하고, 이미 개발된 표적치료제조차도 정확한 작용기전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상당수다. 그러나 표적항암제가 앞으로 암환자 치료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술과 기존치료로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암환자들에게 표적항암제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표적항암제를 통해 암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만성 암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가 모인다.
△ 작성: 서울아산병원 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