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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글 게시판

지나온 우리의 역사를......

작성자무지개1|작성시간21.02.06|조회수428 목록 댓글 4

지나온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회상 해 봅니다.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 1950. 8. 2. 금강철교...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 1950. 12. 18. 흥남에서 묵호(동해)로 후퇴한 후 수송선에서

내리는 병사들...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텅 빈 흥남부두...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

▲ 1950. 12. 26. 전차도 후퇴대열에. 흥남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고 있다.

▲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 시가지...

▲ 1951. 1. 5. 1.4 후퇴 피난민 행렬

▲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1951. 1.4. 한강 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

▲ 1951. 1. 4. 한강 임시 부교

▲ 1950. 12. 29. 양평 , 생포된 포로들...

▲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

▲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 모자

: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1951. 1. 5.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한국의 노무자들..

▲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 1950. 12. 1.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등록하려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1951. 1. 16.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교육을 받고 있다.

▲ 1951. 1. 4.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PRI(사격술 예비훈련)을

 받고 있다.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는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

▲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미군들이 생포된 포로의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17.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후 함포사격 포화에 무너지고

그을린 인천시가지..

▲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 1950. 8. 18.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고 있다.

▲ 1950. 8. 18. 포로수용소 전경.

▲ 1950. 8. 18. 포로수용소 천막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

▲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

▲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필자도 이런 곳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 1950. 8. 13. 잠깐의 휴식시간에 LMG(기관총) 병기 손질을 하고 있다.

▲ 1950. 8. 13. 박격포 사격 훈련

▲ 1950. 8. 15. 피난민 행렬

▲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

▲ 1950. 8. 24. 모정 무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

▲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 고단한 피난 행렬.

▲ 1950. 8. 18. 낙동강 전선에서 쌕쌕들이 폭격을 가하고 있다.

▲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

▲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 1950. 8. 1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

▲ 1950. 8. 22. 불을 뿜는 전함

▲ 쌕쌕이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

▲ 1951. 1. 2.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 1950. 8. 포항 부근의 한 마을이 포화에 불타고 있다.

▲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 1950. 9. 15. 인천 월미도로 상륙하는 함정들

▲ 1950. 9. 16. 인천에 상륙한 후 시가지를 활보하는 유엔군들

▲ 1950. 9. 16.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

▲ 1950. 9. 16. 월미도에 나뒹구는 시체


   ▲ 1950. 9. 15. 인천에서 생포한 북한군 포로들...


▲ 1950. 9. 17. 서울 진격 작전

▲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

▲ 1950. 9. 29. 미군 전차가 서울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

▲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또 다른 깃발을 흔들어야 했던 불쌍한 백성들...

▲ 1950. 10. 1. 서울 시청 일대

▲ 1950. 10. 1. 소공동 일대

▲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

▲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 1950. 10. 1. 반도호텔에서 바라본 을지로...

▲ 1950. 9. 30.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 1950. 9. 29. 유엔 깃발로 펄럭이는 중앙청 광장, 서울 탈환 환영대회가

끝난 직후 바로 옆 건물이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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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

▲ 1945. 9. 9.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 인파에 싸여 있다.

▲ 1945. 9. 9. 조선총독이 총독부 홀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 1945. 10. 12. 부산항 부두에서 일본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

미군들에게 철저하게 검색을 당하고 있다.

▲ 1946. 1. 16.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그때만 해도 요란한 철

조망은 없었다.

▲ 1948. 5. 8. 다가올 5. 10 총선거를 앞두고 경찰들이 선거 방해를 염려하여

죽창을 거둬들이고 있다.

▲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1948. 5. 10. 선거 방해 사범으로 체포된 5인,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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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여호수아갈랲 | 작성시간 21.02.06 1945.9.9.미군의 서울 입성 과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조선총독 사진을 위시하여 동년10/12 일본 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전 검색현장 사진을 비롯하여
    48.5.10.선거 투표 현장. 50.6.25.전쟁 발발후 각 지방의 폐허 현장 그리고 전쟁의 비참한 모습 들!!!!!..... 이루 말로 표현할수 없는 처참한 모습들 입니다.
    오늘 세대들은 상상 조차 할수 없는 당시를 생각 하면서 " 아 아 잊으랴 우리 어찌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 밟아 오던 날을..... 되 새겨 봅니다.
    귀한 史料들을 올려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들 그 때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조국의 앞날을 위해 正道로 行進하십시다.
  • 답댓글 작성자무지개1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2.06 지나온 우리의 歷史를 다시 한번 回想 해 보시라고 올려습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

    은 그 처참한 6.25을 상상나 하겠습니까 우리 나라는 장비가 빈약하여

    北韓의 軍事力 에는 비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합니다 더구나 예비군도 없이

    남침을 당한 것이지요 ........ 긴댓글 ........ 주셔서 ............ 고맙습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liuyingshi | 작성시간 21.02.06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 나지 않도록 국력을 키워야 합니다.
    동족을 학살한 무리들을 옹호하고 비호하는 세력들이 이곳에 남아 있다면
    그야말로 화약을 품에 안고사는 것과 같아 반드시 색출 제거해야 합니다.
    이곳에 공산주의의 싹을 복돋우는 무리들 좌시해서 안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무지개1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2.06 전쟁 고아를 만들고. 부모형제 와 이별 하고 고향을 잃어야만 했던 6.25전쟁.

    동족이 총부리 를 겨누며 남과 북으로 등 돌린 슬픔을 겪은 지 도 반세기가 훌쩍

    넘어 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참한 전쟁은 있서도 안됩니다. .긴댓글 .주셔서 .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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