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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장군

작성자대정밸리|작성시간16.05.10|조회수287 목록 댓글 1

최영은 철원사람이다. 생긴 모양이 무섭고, 힘이 사람에 지나치고,

마음이 굳고 곧고 참되고 맑아 나이 열 여섯에  그 아비 원직이 죽었는데

임종에 경계하여 "황금을 보기 돌같이 하라" 한 유언을 질 지켜

세간 살림을 일삼지 않았을므로  집이 보잘것 없고, 먹고 입는 것이 수수하고,

살진 말, 가벼운 옷으로 다니는 놈 보기를 개 돼지 같이 보고,

싸움에 나가 대적을 맞음에 정신과 낮빛이 까깍없으며,

화살과 돌이 좌 우에 어리되 조금도 두려워 하는 빚이 없으며,

군사가 한걸음 이라도 물러서면 다 베어 반드시 이기고야 말므로 몇백번 싸움에

가는 곳마다 이기고 한번도 진적이 없었다.


나라는 그를 힘입어 평안하고 백성은 그 은혜를 입었다.

오래 장수. 재상이 되어 군대의 권을 쥐나 뇌물 받는일이 없으므로

세상이 그 맑고 깨끗함에 감복 하였고,

대체를 붙잡기를 힘쓸 뿐이요.

자질 구레 한것을 찾지 않으므로 제  아래 군사도 얼굴을

아는 것이 몇십에 지나지 않았다.

매양 정부에 나가면 정색으로 바른 말을 하여  조금 도 감추지 아니하며,

좌우에 받아주는 이가 없으면 홀로 슬퍼할 따름 이었다.


일찍이 사람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나라일을 밤새도록 생각하여 밝은 아침에 동렬에게 말해본즉 여러 재상 중에

나와 말이 같이 하는 이는 하나 없으니  차라리 벼슬을 그만두고 한가로이 사는 것만 못하다"

한 일이 있다.

다만 성질이 우직하고 학문이 적고 수단이 없어 일을 결단함에 내 뜻대로만 하고

사람을 죽여 위엄을 세우는 일이 많았다.


죽을때 나이 73이라, 목 자르는 마당에도 낯빛이 변치않고  머리가 이미 땅에 떨어져도

오히려 꼿꼿이 버티고 서 있으리 만큼 정기에 사무친 사람이었다.

그 죽은날 소문이 퍼짐에, 온 서울 안이 저자를 걷고 슬퍼하며, 든는 사람은

길거리에 아이, 촌 아낙네까지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시체가 길가에 있으매 지나가는 사람도 말에서 내려

슳퍼하기를 마지 않았다.

죽은것은 최영이 아니라 한얼이 아닌가?


뜻으본 한국 역사 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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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landelon | 작성시간 16.05.11 잘 보고 감니다 감사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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