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자료★]사상이 불순한 영화 칼럼 "여덟" - Elephant

작성자해안선|작성시간05.09.02|조회수91 목록 댓글 0

사.상이

불.순한 영화

칼.럼 여덟

 

엘리펀트(Elephant,2003)

미국 / 2004.08.27 / 드라마,스릴러 / 81분

감독 : 거스 반 산트 

출연 : 알렉스 프로스트,에릭 두런 

 

 

# 나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세상의 진실... <엘리펀트>

 

 

1999년 4월 20일 어슼해진 저녁. 나는 미국 중부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유례 없는 규모의 총기난사사건에 관한 뉴스를 접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 머나먼 나라에서 일어난 7번째 비극...

하지만 어느 새 모든 비극들은 차디찬 현실의 충격을 넘어 조금씩 조금씩 무의미한 일상성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깐느영화제를 발칵 뒤집어 놓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롬바인(Bowling For Columbine)>이었다. 이 영화는 국제 다큐멘터리 협회에서 실시한 투표에서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선정되기도 하였는데 이 화제의 다큐가 담은 내용은 다름 아닌 미국의 유례 없는 총기 선호 문화에 대한 신랄한 해부학적 메시지(?)였다. 자타공인 딴지맨, 마이클 무어의 영화가 가져온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또다른 중대한 영화 한 편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 영화는 바로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역작 <엘리펀트(elephant)>.

 

콜롬바인 고등학교의 총기난사 사고에서 시작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총체적 문제를 꼬집은 <볼링 포 콜롬바인>과는 달리 이 영화는 아무런 비판도,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으려는 듯 보였고 그러한 냉담하기 짝이 없는 시선은 새로운 버젼의 <볼링 포 콜롬바인>을 기대했던 관객들과 평론가들로 하여금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2003년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과 황금종려상을 동시에 석권하면서 영화 인생의 내리막길을 자처하는 듯해 보였던 거스 반 산트 감독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또다시 내 팅구 영화와 조용히 마주해 본 나는 기억속에서 잊혀졌던, 그저 무의미한 일상속의 하루와도 같았던 머나먼 나라에서 일어난 참혹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슬픔과 죄책감으로부터 점점 무디어져 가는 병든 세상의 시린 산고와 함께...

 

 

하나,,, 엘리펀트,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초등학교 과정만 제대로 밟았다면 ‘엘리펀트'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쯤은 너무도 자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엘리펀트'는 말 그대로 ‘코끼리'이다. 너무도 단순한 제목이건만 이 영화만큼 그 제목에 많은 의미를 두어야 하는 영화도 참 드물 것이다.(영화는 내러티브로 형상화되는 극적 구조는 커녕 이렇다할 주제를 위한 상징적 배치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거스 반 산트는 그의 영화사상 최적의 타이틀을 찾은 셈이다. <엘리펀트>라는 제목은 영화의 내용과 더불어 다양한 의미를 파장시키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만이 진리라고 믿는다는 인도의 불교 설화 '코끼리와 장님'이야기에서처럼 개개인의 고정관념에 의해 가려진 세상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코끼리의 색이 짙은 회색임을 감안한다면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즉, 짙은 회색이 가져오는 우울함, 슬픔이 이 영화를 이끄는 기본적인 심상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양 사람들은 코끼리 색을 비 오는 날의 하늘색이라고 해서 우울함을 상징한다고 보며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푸른 하늘 위로 먹구름이 가득 몰려오는 이미지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거실의 코끼리'라는 서양의 우화에서의 가두워진 코끼리처럼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래서 무감각해져 버린 내부의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누군가 이러한 세 가지 의미 중에 어떤 것이 진짜 감독의 의도였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그 분은 내가 특별히 바보로 임명할지어다... ^-^; 그만큼 영화는 세 가지 의미를 충실히 포괄하고 있으며 잘만든 제목 하나가 너무도 담담한 나머지 죽어가던 영화에 싱싱한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둘,,, elephant in korea?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된 데에는 저명한 두 평론가의 설전이 큰 몫을 했다. 이른바 <전찬일 vs 정성일>!! 내가 존경해 마다하지 않는 이 두 평론가의 뜨거운 찬반 논쟁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그 내용을 접했고 나는 영화가 가진 스타일로부터 받은 충격 못지 않은 지적 충격을 경험해야 했다. 도대체 예술의 일종인 영화를 이분법적으로 옳다, 그르다 하고 두 갈래로 완전히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재기어린(그러나 여전히 건방쥔... --;) 질문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은 두 평론가의 논쟁의 중심에 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전찬일 씨는 이 영화에 대해서 미학적, 윤리적 측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과대평가 된 범작에 불과하므로 깐느영화제에서의 유례 없는 환대(제44회 깐느영화제에서의 <바톤핑크>이후 감독상과 황금종려상을 한 영화가 독식한 것은 처음!! 0.0;)는 불공정했었다는 다소 불만스런 입장을 표명했으며 그와 반대로 정성일 씨는 <엘리펀트>가 거스 반 산트의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해안선은 그러한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내가 발견한 것은 안타깝게도 평론이라는 것이 영화의 진정성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뼈아픈 교훈뿐이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지만 연기 경력이 없는(실제로는 몇 몇 배우들에 한해 연기경력이 있었음... 연기틱한 연기를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도 짐작할 수 있음... 아이러니 --;) 12명의 소년 소녀 캐릭터들을 감독의 모교 안에 자유롭게 풀어놓고 몇 자 되지도 않는 시나리오를 통해 즉흥적으로 뽑아낸, 일종의 시뮬레이션과도 같은 영화였다. 즉, 설정된 것이라고는 학교라는 한정된 장소와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각각의 캐릭터들이 해야 할 일들 그리고 비참한 결말뿐이었다.(실제 범행을 저지른 두 소년들 중 한 명의 이름은 배우의 이름과 일치한다!! 근데 머?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단서가 되었었던 여러 증거물들을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영화 속에 뿌려줌으로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면에서 전찬일 씨가 지적한 윤리적 문제는 합당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주요 캐릭터가 보여주는 대부분의 대화들과 행동들을 시뮬레이션화 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외부로 확장시키는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사건의 경위로 논란이 되었을 법한 동성애와 나치즘, 폭력적인 인터넷 게임과 집단 따돌림 같은 오해 요소들을 상당히 모호한 방식으로 흘리고 있다. 예를 들어 에릭이 극중에서 범행 직전에 "제일 중요한 건, 재미있게 즐겨야 한다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다양한 오해 요소들을 직접적인 사건의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넣지 않아도 될 법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삽입함으로써 영화를 다시 사건의 내부로 수축시키고 있는 아이러니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두 관객들 개개인의 다양한 판단을 이끌기 위한 감독의 의도였다면 컴플렉스 덩어리 미셸과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흑인 베니 그리고 기성 권위의 상징인 교장의 죽음이 이 영화에서 유난히도 두드러지는 것은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한 ‘트렌치 코트 마피아'라는 집단의 일원이었던 실제 범행 소년들이 ‘마릴린 맨슨’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고 하여 꽤나 논란이 되었었는데, 영화속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마릴린 맨슨’의 음악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우수꽝스럽게도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의 인더스트리얼 락이 침울하기 짝이 없는 ‘월광'과 ‘엘리제를 위하여'로 둔갑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를 분석해 나가다 보면 이 영화가 그 의도로 보나, 현실에 대한 관점으로보나 상당히 일관성 없고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된다.

 

반면 정성일씨가 지적한 이 영화의 미학적 성취와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영화의 ‘시네마 리얼리틱'은 충분히 인정해야 할 대목이다. 논란이 될 법한 부분이지만 영화는 1.33:1 의 화면비율(고전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던 화면비율, 이 영화가 원래 99년 TV방영을 목표로 기획되었었던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어떤 예술적 성취를 위한 방안이었다고 보기에도 좀 애매하다)을 사용하고 있어 거장다운 걸출한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이러한 화면 비율은 폴라로이드 사진의 크기 비율과 일치함으로써 영화중반까지 계속해서 등장하는 엘리어스의 카메라 촬영 및 인화 장면과 함께 카메라라는 인공적인 매체가 갖는 실재에 대한 불연속성을 계속해서 환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말 그대로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는 것이당~~ 헐)

 

게다가 영화의 독특한 색감과 부드러운 움직임은 가히 매혹적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데 푸르른 하늘의 변화를 말없이 지켜보는 카메라에서부터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엘리제를 위하여'에 감상적으로 빠져보는 미셸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잡은 장면, 존이 개와 장난을 치는 그 순간을 아름답게 묘사한 장면 그리고 처참했던 하루를 뒤로한 채 고요한 달님이 광기 어린 모습으로 어두운 밤하늘을 비집고 나오는 마지막 장면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시간의 반복과 시점의 변화를 통한 사건이전까지 무연하기만 했던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안타까움의 함축, 특정인에 대한 관심을 강조함으로써 시간 속에 널려진 주변에 대한 냉담한 무관심의 역설, 특정 장소에 대한 의미를 상기시켜주는 정지된 카메라(여자 화장실 장면) 등도 상당히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촬영기술은 또한 어떠한가? 마치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릿느릿하면서도 부드러운 핸드핼드와 뛰어난 시각적 이미지를 보여준 롱테이크, 최대한의 스펙터클을 배재하려는 듯한 과감한 프레임 아웃과 아웃 포커스, 카메라의 촛점을 훌륭하게 이용한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사이의 차가운 공간감의 표현 등은 특별하지는 않았더라도 충분히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기법들이었다.

 

이렇듯 이 영화는 단순히 걸작이다 혹은 졸작이다 하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을 만한 작품이 아니었다. 아니 이 세상 그 어떤 영화도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선 여전히 한 영화를 자기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애써 삼켜버리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 하다. 이것이 바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에헴~~

 

 

셋,,, 이 영화, 과연 모든 게 사실일까?

 

영화 <엘리펀트>는 참으로 아이러니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가 현실을 차갑고 냉담하게 그려내고는 있지만 결국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였다고 할 지라도 문제는 있다. 카메라와 인간의 손을 거친 모든 영상은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걸러진 현실을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갑자기 뜬금없게도 <블레어 윗치>에서 조슈아가 헤더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 “니가 왜 영화에 집착하는지 알겠다... 블라블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중방송을 접하며, 다큐멘터리를 보며 의심의 눈초리로 그 사실성을 분석해 보기보다는 “그래... 바로 지금 현실이 그렇군"하며 맞장구 치기 일수 인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가 너무도 가증스러운 것은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마치 자신(감독)은 사건의 진상 따위에는 전혀 관여하지 안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임으로서 감독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영화 속에서 시뮬레이션 된 모든 상황들은 실제 사건과는 별개의 것들이 대부분이며 몇 개의 설정들만이 실제 사건에서 따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감독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자명한 결론이 나온다. 이 영화가 일정한 환경만 심어주고 랜덤으로 변수를 찾아가는 기계적 시뮬레이션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해안선은 새로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참혹했던 실제 사건을 대하는 감독의 의무감이 고작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사건의 경위에 대해 외면하고 사건의 본질로부터 회피하면서 그저 담담하게 그 날을 기리는 척하는 것만으로 윤리적인 영화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사건의 경위에 대한 접근방식만이 중요한 문제가 되야 하는가? 컬록컬록... -0-"

 

이 영화는 물론 아름답고 조용하고도 충격적인 영화였다.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이전의 영화들... 즉, <볼링 포 콜롬바인>이나 <홈 룸>같은 영화들과 사건에 대한 그 접근방식을 비교했을 때 말이다!!) 소기의 영화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감독의 의도 또한 가상했다. 하지만 감독이 도대체 무슨 권리로 냉담한 현실에 탐탁치도 않은 의도로 카메라를 들여댔는지에 대해 의아해 질 쯤이면 고개가 설레설레 저어지는 것은 나만이 아닌 듯 하다. 현실을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할 것이였다면 애초에 현실을 예술의 장난감으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했을 것이니라...         

 

 

넷,,, 거스 반 산트... 믿어야 돼?

 

<굿 윌 헌팅>으로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거장 거스 반 산트. 독립영화와 헐리웃을 오가며 다양하고 좋은 작품들을 많이 양산해 냈지만 갈 수록 션~~ 찮아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엘리펀트>로 새롭게 부활한 그의 귀추가 새삼 주목되는 것은 영화를 넘 넘 따랑하는 안선이의 뿌리칠 수 없는 운명인 듯 하다.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약간은 실망스럽기도 했던 영화... <엘리펀트>

 

거스 히딩크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던 것처럼 거스 반 산트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를 않는 답니당... ᄏᄏᄏ

 

해안선의 다음 영화는 또 무엇일까? 숨가쁘고 잼나고 엽기적이기까지한 안선이의 영화 인생은 여전히 계속 됩니다...

 

기대하시라... 개벙 박두~~ 짝짝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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