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웃음은 고통을 치유하는 명약이다. 실제로 치명적인 병에 걸린 환자에게도 웃음치료는 매우 효과적이라는 임상결과도 있다. 정말 웃겨서 웃는 게 아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우리 몸은 긴장이 완화되면서 삶의 에너지를 활성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해내는 코미디는 인생의 동반자이다.
이 시대 최고의 코미디 영화인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끔찍한 고통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마법을 보여준다.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삶을 코믹하게 풀어가는 힘을 발휘하면 놀랍게도 인생은 즐길만한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된다. 영화에서는 아내와 아들에 대한 주인공 귀도의 사랑이 온갖 난관을 극복하는 묘약으로 작동한다.
배경은 유태인을 압살하며 나치와 파시즘이 지배하던 30년대 말 이탈리아. 숙부가 호텔을 하는 소도시로 온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책방 차릴 꿈에 부풀어 있다. 상경길부터 파시즘에 물든 분위기 속에서 귀도는 좌충우돌한다. 브레이크가 작동안해 파시즘 행렬과 부딪히는가 하면, 벌집을 태우던 아리따운 도라가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귀도를 덮친다. 난데없이 마굿간 위에서 추락해 자신을 덮친 도라에게 한눈에 반한 귀도는 도라를 공주님이라고 부르며 극진하게 대접한다. 이 정도는 이탈리아 남자들이 흔히 하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자. 그런데 이런 행복한 우연이 거듭 발생한다. 책방 허가를 얻으러 간 고위 공직자가 뻤뻣하게 굴자 귀도는 그에게 우연히 계란벼락을 씌워 자전가로 도망가다 넘어진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길을 가던 도라를 덮치게 된다. 여기까지는 우연이지만, 이런 우연의 반복은 귀도로 하여금 바 로 그 공직자와 약혼한 도라를 빼앗게 만든다. 도라와의 결혼에 이르기까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은 귀도의 의지로 연출된 코믹한 상황들이다. 이를테면 도라와 약혼자가 간 오펜바하 오페라에서 발코니에 앉은 도라를 바라보며 쇼펜하우어의 의지론으로 최면을 건다 (“의지가 있으면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의지론). 손가락을 격렬하게 움직이며 원하는 것을 반복하면 놀랍게도 원하는 기적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발코니에서 아래층 귀도를 바라보는 도라, 마침내 그녀는 약혼파티에서 웨이터를 하는 귀도를 따라 말을 타고 따라나서 그의 아내가 된다. 세속적 가치로 따지면 약혼자가 가진 게 많은 남자지만, 출세욕에 사로잡힌 그에 비해 귀도의 사랑은 순수하고, 귀도의 일거수 일투족은 재미있고 자상하기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다. 재미있고 배려깊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듯 우연과 필연이 겹친 우여곡절을 코믹하게 끌고가며 귀도는 도라와 결혼한다. 평소 꿈꾸던 책방도 열고 아들 조슈아가 태어나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그러나 인생에 좋은 일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태인 말살 정책은 더 강력해지고 아들 생일날, 딸의 결혼을 반대해 나타나지도 않던 외할머니도 나타나 행복한 생일잔치를 하려는 바로 그 날. 나치가 들이닥쳐 가족을 해체시킨다. 사적인 삶이란 것도 어차피 공적 환경에 지배되기 마련이다.
여기서부터 극적인 코믹성이 살아난다. 유태민족 말살정책에 휘말려 든 귀도는 아들과 함께 게토로 가는 기차를 타야만 한다. 유태인은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도라는 자청해서 이 기차를 타고 수용소로 간다. 인종말살 정책에 말려 게토로 끌려가지만, 귀도는 어린 아들에게는 살아갈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수용소를 생일기념파티로 위장한다. 평소 아들이 원하던 장난감 탱크를 진짜 탱크 선물로 받는 게임의 왕국으로 게토를 소개한다. 나치가 지배하는 수용소는 독일어가 공식어이기에 귀도는 아들에게 그들의 압박을 게임의 규칙으로 재밌게 설명한다. 울지 않기, 엄마 찾지 않기...점수를 따 탱크를 따내려면 침묵하기...같은 식으로.
유태인을 겁주려고 수용소 규칙을 명령하는 나치의 호령은 귀도의 통역을 통해 전쟁놀이 가이드로 변형된다. 이런 변형, 이런 오해는 부조화성으로 인해 웃음을 불러일으키며 권력에 대한 풍자효과를 거두며 의미작용을 발전시킨다. 죽음으로 가는 강제노역에 시달리면서도 아들 앞에서는 늘 환한 웃음으로 게임을 즐기는 태도를 보이는 귀도의 모습은 웃음의 미학 그 자체이다. 진정한 코미디의 힘은 비극을 속에 품고간다. 너무 참혹해서 너무 절망적이어서 웃음으로 치유하며 견디어 내는 유머의 힘이 영화에서 절절하게 증명된다. 이런 코믹성, 이런 유머는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다.
어떤 처절한 상황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라고 웃음으로 증명하는 베니니식 인생관/영화관은 칸 영화제에서부터 온갖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지구촌 인기를 모았다. 인생이 슬픈가? 가족애가 그리운가? 그렇다면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또 보며 웃음치유를 시도해 볼만 하다.
팁: 1999년 아카데미 수상식장은 로베르토 베니니를 찰리 채플린 이후 최고의 코미디 영화인으로 인준하는 자리였다. 상을 받게 된 베니니는 의자 위를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어린이 같은 천진함으로 아카데미식장의 분위기를 놀이터로 만들었다. 서툰 영어를 가장해서 “당신들 실수한 거다, 이미 아는 영어 단어를 다 써버렸다”, 라는 개그로 소감을 대신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터져 나오는 그의 유머는 모든 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웃음치료를 수행한다.
유지나 1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