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건 아마도 비위가 약해서이거나, 어거지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유치한 작태에 조금이라도 놀아나는 자신을 직면하는 기회를 주기 싫어서일 것이다.
공포영화광인 한 친구는 공포감 조장을 목적으로 한 영화에서 느끼는 긴장이 어느 순간 이완되는 순간의 쾌감때문에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 논리를 이해하지만 감성적으로 그래도 공포를 일부러 조장하는건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올 여름 공포영화들이 줄줄이 등장하니 좀 곤혹스러운데,,,그 와중에 <알 포인트>를 택한건 베트남전과 공수창의 생각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포장르를 표방한 이 영화가 그리 공포스럽지 않은게 흥행몰이에는 장애로 작용할진 몰라도 적어도 나같은 취향의 인간에겐 다행이다.
공포조장용으로 애쓴 대표적 기호는 무전기이다, 거미줄이 가득찬 무전기에서 밤만 되면 흘러나오는 죽은자들의 음습한 목소리는 피와 함께 흘러나온다. 여러번 반복되는 이 이미지가 사실 즉자적으로 가장 공포를 불러 일으킬만한 것인데, 과잉과 클리세로 작동해 에필로그에 나올때는 정말 별로이다.
물론 그밖에도 흰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소녀가 소대장(감우성)앞에 수시로 나타나는 환영장치나 다른 죽은 자들의 환상적 등장도 공포감이지만 이 영화는 거기게 패를 걸지 않는다. 그보다는 베트남전에 대해, 거기 참전한 병사들의 내면의 공포, 그 속에 조금씩 잠겨 스스로 망가져가는 한국군인들의 황폐함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거기에서 이 영화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감우성이 연기한 소대장역은 공포영화란 장르를 빙자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에서 비롯된 근원적 슬픔을 건드리는 허무주의적 반영웅이다. 가는데마다 피를 보는 전승/전과가 많은 소대장은 처음부터 길을 잃어버리는 죽음의 임무를 맡는다. 벽을 대상으로 야구공을 던지고 받는 공허한 취미를 가진 소대장은 '생또라이'로 소대원들에게 인식되지만 용병의 트라우마 그 자체를 담지한 부조리한 반영웅의 허망한 이미지를 온몸에서 뿜어낸다.
소대원들의 숫자조차 헷갈리는 걸 중간에 발견한 기이한 수색작업은 결국 눈먼 병사 하나의 목숨만 남기고 전 소대원 사망으로 끝이 난다.
도대체 미국의 달러와 군사정권의 언덕인 한미동맹을 명분으로 미국이 벌인 부정의한 야만적 전쟁에 참전한 우리는 누구인가? 왜 개인은 없고 동원된 기만적 (애)국민의 의미없는 죽음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에 미국의 요청으로 연이어 파병한 한국이란 나라,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이유로 동원된 한국남자들의 삶의 황폐화는 생각할수록 마음을 저며오게하는 슬픔을 준다.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같은 성찰적 베트남전 영화의 트라우마가 우리에겐 왜 안나타나는가,를 고민하던 중에 <하얀전쟁>이 건드린 트라우마는 <알포인트>로 이어진다.
트라우마란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치유가 가능하다면 <알포인트>는 공포영화다운 공포는 없어도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집단적 트라우마와 거기 내재한 슬픔을 보여주기에 의미있다.
공포영화광인 한 친구는 공포감 조장을 목적으로 한 영화에서 느끼는 긴장이 어느 순간 이완되는 순간의 쾌감때문에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 논리를 이해하지만 감성적으로 그래도 공포를 일부러 조장하는건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올 여름 공포영화들이 줄줄이 등장하니 좀 곤혹스러운데,,,그 와중에 <알 포인트>를 택한건 베트남전과 공수창의 생각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포장르를 표방한 이 영화가 그리 공포스럽지 않은게 흥행몰이에는 장애로 작용할진 몰라도 적어도 나같은 취향의 인간에겐 다행이다.
공포조장용으로 애쓴 대표적 기호는 무전기이다, 거미줄이 가득찬 무전기에서 밤만 되면 흘러나오는 죽은자들의 음습한 목소리는 피와 함께 흘러나온다. 여러번 반복되는 이 이미지가 사실 즉자적으로 가장 공포를 불러 일으킬만한 것인데, 과잉과 클리세로 작동해 에필로그에 나올때는 정말 별로이다.
물론 그밖에도 흰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소녀가 소대장(감우성)앞에 수시로 나타나는 환영장치나 다른 죽은 자들의 환상적 등장도 공포감이지만 이 영화는 거기게 패를 걸지 않는다. 그보다는 베트남전에 대해, 거기 참전한 병사들의 내면의 공포, 그 속에 조금씩 잠겨 스스로 망가져가는 한국군인들의 황폐함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거기에서 이 영화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감우성이 연기한 소대장역은 공포영화란 장르를 빙자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에서 비롯된 근원적 슬픔을 건드리는 허무주의적 반영웅이다. 가는데마다 피를 보는 전승/전과가 많은 소대장은 처음부터 길을 잃어버리는 죽음의 임무를 맡는다. 벽을 대상으로 야구공을 던지고 받는 공허한 취미를 가진 소대장은 '생또라이'로 소대원들에게 인식되지만 용병의 트라우마 그 자체를 담지한 부조리한 반영웅의 허망한 이미지를 온몸에서 뿜어낸다.
소대원들의 숫자조차 헷갈리는 걸 중간에 발견한 기이한 수색작업은 결국 눈먼 병사 하나의 목숨만 남기고 전 소대원 사망으로 끝이 난다.
도대체 미국의 달러와 군사정권의 언덕인 한미동맹을 명분으로 미국이 벌인 부정의한 야만적 전쟁에 참전한 우리는 누구인가? 왜 개인은 없고 동원된 기만적 (애)국민의 의미없는 죽음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에 미국의 요청으로 연이어 파병한 한국이란 나라,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이유로 동원된 한국남자들의 삶의 황폐화는 생각할수록 마음을 저며오게하는 슬픔을 준다.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같은 성찰적 베트남전 영화의 트라우마가 우리에겐 왜 안나타나는가,를 고민하던 중에 <하얀전쟁>이 건드린 트라우마는 <알포인트>로 이어진다.
트라우마란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치유가 가능하다면 <알포인트>는 공포영화다운 공포는 없어도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집단적 트라우마와 거기 내재한 슬픔을 보여주기에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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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보헤미안-H 작성시간 04.08.16 아직 그렇다할 공포영화 본 적 없지만,제가 공포영화를 좀 즐기거든요.지금 엄청 알포인트 기다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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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완암 작성시간 05.02.17 우린 조선시대 강제로 끌려간 시베리아 출병도 자랑스럽게 미화하지요 ..국외 출병은 어쩔수 없는 현실이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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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완암 작성시간 05.02.17 해외강제 출병은 고구려(한,이나 신나라의 요구)도 햇고 신라(당의 요구로 중국대륙에까지 동원됨:해신에 그게 나올것)도햇고 조선(명 과 청의 강권에 못이겨)도 고려(원)도했지요.그런데 유돌 박정희만가지고 부도덕하다고 매도하는것은 좀 무리라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