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년 실패한 영국 의회 폭파 음모 사건의 주동자 가이 포크스는 영국 역사상 매우 악명 높은 인물이다. 그의 음모가 성공했다면 국왕, 장관을 비롯해 영국 정부에 속한 대다수가 죽었을 것이다. 런던 지하에서 그가 체포되었던 11월 5일은 가아 포크스 데이라고 불리며 지금도 매년 영국에서 기념된다. 가톨릭 신자인 포크스는 다른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점점 엄격해지는 반가톨릭 법안에 저항하기 위해 공격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 음모가 발각되어 영국 가톨릭 신자들은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초기에는 가이 포크스 데이마다 모형으로 만든 교황을 불태우는 행사를 하는 등 반가톨릭을 노골적으로 기념하는 축제가 열렸다.
뉴욕에서 태어난 포크스는 열여섯 살에 가톨릭교로 개종한 후 프랑스와 네들란드 사이에서 발발한 종교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1593년에 유럽대륙으로 건너갔다. 네들란드에 있는 동안 그는 도피한 영국 가톨릭 신자들과 결탁하여 화약 음모 사건을 주도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통치 기간 내내 가톨릭 신자들은 괴롭힘을 당했고 성공회 예배에 참석하도록 강요받았다.
엘리자베스 1세의 후계자인 제임스 1세 국왕의 통치하에서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랐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그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종교 정책을 이어나가자 격노했다. 폭파를 계획한 로버트 케이츠비는 1604년에 포크스를 뽑아 음모로 주도하게 했다. 음모자들은 의회가 모이는 건물의 옆집을 빌려 비밀리에 화약통을 지하로 옮기기 시작했다. 정부 고위층이 모두 참석하는 의회의 개회식이 진행되는 동안 폭파를 감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음모 가담자 가운데 한 명이 같은 가톨릭 신자였던 몬티글 경에게 개회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발각되었다. 그가 정부에 제보하면서 당국은 그다음 주에 포크스를 체포했다. 다른 음모 가담들과 함께 그는 하루 동안의 재판을 거친 후 처형되었다.
* 포크스가 체포된 후 화약통을 시험해본 결과, 썩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고 해도 아마 폭파하지 않았을 것이다.
* 화약 음모 사건의 여파로 의회는 영국 가톨릭 신자들이 변호사나 장교가 되거나 투표하는 것을 막는 여러 차례 법안을 통과시켰다. 가톨릭 신자들의 투표권은 1829년까지 복원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