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08일. 렘브란트 (예술가)

작성자껄떡쇠1|작성시간26.06.08|조회수15 목록 댓글 0

대개 성을 빼고 이름으로만 불리는 램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은 네들란드의 도시 라이텐에서 태어나 폭넓은 라틴 교육을 받았다. 그는 10대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콘스탄티너 하위헌스라는 네들란드 시인이자 외교관을 만나 1629년부터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램브란트는 암스테르담으로 거점을 옮겨 작업실을 열었고, 1634년에 사스키아 판 아윌렌뷔르흐와 결혼했다.

주로 구약성서의 종교적 테마를 가지고 있는 램브란트의 초기 작품은 강렬한 빛의 사용과 이국적인 디테일 그리고 생생한 행동감으로 유명했다. 유명한 초기 캔버스 작품 중 하나인 <실명을 당한 삼손>(16336년)은 블레셋족 병사들이 뜨거운 부지깽이로 이 성경 속 인물의 눈을 찌르려는 순간에 어두운 텐트 속으로 빛줄기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1640년에 이르러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가 된 렘브란트는 상인, 군인 그리고 네들란드 왕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는 1642년 아내 사스키아의 죽음을 시작으로 1640년대에 연이은 개인적, 재정적 좌절을 맛보았다. 네들란드 경제가 붕괴되면서 그의 많은 고객이 파산했는데, 유행에서 뒤쳐지고 경제 관념이 없었던 렘브란트는 커다란 빚더미에 앉아 거의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1656년 네들란드 법원은 그의 그림을 몰수해 경매에 붙임으로써 채권자들의 빚을 갚게 했다. 1650년 이후 램브란트의 그림은 좀 더 차분해졌고, 대상의 감정적 깊이를 포착하는 데 더욱 집중했다. 그의 감동적인 1665년도 작품 <돌아온 탕자>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던 밝은 빛과 정확한 디테일을 배제하는 대신, 아버지와 오랜 기간 집을 나가 있었던 아들이 재회하는 감동적이고도 침울한 순간을 포착했다.

   렘브란트는 금전적인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암스데르담에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큰 빚을 진 렘브란트는 아내가 묻힌 묘지 자리를 팔기 위해 1662년에 아내의 시신을 파냈다.

* 1975년에 두 명의 도둑이 보스턴의 한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금장식이 달린 망토를 입은 소녀의 초상>를 훔쳤다. 당시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미술품 도난 사건이었다. 이 그림은 1년 후에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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