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싸운 것도 , 독립선언문에 서명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메사추세츠주 주부였던 머시 오티스 워런은 애국적 대의를 지지하기 위해 식민지 신문에 익명으로 실었던 그녀의 에세이, 시 , 연극으로 인해 '미국 독립의 양심'이자 창시자로 불린다. 독립에 대한 워런의 큰 열정을 높이 산 미국의 두 번째 대통령이자 친구인 존 애덤스는 그녀에게 독립혁명의 역사를 집필할 것을 제안했다. 1805년에 완성된 세 권의 책 <미국 독립혁명의 시작, 과정 그리고 종결의 역사>는 최초로 출간된 전쟁 연대기 가운데 하나이다.
워런은 여성에게 주어진 교육의 기회가 대단히 제한적이었던 시절에 케이프코드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집에서 글을 배웠고 1754년에 메사추세츠주 플리머스 변호사이자 먼 친척인 제임스 워런과 결혼했다. 그들은 1757년과 1766년 사이에 다섯 자녀를 낳았다. 1760년대 다른 여러 매사추세츠 주민처럼 워런 부부도 식민지에 연이어 부과된 세금으로 인해 열렬한 영국 비판자가 되었다. 1770년에는 '자유의 아들'과 '통신연락위원회'라는 두 지하애국단체가 워런 부부의 플리머스 자택 거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영국에 대한 풍자를 은근하게 표현한 그녀의 희곡들이 뉴욕과 필라델피아에 유포되었고, 존 애덤스 대통령에 따르면 이는 대의에 대한 지지를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머시 오티스 워런은 본명을 사용해 시집을 출간했고 존 애덤스 대통련이 집필을 권한 역사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이 막상 출간되자 존 애덤스 대통령은 오랜 친구였던 자신이 호의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그녀와의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1812년 존 애덤스와 화해한 워런은 그로부터 2년 후 86세의 나이로 플리머스에서 사망했다.
* 워런은 다섯 편의 희곡을 저술했다. 청교도적 법률로 인해 매사추세츠주의 모든 극장이 금지된 상황이었던 당시를 고려하면 이는 특히 인상적인 업적이라 할 수 있다. 희곡은 상연이 아니라 그저 읽히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 머시 오티스 워런과 그녀의 남편은 모두 메이플라워호 승객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