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바뤼흐 스피노자 (철학자)

작성자껄떡쇠1|작성시간26.06.12|조회수10 목록 댓글 0

1656년 7월 27일, 네들란드 암스테르담의 작은 유대인 공동체가 한 이단자를 추방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바뤼흐 스피노자라는 이름의 이 스물네 살 피고인은 명시되지 않은 '가공할 행동'을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윽고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떠나야만 했다. 대다수의 네들란드 기독교인에게 원한을 사기도 한 저서의 저자인 스피노자는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동시대인에게 가장 많이 증오를 산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철학과 윤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고귀한 인간의 선이라는 그의 믿음에 뿌리를 두었다.

   포르투갈의 종교재판을 피해 암스레담으로 이주한 세파르디 유대인 가문에 태어난 스피노자는  도시의 탈무드 토라 학교에서 일반적인 유대교 교육을 받았다. 그가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없지만, 랍비들은 스피노자를 추방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유대인들이 이 젊은 이단자와 어떤 이유로든 연락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내용을 칙령에 포함시킬 정도로 격노했다. 도시를 떠난 스피노자는 헤이그에 정책해 렌즈 제작사로 일하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의 저서 <에티카>의 집필에 매진했다. 이책은 그가 독성 유릿가루를 흡입해 폐 감염으로 44세의 나이에 사망한 후 출간되었다.

   종교와 철학에 관한 그의 관점을 집대성한 <에티카>는 유대인 공동체가 스피노자를 비난한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그는 인류의 문제에 신성하게 개입하여 다스리는 세상의 창조자, 하느님에 대한 전통적 유대교, 기독교 개념을 거부했다. 대신 스피노자는 하느님을 자연과 논리의 비인격적인 힘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우주가 하느님의 섭리가 아닌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썼다. 그는 논리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었다.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하느님의 이해를 구하고 자신에게 운명을 바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의 생전에, 그리고 그 후로도 1세기 동안 외면당했지만 스피노자의 믿음은 계몽주의 시대의 근간을 형성하였다.

 

* 그를 추방하기 전에 유대인 공동체는 스피노자에게 이단적 관점을 드러내지 않는 대가로 연간 1000플로린스(당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를 주겠다고 제시했다. 스피노자는 내쫓기기 전에 암살당할 뻔하기도 했다.

* 그를 추방하면서 랍비들은 네들란드 유대인들이 스피노자와 일을 하거나, 그의 책을 읽거나, 심지어 물리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 스피노자는 바뤼흐의 라틴어식 이름인 베네딕트(Benedict)라고도 알려져 있다. 두단어 모두 '축복받은'이라는 의미다. 그는 포르투갈식 이름으로 벤토(Bento)라고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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