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하비는 서양 세계에서 신체의 순환계에 대해 완전한 설명을 제시한 최초의 의사이다. 그의 발견과 이를 입증하기 위한 동물 실험은 의사라는 직업과 생물학자들의 연구 방식을 영원히 바꾸어놓았다.
하비는 켄트주 포크스텐에서 아홉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운반 업체를 소유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포크스텐의 시장이기도 해서 그의 가족은 그를 케임브리지대학교에 보낼 정도로 부유했다. 그는 1593년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입학해 스무 살에 졸업 후 이탈리아에 있는 파도바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하비는 1604년에 엘리자베스 브라운 결혼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렌슬롯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제임스 1세 국왕의 개인 주치의였는데, 이 연줄이 윌리엄 하비에게 이롭게 작용했다. 그는 결국 궁정 의사로 임명되어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 국왕의 내과 의사로 일했다.
국왕의 지지로 하비는 1620년에 연이은 실험에 착수하면서 신체를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사슴과 다른 동물들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의학 이론은 여전히 갈레노스의 저서를 근거로 삼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수 세기 전 폐순환계를 발견한 아랍 의사 이븐 알 나피스와 마찬가지로 하비도 결국 갈레노스의 이론이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 결과 1628년 하비는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를 출간했다. 비록 영국 내전에서 왕당파가 패하면서 궁정 의사로서의 직업은 잃었지만, 그는 임신이라는 '숨겨진 일'로 눈을 돌려 의학 실험을 계속해나갔다. 그의 <동물의 발생에 대한 에세이>(1651년)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동물이 생겨난다는 가설을 세운 최초의 책이다. 현미경으로 이 이론이 증명된 것은 그로부터 수백 년 후 였다.
1651년 왕당파가 몰락한 후, 하비는 음독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났다. 그로부터 6년 후 그는 79세에 뇌졸증으로 사망했다.
* 윌리엄 하비의 고향인 포크스톤은 후에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터널의 서쪽 출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 국왕의 개인 내과의였던 윌리엄 하비는 영국 내전 중 최초의 주요 전투였던, 1642년도 에지힐 전투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했다.
* 합비 가족의 문장에는 "더 많이 노력할수록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라는 모토가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