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롤리 경은 영국의 시인이자 탐험가, 군인으로 반역죄로 불명예 퇴진한 후 처형당한 인물이다. 그는 허락없이 스페인을 공격한 혐의로 제임스 1세 국왕의 명에 따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롤리의 가장 비도덕적인 유산은 그가 아메리카에서 들여와 영국에 보급한 이국적인 새 습관, 즉 흡연이었을 것이다.
롤리는 영국 서부의 열렬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일랜드와 프랑스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에서 싸우면서 가톨릭교와 스페인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갖게 되었다.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거대한 사유지와 무역 독점권, 주석 광산을 수여했고, 1585년에는 기사 작위까지 내렸다. 1584년부터 롤리는 신세계에 영국의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주요 활동에 돌입했다. 그가 후원한 원정이 1587년, 오늘날의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로어노크에 식민지를 건설했지만 몇년 만에 사라져버렸다. 롤리는 또한 버지니아주에 예정된 식민지에 여왕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롤리가 담배를 발견하고 영국의 주요 담배 수입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식민지 사업체들 덕분이었다. 롤리는 16세기 말 절정에 달했던 스페인 권력에 대적할 방법으로 영국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화를 꿈꿨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신교도 국가인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통치 기간 내내 간헉적으로 싸웠는데 이 전쟁은 1588년 스페인 함대의 패배로 끝이 났다.
여왕이 사망할 무렵 롤리는 여왕의 시녀 중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스록모턴과 추문에 휩싸인 결혼과 사치로 이미 인기를 잃고 있었다. 스페인에 조금 더 유화적인 정책을 선호했던 엘리자베스의 후계자 제임스 국왕은 1603년 롤리를 반역죄로 체포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제임스 국왕이 감형해주는 바람에 런던 타워에 수감되어었고 그곳에서 <세계의 역사>를 저술했다. 1616년에 풀려난 폴리는 또 다른 원정대를 이끌었는데 원정길에서 스페인 전초기지를 허락도 없이 공격했다. 그가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스페인 대사는 국왕에게 그의 사형선고를 되돌려달라고 요청했다. 스페인을 달래기 위한 표시로 롤리는 1618년 10월 29일 처형되었다.
* 제임스 1세 국왕은 롤리만이 아니라 흡연도 싫어했다. 담배업계가 흡연과 폐암과의 관계를 인정하기 380년 전이었던 1604년에 왕은 흡연을 "눈에 혐오스럽고, 코에 불쾌하며, 뇌에 해를 끼치고, 폐에 위험할 뿐아니라, 그 검고 악취가 나는 연기는 바닥이 없는 구멍에서 나오는 끔찍하고 새까만 연기와 가장 많이 닮았다"라고 일컬었다.
*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롤리는 이 탐험가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