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크리스토퍼 렌은 1666년 발생한 대화재 사건 이후 런던을 재건한 건축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크리스토퍼 렌은 세인트 폴 대성당을 비롯해 수십 개의 교회와 건물을 설계했으며 화재로 소실된 도시 건축의 부활을 거의 혼자서 담당했다. 이에 걸맞게 런던에 있는 크리스토퍼 렌의 무덤에는 이와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독자여,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찿고 있다면, 주변을 돌아보라."
크리스토퍼 렌은 옥스포드대학교를 다녔고 1661년는 천문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대학교 극장을 설계하는 등 건축에도 손을 댔지만 , 그렇다고 교수직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그가 건축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대화재 사건이 발생한 몇 년 후부터였다. 1666년 9월 2일부터 9월 5일까지 계속된 런던 대화재 사건은 도시 역사상 가장 큰 화재 사건이었다. 한 빵집에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건물이 밀집된 중세 도시의 중심지로 번져나갔다. 화재가 진압되었을 때는 도시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건물 수십만 채가 소실된 후였다. 크리스토퍼 렌은 그 며칠 후 런던에 도착했고, 즉시 재건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도시의 재건을 관장하는 왕립위원회에 임명되었고, 그 후 50년 동안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건축가로 자리했다.
유럽 바로크 양식을 공부한 크리스토퍼 렌은 독특한 디자인을 설계했고,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서 전통적인 영국 디자인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의회는 그의 세인트 폴 대성당 청사진을 여러 차례 수정했고, 언젠가 한번은 그에게 성당 건축을 더욱 빨리 끝내라고 재촉하며 대금 지불을 보류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대성당은 런던의 주요 랜드마크가 되었고,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건물과 파리의 판테온에 영감을 주었다. 크리스토퍼 렌은 7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성당에 대한 모든 대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그로부터 11년 후에 사망했다.
* 크리스토퍼 렌은 1662년에 현존하는 과학자와 학자 단체인 로열소사이어티를 공동 창설했다.
* 1675년에는 그리니치에 있는 왕립 천문대 설계를 위한 주문을 따냈다. 국제협약에 따라 이 천문대가 경도 0도의 본초자오선으로 지정되었다.
* 재건 활동에 대한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크리스토퍼 렌은 1673년 찰스 2세 국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