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대항해 방란을 일으킨 페루 원주민의 지도자 투팍 아마루 2세는 식민지 정부와의 짧고 무자비한 전쟁에 수천 명의 인디언을 집결시킨 사람이다. 1780년에 몇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한 투팍 아마루 2세는 그다음 해에 스페인 당국에 체포되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의 저항은 남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을 일으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인정받고 있다. 또한 그는 사망 이래로 미국 원주민이 사이에서 자존심의 원천 되었고, 페루에서는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투팍 아마루 2세에게는 원래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라는 본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증조할아버지인 투팍 아마루를 기려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투팍 아마루는 잉카의 마지막 독립 국왕으로, 스페인에 대항해 반란을 이끌다 1572년에 사형을 당했다. 고대 잉카의 수도인 쿠스코에서 자란 투팍 아마루 2세는 비교적 특혜를 누리며 살았다. 잉카족과 연관된 계보로 인해 스페인 식민지 정부는 그에게 후작의 지위를 부여했고, 흔치 않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해주었다. 그는 페루 인구의 대다수를 구성하면서도 거의 노예 같은 삶을 살고 있던 페루 원주민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했다.
1780년, 그는 보잘것없는 무기를 소지한 8만 명의 인디언으로 반란군을 조직했고, 수백 명의 스페인 식민지 관리를 처형하며 오늘날의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에 해당하는 고원 지대를 신속하게 장악해나갔다. 6개월 후, 스페인 측에 붙은 투팍 아마루의 두 사령관에게 도움을 받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스페인 군대가 도착했고 스페인 식민지 정부는 반란군 지도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 그는 쿠스코 광장으로 끌려갔고 2세기 전 그의 조상들이 참수된 곳에서 사지가 찢겨 죽었다. 그러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희망은 살아남았고, 40년 후 페루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 미국 래퍼 투팍 아마루 샤커의 어머니는 이 페루 혁명가의 이름을 따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 1960년대 ~ 1980년대에 우루과이에서 활동하던 반란 단체 투파마로스는 투팍 아마루 이름에서 따왔다.
* 투팍이라는 단어는 잉카제국의 언어인 케추아어로 '귀족'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오늘날 대부분의 페루와 볼리비아의 안데스 고원에 사는 약 1000만 명이 케추아어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