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장 칼뱅 (선지자)

작성자껄떡쇠1|작성시간26.06.17|조회수8 목록 댓글 0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에서 태어난 신학자 잔 칼뱅은 1520년대로부터 1530년년대에 기톨릭교로부터 극적인 독립을 이룬, 종교개혁의 주요 사상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결국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에 제네바로 도망쳤고, 그곳 신교도 공동체의 지도자이자 막강한 정치적 인물로 거듭났다. 그의 가르침에 영감을 받은 신교도 사상인 칼뱅주의는 유럽과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이 되었다.

    칼뱅은 파리에서 북쪽으로 100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누아용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누아용 대성당의 관리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네 살이었을 때 파리로 보내 수사학, 논리학. 문법을 배우도록 했다. 1528년이 되자 마르틴 루터에 의해 독일에서 촉발된 종교개혁이 은밀히 프랑스까지 퍼지기 시작했고,  칼뱅의 몇몇 대학교 친구들도 개혁 운동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친구들로 인해 의심을 받은 칼뱅은 1533년에 어쩔 수 없이 파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칼뱅은 1536년까지도 가톨릭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았다.

   도피 생활을 하던 중에 칼뱅은 자신의 개혁적인 종교적 믿음을 요약한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마르틴 루터에 동조하면서 칼뱅은 몇 가지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예컨대, 칼뱅주의는 하느님이 천당에 갈 사람을 미리 정해놓았다는 운명예정설의 교리를 수용하는 반면, 루터교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칼뱅은 1541년에 대규모 신교도 공동체가 교전 중인 제네바로 초대받았다. 도시 안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 그는 교회사법위원회라는 엄격한 교회 법정을 세워 춤이나 가정폭력 같은 당시 도덕적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권을 부여했다.그의 감독하에서 제네바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하고 마녀로 지목된 수십 명을 처형했으며, 이단자 미카엘 세르베투스를 화형에 처했다. 말년에  수십 년간 통풍으로 고생하던 칼뱅은 54세에 제네바에서 사망했다. 그의 가르침은 장로교, 독일 복음주의 개혁교, 영국 청교도등 많은 단체에 수용되었다.

 

* 존 캘빈은 라틴어 이름인 욘니스 칼비누스의 영어식 이름이다. 프랑스에서 그의 이름은 장 꼬뱅 (jean cauvin)이었다.

* 칼뱅의 첫 번째 저서는 스페인 철학자 세네카의 <관용론>에 대한 설명서로 1532년 파리에서 출간되었다.

* 캘빈은 빌 워터슨의<캘빈과 홉스>라는 만화에 등장하는 여섯 살짜리 꼬마의 이름이기도 하다. 캘빈의 호랑이 인형인 홉스는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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