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찰스 2세 (리더)

작성자껄떡쇠1|작성시간26.06.18|조회수14 목록 댓글 0

즐거운 군주라는 별명을 가진 찰스 2세는  그의 요란한 생활방식과 재치 그리고 영국 역사에서의 중추적인 역활로 알려졌다. 그는 왕정이 복원된 후 1661년 에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폭력과 소동이 난무하던 영국 내전 이후 나라를 다시 안정적으로 되돌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찰스 2세는 찰스 1세 국왕과 앙리에타 마리아 왕비의 맏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 그는 영국 내전에서 올리버 크롬웰에 대항하여 왕당파 측에서 싸웠으며, 왕당파가 패하고 그의 아버지가 처형되면서 프랑스로 추방되었다. 1650년, 그는 정권을 되찿겠다는 희망을 품고 스코틀랜드로 항해했다. 그다음 해 크롬웰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 잡히지 않기 위해 오크나무 안에 숨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고, 그후 10년 동안은 대부분 프랑스에 살았다.

   크롬웰이 죽고 난 후 영국은 2년 동안 격동에 휘말렸고, 결국 정치적 혼란에 지친 의회가 다시 찰스 2세를 불러들여 왕위에 앉혔다. 그의 30세 생일이기도 했던 1960년 5월 29일, 득의양양한 그의 런던 입성은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된 개혁의 시작을 알렸다. 대내적으로 찰스 2세는 아버지의 적들을 대부분 용서했다. 또한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도 온건한 입장을 취하며 가톨릭교에 대한 가혹한 조치에 반대했다. 크롬웰의 통치 기간 중 통과된 엄격한 청교도 법률이 찰스 2세 집권하에 느슨해져서 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고, 메이폴 댄스(Maypole dance, 봄에 씨앗을 뿌린 뒤 풍작을 비는 행사)와 같은 오랜 관습도 다시 등장했다.

   찰스 2세는 포르투갈 왕녀와 결혼했으면서도 다양한 여성들 사이에서 10여 명의 사생아를 낳았으나 적통 계승자는 없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동생인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제임스를 많은 신교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명예혁명에 의해 폐위되기 전까지 불과 3년 동안만 영국을 통치했다. 그 후로 의회는 영국 왕위에서 가톨릭 신자를 제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안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 왕족의 관습상 포르투갈은 카타리나 드 브라간사 왕녀와 결혼하는 대가로 찰스 2세에게 지참금을 주어야 했다. 그는 봄베이를 받았는데, 이 도시는 대영제국의 주요 인도 전초기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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