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영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인 앤 콘웨이는 존경받는 철학자이자 지성인이었다. 그녀의 업적으로는 사후에 출간된 저서 <고대와 현대 철학 원리>(1690년)와 규정을 어기고 남몰래 그녀를 가르쳤던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에게 보낸 수백 통의 편지가 있다.
앤 콘웨이는 부유한 런던 가정에서 앤 피치(Anne Finch)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켄싱턴 궁전에서 자랐다. 그녀의 이복오빠이자 케임브리지대학교 학생이었던 존 핀치가 그녀를 철학 교수인 헨리 모어에게 소개해주었다. 앤의 지적 능력에 감탄한 모어 교수는 그녀에게 철학을 가르쳐주기로 했지만 당시 케임브리지대학교에는 여자가 입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업은 편지로 이루어졌다.
17세기 영국 여성이 지식 사회에 들어가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앤에게는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는데, 가족의 연줄과 재산뿐 아니라 남편인 콘웨이 에드워드 자작의 지위도 한몫했다. (열아홉 살에 귀족과의 결혼으로 앤은 공식적으로 레이디 앤 콘웨이(Lady Anne Conway)가 되었다.)
이 부부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지만 아기 때 천연두로 사망했다. 그 후로 평생 앤 콘웨이는 고질적인 두통을 앓았고, 이는 점점 더 심해져다. 그녀는 말년에 유대교 신비주의의 한 형태인 카발라(Kabbalh)와 퀘이커파의 교리에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지 직전, 1679년에 퀘이커교로 개종했다. 사후에 출간된 앤 콘웨이의 철학서에는 토마스 홉스, 르네 데카르트를 비롯해 많은 주요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이는 후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그중에는 독일 철학자인 고드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도 있다.
* 앤 콘웨이의 아버지 헤니지 핀치 경은 하원의 대변인이었다. 그는 앤이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사망했다.
* 1656년, 앤 콘웨이는 실험적인 두통 치료법을 치료받기 위해 프랑스로 여행했다. 천두술(trapanation)이라고 불린 이 치료법은 통증 완화를 위해 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 치료법은 효과가 없었다.
* 앤 콘웨이는 순환계발견으로 유명한 의사 윌리엄 하비의 치료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