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피에르 드 페르마 (혁신가)

작성자껄떡쇠1|작성시간26.06.20|조회수11 목록 댓글 0

피에르 드 페르마는 저명한 프랑스 변호사이자 정치가, 수학자로 현대 미분학적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Last Theorem)'라는, 간단해 보이면서도 수학의 대가들을 겸손하게 만들었던 수학문제로 가장 잘 가억될 것이다.

   페르마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인 보몽드로마뉴에서 태어났다. 보르도대학교와 오를레안대학교에서 수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1631년에 법학 학위를 취득한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지방 정부에서 일했으며 수학을 취미로 삼았다. 부유하고 박식한 페르마는 블레즈 파스칼과 협력하여 최초의 확률 이론을 개발하는 등 다른 주요 프랑스 사상가들과 교류했다. 그러나 일부 수학 연구는 격변의 시대라는 정황 속에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페르마는 프랑스의 내전인 프롱드의 난을 겪었을 뿐 아니라 1653년에 프랑스를 휩쓴 흑사병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1637년경에 쓰였지만 페르마가 사망한 뒤에야 발견된 수수께끼 같은 메모에서 유래했다. 페르마는 그리스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책 가장자리에 다음과 같은 문제를 휘갈겨놓았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진정으로 놀라운 해법을 가지고 있지만 이 가장자리에 담기에는 공간이 너무 비좁다."  페르마가 해결했다고 주장 한 그문제는 그 후로 350년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혔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Xn + Yn = Zn의 공식에서 X, Y, Z가 0이 아닌 정수이고 n이 3이상의 자연수라면 참이 아니라고 정의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사황에 대해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었다. 이문제로 8년 동안 다락방에서 씨름하던 앤드루 와일스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1994년에 마침내 페르마의 말이 실제로 옳았음을 증명했다.

 

* 페르마가 마지막 정리를 실제로 증명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수학자가 당시 페르마가 가진 수단으로는 이 문제를 증명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책의 가장자리에 손으로 쓰인 그 메모를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했다.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특히 공상과학 소설 등 대중문화에서 주축을 이루었다.예컨대 <심슨네 가족들>은 몇 가지 상황에서 이 정리를 패러디했는데, 핼러원 에피소드에서는 이 이론이 틀렸단는 것을 입증하는 듯한 공식이 나오기도 했다.

* 페르마의 본명은 피에르 페르마지만, 정부에 들어간 후 더욱 귀족적으로 들리는 피에르 드 페르마로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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