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예술가)

작성자껄떡쇠1|작성시간26.06.22|조회수14 목록 댓글 0

저명한 오르간 연주자 겸 작곡가인 요한 제바스타안 바흐는 독일 바로크 시대의 중심적인 인물이다. 그는 수백 곡의 오르간 곡과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했는데,  각기 다른 두 멜로디라인이 함께 연주되는 대위법 음악 시술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당대에는 그의 복잡한 편곡이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비롯해 여러 클래식 작곡가에게는 큰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독일 아이제나흐의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난 바흐는 어린 시절부터 오르간, 바이올린, 하프시코드 교습을 받았다. 바흐는 아홉 살 때 부모님을 여의면서 주로 형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에 의해 길러졌다. 마찬가지로 오르간 연주자였던 형은 어린 동생에게 자신의 전문지식과 전문가들을 소개해주었다. 바흐는 바이마르의 궁정 오르간 연주자로 자리 잡았고 그 시기에 만들어진 그의 유명한 푸가 중 다수를 <마음씨 좋은 클라비에>라는 모음집으로 엮었다. 그는 또한 이 시기에 결혼식에서 자주 연주되는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작곡했다. 독일 귀족을 위해 1721년에 작곡한 <브란덴브르크 협주곡>은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바흐는 1723년에 라이프치히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어 도시의 루터교 교회에 작품을 제공하는 일을 관장했다.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맡은 공직이었다. 그는 악화되는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받은 수술이 잘못되면서 65세에 라이프치히에서 사망했다.

 

* 바흐에게는 스무 명의 자녀와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 안나 막달레나 빌케라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다. 유아기를 지나서까지 살아남은 아이는 그중 열 명에 불과했다.

* 바흐의 초상화 가운데 단 하나만이 그의 생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진위 여부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1894년 그의 흉상을 제작하기 위해 그의 유골이 발굴되었다. 2008년에는 포렌식 인류학자가 같은 유골을 사용해 컴퓨터로 바흐의 모델을 생성했는데, 짧고 흰 머리카락에 비교적 육중한 체구를 하고 있었다.

* 바흐 작품 대부분은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 연주용으로 작곡되었다. 본래 피아노포르테라고 불리던 피아노는 18세기 초에 발명되었다. 바흐는 1730년대에 처음으로 피아노를 소개받았는데, 그 소리를 탐탁해하지 않았고 따라서 피아노 연주법도 배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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