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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樊洞(번동)과 樊里

작성자국동|작성시간18.03.18|조회수47 목록 댓글 0

/ 번동은 산 줄기가 울타리 같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 신일고 동편 남북으로 뻗은 오패산 줄기 동편, 번1.2.3동으로 구 행정리명과 같이 쓰기도 하였다. 그런데, 원래는 벌이(伐李) 인데, 李가 리(里)로 듣기 좋게 명칭이 변하였다.


1.  고려 충숙왕때, 書雲觀秘記 (서운관비기)에 삼각산 동저십리(三角山 東低十里) 茂盛(무성) 伐李에 유래한다.

* 木子爲王. 李氏爲都 漢陽 유언비어가 무성하자.

* 오얏나무 (李씨)를 / 이 성계의 씨족을 풍수지리상 기를 꺽기 위하여,

* 충숙왕이 지금의 서울/한양에 남경부를 설치, 부윤을 두고 伐李司를 이곳에 배치 오얏나무를 심어 무성하면

  작벌지기(斫伐地氣) / 순이 나는 대로 도끼로 찍어 없애도록 하였다.

*삼각산은 지금의 북한산의 높은 세봉우리가 있어  이리 칭하고 멀리서 보면 어디서 던지 환히 볼 수 있어 화산(華山)

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2. 伐李가 伐里, 樊里~ 樊洞으로 지금의 오패산 동편 자락이다.

3. 鄭 夏彦은 1754년 52세때 영조30년 여주목사를 역임 중 붕당정치에 한때 파직 되어,

* 이곳 오패산 남측 북서울 꿈의 숲 북측 지역 (명덕산 자락일대 명덕골 /명덕동)에 들어와 수옥정을 짓고 수양하게 되고, 여기에서 터를 잡고 한 때 낙향 생활을 하였다. 얼마 안가서

* 다시 복직하다가 1761년 원주목사를 거쳐 호조참의 를 봉직중 연루 해직되자 재차 이곳 명덕골 수옥정에 들어와 지냈다.

* 여기서 지당(止堂)이란 또 하나의 호로 생활 지금의 회고록 같은 저서 지당집이 지어 졌다.

* 재차 복직되여 1769년 영조45년 다시 여주목사를 역임 중 병사 하였다.

4. 蔡 濟恭은 호가 樊巖이다,

* 채제공은 정 후겸의 난으로  같은 일족인 하언의 후손이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자, 이곳에 들어와 생활하면서 호를 위 설명 한 번리와 저 멀리 보이는 수락산 바위를 따서, 번암/ 암석으로 된 집 울타리를 뜻 한 호를 지어 지내게되고 후일 번암집이 나오게 된다.

5. 정 하언은 도성 8곳 중 하나인 홍화문 액 현판을 서필하기도 하였다. /지금의 창경궁 정문이다.서울대학 병원 방향.


6. 채제공은 정조의 화성(수원)유수를 거쳐 지금의 수원화성을 축성 한 공로자 정 약용 선생과 행정 총 책임자로도 역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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