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 (1913)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르셀 뒤샹은 원래 프랑스 출신이지만
나중에 미국에 귀화해 미국 작가로 활동했다.
뒤샹은 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활동 영역도 회화 뿐 아니라 조각과 영화 분야 등으로 폭넓었다.
초기 작품들은 후기 인상주의 경향을 보여주었으나 1911년부터는
큐비즘에 관심을 보였으며 1913년에는 전통적인 회화방식을 거부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1916년 쮜리히에서
다다이즘(DADA movement) 운동에 참여하였다.
Victor Obsatz, Portrait of Marcel Duchamp 1953
Courtesy Moeller Fine Art, New York
다다(Dada)는 세계 제1차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6년경에 시작되었다.
오늘날에야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 하면 인류의 종말을 생각하게 되지만
1차대전이 발발할 당시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은 전쟁을 통한
일종의 세계정화 혹은 정의구현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전쟁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1차대전 이후 유럽인들 사이에는 전쟁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을 강하게 가진 미술가들이
1916년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시작한 모임에서 다다라고 하는
반항기 강한 미술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세상에 대한 반항심은 곧 전쟁을 낳은 서구 전통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다다라는 명칭은 아주 우연히 지어졌다.
다다는 루마니아어로 목마를 의미하기도 하고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이가 옹알이로 다다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별 뜻도 없는 말인데 다다이스트들은 이 무의미한 음성어가
자신들의 작업과 목표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자신들의
명칭으로 삼는다.
사실상 다다이즘은 미래파나 큐비즘,
야수파처럼 하나의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하나의 태도를 가리킨다.
그들은 현존하는 모든 예술 형식에 대한 파괴를 감행하였고
저항을 위한 저항을 감행하였다.
한마디로 다다의 정신은 반대(anti)로 특징 지울 수 있는데
그들은 반종교, 반도덕, 반자연, 그리고 반예술에까지 나아간다.
다다이스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뒤샹이다.
그는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남성용 소변기에 사인을 하고
자신의 작품 '샘'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작가가 직접 만들지 않은 기성품을 작품으로 제시한 것을
우리는 레디메이드(readymade)개념을 확립하였으며 미술작품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서 완성된 유일무이한 물건도 아니고 이 작품에선
예술가의 독창성이 발휘되고 있지도 않다.
미술에서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을 재현하는 행위를 전면 부정하고
일상의 오브제가 아티스트의 선택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의 선택 행위 즉 정신적 행위가
예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는 1913년 뉴욕에 있는
무기고에서 열린 아모리쇼에 출품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19세기 중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과 같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마네는 표현의 새로움 이외에 그 당시의 사회통념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장면 때문에 대중에게 논란의 여지가 되었다면,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는 그러한 반사회적인 모습 때문에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아니라 기계적으로 분해되고 조합된
인물의 표현이 기계적인 운동의 모습과 결합되었던 점에서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작품은 미술사의 표현에서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으며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대단히 신선하게 보여진다.
제목만 보면 지극히 전통적이고 우아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도대체 나부도 여인도 도무지 발견할 수 없다.
뒤샹의 대표작이지만 당시에는 여러 면에서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제목 그대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나부를 그린 입체그림이지
추상화는 아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나부는 남녀노소를 구분할 수 없다.
심지어 사람이 아닌 로봇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그림을 그릴 때 뒤샹은 사물이 움직일 때의 ‘운동 모습’에 관심이 있어
작품 속에 동작 개념을 넣었지만 작품이 공개되자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기존 작품에서처럼 아름다운 여인이나 힘이 넘치는 남성의 나부가 아닌데다
나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당시 순수미술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웃음 당했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는 그가 단순히 입체주의의 모방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뒤샹의 나부는 해부와 행동이 불확실한, 인체와 기계가 복합된 존재로
시간과 공간을 움직이는 연속적인 단계로 표현되었다.
이 작품에서 인체는 차고 무감각한 기계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는 인체의 각 부분을 기계 부속들이 연결된 것처럼 그렸고 내려오는
위치를 마치 그래프로 기록하듯 하나의 위치에서 그 다음 위치로 진행
과정을 연속적으로 연결시켰다.
뒤샹은 ‘다다이즘’에서 ‘초현실주의’로 옮겨가고 팝 아트,
개념 미술 등 현대 미술사의 변화에 영감을 제공했다.
명성에 비해 부유하지 않았고 명예에 비해 오만하지도 않아
뒤샹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의 신비스러운 겸손함 때문에 오히려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위엄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여자나 아이들은 삶이 의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요인으로
보고 이를 거부해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았다.
당시 뒤샹이 미술가들에게 작품을 해설한 내용을 보면 분명
그는 개념을 앞서나간 작가라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이 고전 물리학을 죽이고 니체가 신을 죽였다면
뒤샹은 미(美)를 죽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뒤샹은 미를 죽인 대신 그 자리에 의미(意味)를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