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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면을 꽉 채운 성경책이다.
펼쳐진 성경은 <이사야 53장>을 가르키고 있다.
바로 그 옆으로 불 꺼진 촛대가 서 있고
왼쪽 아래 모서리에 오렌지색 사인(sign)이 있다.
성경 앞쪽으로 노란 표지의 소설책이 보인다.
이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가 그린 펼쳐진
성경과 꺼진 촛불,소설책이 있는 정물이다.
생소한 작품이지만 그의 비극적 인생을 축소해서 보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빈센트의 작품 중 유독 이 그림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문다.
그림속의 성경책은 아버지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경건한 삶으로 평생 사람들로 존경을 받았다.
1864년 빈센트는 부모와 떨어져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가난으로 15세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결국 빈센트는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하여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당시 젊은 빈센트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청년으로 인정받았고
헤이그를 떠나 구필화랑 런던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영국에 머물렀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많았던 빈센트는 성직자의 길을 열망하였다.
결국 직장도 그만두고 매일 성경을 탐독하면서 설교 활동을 하였고
전도사 양성학교에 입학하여 전도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에 전념했다.
하지만 암스텔담 신학대학에 낙방하였고 전도사 양성학교에서도
그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6개월간만
평신도로서 전도 활동만을 허가하였다.
결국 빈센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먹고 보리나쥬의 탄광지대로 떠난다.
이곳에서 최하층민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면서 옷과 침대까지
불우한 탄광촌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자신은
오두막에서 지내며 전도 활동에 전념하였다.
또한 탄광원들 노조에도 아낌없이 도와주면서 동맹파업(strike)에도
가담하였고 그러한 기질과 격정적인 성격의 이유로 결국 교회로부터
전도사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그림의 배경은 어두운 동굴에서 그림을 그린 것 마냥 어둡다.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가 램브란트나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시선이 앞쪽으로 올수록 밝아진다.
촛불은 꺼져 있어 아버지의 성경책을 더 이상 비추고 있지 않다.
그림에서 가장 밝은 부분은 앞쪽에 있는 노란색 소설책이다.
방금 출간한 책 같다.
많이 읽어 손때가 묻은 성경책은
자리를 넓게 차지하면서도 손님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노란 소설책이 “날 좀 봐 주세요!” 라고
주인처럼 외치는 것 같아 시선이 그쪽으로 흘러간다.
노란색은 명시성이 강한 색이다. 눈에 튀는 색이다.
차도의 중앙선도 그렇고 어린이를 태운 버스색도 노란색이 많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신경과민의 증세가 심해지고,
스스로 귀도 자르고, 정신병원 신세가 되고,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고,
심지어는 이 그림이 그려진 해에 그의 아버지는 급사하고,
남동생의 경제적 지원 외에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고,
마치 버려진 구두 한 짝처럼 손가락질 당한 그다.
그러한 빈센트에게 신비한 성경책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책이
더 큰 삶의 위로가 되었을까?(혹자는 이런 구도는 아버지에 대한 저항과
캘빈교회에 대한 회의와 단절을 표현한다고도 말한다).
불 꺼진 촛불은 아무런 말이 없다.
여하튼 빈센트는 이 소설책에 제목을 또렷이 적어두었다.
동시대의 프랑스 작가 에밀졸라의<삶의 기쁨>이다.
삶의 무게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빈센트 반 고흐.
그가 선택한 길은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을 미치도록 화폭에 담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기만의 전시회를 갖고자 하는
그의 희망은 그가 죽은 후에야 이루어 졌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풍경>을 유언작으로 남기며 촛불처럼 짧은
인생길을 살다 37세의 일생을 스스로 마감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서 53장 중에서)
9위 가셰박사의 초상 - 반 고흐 네덜란드 1890년작
1990년 거래 8250만달러
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Painting, Oil on Canvas Auvers-sur-Oise, France: June, 1890 Private Collection 67 x 56 cm
가셰의 초상화는 모델의 ‘슬픔 어린 표정’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는다.
(반 고흐에 의하면 가셰는 1875년 아내와 사별한 뒤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박사의 ‘상심한 표정’은 반 고흐에게 고갱의 «올리브 동산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했다.
비탄에 잠긴 순교자와 같은 가셰의 초상화는 고갱의 슬픈 구세주만이 아니라
반 고흐의 «피에타»에 나온 그리스도와도 비교된다.
가셰는 그 «피아타»를 ‘한참 동안’ 바라본 뒤 반 고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분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나라도 나서서 다시 그려쓰면 좋을 텐데.”
반 고흐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피에타»의 일부를 차용하여 박사의 모습을 그렸다.
그래서 박사의 초상화는 S자 형태로 힘없이 구부러진 자세와 금욕적 체념의 표정에서
반 고흐를 닮은 그리스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반 고흐는 가셰의 ‘비통한 표정’이 ‘바로 우리 시대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 초상화는 앞으로 사람들이 오랫동안 보게 될 현대적인 얼굴이며,
아마 100년 뒤에도 슬픔을 느낄 만한 표정일 것이다.”
분명히 그는 가셰의 표정을 19세기식 슬픔으로 여겼다.
그것은 모델의 팔꿈치에 공쿠르 형제의 소설인 «제르미니 라세르퇴»와 «마네트 살로몽»의
주인공인 코리올리 드 나즈는 자포니슴의 감수성을 지닌 예민한 성격의 화가로서
비탄에 빠지게 되는데, 공쿠르 형제에 의하면그것은 “현대 생활을 그린 금세기
위대한 화가들의 경력과 삶의 말로”에 해당한다.
자신의 모델인 마네트 살로몽과 결혼한 코리올리는 결국 가족에 대한
의무로 인해 야마잉 꺽이고 몰락한다.
반 고흐에게 그 노란 책들은 그 시대를 상징한다.
가세의 초상화에 나온 소설들은 수십 년 전에 발간된 것이지만 그것들을 포함시킴으로써
가셰는 에르네 메소니에, 알베르 베스나르, 퓌비의 시대에 속하는 현대인으로 보이게 된다.
마침 이 세 사람은 모두 당대의 책을 든 인물화를 그렸는데,
반 고흐는 그 그림들을 보고 ‘19세기식’이라고 생각했다.
반 고흐는 박사의 ‘찌푸린 얼굴’이 불쾌해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눈에 거슬리더라도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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