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Piet Mondrian)의 그림이 보이십니까? 신 조형주의의 주창자라 불리는 피트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면, 도대체 무슨 그림인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간단한 그림 같지만, 몬드리안은 보통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몇 달의 시간을 투자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왜 많은 시간이 걸린 걸까요? 그 이유는 몬드리안이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끝도 없는 고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정밀하게 사물을 재현한 그림들이 다 그려놓은 몬드리안의 그림을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런 작품을 구상하여 완성한다는 것은 그 밖의 다른 그림들을 보시죠. ![]() 몬드리안은 사물의 본질을 그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고민하고, 고흐 마티스 피카소 등 ![]() 그가 30대 후반에 그린 그림들을 보면 대상이 점점 절제되어 가고 있습니다. 추상화가 피트 몬드리안… 그는 관객을 위해 더욱 더 대상의 본질만을 |
20세기 최고의 지적화가, 폴 클레(Paul Klee) 보통 화가하면 그림만을 그리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준비와 노력을 합니다. 클레는 1921년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 교수, ![]() 보통, 뛰어난 화가들은 외부자극에 관한 특별한 감수성을 가지는 화가 라이오넬 파이닝거는 클레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클레는 깊은 현명함과 놀라운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측정 불가능한 나이를 가졌고, 시간을 초월한 사람이었다. eros 1924년 독일 예나에서 열린 미술협회 강연에서 그리고 그는 창작을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 파울 클레는 세상의 모든 근원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목표는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관한 수많은 지식과 그의 생각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파울 클레의 자화상을 한번 보시죠. 끝없이 예술에 관하여 고민하는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은 파울클레의 고민이 탄생시킨 작품들을 감상해 보시죠. |
음악이 들리는 그림, 칸딘스키 바실리 칸딘스키는 1866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차를 파는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아름다우면서도 지성을 겸비한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아이가 5살 되던 해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게 됩니다. ![]() 부모가 이혼하자 이모는 칸딘스키를 돌보게 되었는데, 바실리 칸딘스키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 칸딘스키는 어느 날 모스크바 국립극장에서 그 후 칸딘스키는 음악이 그림이 될 수 있고, Riding Couple(1906-07) 바실리 칸딘스키가 그림만 잘 그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후에는 미술 공예학교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도 가르쳤습니다. |
앙리 마티스의 열정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화가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가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니스에서 서북쪽 23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방스라는 작은 마을에는 로제르 예배당이 있습니다. 작은 예배당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마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스로 정화되고 무거운 짐을 덜었다는 생각을 갖길 바랍니다.” 20세기 현대 미술사를 뒤적여 보면 제일먼저 등장하는 화가는 마티스입니다. “마티스의 뱃속에는 태양이 들어있다.” 그가 표현한 색의 찬란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 마티스는 색채를 통해 외부세계가 아닌 자신의 내부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대담한 변형과 자유로운 터치 강렬한 보색대비, 비교적 늦게 그림을 시작한 마티스였지만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었죠. 색종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설화를 바탕으로 꾸민 대작 '왕의 슬픔', 앉아있는 여인을 표현한 연작 '푸른 누드' '이카루스', '다발', '폴리네시아 하늘', ![]() ![]() 그의 말년 또 하나의 역작은 로제르 예배당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푸른색, 초록색, ”간결하게 선으로 그려진 성 도미니쿠스와 성모자상도 성당의 그는 성당을 완성하고 죽기 전 3년간 종이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살아왔습니다. 20세기 현대미술 야수파의 선구자 앙리 마티스. 그는 평생 그림을 열정적으로 사랑한 화가였습니다. |
독특한 콧수염을 가진 괴짜, 달리 특이한 콧수염, 그리고 기이한 표정들, 언제나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유명했던 이 사람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입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죽을 뻔한 위험 앞에서도 청중은 언제나 성황리에 치러지는데 기여를 했고 살바도르 달리는 20세기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초현실주의란 말 그대로 현실이 아닌 초 현실을 표현하는 예술사조입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을 볼까요? 기억의 영속 가장 유명한 그림 '기억의 영속'입니다. 늘어진 시계들, 저 멀리는 바다 같기도 하고, 앞에는 파리 한 마리와 개미 무리들 같기도 하고, 아무튼 뚜렷하게는 알 수 없는 사물들로 화면이 채워져 있습니다. 초현실의 세계를 표현한 것 인만큼 역시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사실적인 표현에 보는 사람에게 충격을 주며, 관객 스스로가 무언가를 상상할 밖에 없이 만드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잠깨기 직전 석류 주위를 한 마리 꿀벌이 날아서 생긴 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은 잠에서 깨기 그런데 저기 누워있는 여인 보이시죠? 갈라는 살바도르 달리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갈라는 50여년을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살면서 정신적인 존재, 영감을 주는 수호자로 달리의 삶에 존재하였습니다. 언제나 기괴한 행동을 일삼았고, 독특한 사고를 가졌던 달리 옆에서 스스로를 천재라고 외치던 달리 그는 자신이 초현실주의 자체라고 늘 말했습니다. | ||||||||
페인트를 뿌려 스타가 된 잭슨 폴록 이 작품을 한번 보시죠. 무엇을 그린 작품 같으신가요? 왜냐하면 이 그림은 눈에 보이는 형태를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품 제목도 그냥 Number 5(1948) 그런데 이 작가는 이런 알 수 없는 그림을 통해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1억 4000만 달러에 팔리게 됨으로써 세상에서 거래된 가장 비싼 작품이 됩니다. 이 작품의 작가는 잭슨 폴록입니다. 작가 잭슨폴록도 그랬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캔버스는 자신을 표현하는 공간이었던 것이고 잭슨폴록은 어려서부터 무척 가난함을 겪어야 했습니다. ![]() 그런데 그의 천재적 직관력을 '리 크래스너', 당시 뉴욕에서 추상화가로 활동하던 그녀는 이렇게 모인 셋은 폴록이 후에 최고의 화가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리 크래스너는 늘 그가 작품에 몰입하도록 뒷바라지 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 라이프지는 잭슨폴록 특집기사를 실었고 하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주운전 사고로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됩니다. 미술은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보여줄 새로운 것 들은 또 어떤 것일까요. |
낙서가 예술이 되다 · 장 미쉘 바스키아 와 키스 해링 예술은 공부한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1989년 '나의 왼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연기자가 자신이 맡은 역을 정의하고 때에 따라서는 어떤 것이 정의되는 순간 때론 예술이란 그저 느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어쩌면 바스키아와 키스해링은 그냥 거리에서 ![]() |
매혹적인 사랑을 그린 화가 · 제임스 티소 칼라사진이 발명되기 한 참 전인 19세기 말경. 제임스 티소 입니다. 티소는 원래 프랑스 출신입니다. 자신이 존경하던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를 따라 개명한 이름입니다. ![]()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던 티소는 20대가 되자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갑니다. 그곳 파리에서 그는 마네 드가 등과 사귀며, 19세기 미술의 새로움을 접하게 됩니다. 제임스 티소는 이때부터 독자적인 자신만의 매우 예쁘고 패셔너블한 그림들을 그려갑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상류층들은 본인들의 모습을 너무나 예쁘게 그려주는 제임스 티소를 마음에 들어 했고, 티소는 그때 패션잡지 베니티페어(허영의 시장)의 일러스트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때 보불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가 패하자 곤경에 처하게 된 티소는 영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도 그의 그림은 매우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명성을 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고. 부자들은 패션과 고급스런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패션에 조예가 깊었고 프랑스풍을 가미한 예쁜 그림을 그리던 제임스 티소의 신선한 작품들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Katheleen Newton In an Armchair 그러던 어느 날 티소에게 운명적인 여인이 나타납니다. 40세이던 티소에게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은 22살의 캐슬린 뉴튼 입니다. 그녀는 아이가 하나 있었던 이혼녀였습니다. 하지만 티소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죠. 티소는 그 후 그녀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캐슬린은 그 후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를 하나 더 낳게 되지만, 티소는 그녀를 끝없이 사랑합니다. 그 후 친하던 귀족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멀리하게 됩니다. 행복했던 시간도 길지 않았습니다. 티소의 뮤즈였던 캐슬린 뉴튼은 폐병에 걸리게 되고, 그것을 비관한 나머지 그녀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큰 상실감에 빠진 제임스 티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그녀를 한 장의 작품 으로 남깁니다. 그리고 그는 영국을 훌훌 떠납니다. The Garden Bench 프랑스로 돌아온 티소는 그 후 성지를 순례하며 죽기 전까지 많은 종교화들을 남겼습니다. 미에 대한 특별한 감성을 가졌던 제임스 티소는 화가로서 많은 화려한 작품들을 남겼으며, 또 주위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만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남겼습니다. - 컨텐츠 제공 · 서정욱 [미술토크] / 조선일보 2010.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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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에코와 나르시스'
벨라스케스의 'Venus at her Mirror'
벨라스케스의 'Las Menin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