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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바다에서 뭍으로 돌아오는 계절.

작성자Captain KIM 명기|작성시간25.09.03|조회수94 목록 댓글 0

가을, 바다에서 뭍으로 돌아오는 계절.

 

두 달여 만에 다시 학교로 간다. 이른 새벽, 책상 앞에 앉아 Albinoni - Adagio in G Minor를 공간에 흘려 놓는다. 현악의 선율이 공기 속을 천천히 흘러 다니자, 마음은 모처럼 잔잔히 가라앉는다. 올여름 내내 숨 막히던 열기 속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었던 차분함이다. 무엇보다 오늘은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되는 새벽이라는 사실이 내겐 크나큰 위안이 된다.

 

이번 여름은 유달리 길고 혹독했다. 체온보다 높은 공기가 도시를 뒤덮고, 숨이 막히듯 눅눅한 더위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종일 바쁜 일정과 살인적인 기온 속에서 책을 펼 마음은 사라졌다. 그나마 ‘바다인류’ 몇 쪽을 겨우 넘긴 것이 전부였다. 땀이 비처럼 흘러내려 책장을 붙들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고, 저녁이면 지쳐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그대로 잠에 빠져들곤 했다. 비라도 내려 도서관에 숨어들고 싶었으나, 그마저도 여름 내내 제대로 내리지 않았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학교 생활에 맞춰진 내 몸은, 이제는 항해에 익숙한 몸으로 변했다. 책을 읽어도 머리에 남지 않고, 필기한 문장은 바닷바람처럼 스쳐간다. 얼마간 교정의 공기를 마셔야만 다시 조금씩 공부하던 습관의 몸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그것을 바란다. 변화란 더디지만, 반드시 일어난다.

 

가을. 바다에서 뭍으로 돌아오는 계절, 단순했던 삶은 다시 복잡한 선택과 갈등의 문턱에 서게 한다. 항해의 나날은 단순했다. 고객과 함께 파도와 바람을 읽고, 돛을 조정하며 노래를 듣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육지로 돌아오는 순간, 나는 학생이자 생활인이 되어야 한다. 원보당을 돌보아야 하고, 제네시스를 수리해야 하고,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러야 하며, 소논문을 써야 한다. 자유로운 뱃사람에서 학생으로의 전환은 마치 수에즈 운하를 건너 지중해에서 홍해로 항해하는 돌변과 같다. 전혀 다른 물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득 생각한다. 지금 내가 힘겹게 누리는 것들이 누군가에겐 소망하는 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세계일주 항해 도중, 수에즈에서 만난 한 프랑스 청년이 제네시스를 보며 내게 말했었다. “언젠가 나도 이런 배로 항해하는 것이 꿈이에요.” 그의 눈빛 속 동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내가 맞이한 이 고요한 새벽은 어제 세상을 떠난 누군가에게는 결코 다가오지 못한 미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주어진 오늘을, 이 소란스러운 현실을, 바다처럼 깊고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힘겹더라도 재미나게, 무겁더라도 가볍게. 고난을 안고도 노래하며, 갈등을 품고도 미소지으며 살아내야 한다.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이 삶의 항해에서, 나는 다시 용기를 낸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자신의 삶이다. 

 

가을, 나는 바다에서 돌아와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 하루 성실히 살아내자. 그것이 나의 항해이고, 나의 삶이며,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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