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사적인 대참사가 있고 나서 바로 하루가 지나고 오후가 되었다.. 선장 아저씨가 울타리 밖으로 나오더니, 풀을 뜯고 있던 우리를 다시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얌전하게 안으로 들어서는데, 내 눈을 의심케 하는 황당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 문디새끼가 나한테 와서 껄떡대도 모자랄 판에, 왜 뜬금없이 선장 아저씨가 서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가더니 거기서 엉덩이를 흔들며 껄떡대고 있는 게 아닌가! 아저씨 주변을 서성거리며 콧김을 씽씽 뿜어대는 꼴이라니, 기가 차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허참, 저 곰탱이가 어제 헛발질을 하더니 드디어 정신줄을 놓아버린 건가? 과녁을 못 맞추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종족을 초월해서 타깃을 아저씨로 바꾼 거냐고!’
가만히 보니, 아침에 선장 아저씨가 주남저수지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이 녀석이 엉뚱한 데 쌌다”고 고자질한 걸 이 순진한 총각 녀석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저씨한테 잘 보여서 만회해 보려는 녀석만의 소심하고 엉뚱한 애교(?) 같기도 했다.
산만 한 덩치로 아저씨 품에 대가리를 디밀며 쩔쩔매는 녀석의 모습이 솔직히 귀엽기도 하고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어제 그 민망한 대참사를 다 지켜본 아저씨 앞에서 저러고 있으니, 연상 누나인 내 입장에서는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이 문디새끼야! … 보는 내가 다 부끄럽잖아, 부끄럽잖아!’
아저씨는 또 엉뚱하게 자신에게 껄떡대는 주남 총각을 보며 기가 막힌 표정으로 허허 웃고 있고, 나는 먼 산을 보며 못 들은 척 입술만 실룩거렸다. 이 엉뚱하고 대책 없는 세 살 연하남과 무뚝뚝한 섬 아저씨 사이에서, 내 품격 높은 한산도 생활은 매일매일 상상을 초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저씨 주변에서 한참을 잔망스럽게 껄떡거리며 분위기를 흐려놓던 주남 총각 녀석이, 아니나 다를까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내 쪽으로 스리슬쩍 접근하는 게 아닌가! 녀석의 묵직한 발걸음이 내 곁으로 다가올 때마다 콧등으로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쳤다.
‘아, 이건 진짜 아닌데…!’
속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제께 그 민망한 대참사를 실시간 라이브로 중계 시청한 선장 아저씨가 바로 눈앞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단 말이다. 왜 자꾸 아저씨 앞에서 대책 없이 분위기를 잡고 그러는지, 이 눈치 없는 숫총각 녀석을 진짜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저씨가 또 전화를 걸어 “이놈들이 또 시작했습니다!” 하고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낼까 봐 조마조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 예쁜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가득 달아올랐다. 나는 다가오는 녀석을 향해 귀를 살짝 눕히며 소심하게 눈총을 쏘아붙였다.
‘눈치 없는 문디새끼야, 아저씨 보잖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하지만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구의 연하남은 내 몸에 슬쩍 제 듬직한 어깨를 밀착해오며 은근한 숨을 몰아쉬었다. 어제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 순진하고도 뜨거운 눈빛을 보니, 솔직히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며 배란기의 열기가 아래서부터 스르륵 차오르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밉상인데도 참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아저씨의 시선을 피해 주남 총각의 콧등에 내 코를 살짝 대고 아주 은밀하게 신호를 보냈다.
‘지금은 안 돼, 이 바보야. 있다가 밤에… 아저씨 가고 우리 둘만 마구간에 남으면… 음~~’
어둠이 내리고 마리나에 잔잔한 파도 소리만 들릴 때, 그땐 내 다리 사이에 묻은 어제의 헛발질 흔적도 깨끗이 지워내고 연상 누나가 제대로 한 수 가르쳐줄 참이다. 낮 동안 풀만 쳐먹으며 체력도 든든하게 보충해 두었으니, 오늘 밤 마구간의 문이 닫히면 이 덩치 큰 연하남과 진짜 화끈한 한산도의 밤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짐짓 시크하게 고개를 돌려 마구간 안쪽을 훔쳐보았다.
아, 내 간절하고 은밀한 눈빛 신호는 저 곰탱이의 두꺼운 대가리를 뚫지 못한 게 분명했다. 마구간에서 밤에 조용히 치르자던 연상 누나의 애타는 약속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이 주남 총각 녀석은 지금 당장 선장 아저씨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어떻게든 증명해 보이겠다는 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게 전력 질주해 달려들었다.
‘아, 증말… 이기 아인데! 이기 진짜 아인데!’
속으로 절규가 터져 나왔다. 도심 동물원에서 온갖 우아한 격식과 에티켓을 몸에 익힌 내게, 이 대책 없는 시골 총각의 날것 그대로의 돌진은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선장 아저씨가 바로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건만, 이 문디자슥에겐 우아한 격식이나 타이밍 따윈 개나 줘버린 모양이었다. 눈이 완전히 뒤집힌 녀석의 거구에 짓눌려 숨이 턱 막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판사판의 심정이 되어버렸다.
‘에라, 모르겄다! 창피한 건 잠깐이다, 그래 함 해봐라!’
마음을 비우고 눈을 질끈 감았다. 주남 총각은 아침의 굴욕을 만회하겠다는 듯 아주 기세등등하게 내 허리춤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무지막지하게 힘을 쓰기 시작했다. 덩치가 내 두 배는 되는 녀석이 온 힘을 실어 압박해오니, 나도 모르게 온몸의 근육이 잔뜩 긴장해 빳빳하게 굳어졌다. 드디어 이번엔 제대로 과녁을 찾았구나 싶어,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그 묵직한 거사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응?
또다시 내 엉덩이 주변으로 기분 나쁘게 미지근하고 끈적한 액체가 허공에서 사정없이 사방으로 투두둑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설마 했다. 진짜 설마 했다. 그런데 이 장군감 덩치를 한 문디자슥이 이번에도 내 소중한 곳은 구경도 못 해보고, 허공에다 대고 애먼 힘만 쓰다가 내 등판과 다리 사이에다 대참사를 고스란히 재연해 버린 것이었다. 아침보다 훨씬 더 우람하고 강력하게 투두둑 쏟아지는 그 허무한 체액의 소리를 들으며, 내 머릿속의 이성이 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 문디자슥. 니 마, 오늘 니 죽고 내 죽자!’
부끄러움과 허탈함, 그리고 도심 공주님으로서의 무참히 짓밟힌 자존심이 뒤섞여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아저씨 앞에서 이 짓을 두 번이나 직관당하다니, 이건 당나귀 수치사(羞恥死) 각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 땅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숨을 헐떡이는 주남 총각을 향해 뒷발을 사정없이 치켜들었다.
“이 대책 없는 곰탱이 마! 마 오늘 끝장을 보자! 차라리 내를 직이라, 내를 직여!”
마리나 창고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선장 아저씨 앞에서 대단한 남성미를 뿜어내려던 주남 총각은 내 서슬 퍼런 분노에 깜짝 놀라 덩치 값도 못 하고 구석으로 깨갱하며 도망치기 바빴고, 그 모습을 보던 선장 아저씨는 허탈하다 못해 돌아서서 가버렀다.어께가 들썩이는 걸보니 커어끄억 웃고있는게 분명했다.
우아하고 평화로운 로맨스를 꿈꿨던 내 한산도 동거 생활은, 과녁 하나 못 맞추는 이 무심한 연하남의 앙증맞은 헛발질 덕분에 매일 밤낮이 피 튀는 코미디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