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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6)

작성자윤선장|작성시간26.06.09|조회수29 목록 댓글 0


​그 역사적인 대참사가 있고 나서 바로 하루가 지나고 오후가 되었다.. 선장 아저씨가 울타리 밖으로 나오더니, 풀을 뜯고 있던 우리를 다시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얌전하게 안으로 들어서는데, 내 눈을 의심케 하는 황당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 문디새끼가 나한테 와서 껄떡대도 모자랄 판에, 왜 뜬금없이 선장 아저씨가 서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가더니 거기서 엉덩이를 흔들며 껄떡대고 있는 게 아닌가! 아저씨 주변을 서성거리며 콧김을 씽씽 뿜어대는 꼴이라니, 기가 차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허참, 저 곰탱이가 어제 헛발질을 하더니 드디어 정신줄을 놓아버린 건가? 과녁을 못 맞추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종족을 초월해서 타깃을 아저씨로 바꾼 거냐고!’
​가만히 보니, 아침에 선장 아저씨가 주남저수지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이 녀석이 엉뚱한 데 쌌다”고 고자질한 걸 이 순진한 총각 녀석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저씨한테 잘 보여서 만회해 보려는 녀석만의 소심하고 엉뚱한 애교(?) 같기도 했다.
​산만 한 덩치로 아저씨 품에 대가리를 디밀며 쩔쩔매는 녀석의 모습이 솔직히 귀엽기도 하고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어제 그 민망한 대참사를 다 지켜본 아저씨 앞에서 저러고 있으니, 연상 누나인 내 입장에서는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이 문디새끼야! … 보는 내가 다 부끄럽잖아, 부끄럽잖아!’
​아저씨는 또 엉뚱하게 자신에게 껄떡대는 주남 총각을 보며 기가 막힌 표정으로 허허 웃고 있고, 나는 먼 산을 보며 못 들은 척 입술만 실룩거렸다. 이 엉뚱하고 대책 없는 세 살 연하남과 무뚝뚝한 섬 아저씨 사이에서, 내 품격 높은 한산도 생활은 매일매일 상상을 초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저씨 주변에서 한참을 잔망스럽게 껄떡거리며 분위기를 흐려놓던 주남 총각 녀석이, 아니나 다를까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내 쪽으로 스리슬쩍 접근하는 게 아닌가! 녀석의 묵직한 발걸음이 내 곁으로 다가올 때마다 콧등으로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쳤다.
​‘아, 이건 진짜 아닌데…!’
​속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제께 그 민망한 대참사를 실시간 라이브로 중계 시청한 선장 아저씨가 바로 눈앞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단 말이다. 왜 자꾸 아저씨 앞에서 대책 없이 분위기를 잡고 그러는지, 이 눈치 없는 숫총각 녀석을 진짜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저씨가 또 전화를 걸어 “이놈들이 또 시작했습니다!” 하고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낼까 봐 조마조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 예쁜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가득 달아올랐다. 나는 다가오는 녀석을 향해 귀를 살짝 눕히며 소심하게 눈총을 쏘아붙였다.
​‘눈치 없는 문디새끼야, 아저씨 보잖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하지만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구의 연하남은 내 몸에 슬쩍 제 듬직한 어깨를 밀착해오며 은근한 숨을 몰아쉬었다. 어제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 순진하고도 뜨거운 눈빛을 보니, 솔직히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며 배란기의 열기가 아래서부터 스르륵 차오르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밉상인데도 참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아저씨의 시선을 피해 주남 총각의 콧등에 내 코를 살짝 대고 아주 은밀하게 신호를 보냈다.
​‘지금은 안 돼, 이 바보야. 있다가 밤에… 아저씨 가고 우리 둘만 마구간에 남으면… 음~~’
​어둠이 내리고 마리나에 잔잔한 파도 소리만 들릴 때, 그땐 내 다리 사이에 묻은 어제의 헛발질 흔적도 깨끗이 지워내고 연상 누나가 제대로 한 수 가르쳐줄 참이다. 낮 동안 풀만 쳐먹으며 체력도 든든하게 보충해 두었으니, 오늘 밤 마구간의 문이 닫히면 이 덩치 큰 연하남과 진짜 화끈한 한산도의 밤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짐짓 시크하게 고개를 돌려 마구간 안쪽을 훔쳐보았다.
아, 내 간절하고 은밀한 눈빛 신호는 저 곰탱이의 두꺼운 대가리를 뚫지 못한 게 분명했다. 마구간에서 밤에 조용히 치르자던 연상 누나의 애타는 약속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이 주남 총각 녀석은 지금 당장 선장 아저씨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어떻게든 증명해 보이겠다는 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게 전력 질주해 달려들었다.
​‘아, 증말… 이기 아인데! 이기 진짜 아인데!’
​속으로 절규가 터져 나왔다. 도심 동물원에서 온갖 우아한 격식과 에티켓을 몸에 익힌 내게, 이 대책 없는 시골 총각의 날것 그대로의 돌진은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선장 아저씨가 바로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건만, 이 문디자슥에겐 우아한 격식이나 타이밍 따윈 개나 줘버린 모양이었다. 눈이 완전히 뒤집힌 녀석의 거구에 짓눌려 숨이 턱 막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판사판의 심정이 되어버렸다.
​‘에라, 모르겄다! 창피한 건 잠깐이다, 그래 함 해봐라!’
​마음을 비우고 눈을 질끈 감았다. 주남 총각은 아침의 굴욕을 만회하겠다는 듯 아주 기세등등하게 내 허리춤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무지막지하게 힘을 쓰기 시작했다. 덩치가 내 두 배는 되는 녀석이 온 힘을 실어 압박해오니, 나도 모르게 온몸의 근육이 잔뜩 긴장해 빳빳하게 굳어졌다. 드디어 이번엔 제대로 과녁을 찾았구나 싶어,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그 묵직한 거사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응?
​또다시 내 엉덩이 주변으로 기분 나쁘게 미지근하고 끈적한 액체가 허공에서 사정없이 사방으로 투두둑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설마 했다. 진짜 설마 했다. 그런데 이 장군감 덩치를 한 문디자슥이 이번에도 내 소중한 곳은 구경도 못 해보고, 허공에다 대고 애먼 힘만 쓰다가 내 등판과 다리 사이에다 대참사를 고스란히 재연해 버린 것이었다. 아침보다 훨씬 더 우람하고 강력하게 투두둑 쏟아지는 그 허무한 체액의 소리를 들으며, 내 머릿속의 이성이 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 문디자슥. 니 마, 오늘 니 죽고 내 죽자!’
​부끄러움과 허탈함, 그리고 도심 공주님으로서의 무참히 짓밟힌 자존심이 뒤섞여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아저씨 앞에서 이 짓을 두 번이나 직관당하다니, 이건 당나귀 수치사(羞恥死) 각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 땅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숨을 헐떡이는 주남 총각을 향해 뒷발을 사정없이 치켜들었다.
​“이 대책 없는 곰탱이 마! 마 오늘 끝장을 보자! 차라리 내를 직이라, 내를 직여!”
​마리나 창고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선장 아저씨 앞에서 대단한 남성미를 뿜어내려던 주남 총각은 내 서슬 퍼런 분노에 깜짝 놀라 덩치 값도 못 하고 구석으로 깨갱하며 도망치기 바빴고, 그 모습을 보던 선장 아저씨는 허탈하다 못해 돌아서서 가버렀다.어께가 들썩이는 걸보니 커어끄억 웃고있는게 분명했다.
​우아하고 평화로운 로맨스를 꿈꿨던 내 한산도 동거 생활은, 과녁 하나 못 맞추는 이 무심한 연하남의 앙증맞은 헛발질 덕분에 매일 밤낮이 피 튀는 코미디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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