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저씨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날이 밝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장 아저씨가 하품을 하며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아저씨는 곧장 닭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닭들이 꼬꼬댁거리며 분주하게 파닥이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침 식사를 챙겨주는 모양이었다.
가만 보니 어젯밤에는 그 난리를 쳤던 염소 녀석들을 우리에 넣지도 않고 밖에서 재운 듯했다. 오늘도 그냥 풀밭에 메어두려는 모양인지 슬렁슬렁 염소 쪽을 훑어보던 아저씨가, 드디어 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울타리 너머로 특유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툭 던지는 것이 아닌가.
“잘들 주무셨는교? 총각이 밤새 귀찮게는 안하더나?”
‘아이고, 아저씨. 아저씨는 뭘 몰라도 진짜 하나도 몰라요!’
속으로 기가 차서 콧방귀가 나왔다. 총각이 나를 귀찮게 하기는커녕, 지금 내가 배란기가 와서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마음이 급해 밤새 내가 더 설쳤다는 걸 이 무뚝뚝한 아저씨가 알 턱이 없었다.
아저씨는 내 속도 모르고 고형 사료를 한 바가지씩 우리 밥그릇에 나누어 담아주었다. 그러고는 내 친근감의 표시인 양 내 콧등을 손으로 한번씩 툭툭 치고는 뒤를 돌았다.
어젯밤 내린 빗물이 밥그릇에 좀 고여 있어서 사료가 금세 눅눅하게 젖어가고 있었지만, 아저씨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저 시크하게 툭 던져놓고는 또 제 할 일을 하러 가버리려는 참이었다.
‘참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몸이 도심 동물원에서 사육사 세 명의 특급 케어를 받으며 이런 젖은 밥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귀하신 몸이란 말이요!’
당장이라도 돌아서는 아저씨의 허리춤이라도 앞이빨로 꽉 잡고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뭐가 그리 바쁘신지 아저씨는 휭하니 마당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섬 아저씨의 거친 대접에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일단 배가 고프니 젖은 사료라도 아작아작 씹어 삼킬 수밖에 없었다.
#8. 쇠말뚝과 공주님의 앙탈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사라졌던 아저씨가 커다란 망치와 쇠고리를 들고 나타나더니, 울타리 밖 단단한 땅에 탕탕 소리를 내며 쇠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나는 울타리 안에서 감질나게 자란 잔풀을 뜯으며 아저씨의 수상한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말뚝을 다 박은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 덩치 큰 주남 총각의 고삐를 잡고 울타리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러고는 방금 땅에 박은 쇠말둑에 총각을 묶어두었다. 그 주변을 슬쩍 보니 한눈에 봐도 초록빛이 싱그러운, 아주 먹음직스러운 풀이 지천으로 깔린 명당자리였다.
내심 부러워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이번엔 내게로 다가왔다. 나 역시 풀이 아주 무성하게 자란 쪽의 울타리 구역으로 안내되었다.
분명 눈앞에 연하고 맛 좋은 풀들이 가득했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저만치 묶여 있는 주남 총각 생각뿐이었다. 몸이 달아오른 나는 아저씨가 묶어주려는 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온몸으로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제자리에 서서 발을 구르고 고개를 저으며 버텼다.
내가 평소와 다르게 극성맞게 구니 아저씨도 내심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저씨는 곤란한 표정으로 다가와 꽉 조여 있던 줄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이때다!’
줄이 느슨해진 틈을 타, 나는 단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주남 총각이 묶여 있는 쪽으로 다다다 다가갔다. 그러고는 녀석의 코앞에 딱 붙어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버텼다.
선장 아저씨는 잠시 황당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제법 큰소리로 “점마 저게 왜 저라노! 야, 이리 온나!” 하고 뭐라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나는 귀를 슥 눕힌 채 철저하게 못 들은 척 연기를 펼쳤다. 내 지독한 고집에 결국 아저씨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는지, 한숨을 폭 쉬며 내가 그곳에 머무를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가버렸다.
#9. 연상 누나의 발칙한 유혹
아저씨가 사라지자, 드디어 나와 총각 단둘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주위의 풀을 아주 여유롭고 우아하게 뜯는 척하면서, 슬금슬그머니 총각의 시선이 머무는 각도로 움직였다. 그러고는 내 날씬하고 세련된 몸매가 가장 도드라져 보일 수 있는 치명적인 포즈를 취했다. 도심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내 매력을 총동원할 때였다.
사과를 씹듯 입술을 실룩실룩 거려 보이며 은근한 신호를 보냈다. 우둔한 주남 총각 녀석은 처음엔 열심히 풀만 뜯는가 싶더니, 내 노골적인 시선과 몸짓에 자꾸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녀석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지금이야!’
타이밍을 포착한 나는 녀석을 향해 내 예쁜 엉덩이를 스윽 돌렸다. 그러고는 꼬리를 살짝살짝 들어 올리며, 배란기가 찾아온 나의 소중한 부위가 보일락 말락 하게 아슬아슬한 유혹을 던졌다.
순진한 시골 총각에게 도심 숙녀의 화끈한 유혹은 치명타였던 모양이다. 주남 총각의 얼굴이 순식간에 불그락달라오르며 눈빛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만년 꼴찌의 소심함은 어디 가고, 녀석은 거친 숨을 내쉬며 나를 제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러더니 그 커다란 덩치로 내 등 뒤를 향해 묵직하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에구머니나!”
녀석의 거구에 짓눌리는 순간, 내 고개 사이로 총각의 엄청난 ‘거시기’가 힐끔힐끔 보였다. 세상에, 아무리 자기 덩치가 나보다 두 배 가깝게 크다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거시기한 사이즈였다.
‘원래… 당나귀 총각들은 다 저렇게 무지막지한 건가?’
도심 공주님으로 자라며 이런 야생의 날것은 처음 마주한 터라, 순간적으로 온몸의 털이 바짝 서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주남 총각의 뜨거운 숨결은 이미 내 등 뒤를 완전히 덮쳐오고 있었다.
#10. 한산도 로맨스의 첫 대참사
주남 총각의 거대한 무게가 등 위로 쏟아지는 순간, 정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압도적인 무게감과 터질 듯한 긴장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이러는 거지? 나 정말 어떻게 되는 거 아냐?’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가 귀를 때렸다. 본능적인 두려움과 배란기의 묘한 흥분이 뒤섞여 엉덩이를 하늘 높이 띄워 올리고 싶어졌다. 내가 총각의 묵직한 몸짓에 맞추어 엉덩이를 이리저리 돌리자, 녀석도 잔뜩 흥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엉덩이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잠시 후, 엉덩이 주변으로 무언가 뜨겁고 거대한 것이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내 몸은 마치 용광로처럼 불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라…? 이게 아닌데?’
내 왼쪽 뒷발 부근으로 총각의 뜨거운 체액이 우두둑 쏟아져 내렸다. 내 몸 위에서 몇 번인가 격하게 몸을 떨던 주남 총각 녀석이, 엉뚱하게도 내 다리 사이에다 대고 볼일을 다 봐버린 것이었다.
‘야! 이 바보야! 거기가 아니라고!’
너무 황당하고 기가 차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도심 공주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내 예쁜 엉덩이를 이전보다 훨씬 더 도드라지게 하늘을 향해 치켜 올렸다. 얼른 정신 차리고 다시 제대로 해보라는 연상 누나의 강력한 사인이었다.
하지만 내 등에서 스르륵 내려간 주남 총각 녀석은… 정말 기가 막히게도 그 자리에서 태연하게 풀을 뜯기 시작했다.
‘저, 저런 무심하고 곰 같은 녀석을 봤나!’
나는 마지막 필살기로 내 소중한 부위를 더욱 실룩실룩 거리며 꼬리를 홱 들어 올렸다. 이 정도면 눈이 뒤집혀서 다시 덤벼들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주남수산(?) 출신의 이 순진해 빠진 총각 녀석은 내 간절한 유혹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직 땅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풀만 열심히 쳐먹고(?) 있었다. 녀석의 머릿속엔 그저 ‘거사를 치렀으니 이제 밥 먹을 시간’이라는 단순한 생각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평생 서열 꼴찌로 눈치 보며 밥 먹던 식탐 본능이 이 타이밍에 터질 줄이야!
허탈함과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맙소사.
저 멀리 마당 구석에서 선장 아저씨가 팔짱을 끼고 이 해괴망측한 대참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와 내 눈이 정확하게 마주친 순간, 머리끝까지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는 내 민망한 눈빛을 피하더니, 황급히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다급하게 통화를 하며 저 멀리 가버렸다. 아마 주남저수지의 그 베테랑 아저씨에게 전화해서 “아이고 사장님! 이거 우째야 합니까! 주남이 요 녀석이 엉뚱한 데다 대고 발사를 해뿠네요!” 하고 하소연을 하러 가는 게 틀림없었다.
도심 엘리트 출신인 내 생애 가장 화끈하고도, 가장 어이없게 폭망해 버린 한산도에서의 첫날밤… 아니, 첫날 아침의 대참사였다. 저 무심한 덩치 연하남을 앞으로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벌써부터 앞날이 캄캄해졌다.